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가슴속에 역사를 품은 민족에게 미래를

조정래 작가의 『사람의 탈』을 읽고

검토 완료

정민주(jmj9315)등록 2017.09.25 10:45
우리는 '사람은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말을 언제나 스스럼없이 내뱉곤 한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이치이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도 '사람다운 사람' 상에 대해 깊이 고민해본 적이 없다. 인간은 자신이 속한 생물학적 분류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그들이 마치 지구상에서 가장 숭고하고 존귀한 동물인 양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러한 사람이라는 종족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자격이 있는지는 별도의 문제이다.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자유와 평등, 평화를 인류가 추구해야 할 가치로 여기지만 지금까지의 무참했던 세계 전쟁의 역사를 살펴보면 과연 우리가 사람인지, 아니면 '사람의 탈을 쓴 악마'인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제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가 조정래의 <사람의 탈>은 이를 주제로 사람들이 추구하는 선과 그들의 모순적인 행동을 고발하는 경장편 역사 소설이다.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집필된 이 책은 힘겹게 일제 강점기 시대를 살아가는 가난한 조선인 소작농 '신길만'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신길만은 부모님으로부터 이어진 가난의 굴레 - 소작인으로 황소처럼 일만 하며 가난 속에서 허덕이는 현실 - 를 벗어나고자 열심히 일을 하며 돈을 모으고 살아가는 평범하고 순박한 스무 살 청년이다. 그는 아버지와 같은 인생을 살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논 한 마지기라도 장만할 때까지 결혼을 미뤄둔 채 살아가던 중 덜컥 지원병 지명을 당하고 만다. (본문 13쪽) 어머니는 그에게 "호랑이에게 열두 번 물려가도 정신만 채리면 살아난다", "어디서든 정신 딱 채리고 관세음보살님만 염혀. 그러면 틀림없이 살아날 길이 열릴 것잉게. 꼭, 어쨌그나 꼭 살아와야 혀!"라며 그를 눈물로 보냈고 아버지는 무뚝뚝하게 "총알 피해 댕겨라."는 말 한마디만을 하지만 신길만은 그의 아버지의 말에 함축된 의미를 생각하며 전쟁터로 떠나게 된다.
일본은 반 강제적으로 조선인 청년들을 징집해가며 실제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쟁터에 배치되지는 않을 것이라 그들을 안심시키지만 결국 그들은 최전방인 만주에 배치된 관동군의 일부로 편입되어 전쟁을 맞이하게 된다. 참호 속에서 부실한 식사를 제공받으며 전쟁을 이어나가던 일본군은 소련군과의 오랜 기간 전투 끝에 결국 포위당하게 되고, 주인공을 비롯한 일본군의 다수가 소련의 포로가 된다. 몽골군의 포로로 트럭에 실려 수용소에 가게 된 그는, 조선에 돌려보내줄 수 없다는 소련 장교의 말을 듣고 선택권이 제한된 상태에서 결국 소련군이 되기로 결정하고 신 미하일이라는 소련 이름을 받는다. 그들은 그 후 수용소에서 구릉지대의 최전선으로 이동되어 소련과 독일의 전투에 참여하게 된다. 그들은 혹독한 추위와 맞서 싸우다가 추위에 죽기도 하고, 독일군의 공격에 죽기도 하는데 신길만은 추위와 공격에서 살아남고 결국 소련군이 독일군에게 포위되어 포로로 잡히게 된다. 독일에서 포로로서 부족한 식량을 섭취하며 험한 노동을 하던 신길만은, 어느 날 독일군 장교가 제안하는 바에 따라 독일군으로서 또다시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그들이 배치된 동방대대는 노르망디 해변의 방어선을 구축하는 작업을 맡는데, 이는 전쟁의 최전선에서 전투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었지만 미국군의 침입으로 결국 신길만은 미국에 독일군 ㅍ로로 잡혀간다. 소설의 마지막은 미국에서 포로로 지내던 조선인들의 국적이 소련으로 명시된 상황에서 그들이 다시 소련으로 수송되고, 소련에 도착하자마자 포로로 수감당한 대가로 사살당하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우리가 주목할 만한 점은 제 2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 배경과 약소민족에 대해 작가가 주장하는 바이다. 제 2차 세계대전은 1939년 9월 1일부터 1945년 9월 2일까지 국제적으로 치러진,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를 남긴 가장 파괴적인 전쟁으로, 파시즘 세력인 독일의 나치군이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에 행한 선공을 발단으로 시작되었다. 총 5000만 명에 이르는 희생자가 발생하였고, 이 중 민간인 사망자는 군인 희생자의 2배가 넘었다고 한다. 특히 나치의 광적인 인종 차별 정책의 피해자인 유대인들을 포함한 포로들은 강제 노동에 동원되었고, 생체 실험의 대상이 되었으며, 강제 수용소에 가둬진 채 가스실에서 학살을 당하는 등 끔찍한 시간을 보냈다. 이렇듯 유대인들이 겪은 참혹한 상황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문학 작품에는 <안네의 일기>가 있다.
그렇다면 과연 조정래 작가가 <사람의 탈>이라는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주려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제 2차 세계대전은 이미 그 잔혹성이 충분히 알려져 있는 세계 전쟁이기 때문에 이러한 역사를 사람들에게 좀 더 알리려는 목적으로 이 소설을 쓴 것은 아마 아닐 것이다. 제 2차 세계대전의 끔찍하고 참혹한 비극은 지구에 살며 기초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이면 누구든 다 아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려는 이야기는 바로 '우리 민족'이 이러한 세계적인 비극에서 어떠한 피해를 입었는지, 또 그 시절의 우리 민족처럼 힘이 없어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약소민족들이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지는 것을 막기 위해 어떤 생각과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진정으로 인류 평화라는 목표를 위해서는 세계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인 것 같다.
작품 속에서 약소민족이라고 볼 수 있는 신길만을 포함하여 일본군에 강제로 징집 당한 조선인들과 소련에 강제로 편입당한 중앙아시아의 고려족 사람들은 제 2차 세계대전이 그들의 조국이 주체가 되는 전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최전선에서 목숨을 내건 싸움에 참여하게 된다. 그들은 누구의 편도 아닌 상태에서 그저 강국들이 각국의 승리를 위해 필요한 총알받이 정도의 취급을 받으며 힘없이 쓰러져 내린다. 이는 결국 강대국들의 정치 싸움에 희생되는 것은 힘없는 약소민족들이라는 것을 상징한다. 소설 속에서 신길만을 포함한 약소민족 사람들은 자신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고 실제로 그러한 상황을 탈피하기 위해 나름의 방법으로 노력하지만 결국 그들이 한 노력은 모두 실패로 돌아가 버리고 끝내는 억울하고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은 모두 궁극적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그들이 말 그대로 힘이 없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그들에게는 힘이 없기 때문에 상황을 변화시키려는 의지가 있어도 그 의지가 결과로까지 이어지지 못했고, 끝내는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이렇듯 그들이 한 노력이 모두 수포로 돌아간 데에는 그들에게 힘이 없었다는 것을 포함하여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리고 그러한 이유와 상황은 약소민족들이 스스로 바꾸기 어려운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들 사이에서 완전한 단결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이 있다. 이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했던 말로, 단결의 중요성을 의미하는 말이다. 나는 이 말이 약소민족이 꼭 명심해야 하는 말이라고 생각을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힘이 약한 만큼 조금이라도 뭉쳐야 그들이 겪는 불합리한 대우와 차별 등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도 볼 수 있듯이 변화와 저항은 무서운 것이다. 정당한 목적을 가지고 권력에 대항하려 했던 조선인들은 혈서를 써서 그들의 의지와 생각을 보여주었는데도 결국 그들이 주장하는 바는 수용되지 못한다. 아마 이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그들은 뭉쳐도, 아무리 노력해도 상황을 바꿀 수 없다는 장벽에 부딪혀 결국 포기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또 힘을 모아야 할 상황에도 각자 사정이 있어서, 무서워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 같아서 빠져나가게 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상황일수록' 약소민족들은 그들의 잃어버린 권리와 존엄성을 되찾기 위해 서로 힘을 합쳐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각각 사정을 대며 피해가는 경향을 바로잡고 두려움을 이겨내어 일동 단결이 이루어지면, 비로소 그들 전체가 부당한 힘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약소민족이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그들이 자신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늘 그것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한다. 5년 간 영국의 총리로 역임하였던 윈스턴 처칠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이는 현재까지도 역사와 관련한 이슈에서 자주 대두되는 말이다. 저런 대사가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만큼 역사는 막대한 중요성을 가진다. 역사란 단순히 지나간 일들을 기록한 것이 아니다. 역사는 민족의 기쁨과 자랑이고, 아픔이자 슬픔이며, 고통과 상처이다. 우리가 지금 영위하고 있는 생활은 모두 과거 우리 선조들이 아니었으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들이다. 우리가 취하는 생활양식은 선조들의 경험의 산물이고, 우리가 쓰는 언어는 선조들의 변천사가 담긴 발자국이며, 우리가 먹는 음식은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있다. 역사를 빼놓고 '민족'을 보는 것은 마치 우유 없는 라떼 혹은 콩 없는 두유와 같다. '민족'을 구성하는 아이덴티티, 즉 차별성은 결국 같은 인간이라는 생물학적인 조건 아래에서 그 민족이 지내는 자연환경과 그 민족이 겪는 역사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민족'을 구성하는 것은 결국 '역사'라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민족이 가지게 되는 특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민족에게 있어서 역사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비록 우리가 직접 행한 일, 겪은 일은 아닐지라도 역사 속에서 우리 민족이 저지른 범죄나 우리 민족이 당한 억울한 일은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과제로 남는다. 죽은 자들은 말이 없지만, 그들이 남겨 놓은 기록들과 우리들이 그들의 잘못을 대신 사과하고, 그들의 억울함을 대신 호소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겪은 일은 결국 고스란히 남아 우리에게 전해져 내려온 것이기 때문에 약한 민족일수록 스스로의 역사에 대해 더 많은 지식을 함유하고 그 억울함을 풀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역사라는 것은 지나고 나서라도 그 잘잘못을 따져서 좋은 일은 교훈으로 삼고 나쁜 일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하여 예방할 수 있게 만드는 데에 의의를 가진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 또 다른 점은 강대국과 약소민족, 역사와 같은 거창한 교훈을 떠나 '민족'에 대한 유대감이다. 특히 한국인은 '한민족'이라는 단어로 스스로를 일컬으며 민족을 중시하는 만큼 민족에 대한 자부심과 의미가 크다. 하나의 민족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같은 생김새를 가지며, 같은 역사와 문화를 공유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와는 무관하게 친근감을 가지게 해 준다. 특히 외국 유학 생활 중일 때나 작품 속 주인공이 지냈던 군대 생활처럼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서 괴롭고 힘든 일을 수행해야 할 때, 같은 민족을 만나서 느끼는 동질감은 배가 된다. 말이 통하고 사상이 통하는, 친근한 외모를 가지고 있는 같은 민족 사람을 만나는 것은 타지에서 힘든 일을 하며 긴장되고 경직되었던 상태를 풀어준다. 민족이란 그저 '민족'이라는 명목상의 단어를 넘어 무언가 엄청난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그렇다면 역사를 잊지 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보장될까? 물론 그것은 장담할 수 없다. 현대 사회는 사상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그 무엇이든 많은 발전을 이룩하였고, 자유와 평등, 평화는 이제 보장되지 않으면 안 되는 당연한 가치가 되었다. 하지만 이것이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진 일은 아니다. 우리나라가 겪었던 수난처럼 아직까지도 일부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있는 약소국들, 개발도상국들은 기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처참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들은 단결되지 못한 채 아직까지도 서로 내전을 벌이며 당장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고 있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기초적인 교육마저 제공받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역사를 알아갈 기회조차 없고 '현재'를 살아가는 데 급급하기 때문에 과거와 미래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런 상황에 처해 있을수록' 그들이 현재 그렇게 절망적이고 불행한 생활을 하게 된 배경을 깨닫고 역사를 알아내어서 제대로 치러지지 않은 보상을 받고 더 나아가 미래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인도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이 시대에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을 넘어 역사를 잊지 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보이도록, 애초에 모든 민족이 역사를 잊지 않을 최소한의 기회는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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