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한 하루

아이의 견학프로그램에서 오히려 내가 더 많은 것을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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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완(moveon1821)등록 2017.11.03 15:48
지난 11월 1일 캐나다 전역의9학년 학생들은 학교에 가지 않았다. 대신 부모나 지인의 일터로 현장 견학을 가야했다. 이날은 이름 하여 "일터 견학의 날(Takeour kids to work day)"이었다. 이것은 9학년 학생들에게 일터가 어떤 곳인지, 어떻게 협력하고 어떤 절차를 거쳐 상품이나 서비스가 생산되는지를직접 보고 느끼도록 해서 향후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는데 보탬이 되라는 취지에서 진행되는 행사이다. 1994년 온타리오주에서 제일 먼저 시작된 이 행사는 이제 캐나다 전역에 걸쳐 모든 9학년 학생 들과수 만개의 사업장이 참가하는 전국적인 행사가 되었다고 한다.

9학년(중3)을 기점으로 가시화되는 캐나다의 실용적인 교육시스템

캐나다 교육시스템은 9학년을 자기 미래에 대해 청사진을 그리는 시발점으로 설정하고 있는 듯하다.8학년이 끝나가는 6월경에 나눠주는 9학년안내 책자의 제목을 '9학년 때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너의 인생이 결정된다(Life isthe sum of all your choices for NINE)'라고 정했을 만큼, 9학년을 아이에서 어른으로 바뀌어 가는 중요한 시기로 보고 있다. 이 책자에서는 자기가 미래에무슨 일을 할 것인지를 염두에 두고 각자 원하는 진로에 따라 학교 과목을 선택하도록 권고한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대학입학을 최종목표로 시험점수에만 온 인생을 걸며 살아온 우리에게는 이 행사야말로 캐나다의 교육이 얼마나 실용적인지를보여주는 전형적인 예라고 생각된다. 한국에서는 일부 회사나 공공조직에서 자녀들을 부모의 직장에 견학시켜주는행사가 있거나 방학숙제의 일환으로 부모 직장 견학하기 등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전국적으로 일제히 특정학년이 참여하는 이런 행사는 없는 것 같다.

지금은 어엿한 대학생이 되었지만 4년 전 9학년 때 우리 아이도 이 행사에참여해야 했다.  그 덕에 나도 한국에서2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경험을 캐나다에 와서 하게 되었다.

위축된 현실에 눌려 당당하지 못했던 나의 모습

행사의 취지는 사람들이 모여서 구성된 조직에가서 뭔가 배우라는 것이 분명했지만, 아이는 공짜로 휴일하루 얻은 것에만 관심 있는 듯 즐거운 표정이 역력했다. 염불보다는 잿밥을 탐하고 있음이 불을 보듯 뻔했다. 하지만 처음 이 행사에 대한 안내 레터를 받아든 나는 아이처럼 즐겁기는커녕 마음이 썩 편치 않았다. 처음 내 머릿속을 지배한 생각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아이가 본다면 아이가아빠를 그리 자랑스러워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감이었다. 거기에더하여 "아빠를 자랑스러워하기보다는 오히려 아빠에 대한 기대감이나 환상이 깨져서 나에 대한 신뢰감을너무 일찍 무너뜨리는 건 아닐까?" 그리곤 "안 그래도캐나다에 와서 말할 수 없이 낮아진 아빠로서의, 남편으로서의 위상과 권위가 아예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것은아닐까?"하는 걱정이 바람 심한 날 성난 파도처럼 밀려왔다.

이런 나의 속내를 들키기 싫어 나는 아내와아이에게 좀 더 그럴듯한 이유를 둘러댔다. "아이를 회사에 데리고 가면 오전 시간에 특히 일이 몰리기 때문에 내가 아이를 잘 도와주지도 못하고 덩달아 나도 일이 손에 잘 잡히지도않을 것 같다." 그러니 "주변에 아는 사람 회사나일터를 소개받아 그곳으로 보내는 것이 어떨까?"하고 짐짓 합리적인 이유와 대안까지 제시했다.아내는 나의 속내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 선뜻 그러자고 했고 고맙게도 대안으로 이곳저곳 지인들의 일터를 물망에 올리기까지했다. 아내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으며 이 문제를 원만히 나의 뜻대로 해결하려는 순간, 갑자기 몇 가지 생각이 나를 붙잡았다. '무엇 때문에 다니던 회사 그만두고 캐나다에 왔나?','캐나다에 가족과 모두 함께 와서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은 조금 먹고살기 어렵더라도 가족이 함께 살 수 있다는데 더가치를 두었던 것이 아니었나?', '다른 많은 사람처럼 '기러기'하지 않고 아빠가 함께 살면서 해 줄 수 있는 것이 고작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자연스레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의도적으로 회피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백 가지 질문이 화살이 되어 내 가슴을 향해 날아들었다.

"아냐, 아냐! 그냥 우리 회사에 가자" 생각을 바꾸기로한 나의 결정에 아내와 아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있는그대로를 보여주자. 그리고 판단은 아이의 몫으로 남겨두자. 이제 아이도9학년이 되어 미약하겠지만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도 생겼을 테고, 내가 생각지못하는 것을 느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리고 내가 모든 것을 재단하고 통제하는 것 자체가 이미 어른으로서의첫발을 딛는 아이를 위해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할 것이라는데 생각이 미치자, 늦었지만 마음을 바꾼 것이 다행이라는생각에 조금 마음이 편해 졌다.

너무도 비교육적이었던 70년대 한국 교육시스템

아이를 회사에 데리고 가던 날 아침 아이는내 자리에 보조의자를 놓고 앉아 바쁜 나의 아침 일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바쁜 일을 우선 정리하고 신문 윤전기를 돌리는 현장의 매니저에게 아이를 부탁했다. 학교에서견학하는 프로그램인데 공장 내부를 견학시켜주면서 신문 만드는 과정을 좀 설명해 줄 수 있겠느냐고 부탁했더니 흔쾌히 그러마 하고 했다.아이를 맡기고 자리에 돌아오자 내가 우리 아이만 하던 때가 생각났다. 그때는 학교와가정과의 연결고리를 소위 '가정환경 조사서'라는 것에 의존했던 것 같다.아마도 학생의 가정환경을 학교가 잘 알고 있어야 제대로 된 교육과 지도가 가능하다는 명분이 있었을 법하다.그 취지에 백 번 공감한다손 치더라도 집집이 어떤 물건 들을 가졌는지는 왜 그리도 소상하게 조사했는지 아직도 잘 이해가가질 않는다. 요즘도 그러는지 알 순 없지만 참 비교육적이고 어떻게 보면 폭력적인 방법으로 아이들을 스스로자괴감에 빠져들게 했던, 말 그대로 '조사'였다. TV는 있는지, 전화는, 냉장고는, 라디오는, 신문은 보는지..., 무슨 인수할 회사의 재산상태를 파헤치는 것도 아닌데'숟가락 몽둥이' 하나까지도 다 조사당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심지어는 부모님의 학력, 재산상태는 동산과 부동산을 나누어서 각각 써넣어야 했다.좀 있는 집 자식들은 그럴 때마다 자랑거리 늘어놓듯 조사양식의 부족한 칸에 덧줄까지 그어 가며 '재산 리스트업 놀이'에 흥겨웠겠으나, 거기서 거기 모양으로가난에 시달렸던 대부분의 아이들은 "우리 집엔 왜 이런 것도 없는 거야"라는 넋두리와 함께 보잘것없는 집안의 재산목록 체크리스트를 들고 가는 마음은 무척이나 무거웠다. 좀 더 머리가 굵어지면서 그런 조사에 뭐 그리 정직하게 대답할 필요까지 있겠느냐며 더러는 있지도 않은 물품에 체크도 해보고,더러는 조사용지 자체를 훼손시켜도 보며 작은 반항들을 통해 불편한 심기를 달래보기도 했었다.

청출어람, 아이가 준 교훈

"아빠!"하며 견학을 끝내고 돌아온 아이가 나를 부르는 바람에 나는 과거로의 여행을 서둘러 끝낼 수밖에 없었다. 아이를 맡기고 이미 30분 이상이 지난 후였다. 내 옆에는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이미 세상으로 나갈 채비를 하는 아이가 자기를 어린애로만 바라보고 있는 나를 '걱정 붙들어 매라는 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과연 그랬다.회사에 같이 간 아이는 나의 노심초사와는 무관하게 자기 나름의 판단을 하고 스스로 생각을 전개하고 있었다.아이에겐 아빠가 얼마나 자랑스럽고 멋진 일을 하고 있느냐보다는 오히려 신문사에서 필연적으로 나는 잉크냄새가 더 신경 쓰이는눈치였다. 집에 돌아와서 아내에게 "아빠가 사무실에만 있지않고 오후에는 주로 밖으로도 나가는 일을 해서 다행"이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 나는 코끝이 찡해졌다.처음 회사 건물에 들어섰을 때 "아빠, 이거 무슨 냄새야?"라며 진한 잉크냄새에 예민하게 반응했던 아이의 어른스러운 배려가그 말속 깊숙이 배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좀 팔불출이 될 각오로 얘기한다면 "청출어람이라고, 얘가 나보다 낫구나!"라는 생각이들었다.

우리 아이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앞으로세상에 나가서 살면서 많은 문제와 봉착하며 그것들을 스스로 또는 누군가와 함께 해결해 나가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럴 때마다 아빠로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설사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얼마간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이 아이의 입장에서 충분한 배려가 된 것인지 판단하기도 쉽지않을 것 같다. 한 가지 간절히 바라는 것은 내가 키우고 가르친 내 자식에게조차도 솔직하고 겸손할 수 있었으면좋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필요할 때는 아빠가 수평적인 대화상대가 되어서 아이가 참조할만한 하나의 의견을 주고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한다. 그러다가 아이가 내 의견을 채택하고 그것을 만족해한다면,이 또한 살면서 누릴 수 있는 작은 기쁨이 될 것이다. 아이를 견학시키려다 되려내가 소중한 교훈을 얻은 값진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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