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법정을 통해 단죄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반(反)헌법행위자 열전 405명 명단발표 기자회견을 다녀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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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림(hyanglim87)등록 2017.03.02 19:57
지난 2월 16일 반헌법행위자 명단발표 기자회견이 있었다. 정부 수립이후 내란·부정선거·학살·고문 및 조작·각종 인권유린 등으로 헌법을 파괴한 이들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어 2014년 평화 박물관을 중심으로 편찬 위원회를 꾸렸다.

이해동(청암언론재단 이사장), 김중배(전 MBC 사장), 김정헌(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홍세화(장발장은행장)가 차례로 호명하며 그들을 ‘역사의 법정’에 세웠다 ⓒ 수피아


"대표적인 사례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다. 50년에 걸친 공직생활을 통해 무고한 사람들을 고문하여 간첩으로 조작했고, 초원복국집 사건(1992년 당시 대법원장 김기춘과 정부 기관장들이 부산광역시의 복어 요리 전문점 '초원복국'이라는 음식점에 모여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모의한 것이 도청에 의해 드러나 문제가 된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선거부정에 개입, 현재 특검에서 수사 중인 불법적 블랙리스트 작성에도 관여, 민주공화국의 근본을 훼손했다"고 이만열(전 국사편찬위원장) 상임대표는 지적하였다.

이어 신인령(전 이화여대 명예교수) 상임대표는 "특정한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려는 것이 아니고, 대한민국 국민 모두를 보호하고, 또 국민 모두가 준수해야 할 헌법적 가치가 우리 생활 속에 보다 굳건히 뿌리내리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을 강조하는 바입니다"라며 편찬의 취지를 다시금 밝혔다.

위원회는 상임·공동대표 7명, 고문 61명, 1차 예약 필진 96명, 시민 편찬위원 6,219명으로 책임 편집위원은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이다. 앞으로 수 년에 걸쳐 열전 형태로 편찬할 것이며 실무진 검토, 전문가 심의, 시민토론 거쳐 완성할 계획이다.

백선엽을 비롯해 생존해 있는 사람들도 있다 ⓒ 반헌법행위자편찬위원회


곰, 독사, 불곰, 여우는 1986년 민족해방노동자 조작사건에서 당시 고문자였던 수사관 4명의 별명이다 ⓒ 반헌법행위자편찬위원회


심진구는 2012년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지 2년 뒤 고문후유증과 췌장암으로 사망. 이름을 모르는 대신 기억을 더듬어 그림으로 남겼다. ⓒ 심진구


당시 고문자 중에 1명인 정형근 전 한나라당 의원 ⓒ 심진구


"처음에는 300명을 추려냈었다. 노동문제에 대한 요구도 빗발쳤으나 못 넣었다. 이번일로 인해 노동 쪽 가해자들에 대한 조사가 부족하다는 걸 실감하였다. 친일인명사전에는 일제 36년 기간 동안 4300여 명을 선정. 우리는 2배가 넘는 70년 기간 동안 400여 명 숫자를 만드느라 힘들었다. 사전이 아닌 열전이라는 점에 감안해줬으면 한다"고 한홍구 교수는 설명하였다.

국가 기관에서 묻지 못한 죄를 대신 물었던 영화 1975년에 발생한 재일교포 유학생 조작 간첩 사건은 2011년부터 시작해 재심에서 줄줄이 무죄 판결. 김기춘은 당시 중앙정보부 대공 수사국장이었다. ⓒ 뉴스타파


특히 "조작간첩 사건에서는 규모가 클 때는 수사관만 100명이 넘는다. 그러나 정작 400명 정도를 선정해야 했기에 중요한 사건에서 3~4명, 작은 사건에서 1명, 하나도 선정하지 못한 간첩조작사건도 있다"고 덧붙였다.

"1970년대 초부터 북에서 내려오는 간첩 수가 줄어들어 정치적으로 이용할 거리가 없어지자 간첩조작과 포상이 급증하였다. 울릉도간첩조작사건(2015 무죄 확정),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조작(2016 무죄 확정) 등 매년 2~3차례 간첩검거로 포상하였다. 간첩으로 몰린지 30~40년이 지난 작년까지 재심에서 무죄로 판결난 사건만 110건을 넘어서고 있다" 사회를 맡은 정진태 팀장은 간첩조작이 늘어났던 배경설명을 해주었다.

서울시공무원조작간첩사건으로 2013년에 구속된 유우성 3년에 걸친 공방 끝에 무죄 판결. 사건으로 인해 만나게 되어 부부가 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김자연 변호사 ⓒ 프레시안 최형락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거나 가짜간첩, 반공이데올로기 유지에 기여한 자들, 인혁당 사건을 맡은 당시 중앙정보부 수사과장 이용택 같은 사람들이 오히려 훈장을 받았다. 국민들이 간첩조작으로 신음할 때 그들은 포상 잔치를 하고 있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간첩조작 피해자인 강희철씨도 회견장에 자리하였다. 그는 1986년 4월 28일, 누군지도 모르는 남자들에게 잡혀갔다. 85일간 불법 감금 및 고문을 당하였고, 결국 국가에 의한 간첩이 되어 13년을 감옥에 살아야했다. 그는 32년이 지난 2008년에서야 재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저와 같이 억울하게 당한 사람이 제주뿐만 아니라 전국에 많이 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을 하면서 (당시 부장판사인 양승태가) 현 대법원장을 하고 있다는 자체가 너무 어이없고, 대한민국 국민들이 이런 사실들을 너무 몰라준다는 게 한스럽습니다. 무죄는 받았지만 가해자들은 역사적인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살고 있습니다" (http://newstapa.org/38161 "그 사람 이름 안 잊어버렸다"-뉴스타파)

마지막으로 질의응답 시간이 되었다. 한국전쟁유족회 박용현 부회장은 두 가지를 물었는데 첫 번째로 제주 4.3과 관련하여 제주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박진경 대령이 사람들을 많이 죽였다고 들었는데 405명 중에는 왜 그가 빠져있는지 의아해했다.

"박진경은 부하들에 의해 살해되었고, 재임기간이 짦았다. 엄청난 살인자는 맞지만 추린 결과 빼게 되었다. 앞으로도 견해를 구하고, 의견을 참작하며 '이 사람 왜 빠졌냐'는 항의는 들어도 '이 사람은 왜 들어갔냐'하는 비판은 없도록 할 것"이라고 한홍구 교수는 답하였다. 두 번째 질문이 이어졌다.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기억하는 단체 ‘지금여기에’가 제작한 달력 변상철 사무국장은 제주에서 벌어진 조작간첩 13건을 조사한 결과 공통적으로 “판결문에 가족이나 친척 중에 제주4.3 피해자가 있었다”고 한다. 연좌제로 대를 이어 고통을 받은 사람들 ⓒ 수피아


"한국전쟁 때 (전투로 인한 군인, 민간인 희생자를 제외하고) 학살당한 민간인들이 100만 명이 넘는다. 학살에 직접적으로 개입한 김창룡(이승만 양아들)이 국립대전현충원에 있다. 우리는 매년 파묘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데…. 도대체 언제 파낼 수 있는가?"

다소 무거웠던 분위기에 있던 사람들은 웃을 수 있었다. 그러나 곱씹을수록 심오한 질문이 아닐 수 없었다.

"김창룡은 김구 선생의 암살 배후이다. 그러나 김구 어머님의 묘소와 가까이에 묻혀 있다. 기막힌 현실이다. (따로 분리할) 힘이 우리에게 없었던 거다. 가해자들의 이름을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우리가 부르기 시작했다. 가해자들이 드러나고, 국민들의 저항이 시작되면 그런 날이 올 것이다." 한홍구 교수의 답변을 듣고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한산한 광화문은 주말이면 촛불과 태극기·성조기로 가득찬 모순의 공간이 된다문득 궁금해졌다. '왜 우리끼리 이래야 하지?'

역사는 하나의 좌표, 미래 등불

전태일 동생 전태삼(전국민족미주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은 편찬 위원들에게 부탁의 말을 전했다. "1986년에 있었던 허원근 일병 의문사, 2016년 대법원에서도 기각하였다. 그 아버지는 이게 나라냐 하며, 30년간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언제까지 의문사로 남겨야하나. 아버지는 가슴과 머리에 총을 맞은 자식의 사진을 안고 매주 광화문에 나온다. 현재에도 잘못된 판결을 하고 있는 법관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란다"

그리고는 "오늘 역사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그런 감동을 받았다며 역사는 미래로 가기 위한 좌표이자 미래를 비춰주는 등불이다"며 기자회견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당신들이 혁명가'

요즘 태극기 부대들을 보며 왜 이런 현상이 된 것인지 궁금했다. 아직 답은 못 내리겠다. 다만 지금 우리 개인들의 노력이 다음 세대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분명하다. 억울한 사람들을 아예 없게끔 하지는 못할망정 최소한 잘못 저지른 사람들이 활개를 치는 현재 같은 미래는 만들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 걸음을 걸어가는 반헌법행위자 열전 편찬 위원들과 그에 관심을 가져주고 도움을 주는 이들. 무엇보다 국가라는 커다란 가해자들을 상대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당신들이 혁명가'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405명 명단 사진 두장이 아래위로 따로 있는데 좌우로 붙이는 방법을 몰라서요...보시고 가능하시면 부탁드립니다.
바로 밑에 몽타주 그림 두장도 좌우로 붙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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