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님도 가난을 구하지 못한다는, 새빨간 거짓말

숨겨진 가난, 보이지 않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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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hotnov)등록 2017.03.14 10:40
번화한 거리, 그 어둠의 뒷켠에는 어김없이 폐지를 줍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리어카를 갖고 다니면 그나마 다행이고, 낡은 유모차에 의지해 버려진 종이박스를 줍는 이들이 있습니다. 몸에 장애가 있는 이들도 있습니다. 불편한 몸으로 영하의 추위 속에 짐을 나르는 모습은 정말 안타깝습니다. 겨울은 거리를 생의 터전으로 삼는 이들에게 더없이 혹독합니다. 3월, 봄이 조금씩 다가오는 이즈음 그들의 고달픔은 조금 덜어졌을까요?

국수 한그릇 먹기 힘든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 픽사베이


숨어있는 가난, 단절된 가난
누군가는 그럴 것입니다. 저런 사람들의 숫자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그런데 생각보다 많습니다. 가끔 이런 생각도 들것입니다. 저분들에게 자식은 없나? 친척은 없나? 도와주는 이는 왜 없나? 동사무소 도움을 받을 수 없나? 네, 아무도 없습니다. 가난할 수록 주변관계는 없고, 일가붙이들 또한 비슷한 형편이라 도울 수가 없습니다. 예전처럼 부자친척이 나타나 도와주는 그런 시대가 아니니까요. 과거의 가난은 단지 물질적 궁핍이었지만 요즘의 가난은 '고립', '외로움'과 같은 말입니다. 예전에 아이 둘을 부양하는 싱글맘은 그랬습니다. 가난이 제일 힘든 것은 '관계의 단절'이었다고 말이죠. 경조사에 참여할 수 없으니 (우리나라에는 부조금이라는 게 꼭 필요하죠) 주변의 관계는 점점 끊어지더라는 거죠. 사교모임도, 친척관계도 돈이 중심되는 시대, 가난한 이들은 서서히 관계도에서 사라집니다. 그리고 더 가난해집니다. 그리고 우리의 눈에서 멀어집니다. 어쩌면 언젠가 서로 알았던 사람일 수도 있었던 사람이 저 거리에서 홀로 폐지를 줍고 있습니다.

가난을 증명하라
우리나라에는 가난을 돕는 제도가 분명 있습니다. 기초수급제도. 그런데, 한달의 생계비는 현실적이지 않는데다, 가난에서 벗어나거나, 가난의 막바지로 추락을 막는 제도가 아닙니다. 내가 아무것도 없음을 증명할 정도로 세상 끝에 서 있을 때야 비로소 지급되는 제도입니다. 완전고용 시대, 일을 하지 않는 자를 비난했던 우리네 관습은 누군가에게, 국가에 도움을 청하는 것이 부끄러운 것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해마다 많은 이들이 '미안하다'며 유서를 남기고 생을 마감하고 있죠. 영화 <나, 다니엘브레이크>에서만큼 우리나라 사회복지 공무원들이 혹독하지는 않습니다만, 이미 제도와 국가의 규율은 서류를 만드는 과정에서 스스로 수치심을 느낄만한 과정을 심어두고 있습니다. 가난을 증명하라고.

300만원이 없다
예전에 청계천 복원공사가 시작되는 즈음, 한 다큐멘터리에 이런 풍경이 나왔습니다. 할머니와 어린아이가 사는 가구였습니다. 복원공사가 시작되면 주변의 낡은 아파트는 철거됩니다. 다행히 세입자의 자격으로 임대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 임대아파트의 보증금은 300만원이었습니다. 그 300만원이 없다고, 할머니는 인터뷰하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다른 돈도 아니고 저 돈이 없었을까... 오랫동안 머리속에 지워지지가 않았습니다. 지금은 스타가 된 어떤 이는 그랬지요. 부모의 사업이 망해서 쥐가 나오는 이모네 단칸방에서 살았었다고. 집이 철거되는데 아무 대책을 갖지 못하는 이들, 사업이 망하면 삶이 엉망이되는 사람들, 그 시간의 간극은 20여년이지만 바뀐 것은 없습니다. 가난하면 바로 삶은 추락한다.

예전에 드라마는 가난하지만 행복한 가정을 그린 드라마가 흔했습니다. 가난하지만 화목한 가정 그리고 이에 대비되는 돈은 많지만 늘 싸우는 가정. 요즘은 그런 드라마 없죠. 현실적이지 않으니까요. 가난은 그냥 돈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외로움과 쓸쓸함, 불행함과 같은 말이 되어버렸습니다.

한국의 OECD 다른 국가와 비교할 때 높습니다. 특히 노인빈곤율은 현격하게 높습니다. (붉은 표시- 노인빈곤율) ⓒ OECD


(원 데이터)
https://data.oecd.org/chart/4Llh

<iframe src="https://data.oecd.org/chart/4Llh" width="860" height="645" style="border: 0" mozallowfullscreen="true" webkitallowfullscreen="true" allowfullscreen="true"><a href="https://data.oecd.org/chart/4Llh" target="_blank">OECD Chart: Poverty rate, Total / 0-17 year-olds / 66 year-olds or more, Ratio, Annual, 2013</a></iframe>

누가 가난을 구할 것인가
지금은 아무도 이 말을 입에 올리지 않지만, 한때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 못한다'는 말을 쉽게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어릴 때는 그말이 진짜인 줄 알았습니다. 이말은 틀려도 한참 틀린 말입니다. 나랏님은 가난을 구제하라고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이런 엉터리 말을 오랫동안 세뇌받았던 것일까요? 이런 말들로 혹독하게 사람들을 몰아 이득을 얻은 그들은 얼마나 잘 살고 있는 걸까요?
세계 경제규모 11위. 대한민국. 우리는 잘사는 나라입니다. 동남아시아를 여행하면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눈부신 경제대국입니다. 그런데, 번화가에서 한 블록만 벗어나도 골목 켜켜이 가난이 서 있습니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기초수급을 신청할 수 없는 법적으로 애매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 국가의 도움을 구하기 힘들어 하는 사람들. 가난을 증명할 수 없는 사람들. 국가가 할 일은 가난한 이를 찾아내고 그들의 삶을 돕는 일입니다. 찾아내기 힘든 일 아니지 않습니까. 당장 거리에서 30분만 걸어도 폐지줍는 사람 한 사람은 만나는데. 그러니까 지금, 국가는 가난을 못본척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덧붙이는 글 이 땅에서 폐지주워 생계를 연명하는 노인은 180만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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