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두면 비행기 탄다더니...

열흘간의 행복을 회상하며, 딸에게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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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경(kjk4131)등록 2017.06.19 15:38
손전화가 울린다. "유방검진 결과 그림자가 보인다."며  초음파 검진을 받으라는 2차 건강검진 통보였다. 초음파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고비용이라며... 실비보험이 준비되지 않은 내겐 적잖이 걱정스럽다.

순간 그래서 몸이 이토록 휘청 거렸나 생각하며, 결과지와 CD를 들고 3차 기관에 접수를 했다. 위암에 이어 또 유방암? 하지만 어찌나 대기자가 많은지 접수만도 한 달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고.

7년 전 수술대 위에서 내 뒤안길을 돌아보며 회한의 눈물을 흘리던 나와 다짐이 떠오른다. 그 다짐을 위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여행을 준비하며 딸에게 편지를 쓴다.

사랑하는 내 딸아!

두툼한 옷조차 춥다고 덜덜 떨었는데 어느새 녹음방초 우거진 초여름이 되었구나. 새로운 직장에 적응은 되는지, 퉁퉁 부었던 발은 어떤지 여러모로 걱정이 앞선다. 유학시절 내내 떨어져 있었기에 귀국하면 함께 오순도순 정담을 나누며 살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는데...그 또한 생각대로 되질 않는구나.

밥은 먹고 다니는지 걱정도 잠시, 네 유학시절, 온돌방 문화가 아니라 지독히도 춥게 느껴졌던 상해의 비좁은 싱글침대에서 뒤엉겼던 달콤함이 꿈결같이 겹쳐오는구나.

춥고 뭐 하나 풍족한 게 없는 자취방이지만, 너랑 함께 했던 열흘의 행복은 엄마가 지천명의 세월을 살아오면서 가장 감미롭고 행복한 추억이 되었지. 그 때는 속절없이 가는 세월을 할 수만 있다면 그냥 꽉 붙잡아 두고 싶은 심정이더라.

"딸 두면 비행기 탄다더니, 옛말 정말 틀린 것 없다."고 수없이 되뇌며, 떠올려 보는 추억 한 가닥은 너무도 행복해서 꿈이라면 영원히 깨어나고 싶질 않더라.

상해의 휘황찬란한 밤거리가 그렇게 아름다운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유럽풍 건물을 지나 와이탄강을 배 타고 건너는 기분은 이루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의 극치더라..

네가 번쩍이는 2층 버스를 타자고 했을 때, 얄팍한 주머니를 만지며 그만 가자고 역정을 냈던 내 짧은 생각이 이젠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구나.

만약에 네가 심통을 내지 않았더라면, 휘황찬란한 2층 버스에 오를 수 있었을까? 상해의 상징인 동방명주며, 중국에서 가장 높다던 찐마오따샤는 어찌나 높던지 구름 속에 가려져 신비하게도 끝이 보이지 않더구나.

"아빠가 엄마를 VVIP로 모시라고 했다."며 "네가 툴툴대지 않았더라면, 아마 난 그 멋진 풍광을 영원히 보지 못했을 거란" 생각을 하니 네 판단이 백번 현명하고 옳았구나.

"여긴 밤하늘에 웬 비행기가 저렇게 많으냐."고 네게 물었지. 하늘을 형형색색으로 수놓은 그 비행물체를 따라, 무작정 걸어 우리가 도착한 곳은 와이탄 강가였지.

중국인들이 신년소원을 기원하며 풍등 날리는 걸 보고, 우리도 합세한 것은 너무도 큰 행운이었다. 상인이 8천 원 부르던 풍등을 너는 야무지게도 4천 원에 흥정을 했지. 우리 모녀의 마음을 담은 홍등이 하늘 높이 올라갈 때의 스릴과 쾌감, 그리고 우리가족의 앞길이 순탄하게 풀릴 거란 막연한 기대에 가슴까지 설레더구나.

너를 따라 도시락폭탄을 투척했던 윤봉길의사의 숨결을 간직한 매원공원과, 상해임시정부까지 역사공부를 톡톡히 하고 온 느낌이다. 너랑 먹었던 중국의 딴빠오며 마라탕, 후워거 맛이 새삼 그리워진다. 중국정통 마사지까지, 내가 딸을 두지 않았으면 이런 호사를 어찌 누리겠나! 생각할수록 낯설고 물 설은 타국에서 잘 견디는 어린 네가 신통방통 대견스러웠다.

네가 마트에 가고 없을 때 "따다닥 따다닥, 번쩍번쩍, 우르릉 꽝 꽝 꽝, 펑 펑 펑..." 금세 온 천지는 매캐한 연기 속에 휩싸였지.  전쟁이 발발한줄 알고 어찌할 바를 모를 때, 강아지는 소파 밑으로 숨고, 난 공포 그 자체였다.

헐레벌떡 돌아온 넌 태연히 "엄마! 이건 불꽃놀이와 폭죽으로 잡귀 쫓는 중국춘절 문화야"했지만, 그 굉음으로 우린 밤을 꼬박 지새웠지.

그 다음날, 신호위반에 역주행을 밥 먹듯 하는 위험천만한 삼륜차를 가슴 조리며 탔던 일, 전철에서 동냥하는 아이에게 1마오를 주었을 때 뒤돌아온 거지엄마의 비웃음을 보며 네가 놀리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사랑하는 내 딸아!

너랑 함께한 열흘이 후딱 지나자, 넌 아이처럼 내게 가지 말라고 푸동공항에서 엉엉 울며 매달렸지. 어린 너를 물설고 낯선 타국에 혼자 남겨 두고 오는 어미 맘도 아리고, 너랑 함께했던 시간들이 너무 소중해서 거기에 그냥 안주하고만 싶었다.

내 평생을 살면서 그렇게 마음이 편안해 본적이 또 있었을까?

돋보기 너머로 신문잡지 글쓰기에 머리 쥐어짜고, 원고독촉에 시달리며 엉터리 살림살이가 버거웠던 때였다. 약방의 감초처럼 동네해결사를 자처하며 번갯불에 콩 튀기는 생활로 가족에게 소홀했던 날들이,  거기 머무는 동안은 머릿속까지 말끔히 포맷된 기분이더구나.

편지가족 회원들과 행사 후 기념촬영 ⓒ 김재경


TV, 전화, 신문, 인터넷까지 완전히 단절되었던, 비문명 세상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지. 그 평안함도 잠시, 귀국 후 위암판정을 받으니 속절없는 눈물만 주르르 흐르더구나. 그래도 한 가닥 위로가 되었던 것은 너랑 함께한 열흘간의 행복이었다.

생사를 가르는 수술대에 오르며 나를 위해 산 시간이 없었던 것도 회한으로 남더라. 만약에 내가 살 수 있다면 꼭 나를 위해, 나만을 위한 내 인생을 살리라. 수없이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생활이었기에 짙은 병색을 화장으로 감추고 일을 해야 되었지. 이젠 너도 취업을 했으니 이순의 나이 앞에 엄마도 생활의 올무에서 벗어나고 싶구나. 

나만의 시간을 갖고 여행을 준비하려니 너랑 함께 했던 소중한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라서 옛일을 회상 해 본다. 어버이날 네가 처음으로 준 거금을 어디다 쓸까 망설이는 행복을 가슴에 앉고...그 돈으로 여행 잘 다녀오련다.

사랑하는 딸아!

엄마의 부족함을 감싸주며 이해하는 네가 고맙고, 천사처럼 착한 네가 내 딸이라서 늘 감사하는 맘이다.

고맙다. 그리고 사랑한다

2017년 06월 15일

세상에서 너를 가장 사랑하는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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