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 앞에 장사 있네요

<같지만 다른 중국 생활 관찰기>다양한 문화권 친구들의 각기 다른 겨울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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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준호(joon1407)등록 2018.01.10 11:18
요즘 '중국'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를까? 예전엔 '메이드 인 차이나' '짝퉁'이라는 단어가 많이 생각났겠지만, 최근 중국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놀라운 경제 성장을 이루고 있는 차기 최고강대국 후보라는 말이 가장 어울린다. 이런 뉴스에 나올 법한 이야기는 다소 거창하고, 앞으로 1학기 동안 북경에서 생활하며 경험한 즐거운 에피소드와 성장하는 중국 속 사람들의 사는 모습, 더 나아가 사회, 문화적으로 한국과 중국이 각자 가진 사회 문제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글을 써보려고 한다.


교실에 들어와 같은 반 러시아 친구가 패딩을 벗는다. 반팔 티셔츠다. 또 다른 같은 반 스웨덴 친구가 패딩을 벗는다. 또 반팔 티셔츠다. 영하 5도를 웃돌던 12월 중순의 교실 풍경이다. 기겁할 노릇이다. 패딩 속 보온 내복에 기모 후드, 패딩 조끼까지 연달아 걸친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마치 시베리아 한가운데 던져진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러시아는 워낙 추운 날씨로 유명하기 때문에 단련이 되었다고 생각이 들었고, 스웨덴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북유럽이기 때문에 하얀 설산이 있는 풍경을 떠올리며 추위에 익숙할 거라는 선입견을 품었다. 하지만 검색해본 결과 스웨덴은 현재 영하 1도 안팎과 더불어 평소 영하 10도를 넘어가는 일이 별로 없는, 이미지보다 훨씬 따뜻한 나라였다.

과학적으로 추위에 가장 잘 적응할 수 있게 몸이 진화한 것은 황인종이라고 들은 적이 있는 나는 그 정보에 대해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여기서 본 백인 친구들은 피부에 강철이 들었나 의심이 들 정도로 옷을 얇게 입고 다닌다. "안 추워?"라고 물어보면 고개만 까딱 저을 뿐이다.

중국의 샤브샤브라고 불리는 훠궈. 한 종류인 새우훠궈 ⓒ 신준호


겨울은 처음이에요

이와는 반대로 따뜻한 나라에서 온 친구들은 처음 맛보는 겨울 강추위에 심각한 고생 중이다. 코스타리카, 콜롬비아, 브라질 등 더운 나라 친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한 번씩 지독한 감기를 앓으며 힘겨운 '겨울나기' 중이다. 심지어 겨울 옷이라고는 가족의 오래된 옷장에서 꺼낸 아버지의 옷 한 벌뿐이라 북경에 온 후 겨울 옷 쇼핑에 나서는 친구도 있었다.

감기로 고생하고 있는 코스타리카 친구에게 한국의 우동 컵 제품을 선물해준 적이 있다. "추운 날은 이 국물 하나면 행복해져"라는 나의 말에 친구는 눈앞에서 바로 끓여 먹었고, 눈이 휘둥그레지며 엄청나다는 말을 뒤풀이했다. 현재 그 친구의 '가장 사랑하는 음식'이다. 추운 날 우동 한 그릇은 만국 공통 언어다.

따뜻한 나라 친구들에게 겨울 외출은 매 순간이 추위와의 전쟁이지만, 남미 친구들의 활동적인 특징은 죽지 않는다. 늘 활기 넘치고 밝은 미소를 띠며 다니는 친구들은 강추위를 뚫고 매주 북경을 떠나 중국 이곳저곳을 여행 중이다.

그중에서도 단단한 체격을 가진 코스타리카 친구 한 명은 최고의 적응력을 자랑했다. 평소 춤을 추는 모습이나 생활 모습을 보면 딱 보기에도 열이 많아 보였던 이 상남자는 처음 겪는 겨울의 추위에 개의치 않고 12월 중순에 반팔티에 패딩조끼 하나만 걸칠 뿐이었다.

하루는 반팔티에 패딩 조끼를 걸친 채 오토바이를 타고 그 친구의 입에 장미꽃 한 송이가 물려 있었다. 소설에서나 볼 법한 '열혈 로맨틱 가이'를 실제로 본 순간이었다. 꽃의 주인이 누구일지는 모르겠지만, 평소 친구의 엄청난 열정을 보았을 때 상남자의 매력에서 헤어나오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산시성의 한 풍경 ⓒ 신준호


지역 따라 추위 견디는 게 다른 중국인들

이렇듯 다양한 문화권 친구들의 겨울에 대한 반응은 제각각인 것은 예상이 갔지만, 같은 나라임에도 워낙 나라가 큰 중국에서 지역별로 사람들이 느끼는 겨울 체감은 다르다는 점은 신선했다.

빙등축제로 유명한 하얼빈에서 영하 30도 '추위 하드 트레이닝'을 하다 온 친구는 북경의 겨울에 무덤덤했다. 하얼빈에서는 냉장고가 가득 찼을 땐 창문 밖에 두면 상하지 않고, 물을 뿌리면 바로 얼어버리는 풍경을 목격할 수 있다고 말하는 친구에게 북경은 '서울 사람에게 부산 날씨' 이상의 의미였다.

하지만 남쪽에서 온 중국인은 남미 사람과 다르지 않았다. 겨울에도 15도 근처의 기온을 유지하는 중국 남쪽 하이난 출신으로 올해 처음 북경에 온 친구는 난생 처음 패딩을 구매했다. 새로운 환경을 경험해보고자 동시에 합격한 남쪽 대학교를 포기하고 북경으로 온 친구는 첫 겨울나기에서 이미 무너져버렸다. 얼른 학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요즘은 사계절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봄, 가을이 눈 깜짝할 새 지나가지만, 그래도 사계절 내내 다양한 기후를 경험하는 한국인들은 세상 어디에 던져놔도 기후 때문에 고생하는 일은 비교적 덜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예외적으로 나는 추위를 잘 타는 탓에 북경의 겨울 속에서 많은 고통을 겪고 있고, 먼 훗날 꼭 따뜻한 나라에서 살겠다는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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