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법규 위반 횟수에 비례해 다져지는 싸움의 기술

검토 완료

김태완(moveon1821)등록 2017.12.29 08:32
캐나다에 와서 전셋집(한국과 같은 전세라는 개념이 없으니 정확히 말하면 월세라고 해야 맞다.) 이라도 장만하고 정착을 한 건 랜딩한지 한지 2개월 지난 후였다. 여름 방학 중인 토론토 외곽의 대학교 기숙사에서의 초기 탐색기간을 거친 후토론토에 정착하기로 마음 먹었다. 생활의 근거지가 마련되어 한숨돌리게 되자 우리 가족은 토론토 시내 구경을 나갔다. 그전에도 한번 가본 적이 있지만 시간에 쫓겨 제대로 보지 못한 왕립 온타리오 박물관(ROM,Royal Ontario Museum)이 우리의 첫행선지였다.

그런데 첫 번째 나들이 장소인 이 명소가 나의 교툥범칙금 첫테이프를 끊는 곳이 될 줄은 꿈에도 상상치 못했다. 한국에서 갓  온 이민자인 우리들의 생각으로는 당연히 그렇게 큰 박물관에는 넓고 편안한 주차시설이 마련되어 있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다운타운 초입에 위치한 그곳에는 일반 관람객을 위한 주차장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없었다. 다만 건물 주변 길 양옆에 드문드문 길거리 주차를 할 수있지만, 이것마저도 그리 쉽사리 자리가 나지 않았다. 박물관 주위를 크게 서너 번빙빙 돌기를 마친 후에야 차 하나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비로소 발견하게 되었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한편으로는  '이넓은 땅 덩어리를 가진 나라가 주차 인심은 왜 이리 박한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뒤따라 왔고, 그 생각은 아직도 변함이 없다..

관람을 마치고 여름 햇살을 즐기며 차로 돌아오는 길에 저 멀리 보이는 내차 앞유리에서 뭔가가 바람에 흔들린다. 저게 뭐지? 아내도 뭔지 궁금하다는 듯 나를 쳐다 본다. 그건 나중에 여러 번 받으면서 익숙해지게 된 진노란색 교통위반 딱지였다. 먼저 주차시간이 초과되었나 확인해 보았지만,시간은 20분이나 남아 있었다. 그럼 뭐지? 할 수없이 노란 바탕에 검정색 보색으로 친절하게 깨알같이 박아 쓴내용을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뭔가 착오이기를 바라면서...

결론은 '소화전3미터 이내 주차금지'를 위반했다는 것이었다.주위를 둘러보았다. 아 저거!  붉은색 몸통에 파란 모자를 씌워 놓은 것 같은 쇠 구조물(색깔은 설치된 곳마다 조금씩 다르다)이 눈에 들어 왔다. 그런데 여기에 왜 '주차불가' 라는 표시가 없는 거야! 소화전 3m 이내는 주차선을 그려 놓지 않거나, 바닥에 주차금지라고 써놓은 후라야 주차위반을 했네 마네 얘기할 수 있는 건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천천히 깨닫게 된 것이지만 캐나다 공공시스템은 그렇게 친절하지 않다. 소위 주차위반일지언정 시민을 범법자로 만드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최소한의 조치를 했어야 옳지 않을까 하는 나의 생각은 서양인들의 합리적이지만 냉정한 사고체계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초보이민자의 한탄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나의 교통법규 위반 행렬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으로 이어졌다. 토론토 생활에 어느정도 익숙해진 2017년초에 공교롭게 또 다시 발부받은"소화전 3m 전' 티켓이 지금까지의 마지막  위반 사례인데 그 사이에 10여회의 다양한 위반 실적을 쌓아 올렸다. 주차위반, 빨간신호등 주행, 일단 멈춤 위반,  운전중 핸드폰 사용, 경찰관 수신호 위반, 보험증 불소지, 스트리트카(전차) 옆 불법 주행, 불법 유턴 등등. 이중 가장 많이 위반한 사례가 주차 위반인데 이것은 매우 다양해서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너무 자주 위반하다 보니 주차할 때는 일종의 트라우마가 생겨서 주변을 한참 동안 살피게 되지만 이시간에 여기에 주차해도 되는지를 짧은 시간에 판단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도로 곳곳에 세워진 표지판이 초보이민자들에게는 제대로 눈에 들어 오지 않을뿐더러, 작은 글씨로 쓰여진 그 표지판의 의미를 제대로 읽어내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는 개인적인 일로 법정에 간 것은 전용차선 위반으로 단 한번밖에 없을 만큼 법 없이도 사는 모범시민(?) 이었는데 캐나다에 와서는 5년여 사이에 십여 회 법정에 나갔으니 1년에 최소한 2-3회 드나 들었다는 얘기가 된다. 이를테면 전과 십 몇 범에 달하는 전력을 가진 셈이다. 이러다보니 나도 어깨너머로 보고 들은 재판의 진행과정과 용어를 경험으로 습득하게 되어 소위 법조인 다음으로 법률시스템에 익숙하다는 '범법자'의 반열에 오른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받은 범칙금은 $40에서부터 $380까지 다양했는데, 내가 부과된 범칙금을 그대로 다 낸 건 첫 딱지를 받은 때 외에는 한번도 없었다. 그야말로 어리버리하던 초기에는 범칙금을 순순히 내지 않으면 캐나다 정착에 무슨 불이익이라도 있을까 하는 막연한 우려때문에 티켓받은 다음날 바로 현금($100)으로 납부했었다. 그런데 이 일을 전해들은 지인들이 보여주었던 측은함과 뭔가 형용할 수 없는 안타까운 얼굴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 이후 나는 현지 시스템에 적응하는 법을 익혀 나갔고, 그것을 활용한 나는 승률 70%의 내로라할 만한 전적을 가지게 되었다. 처음 뭘 몰라서 순순히 냈던 것을 제외하면 거의 80% 승률을 자랑하는 '전문가'가 된 셈이다. 범칙금에 무슨 승률이 있을까마는 처음 매겨진 법칙금의 합을 분모로 하고 그 범칙금에서 내가 실제 지불한 범칙금의 합을 뺀 수치(내가 방어한 액수)를 분자로 하면 그런대로 의미있는 수치가 된다.

내가 경험으로 얻은 '싸움의 기술'중 가장 중요한 것은 범칙금 딱지를 받으면 무조건 시청에 이의 신청을 하고 재판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나머지 기술들은 재판 당일 법원에 가면 검사가 묻는 말에 순순히 수긍할 것(소위 "PleadGuilty"). 그러면 기본적으로는 범칙금 최소 50% 이상은 감면되고, 게다가 벌점(Demerit Point)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 운이 좋아 단속 공무원이 법정에 출두하지 않으면 사건 자체가 각하(Withdrawn) 되어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으로 된다는 것 등이다.

사실 이정도의 기술은 웬만큼 교통법규를 위반해본 경력자들의 입에서 공통적으로 들을 수 있는 것이지만, 나에게는 또 하나의 비법이 있다. 내가 이것을 감히 비법이라 얘기하는 것은 그동안에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했던 희귀한 사례여서 나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법정에 간 것은 2017년 9월말. 그 '소화전 3m전' 두번째 위반 사례가 일어난지 8개월만에 잡힌 재판이었다. 나는 그간의 경험대로 검사에게 가서 출석을 알리고 내가 신청한 통역사가 안 보인다고 얘기했다. 검사는 곧 올 거라며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그런데 그날 재판에 나온 30여명 중 절반 이상이 진행 되도록 통역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남은 사람이 몇 명 없자 검사는 나를 흘끔보더니 내 이름을 불렀다. 앞으로 나가자 검사가 "한국어 통역을 신청했는데 통역사가 오지 않았다"고 판사에게 말했다. 그런데 법원측 서기는 통역 신청된 기록이 없다며 문서철을 빠른 속도로 뒤적였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재판통지문서에도 버젓이 나와 있는 통역사 신청 기록이 없다니?' 검사를 쳐다보자 그녀는 통역사 신청된게 맞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를 지켜보던 재판장이 내게 통역사 없이 혼자 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나는 그러마고 했고, 인정신문과 몇가지 기본적인 질문을 마친 판사는 사건 각하(Withdrawn) 를 선언했다. 나는 속으로 "아싸"하며 쾌재를 부르고는 가장 공손한 태도로 재판부에게 인사를 하고 뒤돌아 나왔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깜짝승리'였다. 생각컨대, 아마도 이의신청시 바로 통역사 신청을 하지 않고 3-4주 지난 후 뒤늦게 신청함에 따라 행정처리 착오가 일어나서 법원과 검사측이 가진 자료에 불일치가 일어난게 아닌가 추측되었다. 하여 나는 그간 '아픈만큼 성숙해진' 나의 교통법규 위반 경험에 비추어 그동안 법규 위반자들에게 전수되어온 금과옥조에 하나의 기술을 더하고 싶다.
"교통법규 위반으로 딱지를 받고 이의신청을 할 때는 자신의 영어실력과 무관하게 무조건 통역사를 신청하라. 좀더 승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통역사 신청을 이의신청보다 늦게 하는 것도 고려해 보라."

하지만 이 기술이 100% 먹힐지는 보장할 수 없다. 검사도 판사도 그 외 모든 것이 그때그때 다르기 때문이다,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