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 시대, 사생활은 어디까지 보호받을 수 있을까

영화 <스노든>과 개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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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혜진(sweetshim)등록 2017.02.23 09:42
<스노든>(감독 올리버 스톤)이란 영화가 한창 상영 중이다. 미국 중앙정보부(CIA)와 국가안보국(NSA)의 정보 담당 직원이었던 에드워드 스노든의 실화를 다룬 영화다. 스노든은 자신이 만든 백업 프로그램이 테러를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대중의 사생활까지 감시하는 용도로 쓰이고 있음을 알게 된다. 분노한 스노든은 이 사실을 세상에 폭로했다.

영화는 실제 사건을 그대로 담고 있다. 결말을 알고 있는데도 마치 첩보 영화를 보듯 상영 내내 무척 긴장했다. 가장 섬뜩했던 부분은, 스노든이 여자친구가 집에서 사용하는 노트북 카메라(웹캠) 렌즈에 반창고를 붙이는 장면이었다. 스노든은 누군가 컴퓨터를 해킹해 웹캠을 마음대로 작동시켜 자신과 여자친구를 엿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것이다. 미국 최고의 프로그래머도 반창고를 붙이는 것 외엔 달리 피할 방법이 없음을 영화를 통해 확인한 셈이다.

실제로 2014년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황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한밤중에 아기 혼자 자고 있던 방에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아기가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부모가 깜짝 놀라 달려가 보니 방에는 아기 이외에 아무도 없었다. 목소리의 주인은 해커였다. 해커가 방에 설치된 무선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을 해킹한 뒤 크게 소리를 질러 아기를 깨운 것이다.

인터넷 연결이 가능한 것은 무엇이든 해킹의 표적이 된다. 텔레비전과 냉장고를 시작으로 스마트 가전은 점점 늘어나는 중이다. 무선인터넷이 작동하는 자동차를 해킹해 시동을 걸고 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세울 뿐만 아니라, 해킹한 흔적까지 싹 지울 수 있다. 은행을 해킹해 돈을 빼내는 것은 장난으로 하기엔 너무 큰 범죄여서 '아직 하지 않았을 뿐'이다. 인터넷이 총 든 강도보다 무서운 세상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자율주행차량이 우리를 원하는 곳까지 데려다 줄 것이고, 몸 안의 전자칩이 그날그날의 건강 정보를 의사에게 바로 전송해줄 것이다. 그 의사는 사람이 아닌 로봇일 가능성이 크다. 심지어 개인의 스케줄과 그날 아침 피부색에 맞춰 적당한 옷을 골라주는 프로그램이 이미 기술화 되어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어떤 이의 건강상태와 만나는 사람, 먹는 음식, 그리고 다음 스케줄은 어디인지, 손바닥처럼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이다.

관련법을 만들면 될까? 지금도 해킹은 엄연한 불법이고 개인정보 보호법도 마련되어 있다. 법이 촘촘해질 필요도 있지만, 훌륭한 법도 적용 수준은 사회 구성원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사생활이 침해당하는 것을 보게 된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느 개인이 저지른 일이라면 그땐 신고가 답일 것이다. 그런데 만일 그것이 국가라는 권력 기관이 개인을 상대로 벌인 일이라면? 이럴 땐 어디에 신고를 해야 할까? 별 다른 피해를 보지 않았다면 그냥 넘어가도 되는 것일까?

이것은 미래의 일이 아니다. 지난 정부와 이번 정부 내내 국무총리실과 국정원에 의해 민간인 불법 사찰이 자행되었다는 기사가 심심찮게 등장해왔다. 제대로 처벌받은 사람이 있었던가? 떠오르지 않는다. 처벌하라는 목소리를 낸 적은 있었나? 나를 돌아보게 된다.

물론 나서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이 "그래도 된다"거나 "나와 상관없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소극적인 순응의 모습 또한 사회의 수준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불법적이고 반인권적인 상황에 저항하기는커녕 순응하는 태도를 보이는 이들이 다수 존재하는 사회라면, 점점 투명해지는 우리의 일상을 어디까지 보호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가장 무서운 것은 인터넷도, 해킹도 아닌 무관심했던 한 사람, 바로 나였을지도 모른다.

사족. 과연 우리나라라면, 스노든 같은 이들이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그가 폭로한 모든 것들이 그 자신과 함께 깊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이 마치 데자뷰처럼 스쳐 지나간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시사인천>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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