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눈이 올라가면 남자는 심쿵하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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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철(shinbcl)등록 2017.11.16 15:13
 가을이 가기 전에 용눈이오름은 올라 가봐야한다.
겨울이 끝나갈 때도 용눈이 오름 올라가봐야 한다.....
언제 올라가도 괜찮다는 뜻이다.

늦가을 용눈이는 하얀 억새꽃 모자를 쓰고 있다. 어찌 보면 엉덩이 같기도 하다. 올라가기 시작했다.

용눈이 오름 막 올라가기 시작했다. 억새꽃 모자를 쓰고 있다. ⓒ 신병철


꽃향유가 보라색 향연을 펼치고 있다. 향유면 향기가 난다는 말이다. 보라색이 그냥 향기가 날 거라고 여겨져 이름붙여지지 않았을까? 보고 있으면 향긋한 냄새가 스쳐지나갈 것 같기는 하다.

용눈이 오름 꽃향유 제주 가을의 대표적인 꽃이다. ⓒ 신병철


저만치 다랑쉬오름이 높이를 자랑하고 있다. 오름의 여왕이란다. 땀께나 흘려야 올라갈 수 있다. 앞에는 아끈다랑쉬오름이 얌전히 앉아 있다.

제주 오름들은 독립산이다. 오름 아닌 곳은 평지다. 그래서 하늘이 넓다. 몽골이 그랬다. 넗은 하늘엔 원래 별이 많아야 한다. 제주의 밤에 밝은 불 없는 곳엔 별이 많다.

용눈이오름에서 본 다랑쉬오름 용눈이 오름에서 다랑쉬오름이 멋있게 보인다. 앞에는 아끈다랑쉬오름이 얌전히 앉아있다. ⓒ 신병철


올라가는 길이다. 산허리를 돌아 길이 구불거리고 있다. 가만히 서 있으면 길이 스스르 움직이며 산 위로 데려다 준다. 사람들이 많이 찾아서 길 아닌 곳으로 가지 말랜다. 그러면 꽃구경하기 힘들어진다. 물매화는 봐야 하는데.....

용눈이오름 용눈이오름 올라가는 길이다.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다. 길 아닌 곳은 출입금지다. 사유지란다. ⓒ 신병철


나, 너를 찾아 멀리 표선에서 왔는데 어디 숨어 있었느냐? 빨리 오지 않았다고 한 놈은 벌써 져 버렸다. 그래도 끈기있게 기다린 놈과 늦게 핀 놈이 반가이 맞는다. 가을엔 꼭 이 용눈이 물매화를 봐야 한다. 참으로 선하다. 선선하기도 하고 착하기도 하다. 이쁘면서도 당차게 올바른 말 하던 젊은 여성 같다. 꼭 같은 학교 근무했던 배선생 같다. 두 아이 엄마였던 배선생은 올림픽대로에서 교통사고로 죽고 말았다. 물매화 보니 이쁘고 당찼던 배선생이 자꾸 생각난다.  

물매와꽃 용눈이오름에는 물매화꽃이 많다. 꼭 이때 오면 많이 볼 수 있다. 참으로 이쁜 꽃이다. ⓒ 신병철


분화구 능선에 다 올라왔다. 양지쪽 능선은 거대한 엉덩이 같다. 아니 운동하지 않은 남자의 엉덩이선 같다. 양지 쪽은 햇빛을 받아 밝다.  역광의 음지쪽은 갈대꽃이 하양게 피었다. 둘 다 나름대로 개성이 있어 좋다. 난 중간에 서 있다. 음지와 양지. 얼마 전까지 내걸었던 국정원의 모토가 떠오른다. 음지에서 일하면서 양지를 지향한다고. 이제보니 그냥 음지였다.  

용눈이오름 양지 양지는 햇빛을 받아 밝다. ⓒ 신병철


용눈이오름 음지 역광의 음지에는 억새꽃이 밝게 드러난다. ⓒ 신병철


용눈이 이웃들을 소개합니다. 오른쪽 정수리에 머리털 있는 놈이 손지오름입니다. 두번째 친구는 동거미오름이고 그 왼쪽에는 좌보미오름이고 가장 왼쪽은 백약이 오름이지 않을까요? 점점 자신이 없어집니다.

용눈이부근 오름들 확실하진 않지만 오른쪽부터 손지오름, 동거미오름, 좌보미오름, 백약이오름 ⓒ 신병철


이쪽에서 저쪽으로 분화구를 본 모습이다. 분화구 능선따라 도망가던 순덕이가 토벌대에 잡혔다. 또래 졸병더러 총으로 쏴 죽이라고 했지. 순덕이는 찌푸리고 있고, 졸병은 거총한 채로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고 있었다. 짜증 난 순덕이가 몸을 돌려 뛰어가 버렸다. 이 아름다운 능선을 가진 용눈이 오름에서. 영화 '지슬'의 장면이다. 48년 그때의 용눈이도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이었으리라. 

용눈이오름 분화구 영화 지슬에 이 오름이 나온다. 아름다운 능선의 선이 멋있게 펼쳐지고 있다. ⓒ 신병철


가장 놓은 곳에서 어제 저녁에 만든 밀감쥬스 한 잔 마신다. 좋은 밀감은 상품으로 내팔고 너무 굵거나 모양이 사나운 것은 모아서 쥬스를 만들어 이럴 때 마신다. 제주 농부의 평범한 모습이다. 아니다. 우리나라 농부 보통의 모습이다. 어릴 때 우리닭들은 하루에 서너개의 알을 낳았다. 난 먹을 수 없었다. 모았다가 사러 온 사람들에게 팔았다. 난 계란을 국민학교 4학년 소풍 도시락 반찬에서 처음 먹어봤다. 지금 마시는 쥬스같다.

길가에 물매화를 또 만났다. 깐추박도 만났다. 찔레의 빨간 열매를 왜 깐추박이라고 하는지 아는가? 겨우내 까치밥이기 때문이다. 흰물매화와 빨간 깐추박이 옹기종기 모여 도란도란 수다를 펼치고 있다. 끼리끼리 올망졸망 모여 히히덕거리는 모습, 그게 우리 삶의 목표일진저.

물매화와 깐추박 물매화와 깐추박이 옹기종기 모여 수다를 떨고 있다. ⓒ 신병철


보라! 옹기종기 모여 머리를 치들고 있는 이쁜 꽃향유를. 이걸 안보고 어떻게 가을을 보낼 수 있을까? 자연은 어떻게 이렇게 자연스러운 색을 만들어 낼까? 절대 질리지 않을 색이다. 가을이 되기를 기다리는 것은 꽃향유 색 때문이다.

옅은 화장을 하고 연보라색이 약간 섞인 옷을 입고 이런 꽃향유색 립스틱을 바르고 살짝 미소를 짓는 여인을 보는 듯하다. 머리에 짙은 보라색 머리핀을 꽃아도 좋겠다. 가을에 용눈이오름에 올라가는 남자들은 심쿵하게 마련이다. 

꽃향유 이번 가을에 만난 꽃향유 중에서 가장 이쁜 색을 가진 꽃이다. ⓒ 신병철


억새꽃이 역광에 밝게 비치어 하얗게 보인다. 무슨 흰 꽃 같다. 참 억새꽃도 꽃이지. 이쁘지 않은 억새꽃도 역광을 만나 햇빛에 투시될 때는 이렇게 이쁘다. 얼핏 보기에 못생겨 보이는 여학생도 마음씀씀이를 보고 가까이 만나고 알게 되면 얼마나 이쁜 학생으로 변하는지. 그 반대도 많다. 이건 교사들만 아는 비밀이다.

용눈이오름 억새꽃 역광을 받아 하얀색 꽃처럼 보인다. ⓒ 신병철


용눈이 오름은 선이다. 늘씬한 여인의 몸매선이다. 남자들이 옹눈이 오름에 올라와서 심쿵하게 마련인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 이쪽 저쪽에서 만나는 용눈이 선은 로코코 화가가 그린 누워있는 나부의 몸매선이기 때문이다.

용눈이오름 능선의 선이 로코코화가가 그린 나부의 몸매선같다. ⓒ 신병철


이제 가을은 가도 된다. 아주 가버려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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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11월 중순 용눈이오름 올라갔습니다. 능선의 선이 아름다웠습니다. 잘 보면 보이는 꽃들이 이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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