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연한 폭력에 대한 저항, <채식주의자>를 얘기함

고기를 먹는 행위는 그 생명체에 가해진 폭력에 동참하는 것

검토 완료

김태완(moveon1821)등록 2017.10.23 10:40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는 영국의 맨부커상(Man Booker International Prize)을 받으면서 세인들에게 더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이 책은 상을 받음으로써 품절사태까지 가는 인기를 누렸음은 물론, 한강은 국제적인 작가로 자리 매김되기에 이르렀다. 반면, 한국 작가의 작품에 상을 줌으로써 세계의 3대 문학상의 반열에 들어가는 권위 있는 상임에도 그간 한국인들에게는 생소했던  맨부커상이 일반적인 한국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사건을
바라보는
여러
개의


한강은 채식주의자에서 독특한 화법을 구사한다. 똑같은 사건을 겪은 세 명의 화자가 자기 나름의 시선으로 상황을 전개한다. 주인공 영혜의 남편 입장에서 서술한 '채식주의자', 형부의 시각에서 풀어 나간  '몽고반점',언니의 관점에서 그린 '나무불꽃' 이렇게 3가지 중편 소설이 하나의 책으로 묶여 있다. 그래서 한 권의 책  <채식주의자>의 겉표지에는 '연작소설'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인생을 무덤덤하게 살아가는 주인공은 고기를 먹지 않는다. 남편의 회사 상사 집에 초대받아서도, 심지어는 가족들이 모인 저녁 자리에서도 고기를 입에 대지 않는다. 급기야는 이런 이해 못할 딸의 행동에 분개한 아버지가 고기를 먹이려 입을 강제로 여는 순간, 어려서부터 그 폭력성에 무기력하게 순응할 수 밖에 없었던 딸의 저항이 시작된다. 식칼로 자해를 한 후 병원신세를 지게 되는 그녀와 그리고 그녀의 남편. 그렇게 심신이 박약해진 처제를 욕망과 예술이 범벅이 된 아노미 상태의 공범자로 끌고 가는  비디오 아티스트 형부. 고기뿐 아니라 모든 음식을 거부한 채 스스로 나무가 되기를 바라며 죽어가는 동생을 무기력하게 바라보는 언니.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와  긴장감은 책장을 넘기기 시작한 독자를 단번에 사로잡아 순식간에 책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 만큼 흡인력이 강하다.

채식주의자는 폭력에 저항하는 민초들의 다른 이름

주인공이 왜 채식주의자가 되려 했는지를 독자들이 명쾌하게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그녀는 단지 그 이유를 "꿈을 꾸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할 뿐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채식'은 '육식'으로 상징되는 모든 폭력성에 대한 저항의 언어다.

개에 물린 상처를 낫게 하려면 그 개의 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말에 얼떨결에 먹은 흰둥이의 살점. 이미 그때부터 그녀는 채식주의자가 되기를 꿈꾸었을 것이다. 그리고 7명의 베트콩을 죽인 것을 자랑스러운 무용담으로 간직하고 있는  참전용사 아버지를 통해 나타나는 일상화된 폭력. 이미 그때부터 그녀는 가족과 이웃과 온 사회와 제도 속에 상시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폭력성에 항거하려는 마음을 다잡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주인공 영혜가 왜 그토록 '육식', 곧 폭력성으로부터 벗어나 채식주의자가 되려  몸부림쳤는지를 우리는 한강의 다른 소설 <소년이 온다>에서 그 단초를 찾을 수 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살아난 은숙의 눈을 통해서다.

고기를 먹지 않는 은숙. 그 처참한 주검들 속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했던 그녀에게 생명 있는 것을 먹어 치우는 것은 그 폭력에 동참하는 행위로 생각 되었다. 불판에 올려진 고기에서 나오는 '피와 육즙' 그리고 생선을 통째로 구울 때 그 눈동자에 맺혀지는 '눈물'이야 말로 작가 한강이 영혜를 통해 고발하려 했던 폭력이 빚어내는 잔혹성의 상징이다. 그러면서 작가는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임'을 얘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단지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 역사가 증명하는 인간의 본질이냐고 묻고 싶었을 것이다.

은숙은 고기를 먹지 못할 뿐 아니라 아주 평범한 일조차 그냥 넘기지 못하고 어깃장을 놓는다. 시청에 전화를 해서 시원스레 뿜어져 나오는 분수대 물을 꺼달라고 간청한다. 아마도 분수대의 화려한 물줄기는 그 참혹했던 곳에서 살아남은 자에게 엄청난 부채의식을 가중시키는 어울리지 않는 축제 같은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소설 속의 은숙뿐만이 아니었다. 정당성 없이 권력을 획득한 집단이 그것을 정당화하고 국민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만들어낸  '우민화 정책'들은 그 당시 '의식 있는' 젊은이들에겐 '불편한  분수대 물' 이었다.  그들은 국풍81, 프로야구 출범, 올림픽 유치, 칼라TV 도입 등 선물처럼 쏟아지던 소위 '3S(Sports,Screen, Sex) 정책' 들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려 애쓰다,  때론 곁눈질로 훔쳐보기도 하는 이율배반의 시대를 살기도 했다. 

역사는
나선형으로
발전하는가?

그리고 37년! 강산이 네 번이나 바뀌고 있는데도 그 폭력의 실상은 아직도 풀리지 않은 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최근에 비밀이 해제된 미국 국방정보국(DIA) 문서는 신군부가 광주시민을 향해 전투기를 포함하는 전쟁 수준의 가공할 화력을 동원하려 했다고 폭로하고 있는 한편, 가해자의 우두머리 격인 인사는 자신을 '씻김굿의 제물'이라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웃지 못할 상황도 함께 연출되고 있다.

실제 발포명령자가 누구이던, 그 폭력의 수위가 전쟁을 방불케 하는 수준을 넘었건 아니건, 분명한 건 그 때 그곳에선 상상의 범위를 벗어나는 엄청난 폭력이 행해졌고 사람들은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맞서 항거했다는 사실이다. 아버지의 지속적인 폭력에 저항한 영혜처럼.

이제 우리는 처절하게 자신을 해쳐가면서 채식주의자가 되기를 갈망했지만 책 속에서는 자신의 주장을 거의 내지 않은 주인공 영혜의 목소리를 읽어내야 한다.  언니 인혜를 통해서이긴 하지만 주인공은 책의 말미에 이렇게 독백한다.
"...어쩌면 꿈일지도 몰라."

처참한 전쟁이 나은 비뚤어진 전쟁영웅  람보를 닮아 자신의 딸과 국민을 '베트콩 취급'해서라도 굴복시키려는 '영혜 아버지들'의 꿈. 그에 반해 무차별적인 폭력에 저항하면서도 종국에는 아무도 해치지 않으려 나무가 되려는 '채식주의자들'의 꿈.  이 양립할 수 없는 정반(正反)의 이분법을 통해  우리가 읽어 내야 하는 메시지는 또다시 그 해묵은 질문으로 귀착될 수밖에 것일까?
"역사는 과연 나선형으로 발전하는가?"
덧붙이는 글 캐나다 한국일보에 유사한 내용의글(지면 사정으로 분량을 대폭 줄인 것)이 같은 제목으로 게재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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