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위원회"의 설립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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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평호(phshin)등록 2017.06.03 21:21
"생명위원회"의 설립을 촉구합니다.

한국의 사망률 1위가 '자살'임에도 그 자살에 대한 적극적인 정부차원의 대책기구가 부실하고, 정책은 없다는 것입니다. 헌법에 명기된 생명권에 대한 정책이 안 보인다는 것입니다. 병이 나면 의사가 처방해주는 식의 대책만 그것도 매우 소극적인 상담 수준의 활동만 있어요.

왜 그럴까요?
사망률 1위를 마치 질병처럼 대하고, 그것도 정신이 건강하지 못한 질병으로 발생한 것으로 대하기 때문입니다. 즉, 개인적인 질병으로 처리하고 있다는 말이지요.

그런 대책이 얼마나 효과가 있나요?
OECD 자살율 1위의 오명을 쓰고 있다고 하면서 한탄만 하지 도대체 어떻게 해야 그 자살을 예방하는지에 대한 대책은 그 개인들의 정신건강 문제로 돌리고 있어요.

좀 아프지만 짚어 보고 싶은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도 정신건강이 안 좋아서 자살하셨을까요?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살", 그것은 한 개인의 비극이자 그 개인이 속한 가족의 비극이고 그 사회의 비극입니다. 자살, 어느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갑작스런 생명의 이별입니다. 사랑의 이별처럼 개인화해선 안 됩니다. 생명의 문제이니까요.

자살자가 조울증이나 우울증 등에 걸려서, 정신건강이 나빠져서 자기를 해친 것이라고만 진단하고, 대부분 그 예방책으로 정신건강 상담센터나 그 상담 전화 정도로 대책을 세우고 있어요. 의사들이나 심리 상담사들이 그 예방을 한다고 하는 것이지요.

자살에 대한 대책을 정신건강 분야로 파악해서 세우니 대증(對症)적인, 자살 자체로만 한정된, 자살을 사고로만 보는, 그리고 그 자살을 한 개인의 비극적인 실수 혹은 정신이나 심신 미약의 사고로 보는 대책뿐이니 자살이 일어나는 사회 현상의 근본은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지요.

정부의 자살예방 대책 부서는 보건복지부의 '정신건강복지법'과 '정신보건법'에 근거를 두고 자살방지센터나 정신건강상담센터를 지원하는 행정을 펴고 있어요. 자살 대책이라고 중앙행정기관이 그와 같이 움직이니, 지방자치단체의 자살 대책 역시 유사합니다.

서울시의 행정을 보면 시민건강국 산하 보건의료정책과에서 자살예방사업을 시행하는데 상담센터 수준입니다. 예산도 놀랍게도 동물보호 활동에 들어가는 비용보다도 훨씬 작습니다. 자살율은 매년 개선이 안되고 시정의 목표치 이하입니다.

충청남도의 행정을 보면 복지보건국 산하 건강식품증진과에서 자살예방사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 사업은 결국 상담센터 운영입니다.

비교적 잘한다고 예를 든 2곳 다 민간에 위탁 운영하는 식입니다.
전국의 대부분의 지자체 활동 역시 대동소이 합니다. 실제적인 도움이 별로 안 됩니다. 비극을 겪고 스스로 무엇이 잘났다고 상담 받으러 다니겠어요. 먼저 사회와 연을 끊으려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이를 행정기관이 모릅니다. 그리고 엉뚱한, 살아있는 자들의 생명에 대한 자선 대책 같은 상담 센터만 운영하고 있어요. 이래서는 현대 한국 사회가 개인화되고 소외 현상이 심화 되는 상황에서 비극은 점점 커질 뿐입니다..

자살은 정신 이상자의 자해 행동이 아닌, 자살 할 수 밖에 없는 그 인간이 속한 사회적 환경과 가족 환경으로부터 대부분 비롯됩니다. 자살을 하는 행동의 거의 대부분은 정신건강이 이상해져서 정신 질병이 발병한 자들의 자해 행동이 아닙니다. 자기 존재감이 상실됨으로써 극단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사회에서, 가족에서 존재감을, 그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시켜주는 활동이 필요 합니다. 경제적 궁핍은 견딜 수 있어도 인간적 존재감이 완전히 무시된 것은 견딜 수가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한 인간이 생명을 던지기 까지는 많은 상황이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자살 대책을 개인화 차원에서 사회화 차원으로 전환하고, 단순 상담 식의 대책만 있는 자살 대책, 즉 개인의 정신건강 문제로 보는 그 대책 수준에서 자살할 수 밖에 없는 그 구조를 적극적으로 바꾸어주는, 그 자살자가 자기 존재감을 회복하도록 해주는 생명 정책으로 보다 더 깊이 인간을 바라보고, 대증(對症)적인 수단만 세울 것이 아니라, 인간이 속한 사회의 삶의 문제, 즉 살아가는 조건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의 '정책' 적인 대 전환이 필요합니다. 대책은 쉽습니다. 그러나 정책을 올바로 세우고 다양한 대책을 세우기란 어렵습니다.

자살 방지를 위해서 투신 방지 대책으로 타고 넘는 담을 높게 치던가, 혹은 기찻길을 상시 폐쇄 형태로 바꾼다던가 하는 식은 자살 예방 정책이 아니라 미봉책일 뿐입니다. 자살자들이 사용하는 번개탄 판매를 중지하자고 하는 식도 역시 자살의 원인은 도외시하고 그 엉뚱한 대책만 세우려는 것이지요. 살인 도구가 칼이니 없애자는 식이지요. 칼이나 번개탄은 죄가 없습니다.

이제 정부 차원의 자살예방과 그 사후 활동을 보살피는 가칭 "생명위원회"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동물에게도 '복지'라는 수준의 정책이 보편화 된 현 시대에서 왜 인간의 자살에 대한 생명복지 수준의 정책은 없을까요?

그 예산도 대폭 증액하여 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직접적인 지원활동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것을 위해서 상담 정도의 활동이 아닌 적어도 인문 소양 교육을 오랫동안 받은 철학자 혹은 인문학자들의 참여와 실제 경험을 한 다수의 사람들이 참여하여 정책을 세우고 대책을 다양하게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종교적 접근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현재는 대부분 자살 시도자에 대해서 그 시도 차단 뒤에 파출소장 혹은 관계 경찰의 훈계 뒤 훈방(?) 수준으로 예방 조치가 끝나 버립니다. 자살 시도자를 방치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당사자는 목숨을 끊고자 이미 결심했기 때문에 시간이 좀 흐른 뒤에 다시 시도할 가능성이 지극히 높습니다. 매우 위험한 수준에 처한 것을 어떻게든 완화시킬 기회가 있음에도 방치한 것이지요. 이는 우리가 잘 인지하지 못하는 죄악의 수준입니다. 자살은 단순이 상담하고 훈계한다고 그치는 일이 아닙니다.

자살 시도의 신고를 받은 경찰서는 무조건 정부 차원의 자살예방기구에 신고하여 추가적인 그 자살 시도를 막을 수 있도록 하는 여러 활동이 즉시 가동되도록 정보를 공유하도록 해야 합니다.  자살 시도를 인지한 사람 혹은 자살을 당한 가족을 인지한 사람은 무조건 관계기관에 정보를 알려 주도록 의무화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하여 자살을 예방함과 아울러 당한 가족들의 비극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따뜻한 생명 보호 활동이 필요 합니다.

이를 차단해주고 따뜻하게 생명을 유지해 가도록 동행해주는 정부 활동, '생명위원회' 같은 전담 기구가 필요합니다. 인간 생명을 소중하게 대하는 정책, 그것은 자살 상담이 아니라 자살자가 다시 가족과 사회로 복귀하도록 여러 가지 수단을 동원하여 장기간 동행해 주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자살 시도 자에 대한 예방 활동뿐만 아니라, 비극적으로 발생한 그 자살의 사후 대책이 필요합니다. 자살을 마주한 그 가족이 어느 날 갑자기 당장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를 비극적인 상황에서 모든 걸 떠안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을 꿋꿋하게 견디어낼 가족은 그리 많지 않다고 봅니다.

자살의 대부분은 사실 자기 존재의 존엄을 훼손 당할 때 발생합니다. 그 원인이 경제적인 이유든, 가족 내의 비극적 다툼이든, 연인간 다툼이든 근본은 자기 존재가 부정 당할 때 벌어진다고 봅니다.  자살의 사전 예방도 중요 하지만, 발생 후 남겨진 자들에 대한 사후 관리도 매우 중요합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만남과 상담을 통하여 삶을 정리할 결심을 한 사람을 살려내려는 절절한 동행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자살에 대해서 대부분 개인적인 비극으로 치부하고 안타깝다고만 하지, 적극적으로 그 사실을 대면하여 최대한 줄여보려는 노력은 없습니다. 예산을 조금이라도 더 늘리고 중앙정부차원의 기구가 신설되고 책임 기구가 꾸려진다면 매우 효과적인 활동이 전개되리라고 봅니다. 민간기구의 활동에 인간의 생명 동행 활동을 맡김은 옳지 않습니다. 마치 환경 보호활동을 민간기구에 맡겨서 살기 좋은 지구가 되길 바라는 엉터리와 같습니다. 보조활동을 메인으로 보는 착각이지요.

자살, 그것은 우울증이 유발한 병도 그리고 당사자의 착각도 아닌 사회로부터 타의적으로 존재감이 상실된 사람들의 그 사회에 대한 최후의 비명이자 저항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자살을 할까요?
깊은 고민은 없이 자살하면 안 되는데, "왜 죽지?"라고 질책성 비판을 하면서, 자살을 잘못된 선택이라고 생각하며 자살 그 자체를 회피하는 경향이 강했어요. 그리고는 바로 결론을 내렸어요. 자살은 정신이 올바르지 못해서 발생하는 것이라고요. 그러니 정신이 건강하면 막을수 있다고요.

이렇게 해서는 결코 자살을 막지 못합니다. 요즘 왜 유달리 한국 사회에 자살이 많을까요? 그만큼 정신건강이 안 좋은 사람이 많아져서 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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