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82년생 김지영' 과 같은 나 그리고 다른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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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safewater)등록 2017.07.19 09:38
나에겐 82년생의 여동생이 있다.
이 책을 동생이 읽어보면 좋겠다싶어 한 에피소드를 동생에게 소개했다.세 명의 여자 면접자들의 대답이 각각 다른 이야기를 하다 문득 동생은 면접관의 난처한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 지 궁금해져서 물었다. 동생의 대답은 주인공인 김지영처럼 불쾌한 상황을 우회적으로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답했고 덧붙여 언니인 나는 두 번째 면접자처럼 정면으로 문제제기를 했을 거라고도 했다.
동생은 나를 남자어른으로부터 조신한 여자애로 길러지는 것을 거부하고 자유를 추구했던 언니로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그 덕분에 본인이 조금은 자유로워진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것 같다. 

어릴적 여동생과 나는 거리가  멀었다. 나는 장녀였고 여동생은 막내였다, 그 사이 나보다 두 살 어린 남동생이 있었는데 그는 장손이었기에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남자어른들의 특별한 보살핌을 받았고 나는 초등학교 4학년 까지 부모님과 떨어져 막내인 고모와 할머니 손에서 컸다.
여동생과 같이 살았던 추억은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어 시골에 있는 부모님과 여동생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한 이후부터 있다. 

여동생과 나는 각자의 10대와 20대를 살았고 내가 결혼하고 동생도 결혼하면서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는 중이다. 시댁식구와 친정엄마를 두루 챙겨야하고 일하는 유부녀로서의 고충을 나누는 동지가 되어가는 중이다.
동생은 김지영보다는 운이 좋았음을 다행으로 여긴다 현장실습 갔다가 성추행을 당하고 그 다음날부터 출근하지 않았던 친구를 떠올리며, 친정과 엄마의 친정행사까지 종종 동행해주는 제부를 보며. 하지만 일을 그만두고 가사에 좀 더 충실해주길 바라는 구시대적인 남편의 사고방식과 키워줄 것도 아니면서 대책없이 아이를 낳으라는 시아버지의 잔소리를 견디며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한편 나는 당시에 무엇인지는 몰라도 왠지 불쾌감이 있던 것들에 대해 대부분 불편함을 드러내며 살아왔던 것 같다. 종종 반항하기도 하면서. 짧은 옷과 성폭행을 대비시켜 훈계했던 아빠에게 보란듯이 무릎 위로 올라오는 하의를 입고 다녔고, 남동생과 싸웠을 때 나만 혼나면 끝까지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은 것으로 저항했던 기억이 있다. 술자리 블루스타임에는 최대한 신체접속을 피하거나 거부했고 남편에게 집안일은 '돕는 것'이 아니라 같이 해야 하는 '일'이라는 개념을 정착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들이 많다. 남편과 아내 간의 기울어진 소득액, 시댁과 친정의 심리적 거리, 그리고 양육.

'82년 김지영'은 어떤 비전이나 환타지 없이 나와 내 여동생같은 이들의 모습을 그린 실화같은 소설이다. 진부하기에 더욱 빠져들게 하는 이야기이다.

다시 면접관을 마주했던 세 여자 면접자들 이야기를 하고 싶다. 동생의 말처럼 나는 두 번째 면접자일지 모른다. 그러나 때로는 김지영처럼, 때로는 세 번째 면접자처럼 행동을 고칠 때도 있을 것이다. 태어나 지금까지 여자애, 여학생, 여직원, 엄마로서 사회적으로 끊임없이 요구되었던 여성상에 대한 관념들이 여전이 내 몸속 깊숙이 체화되어있기 때문이다. 저항하고자 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항하다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때로는 상황이 더 나빠질 것을 걱정해서 일 수도 있다. 지금의 나는 당연히 두 번째 면접자처럼 행동할 경우가 많겠지만 어리고 뭘 잘 모르고 취업이 절실했었을 20대 중반의 나는 동생의 기대에 못 미쳤을 수도 있다. 

그래도 적어도 나와 내동생은 두 번째 면접자가 옳은 대답을 한 것이고 그 것이 앞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인 것은 확인이 된 것 같다. 동생은 동생 방식대로 나는 나대로 소설 속 김지영과 비교해 현실의 삶을 한걸음 나아지게 할 만큼의 힘과 의지가 우리에게 있음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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