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돈이면 뭐든 다 되는 세상… 인간으로 남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마이클 샌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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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주(jmj9315)등록 2017.09.25 10:38
『정의란 무엇인가』로 명성을 얻은 하버드 대학 교수 마이클 샌델의 또 다른 베스트셀러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처음 출간된 2012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회자되고 있는 책이다. 아마 시사 이슈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반드시 읽어보았을 텐데, 나 같은 경우에는 도덕과 시장만능주의에 대한 가치토론을 할 때와 도덕시간에 관련 주제의 수업을 들으며 프로젝트를 진행했을 때, 그리고 평소에 이 책을 읽어 3~4차례 정도 읽어본 것 같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학생 어른 할 것 없이 남녀노소 - 특히 한국에서 - 많은 관심을 받는 이유는 바로 이 책이 제시하는 문제가 너무나도 진지하고 심각한 동시에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는 지금 '시장경제를 가진(having a market economy)' 시대에서 '시장 사회를 이룬(being a market society)' 시대로 휩쓸려 왔다. 현재 시장가치는 하나의 사상이나 도구, 체제를 넘어 인간 활동의 모든 영역에 스며들어 있는 일종의 생활방식이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선의에 대한 보답으로 진심어린 감사 대신 사례금 몇 푼을 쥐어주게 되었고, 좋은 일을 한 사람에게 칭찬이나 경의를 표하는 대신 포상금을 지급하게 되었다. 이는 아주 사소하고 단적인 예일 뿐이지만 그만큼 우리에게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이 고착화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사람들에게 시장주의와 자본주의는 뗄레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가 되었다.

이렇듯 우리 사회가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가지고 있는 한, 도덕성과 시장주의의 충돌은 당연히 생길 수밖에 없는 문제이다. 시장주의는 최대의 이익(효용)을 창출해내기 위해 가능한 한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여 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도록 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분명히 도덕성에 위배되는 상품들이 생겨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는 샌델과 극명히 대립되는 의견을 표명하는 경제학자들의 입장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현상인데,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거래는 양측 모두를 이롭게 하는 매우 효율적인 자원의 분배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윤리와 경제의 문제를 떠나 이것이 현대 사회에서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문제일수록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대신 더 곰곰이 고민하고 따져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예의를 중요시 하고 인간의 도리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유교사상이 조선시대 전반을 지배했던 터라 아직까지도 사람들의 가치관에 그 흔적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도덕과 시장주의가 충돌하는 경우 상대적으로 더 큰 사회적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 지금껏 한국 사회에는 모든 일에 순서가 있고 서열이 있었다. 신분이면 신분, 나이면 나이, 먼저 온 순서면 순서… 사람들이 차례대로 규율을 따라 행동하도록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었던 것들이 지금은 점차 퇴화되어 '돈'이 대신 그 자리를 메우게 되었고, 이로 인해 지금까지의 위계질서가 흔들리며 사회적 혼란이 일어나고 있다.

예를 들면, 장기 매매와 성매매는 예로부터 인간의 존엄성과 순결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적 통념 때문에 금지되어 왔지만, 자본주의 사회가 전개됨에 따라 부유층과 빈곤층 모두에게 이익을 주는 하나의 시장 상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먼저 온 사람을 우대해주는 선착순이나 어떠한 상품을 얻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 자를 우선시 해주는 미덕 역시 '대리 줄서기 알바생' 혹은 심부름센터 직원 등의 고용인으로 자신을 대체하는 사람들에 의해 훼손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러한 예시들은 우리가 지금껏 중요하게 여겨왔던 가치들에 시장 규범이 개입하면서 그 본래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다.

마이클 샌델이 제시하는 시장의 도덕적 한계는 불평등과 부패를 기준으로 정해진다. 불평등은 모든 사물의 가치가 금전적으로 매겨질 경우, 가난한 사람들이 살기 힘든 세상이 될 것이라는 것이고, 부패는 사물의 의미나 목적에 따라 거래될 때 그 본래의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주장이 부분적으로 옳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굳이 모든 재화가 모두 '평등'하게 분배되어야 할 필요는 없고, 현실적으로 그렇게 분배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재화가 공평하게 원하는 사람에게 돌아갈 수 있다면 우리가 왜 경제 문제에 대해 고민하겠는가 - 애초에 그런 상황에서는 경제학이 생겨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애초에 재화는 희소하기 때문에 그것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모든 재화를 불평등을 기준으로 평가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현재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경제학적으로 보았을 때 가장 효율적인 분배 방식은 어떤 사물에 대해 가장 지불 용의가 높은 사람부터 그 대가를 치르고 거래를 통해 그 사물을 얻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방법을 이용하면 모든 사물이 그것을 소유하고픈 욕구가 가장 큰 사람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사회적 효용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는 통상적인 재화에 대해서 어느 정도 맞는 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핵심은 '모든' 재화가 이렇게 거래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만약 이러한 시장주의가 정말 옳고 우리 사회 전반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합리적인 생각이라면, 왜 모든 재화가 경매를 통해 거래되지 않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모든 재화의 성격이 이러한 거래 제도를 포용할 수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는 샌델이 제시한 '부패'라는 기준과 비슷한 맥락을 가진다. 나는 특정 재화나 서비스가 거래되는 방법은 그 재화나 서비스의 목적과 특성이 고려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에를 들어, 샌델이 돈으로 거래되면 안 되지 않겠느냐고 제시한 '새치기'할 수 있는 특권에 대해서도 나는 재화의 종류에 따라 거래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는 이중적인 판단을 내리려 한다. 놀이공원에서 줄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 빨리 통과할 수 있는 권리는 돈으로 살 만 하다. 놀이공원의 놀이기구는 그저 놀이 수단일 뿐이지 고상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담의사를 가지고 더 좋은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권리나 공공극장의 무료 공연에 대한 암표거래는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경제적 능력에 따라 돈이 많은 사람들에게 우선권이 돌아가면 그 원래 가치나 목적 - 위급한 사람들의 생명을 살린다거나 시민들에게 좋은 공연을 무료로 선물한다는 -이 퇴색되기 때문이다. 선착순으로 분배되는 재화는 모든 사람들에게 동등하게 주어지는 '시간'을 '돈' 대신 거래 요금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어떠한 행위의 본래 가치를 훼손시키는 긍정적·부정적 인센티브 역시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학력 부진 주에서 학생들이 책을 읽을 때마다 혹은 우수한 성적을 거둘 때마다 돈을 주는 제도나 유치원에 늦은 부모가 벌금을 지불해야 하는 제도는 그 행위를 양적으로 장려 혹은 억제시킬 수는 있지만, 질적으로 본래 목적 혹은 가치를 타락시킨다.

이렇듯 자본주의와 시장주의는 지금처럼 앞으로도 우리 사회의 가치관과 부딪히는 일이 자주 발생하게 될 것이다. 특히 그 중 '도덕'과 관련한 문제에 대해서는 사회 전체가 관심을 가지고 공동체 구성원들의 의견을 최대한 많이 수렴하여 인간의 도리와 윤리에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생산자와 소비자, 그리고 제 3자 모두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려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떠한 형태로든 공적 담론을 가져 우리 사회가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지 의견을 모아볼 필요가 있다. '정답'을 찾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고 현실적으로 그럴 수는 없겠지만, 가장 많은 사람들이 만족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으려 우리 모두 끊임없이 고민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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