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대통령선거와 필적감정

87년 대통령선거 군부재자 부정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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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만순(us2248)등록 2017.05.18 17:25
30년 전 대통령선거와 필적감정

박만순 (함께사는우리 대표)

"너 임마 왜 김대중 찎었어?"
"이번에 하는 모의투표는 대통령후보에 대한 여론조사에 불과하니까, 아무 부담 갖지 말고 참여해!!!" 중대장이 모의투표 취지에 대해 다시 한번 강조했다. 모의투표 결과에 어떤 책임도 묻지 않을 것임을 재삼 분명히 밝힌 것이다. 1987년 11월 초 대통령선거일 한 달여를 앞두고, 강원도 인제군 원통면에 위치해있던 12사단 한 보병부대에서 있었던 모의투표 광경이다. 13대 대통령선거는 '후보단일화'라는 국민적 여망과는 달리 지역구도가 극성을 부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른바 김대중씨의 4자필승론(四者必勝論)에 근거한 결전의 장이었다. 결국 수도권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의 유권자들은 자신의 출신지와 연계해 노태우(대구·경북), 김영삼(부산·경남), 김대중(광주·전라남북도), 김종필(대전·충청남북도) 후보를 택했다.

강원도 원통의 모부대에서 치러진 모의투표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사건은 이때부터 발생해, 비비 꼬이기 시작했다. "모의투표 결과에 어떤 책임도 묻지 않겠다"는 중대장의 말을 철석같이 믿은 대다수 중대원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선택했다. 민주후보가 단일화 하지 않은 상태여서 난 주저 없이 "백기완 후보에게 표를 던지리라"고 결심했다. 하지만 웬지 이상했다. 군대에서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선거를 한다는 것도 그렇고, 모의투표를 하는 것은 더욱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속마음과는 다르게 '안전빵'으로 노태우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모의투표 다음날 저녁때부터 해괴한 일이 발생했다. 군대에서는 밤 10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까지가 취침시간인데, 그 사이에 1시간에서 2시간 정도 불침번을 선다. 그런데 행정병들이 중대장의 지시로 불침번이 아닌 병사들을 깨웠다. 느닷없이 깨어난 병사들은 비몽사몽으로 중대장 앞에 섰다. "너 임마 왜 김대중 찍었어?" "예? 김대중이라니오?" "이 자식아 이거 네 글씨 아냐? 감히 김대중을 찍어" 중대장은 모의투표 직후부터 모든 행정병들과 함께 중대원의 필적감정을 시도해, 중대원 개개인이 누구를 지지하는지를 확인했다. 즉 모의투표에서는 지지하는 후보에 기표를 하는 방식이 아니라 후보의 이름을 쓰는 방식을 취했던 것이다. 노태우를 제외한 다른 후보자의 이름을 써냈던 모든 중대원은 밤새 중대장에게 호출을 당해 얼차려와 정신교육을 받았다. 이 해괴한 필적감정은 한달넘게 지속되었고, 중대원들은 한 달여를 공포 속에서 살았다.

지그재그로 접힌 투표용지
모의투표와 더불어 시행된 것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외박·휴가 전면 금지였다. 또한 매일 저녁 1시간씩 정훈교육을 통해 노태우후보 지지의 정당성과 관련한 정훈교육을 받았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한 달여를 이렇게 보냈다. 1987년 12월 초 13대 대통령선거 군부재자투표 날이 밝았다. 투표 직전까지 '노태우를 찍을까, 백기완을 찍을까'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당시 군부재자투표 때까지는 백기완이 후보직을 사퇴하지 않았었다. 중대 행정반에 설치된 투표소를 본 중대원은 기겁을 했다. 요즘 일부 여성연예인이 입는 시스루(see-through) 보다 더욱 얇은 하얀 광목천으로 기표소를 만들고 바로 옆에는 중대장이 의자를 놓고 앉아서 기표소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투표용지를 받아들고 기표소에 들어섰는데, 투표용지가 이상했다. 용지가 지그재그로 접혀 기호1번 노태우가 맨 앞에 있는 것이 아닌가! 더욱 해괴한 일은 그 용지를 중대장이 잡고 있는 것이었다. 즉 노태우 이외의 후보자에게 투표를 하려면 중대장의 손을 치우고 지그재그로 접힌 투표용지를 펼쳐야 하는 것이다. 한 달여간의 고민은 이렇게 허무하게 끝이 났다. '이렇게 할 거면 모의투표는 왜 하고, 정훈교육, 외박·휴가 금지는 왜 했는지' 허탈하기만 했다.
투표권을 얻은 이래 30년 동안 내 의지와 상관없이 투표한 유일한 케이스였고, 그날의 투표에 대한 마음의 상처는 지금까지 남아있다. 원통의 우리 대대는 100% 노태우표였고, 다른 사단에서 김대중이나 백기완을 찍은 병사들이 죽도록 얻어맞았다는 소문을 들었다. 1960년 3·15 부정선거에서 '4할 사전투표', '3인조 공개투표', '대리투표'를 했다고 알고 있었지만, 87년 민주화시대에 이런 일이 발생하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 "그때 과감하게 중대장의 손을 뒤엎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자책이 들었지만 법보다 주먹이 먼저였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 우리는 어떤 항변도 하지 못한 채 '보통 사람들의 시대'를 맞았다. 그로부터 5년 후인 1992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지문 중위는 군부재자투표 비리를 용기 있게 고발했다. 이지문 중위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면서, '나는 5년 전 뭐했을까'라는 자괴심이 오랫동안 머릿속에 맴돌았다.

문재인 대통령, 인권의 시대 열기를.....
드디어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정권교체'라는 국민적 여망이 반영된 선거결과였다. '人事가 萬事'라는 말이 실감나는 시절이다. 촛불민심이 지속적으로 활활 타올라 민주주의와 인권의 시대를 열었으면 한다. 문재인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많겠지만,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는 어둠의 세력들을 물리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87년 대통령 선거'는 '역사의 박물관' 으로 가고, 인권의 시대가 도래하기를 꿈꾸어본다.
덧붙이는 글 87년 대통령선거에서 군대내 부정투표의 실상을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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