틈에 핀 꽃

일상의 틈새(間)에 혼자 차를 마시며 간을 본 죽영당의 茶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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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식(choisad)등록 2018.01.22 10:41
1. 간 철학(間 哲學)과 차도삼론(茶道三論)의 이해
간철학과 차도삼론은 진주의 차인, 竹咏堂 정헌식 선생이 완성한 茶 철학이다. 그는 차도삼론을 종합하여 <간철학>이라 이름 붙인 차철학을 제시하고 있다. 두 물체의 사이나 틈새를 의미하는 한자 사이 間과 우리 말 (음식의) 간을 보다 혹은 간을 맞추다 등의 간의 의미를 아우르는 중의적인 간(間)이다.

그는 일상의 틈새(間)에 혼자 차 한 잔을 마시는 즐거움, 一人茶會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차생활의 기본인 가장 작은 차회를 모델로 차문화를 분석한다.

차회는 인간-예술-자연, 즉 나-찻잔-차의 영역으로 구성된다. 차회를 이렇게 세 갈래 영역으로 나누어 체계를 세운 것이 차도삼론(茶人論 茶器論 製茶論)이다. 혼자서 차 한 잔을 마시는 나홀로 차회를 차생활의 원형으로 보는 것이다. 나에서 너 그리고 우리, 지구인, 우주인으로 확장되듯이 예술로서의 器物과 자연과학으로서의 차 영역 또한 그렇게 확장되는 것이다. 지금 여기(Now & Here), 나의 존재를 깨닫는데서 부터 대사회성의 자각과 실천으로 따뜻한 사회를 실현하는데 까지 확대된다. 나와 찻잔과 차로 대표되는 인간과 예술 그리고 자연이 하나의 점으로 따로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그 점과 점 사이를 연결하는 하나의 거대한 네트워크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이다.

"간철학으로 부분과 전체를 정관(靜觀/正觀/淨觀...)하면 온 틈에서 꽃이 핀다." 나는 그의 이 한 줄에 간철학이 압축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간철학이란 中正의 道, (禪茶)一味, 一心의 哲學이다. 차를 통한 인간과 예술 그리고 자연 사이의 調和다. 나와 찻잔과 茶 사이의 간맞춤 즉 간격 혹은 거리를 맞추고 차의 맛과 색과 향을 맞추는 것으로 이해한다. 조금만 빼면 너무 모자라고 조금만 더하면 너무 넘치는 '마치맞은' 경지. 그런 경지를 추구하는 것. 그 작은 차이를 누구 보다 크게 느끼는 것. 그것이 그의 茶道다.

사무라이에게 칼은 사람을 죽이는 殺人劍이어서는 안된다. 반대로 사람을 살리는 活人劍이어야 한다.
그것이 깡패(조폭, 건달....)와 사무라이를 가르는 분수령이다. 그것을 위해 사무라이의 칼날은 늘 시퍼렇게 날이 서있어야 한다. 그 예민한 감각(의식의 칼날)을 유지하기 위해 사무라이가 매일 숫돌에 칼을 갈 듯이 차인은 매일 같이 차를 마시면서 차의 간(間)을 맞추는, 그 '마치맞음'의 경지를 유지하는 修行이 바로 그의 茶道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는 그것이 活人茶의 길이라고 믿고 있는 듯 하다.

2. 간철학과 차도삼론에 대한 私說
어떤 철학과 교수님이 철학이란 '너의 아버지가 진짜 내 아버지일까를 의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너의 어머니에게 물어봐라. 그것은 너의 어머니만 아신다. 아니다 너의 어머니조차 헷갈릴 지도 모른다."생각하는 삶이여야 한다. 모두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을 깊이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 철학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 아닌가 싶다.

나는 며칠 전에 <설득과 현대 사회> 를 종강했다. 로버트 치알디니 교수가 쓴 <설득의 심리학>이 주교재인데 이 책이 갖는 최고의 미덕은 설득을 꼼수나 요령이 아니라 설득의 과학을 설득하고 있다는 점이다. 수많은 심리학적 실험을 통해 설득의 이론체계를 세우고 풍부한 실제 사례를 제시함으로서 이론과 실제 사이의 간극을 메우고 있다.

"Science is not enough"그러나 종강을 위한 나의 마지막 강의 제목은'과학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였다. 설득의 과학은 상품을 더 많이 팔기 위한 효과적인 마케팅의 도구이거나 사소한 개인적 부탁을 들어주게 만드는 데 효과적일 수가 있다. 그러나 설득은 과학적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설득의 기술, 설득의 과학을 넘어 설득의 道를 추구해야 한다. 설득의 道는 바로 인간의 길이다.

大盜 조세형은 알고 보니 치졸한 좀도둑에 불과했다. 남의 집 담을 넘어가 댜이어 반지를 훔치면 도둑놈이 되지만 한 시대나 한 나라를 훔치면 영웅이 된다. 한 두 사람을 죽이면 흉악범이 되지만 십만, 백만 명을 죽이면 불세출의 영웅이 된다. 누가 죽이면 살인범이 되고 누가 죽이면 영웅이 되는가? 나는 그것이 철학의 차이라고 믿는다. 그러면서 경주 최 부자집과 충무공 이순신의 설득의 道를 이야기했다. 세계 최장의 부의 역사를 만들었던 것은 돈을 긁어 모으는 재주가 뛰어났기 때문이 아니다. 손안의 모래알처럼 움켜쥘수록 더 빨리 빠져 달아나는 재물의 속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정무공 최 진립의 똥論 때문이다. 영화 <명량> 에서 충무공은 말한다."무릇 장수된 자의 의리는 忠을 쫓아야 하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아들이 묻는다."임금이 아니구요?"

광고가 위기를 맞은 것은 과학적이지 않아서가 아니다. 기술이 모자라서는 더더욱 아니다. 광고인들의 인격을 의심 받고있기 때문이다. 도척이라는 놈은 도둑질에도 道가 있다고 했다는데 하물며 茶임에야. (남이 인정하든 말든) 나만의 철학을 갖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철학이 없다면 차는 고작 나무 잎사귀 우린 물이거나 한갓 사치성 기호식품에 불과한 것이다. 일본은 사무라이(武士)의 나라다. 그 사무라이들에게 劍道와 茶道가 없었다면 일본은 칼잽이들이 판을 치는 야만의 땅이 되었을 것이다. 칼잽이를 칼의 문화로 재인식하게 하는 것이 생각의 위대함이요 철학의 힘이다.

우리 학교 교정에는 그리 크지 않은 설립자의 동상이 앉아있다. 동상 앞면에는 二忘不一忘이라고만 새겨져 있다. 二忘不一忘은 다섯 자로 압축된 그 분의 인생 철학이다. 나는 본인의 입으로 그것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자기 철학을 가졌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분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옛날 커피 광고 생각이 난다.

1) 가슴의 반은 늘 열어놓는다.
그리움의 반은 늘 닫아놓는다.

2) 뜨거운 커피를 마시듯
천천히 살아온 날들이 아름답다.

그 깊고 풍부한 맛과 향 맥심.
가슴이 따뜻한 사람과 만나고 싶다.
커피의 명작 맥심.

맛있는 차 보다 향기로운 차 보다 가슴이 따뜻한 사람과 먼저 만나고 싶다.(笑閒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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