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말고 '나', '나' 말고 '우리'의 디자인 하고 싶어요"

서울대 건축학과 학생들의 실험 : 소정당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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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협동조합지원센터(seoulcoopcenter)등록 2017.01.20 15:54
2016년 말 기준으로 서울시 일반협동조합 2,517개 중 주사업이 '예술, 스포츠 및 여과관련 서비스업'에 해당되는 곳은 206곳(8%)으로 18개 업종업태 중 3위를 차지한다. 유형별로 들어가 보면 사업자 159곳(77%), 다중이해관계자 36곳(17%). 소비자 6곳(3%), 직원 5곳(2%) 순이다. 전체 중 직원 협동조합이 차지하는 비율(4%)이 적은 점을 감안하더라도 직원 유형이 극히 적은데, 이는 프리랜서나 겸업 형태가 많은 업계 특성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유형: 협동조합은 조합원 구성과 사업 내용에 따라 4가지 유형(사업자, 직원, 소비자, 다중이해관계자)으로 구분된다.

여기, 직원협동조합을 목표로 협동조합에 출사표를 던진 이들이 있다. 작년 4월에 설립한 소정당 협동조합(이하 소정당)이다. 비가 내리던 6월의 어느 날, 소정당의 박성경 이사장과 김보연 감사를 만났다. "말주변이 없어서..."하며 미리 작성해온 인터뷰지를 내밀었다. 인터뷰 내내 이어진 두 사람의 차분한 말투와 달리 소정당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더 대담했다.

고민 나누던 스터디 모임에서 법인설립까지

소정당 협동조합은 서울대 건축학과 선후배가 함께 만든 디자인 협동조합이다. 건축 및 인테리어가 주전공이지만 사진촬영과 편집, 그래픽디자인, 웹사이트 퍼블리싱 작업도 가능하다. 설립한지 갓 4개월 된 스타트업이지만 전주 한옥마을 가게 인테리어, 기업 홈페이지 제작, 마을사진 전시회 등 다양한 사업을 수행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5명의 소정당 조합원들은 스터디 모임으로 맺어진 인연이다. '이왕 모였으니 뭐라도 해볼까'라는 누군가의 말이 발단이 되어 정형화된 법인격을 고민, 2015년 12월에 만장일치로 협동조합 설립을 결정했다. 소정당이라는 이름은 모임에서 농담처럼 던지던 '소수정예'라는 말에 그들만의 의미를 담아 지은 것이다. 어린 소小, 깊은 수邃, 바른 정正, 재능 예藝, 무리 당黨. 종합하면 갖고 있는 감각을 바른 재주로 펼치는 청년들이다.

소정당은 '우리'의 디자인을 꿈꾼다. 모임에서 오랜 시간을 할애해서 토론한 주제는 '수평적인 형태의 디자인이 가능할까?'였다. 흔히들 예술작품은 예술가의 개성과 세계관이 담긴 결과물이고 따라서 주관적이고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통념과는 달리 예술가들의 세계는 피라미드와 같아서 소수의 스타와 다수의 나머지가 존재할 뿐이다. 수석디자이너가 아이디어를 내면 이를 정리하고 모방·차용하는 일이 나머지의 몫이다.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건축설계사도 소장의 결정을 따라 도면을 그리고 문서작업을 한다.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차용하는 방법이 아니라 함께 토론하고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 있지 않을까? 이런 물음이 협동조합 설립이라는 대담한 실험으로 이어졌다. '남'이 아닌 '나'의 디자인을 하고, '나'를 넘어 '우리'의 디자인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소정당의 출발점이었다.

"사실 사업실패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걱정이 아예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보다는 함께 일해보고 싶다는 열망이 더 컸던 것 같아요."

서울시협동조합지원센터와의 만남

협동조합을 설립할 때 가장 어려웠던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박 이사장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도장을 어디에 찍어야 하는지 헷갈리더라고요"

협동조합을 설립하려면 정관, 총회의사록, 공증서류 등 필요한 서류가 한두 가지가 아닌데, 서류 어디에 날인하고 간인은 어떻게 하는지가 어려웠다는 것. 공동의 목표 세우기, 조합원 모집, 정관작성은 그간 지속해온 모임의 경험으로 쉽게 넘어간 반면, 사업경험이 없었던지라 법인설립·운영과 관련된 각종 개념과 절차가 어려웠다. 그러던 중 서울시협동조합지원센터를 알게 되었고 때마침 센터에서 진행한 <예비 협동조합 설립지원 밀착과정>에 지원해 담당 코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소정당을 담당한 코치는 김홍필 꿈을품은광고협동조합 이사장으로, 구로구협동조합협의회 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대선배이다. 밀착지원에 선정된 때가 3월이고 설립한 때가 4월이니, 신청당시 설립준비를 거의 마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대신 코치로부터 자칫 헤맬 수 있는 행정상 절차나 운영실무와 관련한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공동의 목표의식에 대해 강조했던 말씀이 기억에 남아요. 겉으로 보면 다 같아 보여도 자세히 보면 조금씩 차이가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서로 맞춰나가는 과정이 중요하죠."

친한 선후배라고 해서 반드시 생각이 같다는 법은 없다. 오히려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협동조합을 운영하면서 새삼 느꼈다고 한다.

"책상 색깔 하나 결정하는 것도 어려워요. 때로는 의견을 나누고 모두가 합의하는 방식이 비효율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걸 위해서 협동조합 설립을 결정했기 때문에 노력하고 있어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어떤 선이 생기는 것 같아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믿어줄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는 거죠."

모두가 행복한 회사를 꿈꾸며

소정당의 가까운 계획을 묻자 같이 여름휴가를 가고 싶다는 소소한 답변이 돌아왔다. 직장동료에 앞서 친한 선후배 관계였던 그들. 잠시나마 그때로 돌아가 일 얘기를 벗어나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누고 싶다는 것. 지금은 조합원 5명 중 3명이 상근으로 일하고 언젠가는 5명이 다 함께 일하는 것이 소정당의 최종 목표이다. 이제 시작단계라 조합 사정이 여의치 않지만 4대보험 가입이나 정기급여도 챙기려고 노력한다. 자신들만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소정당 설립을 결정한 이유이자 방향이기 때문이다.

"직원 개개인의 삶을 지켜주는 회사를 만들고 싶어요. 같이 재미있게 일하고 각자의 삶을 누릴 수 있는 그런 회사요."

인터뷰하는 동안 '토탈 디자인'이라는 말을 종종 들을 수 있었다. 디자인, 사진, 웹 등 각자가 가진 재능이 많다보니 그 특기를 살려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한 결과가 '토탈 디자인'이다. 한 기업의 설립취지부터 추구하는 방향까지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하나의 컨셉으로 녹여 로고 디자인과 웹사이트 제작, 사무실 인테리어 등을 수행하는, 일종의 '토탈' 브랜딩인 셈이다. 지금도 일부 작업은 협업의 형태로 이루어지는데, 가령 사진에 능한 조합원이 촬영을 하면 디자인 프로그램을 잘 다루는 다른 조합원이 사진을 보정하는 식이다. 소정당은 디자인 작업 외에도 소셜 크라우드펀딩 등 사람들이 원하는 아이디어를 사회에 실현하는 다양한 일을 하고 싶다고 한다. 

"협동조합을 설립하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협동조합이라는 틀이 있어서 결의를 계속 다질 수 있어요. 일부러라도 맞춰가려는 노력을 협동조합이 도와준다고 생각해요. 주변에 같은 뜻을 가진 사람이 있고 목표와 계획이 있다면 협동조합을 조심스레 추천하고 싶어요."

5명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직원 협동조합' 소정당의 미래를 기대해본다.

*소정당협동조합 홈페이지 www.youngbuthone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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