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씨의 배너들

세월호 참사 1000일의 기억

검토 완료

박찬희(suljuk)등록 2017.01.10 15:59
세월호 참사 1000일이 지나간다. 박근혜정부가 1000일 동안 한 일이라고는 은폐와 왜곡 뿐이었다. 참사가 일어난 날 박근혜 씨는 전원구조 보고를 받고 안심하여 한가롭게 출근도 하지 않고 관저에 있었다고 말했다. 참. 그가 한 일은 한가지 있다. 올림머리! 공무담당권이 근무시간에 지척의 청와대본관으로 출근도 하지 않고 올림머리나 하는 것도 포함하는 것인지는 법에 무지랭이인 나는 모르겠다. 그러나 다만, 내가 아는 한 '사람'이라면 누군가 물에 빠졌으면 제 머리카락 가지런히 하는 것 따위는 생각할 겨를 없이 어떤 방법으로든 구조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대통령에게는 국민의 생명권을 보장하고 수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정부와 대통령이 제 몸 치장하고 구조하지 않은 직무유기를 은폐하여오는 동안 국민은 진실을 규명하라고 외쳐왔다. 그렇게 1000일을.

이런 국민의 소리는 재외국민들에게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인인 호주의 Susan Lee(이하 수잔)씨도 그들 중 한명이다.

호주에서 세월호 활동을 하고 있는 Susan Lee씨 ⓒ 박찬희


수잔씨는 21년 전에 호주 시드니로 이민을 가서 정착했다. 21년의 이민생활에서 가장 큰 아픔이 세월호 참사였다. 지난 2014년 9월 9일자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기사("코리아 거버먼트는 왜 자기나라 애들 안 구해?")에 보면 그녀의 심정이 기자에 의해 절절하게 표현되어 있다.

"남편과 손을 붙잡고 울었다. 자신의 딸과 같은 나이대 아이들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바닷속에 있다는 사실이 그의 가슴을 저며왔다".

사실 호주의 방송을 통해 한국 방송보도를 접하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울면서 텔레비전을 켜라고 하며 세월호 참사 이야기를 했다. 수잔씨는 본 글의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자 마자 티브를 키라는 소리에 무슨 일 있냐고 하니까 아이들이 울면서 한국에서 자기네와 같은 나이에 아이들이 배타고 어디 가다가 바다에 배가 빠졌는데 나오지 못한다고 울면서 이야기 했습니다."

며칠 동안이나 계속된 호주방송의 관련 보도를 지켜보면서 딸들과 함께 울고 또 울었다. 그리고, 가만있을 수 없다는 생각, 무언가 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리고 하게 된 일이 자수를 통해 호주 현지인들과 이민사회에 알리는 일이었다. 필자의 질문에 수잔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호주에서 세월호 활동을  시작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아이들과 함께 손바느질 배너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들을 생각하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손바느질 배너라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수잔씨는 생업과 손바느질을 병행했다. 어떤 날은 밤을 꼬박 새우며, 어떤 날은 이사를 한 날 밤에도 잔뜩 쌓아둔 짐들 옆에서 천을 오려 바느질하고, 단추 등으로 형체를 그리고, 글자를 수 놓으며 미수습자 아홉의 귀환을 위해 기도했다. 진상 규명의 염원을 자수에 담았다. 희생자 가족들의 마음에 보낼 위로를 담았다. 수잔씨는 한 땀 한 땀 자수를 놓아 배너를 만들며, "내 자신 스스로가 치유된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한다. 그 이유를 묻는 필자의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했다.

"나도 아이의 엄마라서 엄마이기에...."

수잔씨가 현재까지 만들어서 호주, 광화문, 런던 등지에 보낸 배너는 큰 작품만 해도 여덟 점이다. 대표적 배너 여덟 점에 대한 소개와 필자의 시들을 통해 세월호 참사 1000일을 생각해 본다.(시에서 연의 구분은 ○으로 표기했다)

- 배너 1 -

수잔 씨와 딸들이 만든 첫번 배너 ⓒ 박찬희


수잔씨가 첫 번째 배너를 완성한 것은 2014년 7월이었다. 딸들과 함께 만든 이 배너에는 침몰하는 세월호를 수놓았고, '잊지 마세요 4월 16일'이라고 새겼다. 이 배너는 호주에서의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집회에서 사용되었다. 

○그해 / 4월 16일은 모두가 아팠다. / 사람이기에 울었다. / 그 아픔, 그 눈물 / 그 절규를 잊지 않기에 / 사람이다. / 사람은 잊지 않는다. / 사람이기에 잊지 않는다. / 지우려는 자 / 기억하는 자는 / 지우려는 자마저 기억한다. (박찬희의 시 '기억'의 전문)

○꽃들이 가는구나 / 아직 피지 못한 날에 / 꽃들이 지는구나 / 안개 속으로 / 어둠 속으로 / 비와 바람이 세차 / 견디지 못한 꽃들 / 끝내 지는구나 / 지고 마는구나 / 아름다운 꽃들. / 잔인한 4월에 / 왔다 가는 꽃들 / 스러지는 꽃들아 / 다시는 4월에 오지 말아라 / 어미의 통곡도 / 애비의 눈물도 기억하지 말아라 / 다시 피려거든 / 아름답게 피지 말아라 / 꺾일 꽃으로는 피지 말아라 / 꽃들아 꽃들아 / 다시는 들뜨지도 말고 / 다시는 재잘대지도 말고 / 다시는 먼 길 가지도 말고 / 꽃들아 / 내 곁에 있어라 / 활짝 피지 말고 / 아직 멀었다고 / 아직 아니라고 숨어 있어라. / 꽃들아 / 꽃들아.(박찬희의 시 '꽃들에게'의 전문)

- 배너 2 -

두번째 배너-2015제작 ⓒ 박찬희


세월호 참사 직후부터 제작을 시작하여 그 해 7월에 배너를 만든 후 그 해가 다하기까지 힘든 마음으로 지냈다. 그리고 두 번쩨 배너를 만들기 시작했다. 2015년작, "세월호의 온전한 인양을 위하여"가 바로 그것이다. 이 배너는 현재 광화문에서 노란리본과 노란리본 스틱을 만들어 나눔하고 있는 젤뚜루다씨에게 전달되었다.

배너에는 "진실은 결코 침몰하지 않는다"고 적었다. 가라앉은 세월호에서부터 진실의 단초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을 형상화 했다.

○파도가 흔들어도 / 바다가 짓눌러도 / 제 스스로 부상하는 진실 / 진실엔 부력이 있다. / 맹골수도 아래서 / 아이들이 말한다. / 가라앉은 진실에 대해 / 아이들의 절규 / 하늘에 별로 떠오르지 않는가. / 세월호의 아이들아. / 진실의 아이들아.(박찬희의 시 '아이들아'의 전문)

○엄마는 / 아직 너의 방을 치울 수 없어. / 행여 비질에 네 숨소리 쓸려나갈까 / 혹여 걸레질에 너의 체취라도 닦여나갈까 / 엄마는 / 어지러이 벗어둔 너의 옷가지 하나도 치울 수 없어. / 밤 늦은 시간 / "나 친구한테 옷 빌리러 갔다 와도 돼?" / 마지막 들은 너의 목소리가 될 줄이야. / 들떠 떠났어야 할 수학여행 / 침대에 널려 있는 짐들 때문에 화가 났었어. / "미리 싸놨어야지!" / 네게 쏘아붙인 잔소리가 / 엄마에게 돌아와 / 네가 없는 가슴에 대못으로 박혀 있구나.
○그 날 / 열한번째 희생자로 이름이 오른 너. / 해경도 / 해군 특수부대도 아닌 / 어부에 의해 발견된 아들 / 대체 그 날 정부는 어디 갔고 / 왜 너는 / 채 살아보지도 못한 세상을 / 그리 빨리 / 그리 먼저 떠나가야 한 거니? / 나는 보내지 않았는데 / 누가 너를 데려갔단 말이야?
○304명이 참담히 울부짖던 시간에 / 네가 애타게 구조를 요청하던 때에 / 나는 잠들어 있었다. / 나는 이제 / 너를 다시 볼 때까지는 / 잠들지 않겠다. / 그 날 깨어 있어서 / 4월의 그 차가운 물속에 뛰어들어 / 네 손목을 잡고 나올 수만 있었다면. / 내 가녀린 손이 부서져도 / 세월호의 창을 깨뜨려 줄 수 있었더라면. / 별 되어 너무 높이 떠서 / 네 곁에 머물지 못하는 / 내게 단 한번만 날개가 돋는다면 / 나는 천만년을 날아서 네게로 갈 텐데.
○친구들과 노는 것이 좋고 / 엄마 잔소리가 제일 싫었던 / 열여덟살 / 너는 더 이상 나이를 먹지 않을 테고 / 나만 나이 먹고 / 나만 새벽에 일어나 / 너의 책가방을 싸고 / 나만 혼자 / 네 옷을 고르겠지. / 골라주는 옷이 촌스럽다고 / 투정한번 받아봤으면. / 조금만 더 자겠다고 응석 피는 / 너의 목소리 / "5분만!" /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단 한번만 들어봤으면!
○꿈처럼 깨어 / 보란 듯이 문 열고 들어오는 너를 / 단 한번만 볼 수 있다면 / 살포시 안아주지 못했던 시간들을 더해 / 영원히 놓아주지 않으리라. / 꼭 안고 보내지 않으리라. / 너와 걸었던 새벽기도 가는 길 / 단 한번 만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을 수 있다면 / 단 한번 만 / 무릎 맞대고 널 위해 기도해 줄 수 있다면! / 이젠 꿈을 꾸어도 / 너는 다시 오지 않는구나.
○단 한번 꿈길로 왔던 아들아. / 오늘 밤 꿈엔 꼭 꼭 와주렴. / 차디찬 기도실 바닥 / 무릎 꿇은 엄마의 오랜 기도 끝에 / "엄마, 가자. 사람들 다 갔어" / 한번만 더 말해주기를 / 엄마는 오늘도 늦게 늦게 엎드려 / 이것이 꿈이기를 / 이것이 연극이기를 빌고 또 빈다. / 다시는 바다에 가기 싫다. /거기 나는 갈매기도 싫고 / 하얀 거품으로 이는 파도가 싫다. / 차라리 배가 없었더라면 / 차라리 그 날 내가 다쳐서 네가 아파서 / 배를 탈 수 없었다면 좋았을 것을. / 너는 갈매기를 따라 하늘로 갔고 / 파도소리에서만 간간히 하얀 네 목소리를 듣는다.
○오늘도 / 가기 싫은 그 바다에 서서 / 목 놓아 부른다. / 아들아. / 꿈이었다고 말해줄 수 없겠니? / 아무도 모르게 와서 / 엄마 등 뒤로 와서 / 와락 껴안아줄 수는 없겠니? / 아빠는 /  엄마는 / 차마 네 이름마저 바다로 보낼 수 없다. 너만 아는 진실을 / 세월호의 진실을 찾아 / 엄마도 아빠도 여행을 간다. / 진실여행을 간다. / 바다로 간다. / 광장으로 간다. / 청운동으로 간다. / 네가 가다 못간 여행길 / 너의 이름으로 이렇게 간다.
○아들아. / 내 딸아. / 이제 네게 말해야겠구나. / 사랑하는 내 새끼야. / 잠들지 마라. / 배가 곧 제주항에 도착할거야. / 가방을 챙겨야지. / 휴대폰도 챙기고. / 멋진 사진 찍어서 보내주렴. / 네 방 네 책상에 올려둘 테니 / 꼭 와서 얘기해주렴 / 멋진 여행이었다고. / 말해주렴 / 다음엔 꼭 같이 가자고. / 우리 함께 멋진 사진도 찍어야지. / 벌써부터 설레는구나. / 잠깐만 눈 붙였다가 깨어 있어라. / 엄마는 아빠는 누나는 오빠는 / 다음 배로 팽목항을 지나 제주항에 도착할거야.(박찬희의 시 '엄마는'의 전문)

- 배너 3 -

세번째 배너-2015년작 ⓒ 박찬희


2015년, 세 번째 작업을 시작했다. 세번째 배너는 하늘에 떠올라 별이 된 아이들, 가라앉은 세월호를 두 손으로 치켜 올리는 미수습자 아홉을 형상화 했다. 이 배너는 광화문 광장의 노란리본공작소 옆에 1년 정도 게시되었다가 영국에서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들에게 전달되었다.

○여기 사람이 있다. /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 진도 앞 바다물이 다 말라도 / 기다리는 이의 눈물은 마르지 않는다. / 아홉의 생명이 돌아오지 않는 한 / 눈물이 마르지 않는 / 사람들이 있다. / 기다림이 이렇게 고통스러운 것을 / 알지 못하는 사람 있어 멈추지 않는다. / 아홉의 생명은 / 기다리지 말자는 자를 용서하지 않는다. / 바다는 비오지 않는 날에도 슬프고 / 멀리 팽목항에 나부끼는 노란 깃발 / 거기에 새겨진 이름들이 바다를 위로한다. / 국화꽃 몇 송이 부유하는 바다 / 그 깊은 곳에 세월호는 잠겨있고

이제 그만 기다리자는 자들은 / 더 깊은 곳에 진실의 닻을 묶어두려 한다. / 숨기려는 자는 의기양양하고 / 눈물로 사는 이들은 수모의 바다 속으로 / 사랑하는 이를 찾아 뛰어들고 싶다. / 기다림 / 그것은 뼈를 녹이고 / 살을 저미는 칼이 되어 / 기다리는 사람을 겨누지만 / 포기할 수 없다. / 거리에 쏟은 눈물이 다 마른다 해도 / 그이들이 돌아오지 않는 한 / 기다리는 사람들은 / 기다림의 탯줄을 끊지 않는다.(박찬희의 시 '기다리는 사람들'의 전문)

○내겐 지금 위로가 필요 없다. / 단지 슬픔의 시간이 필요할 뿐. / 풀들 고개 드는 것이 슬프고 / 꽃들 피는 것이 슬프고 / 햇볕 따사로운 것이 슬프다. / 트라우마. / 그래 내겐 / 트라우마가 있지. / 버려지고 / 또 잊혀지면서 / 이렇게 / 봄이 쉬 지나간다 해도 / 그래서 / 그런 까닭에 / 슬픔은 넉넉히 이겨낼 수 있어. / 그런데 / 정말 / 넌 / 달마저 숨어버린 밤을 / 그렇게 견뎌낼 수 있어?(박찬희의 시 '트라우마'의 전문)

- 배너 4 -

네번째 배너-2016년작 ⓒ 박찬희


2016년, 수잔 씨는 계속해서 작업했다. 3월에 미수습자  아홉 명을 생각하며 단추와 실로 네 번째 배너를 제작했다. "아이들아. 우리는 너희를 잊지 않아" 이 배너는 꽃길 속에서 자유로이 거니는 미수습자 아홉을 형상화 했다. 이 배너는 호주에서의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집회에서 사용되었고, 참사 2주기에 맞춰 시카고 세사모로 전달되었다.

○네가 없는 그 자리 / 나는 거기 하염없이 앉아/ 너를 그리워한다. / 너를 생각한다. / 책상에 앉아 이어폰을 끼고 있는 / 네게 했던 엄마의 잔소리 생각나니? / 예전엔 / 가만히 문 열고 그 틈으로 너를 보았었지. / 너도 지금 / 그렇게 엄마를 보고 있는 거니?
○2014년 4월 16일 오전 9시 3분 / 수십번 수백번 보냈을 문자메시지 / 그러나 / 단 하나 / 엄마 휴대폰에 뜬 너의 메시지 / 엄마는 심장에 / 너를 가졌던 태에 새겨놓았어. / "엄마, 제주도 거의 도착했어요"
○배는 이미 기울었는데 / 엄마가 TV에서 본 배는 가라앉는데 / 너는 엄마에게 말했구나. / "엄마 걱정 말아요." / 친구에게도 누나에게도 전도사님께도 / 기도해달라고 / 그리 애타게 말했다면서 / 쏟아져 들어오는 물결 속에서 / 너는 엄마를 생각했구나. / 나의 창현아. / 너는 왜 그리 빨리 제주에 도착한 거니? / 왜 그리 넓은 바다를 한걸음에 건넜어?
○엄마는 / 너의 침대 머리맡에 / 너의 사진들을 붙여놓고 / 지난 시간을 붙들어 놓았다. / 2014년 4월 16일 / 엄마의 시간은 흘러가지 않았어. / 네가 없는데 / 단 일분 단 일초인들 어찌 가겠니? / 단원고등학교 2학년 5반 / 이·창·현 / 너도 엄마 없는 하루를 보낼 수 없어 / 수능마저 치루지 않았구나.
○책상에 떼어놓은 / 너의 명찰을 매만지고 쓰다듬으며 / 엄마는 네 목소리를 듣는다. / "꿈을 찾게 해주세요." / 그래 / 너는 꿈을 찾아 떠났구나. / 수능을 안 치뤄도 좋은 세상 / 거기서 꿈을 찾았구나. / 네가 찾은 그 꿈에 새겨진 / 엄마의 말을 들으렴. / "창현아 사랑해!"
○눈물로 너를 불러낼 수 있을까 / 엄마는 팽목항 그 바닷물보다 더 많은 눈물로 / 너를 불렀어. / 소리쳐 너를 부르면 너를 만날까 / 네가 곧 딛고 싶었던 제주항을 향해 / 너를 부르고 불렀어. / 가슴이 터지도록 / 더 이상 목소리가 안 나도록 너를 불렀어. / "창현아" /"창현아" / "내 아들아"
○너는 듣고 있니? / 단 한번만 대답해줄 수 없겠니? / "엄마 사랑해" / 엄마는 / 바람이 불면 / 바람 속에 네 목소리 실려 있을까 / 비가 오면 / 그 빗줄기 타고 네 목소리 들려올까 / 솟구치는 통곡으로 행여 네 목소리 듣지 못할까 / 입술을 깨물고 귀를 기울인다. / 너의 목소리 한번만 들려달라고 / 엄마는 기도한다. / 꿈속에서라도 너를 안고 싶어 / 잠들고 싶어도 / 바람이 불면, 비가 오면 / 잠들어 / 네 목소리 듣지 못할까 잠들 수 없다.
○창현아. / 네가 덮고 자던 이불을 가만히 들추며 / 행여 네가 자고 있지 않을까 / 엄마는 너처럼 꿈을 꾼다. / 문을 잠그고 / 네 이불로 입을 막고 / 통곡하고 몸부림하던 날이 / 벌써 셀 수도 없는데 / 너는 2학년 5반 그 자리 / 너의 자리를 아직 떠나지 않는구나. / 창현아/ 돌아오렴. / 엄마가 지어놓은 따뜻한 밥 / 네가 좋아하던 찌개가 끓고 있구나.
○창현아. / 돌아오렴. / 돌아오렴. / 너의 침대 머리맡에 개켜둔 이불이 / 엄마의 눈물로 다 젖기 전에 / 돌아오렴./ 해가 짧고 / 바람이 차고 / 눈이 내리는 / 두 번째 맞는 이 겨울 가기 전에 / 이제 여행은 그만하고 / 꼭 돌아오렴.(박찬희의 시 '돌아오렴'의 전문)

○바람이 차가웠다. / 팽목항. /80리 밖에서 들어오는 / 빈 배 / 수백 번 들어왔어도 /  아홉은 돌아오지 않았다. / 296번 / 297번 / 298번 / 299번 / 300번 / 301번 / 302번 / 303번 / 304번의 이름들은 / 아직 정해지지도 않았다.
○팽목항으로부터 서쪽으로 / 죽도 신도 장죽도 / 그 너머 하조도 상조도 나배도 / 그 너머 관매도 소마도 관사도 / 그 너머 대마도 진목도 / 그 너머 동거차도 서거차도를 지나면 / 세월호가 있다. / 그리고 / 그 너머 있는 / 병풍도 맹골도는 알고 있다. / 세월호의 깊디깊은 바다 속에 / 아홉이 잠들어 있음을 / 진실이 숨 쉬고 있음을 / 섬들은 알고 있다.
○선창에 앉아 목놓아 불러도 / 이름은 바다에 새겨지지 않고 / 저 홀로 오는 배만 / 물 위에 고랑을 새긴다. / 그 날도 그랬다. / 아이들이 / 식당에서 / 객실에서 / 목놓아 불렀어도 / 생명선은 / 저 홀로 동거차도를 지나 / 팽목항으로 돌아왔다.
○팽목항 빨간 등대의 재촉에도 / 여전히 항해하지 않는 / 세월호를 기다리는 / 가슴이 구멍 난 십자가는 녹슬어 가는데 / 난간에 묶여 펄럭이는 / 노란 기도들마저 / 목이 쉰 뱃고동에 묻히고 있다. / 필경은 저러다 / 기어이 탈진하고야 말지. / 밤낮 없는 등대의 기다림이 / 저러다 피눈물이 되지. / 팽목항에는 그런 눈물이 배를 띄운다.
○그렇게 / 통곡은 노란 물결로 남았고 / 바람이 / 절규로 써내려간 노란 리본을 뒤흔드는 때 / 발걸음 무거워 차마 일어설 수 없는 사람은 / 팽목항에 서서 기다린다. / 세월호를 기다린다. / 아홉을 기다린다. / 바람이여 잠잠하라. / 바다여 너의 문을 열어라. / 눈물이 이룬 바다에서 / 세월호여 일어나라.
○너울이 바다를 흔들면 / 바람 타고 오는 아이들을 보리라. / 맹골도 앞 거센 물결을 거슬러 / 섬들이 깨어나고 / 바다가 일어서면 / 세월호가 오리라. / 아이들이 오리라. / 아홉이 오리라. / 진실이 오리라.(박찬희의 시 '팽목항에서'의 전문)

- 배너 5 -

다섯번째 배너-2016년작 ⓒ 박찬희


수잔씨는 2016년에도 배너를 지속적으로 제작했다. 그 중 다섯 번째 배너 역시 세월호 참사 2주기에 맞춰 만든 것으로 미국 필라델피아로 전달되었다. 배너에는 봄의 꽃들과 새들 그리고 가망을 메고 그 길로 돌아오는 아이들을 형상화하고 이렇게 썼다. "엄마 다녀왔습니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고, 참사의 진상규명과 미수습 아이들의 귀환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았다. 이 배너를 보면 아이들이 곧 돌아와 문을 박차고 "엄마 다녀왔습니다"라고 소리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뚝뚝 떨어졌다 / 봄꽃 / 바다에 떨어진 봄꽃 / 2년을 잠자고 / 아홉은 꽃잎도 보이지 않는다. / 꽃들 떨어진 후 / 꽃들의 어미들이 서러워 / 꽃들의 아비들이 목메어 / 풍랑이 되고 / 폭풍이 되고 /  눈보라가 되었다. / 꽃이여 / 이름들이여 / 다시 봄이다. / 봄이 그 꽃인가 / 그 꽃이 봄으로 온것인가 / 봄이 뚝뚝 떨어진다 / 눈물비로 쏟아진다. / 꽃들 피지 못한 날에 / 봄만 벗은 몸으로 왔다. / 너는 꽃 / 나는 너를 어루만지며 / 뚝뚝 떨어진 너희의 비명을 / 너희의 기도를 / 차마 듣지 못한다. / 봄이면 / 나는 꽃 병을 앓는다. / 붉은 꽃 / 노란 꽃 / 보라 꽃 / 꽃 병으로 멍든 꽃이 된다.(박찬희의 시 '꽃이 된다'의 전문)

○구명대를 조여 입은들 / 어른들은 도망치고 / 너희는 남았는데 / 구조될 거라고 / 살아서 보자 말하는구나. / 나이 든 것이 미안하구나. / 살아 있음이 행복 아니구나. / 그 이유 / 너른 바다에 / 기운 배에 너희들이 있다는 것. / 복원된 너희 동영상을 / 차마 볼 수 없어 눈을 돌리다 / 죄스럽고 죄스러워 / 보았다. / 귀에 쟁쟁한 너희들의 목소리. / 무서워 무서워 / 아빠 미안해 / 구조될 건데 뭔 개소리냐는 / 너의 낭낭한 목소리가 / 나는 고통스러워. / 내가 죽고 / 너는 살아있어야 / 네가 여는 문소리가 들릴 텐데 / 이제 겨우 두 해도 안 되었는데 / 너는 잊혀져 가고 나는 살아있구나 / 너의 목소리 / 너의 흐느낌 / 너의 두려움 / 나 잠시 눈을 감을께 / 눈물 흐르지 않게 눈을 감을께. / 태평양 그 바다에서 표류할 때 / 연료는 바닥났고 / 비와 바람과 파도 / 그리고 안개만 보였지. / 헬기도 배도 없었어. 그것만 보였어. / 나도 그랬어 / 이제 말할게 / 그 때 나도 무서웠다는 걸. / 무서워 말라고 말할 수 없구나. / 차마. / 너는 돌아올 거야. / 네 방의 불 아직 켜져 있으니 / 벗어 놓은 교복 저기 저렇게 있으니 / 너는 살아있어 아직. 내가 살아 있는 한!(박찬희의 시 '아이들 생각'의 전문)

- 배너 6 -

여섯번째 배너-2016년작 ⓒ 박찬희


2016년에 수잔씨가 제작한 배너 중 또 하나. 하늘에 별이 되어 떠 있는 희생자들, 그 날 4월 16을 기억하며 만들었다. 초록 바탕의 노란 리본이 넘실대는 파도 위로 떠오른다. 이 배너는 광화문광장에 전달되었다.

○여기 사람이 있다. /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 진도 앞 바다물이 다 말라도 / 기다리는 이의 눈물은 마르지 않는다. / 아홉의 생명이 돌아오지 않는 한 / 눈물이 마르지 않는 / 사람들이 있다. / 기다림이 이렇게 고통스러운 것을 / 알지 못하는 사람 있어 멈추지 않는다. / 아홉의 생명은 / 기다리지 말자는 자를 용서하지 않는다. / 바다는 비오지 않는 날에도 슬프고 / 멀리 팽목항에 나부끼는 노란 깃발 / 거기에 새겨진 이름들이 바다를 위로한다. / 국화꽃 몇 송이 부유하는 바다 / 그 깊은 곳에 세월호는 잠겨있고 / 이제 그만 기다리자는 자들은 / 더 깊은 곳에 진실의 닻을 묶어두려 한다. / 숨기려는 자는 의기양양하고 / 눈물로 사는 이들은 수모의 바다 속으로 / 사랑하는 이를 찾아 뛰어들고 싶다. / 기다림 / 그것은 뼈를 녹이고 / 살을 저미는 칼이 되어 / 기다리는 사람을 겨누지만 / 포기할 수 없다. / 거리에 쏟은 눈물이 다 마른다 해도 / 그이들이 돌아오지 않는 한 / 기다리는 사람들은 / 기다림의 탯줄을 끊지 않는다.(박찬희의 시 '기다리는 사람들'의 전문)

○결코 잊어서는 안 될 / 결코 잊혀 질 수 없는 / 100일 전 / 그 일이 있었다. / 가만히 있으라는 소리에 / 가만히 있던 아이들 / 지금도 가만히 있다. / 그러나 / 그러나 / 비는 가만히 오지 않았다. / 팽목항에서 / 안산까지 / 안산에서 의사당까지 / 의사당에서 시청까지 / 비는 아이들 대신 / 엄마 발걸음 따라 / 여기까지 왔다. / 시청서 지척인 광화문 / 광화문서 지척인 그 곳 / 그러나 / 엄마 발걸음은 다가갈 수 없다. / 비는 거기 내리건만 / 가만히 있는 거기에선 / 엄마의 소리 듣지 않는다. / 버스로 둘러쳐 진 광장 / 분명 노란 물결인데 / 그건 공권력의 우의였고 / 엄마와 걷고 싶은 이들에게 / 가만있으라고 / 당신은 누구냐고 / 그들이 소리쳤다. / 오직 비 만 가만히 내리지 않을 수 있었을 뿐 / 걷는 것도 죄가 되는 땅 / 서울의 밤은 비가 내려도 씻기지 않았다. / 100일 전 그 참담히 갇힌 객실처럼 / 오늘 서울광장은 갇힌 사람들의 소리 / 엄마 보고 싶어 / 엄마! / 차마 두렵다고도 말할 수 없는 / 폐쇄의 공간. / 난 꿈이 있어요. / 보미는 그렇게 노래했지. / 그래요 난 꿈이 있어요. / 그러나 그 꿈은 빼앗겼고 / 꿈도 꾸지 말라기에 / 우리의 아이들은 결코 잠들지 못한다. / 봄이 가고 여름이 왔고 / 그렇게 지나간 100일 / 아직 10명은 진도의 바다 속에 있는데 / 가만히 있으라는 소리 / 지금 서울에서 들었다. / 꿈꾸지 말라는 말 광장에서 보았다. / 그러나 / 그러나 애써 / 눈물 삼키며 말하리라. / 얘들아 꿈꿔라. / 얘들아 가만있지 말아라. / 얘들아 너희들의 언니 / 너희들의 오빠 / 너희들의 엄마 / 너희의 아빠들이 있다. / 꿈꾸어라. / 가만있지 말아라. / 여기 / 지금.(박찬희의 시 '광장에서'의 전문)

- 배너 7 -

일곱번째 배너-2018년작 ⓒ 박찬희


2016년에 '노란우산프로젝트'가 세월호참사 진상규명과 미수습자 귀환 활동의 일환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호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수잔씨는 그에 맞춰 또 하나의 배너를 제작했다. 노란 우산은 침몰된 세월호를 수면으로 부양하는 열기구를 연상케 한다. 우산을 둘러 싼 다양한 색깔, 마치 열기구가 빛과 열을 발산하며 하늘로 오르듯 세월호의 인양을 염원한다.

○20140416304. / 한 명 두 명 / 그렇게 우리는 생명을 거두었다. / 저 차가운 바다 / 저 칠흑의 어둠 속에서 울부짖던 / 생명은 너른 바다로 퍼져 있다가 / 깊은 바다를 여행하다가 / 그렇게 우리에게 왔다. / 2백9십5명.
○그리고 아홉. / 한 명도 두 명도 / 우리는 그 생떼 같은 목숨을 만나지 못했다. / 저 비정한 바다 / 저 세월호의 침묵 속에서 울부짖는 / 생명은 맹골수도 어디에서 떨고 / 그렇게 우리에게 / 그렇게 눈물로 채워진 바다에서 / 손짓한다. / 601일.
○선체의 인양은 요원하고 / 온전하던 선체는 무너져간다. / 추울세라 뻘이 아홉을 덮었을까? / 더 추운 가슴으로 기다리는 이들이 있다. / 아직 만나지 못한 피붙이들 / 가족들은 아직 아홉을 보내지 않는다. / 팽목항이 잠들어 있을 때에도 / 동거차도는 깨어 있어야 한다. / 저들이 저버린 생명들이 / 쉴 곳 없다고 / 거센 바람으로 와서 움막을 흔든다.
○기다림은 천만년도 견딜 수 있다. / 그들에게 물어보리라. / 당신들의 배는 왜 침몰했는지 /  누가 당신들의 몸에 뻘을 덮었는지 / 아홉의 미수습 생명들이여 / 우리는 당신들을 붙들고 있다. / 생명을 붙들고 있다. / 그리하여 기다림은 살아있다. / 당신들을 기다리는 우리가 살아있다. / 우리가 살아 있는 한 당신들은 살아있고 / 기다림은 멈추지 않는다. / 기다림만은 누구도 해치지 못한다.(박찬희의 시 '기다림'의 전문)

○그렇다. / 그들은 분명 비존재가 되었다. / 분명한 피해자이면서도 그 존재가 지워진 이들 / 모리배들은 패 놀이에 정신을 팔고 / 대중은 그만하자고 한다. / 그러나 그만 할 수 없는 이들은 / 발걸음을 멈출 수 없고 / 곡기 끊은 이들은 시시로 야윈다. / 생명이 하나씩 스러져 가는 사이 / 인면수심의 정치는 / 달 밤 미친 개 짖듯 으르렁대며 / 진실을 구하는 이들을 물어뜯고 / 광기에 취한 자들은 / 부끄러운 줄 모르고 완장을 휘두르는데 / 광화문의 차들은 무심하게 달리고 / 아들과 딸들을 잃은 통곡은 / 광화문 빌딩숲 사이에서 맴돈다. / 존재마저 / 철저히 배반당하고 무시당하고 외면당한 / 이들을 어찌 홀로 둘 수 있으랴. / 바람 스산한 벌판에 두고 따슨 밥 넘기는 것이 / 부끄럽고 부끄럽다. / 다시 시작된 기나긴 여정 / 나는 / 그 길 한 모퉁이를 끝내 지키리라. / 아이들 해맑은 소리가 / 광화문 분수에 감겨 잦아드는 저녁 / 기도하오니 /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 Kýrie, eléison.(박찬희의 시 '키리에 엘레이손'의 전문)

- 배너 8 -

여덟번째 배너-2017년작 ⓒ 박찬희


2017년 1월 9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00일 째가 되는 날이다. 수잔씨는 아직도 차가운 바다에서 나오지 못한 미수습자 아홉명을 생각하며 물고기로 형상화 하여 배너를 만들었다. 수잔씨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바다를 표현하여 아홉명이 부디 슬픔과 고통없는 곳으로 큰 고래를 따라 유영하기를 빈다. 이 배너는 지금도 팽목항에서 가족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는 미수습자 가족들에게 보내기 위해 제작한 것으로서, 세월호 관련 활동을 하는 해외동포들이 세월호 참사 1000일을 기하여 만든 공동 포스터에 삽입될 예정이다.

○바삐 오가는 차들 / 넓은 사거리 / 사람들은 어지러운 횡단보도에 서서 / 광화문의 천막촌을 본다. / 2014년 4월 16일 이전 / 여기엔 바람만 드나들었으나 / 자식들 가슴에 묻은 이들 / 슬픔을 놓을 수 없는 이들 / 이제 여기에 있다. / 간혹 확성기 소리 시끄럽게 광장을 흔들고 / 매몰찬 이들이 더러운 현수막을 펼쳐들 때 / 광화문엔 / 비가 와도 세차게 온다. / 304명의 눈물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 광화문 광장에 / 어서 햇빛 들어 눈물이 말랐으면 좋으련만 / 마구 달려 지나는 차들 / 무심한 발걸음 / 빌딩의 불빛은 여름에도 차갑다. / 세종로 사거리 골목에서 파는 / 초라한 꽃다발 하나 사기도 죄스러운 / 눈물조차 사치스러운 / 여기 광화문 분향소에 서서 / 살아있음의 저미는 애곡을 삼킨다. / 북악으로부터 드리워진 그늘을 걷어내고 / 팽목의 절규가 위로받기까지 / 우린 / 스러지지 않는 생명의 이름으로 / 객실에 식당에 매점에 / 아직 잠들어 있는 아홉을 부른다. / 사람은 사람이어서 사람이기 위해 / 귀환을 기다린다. 진실의 귀환을.(박찬희의 시 '광화문에서'의 전문)

○천 일을 걸었다. / 천 일을 울었다. / 천 일을 불렀다.
○천 날을 더해야 한다 해도 / 천만 번이라도 / 함께.
○슬픔이 위로받지 못해도 / 주검이 생명으로 오지 못해도 / 천 개의 목숨으로 천만 번의 다짐으로.
○304인의 얼굴로 그 이름으로 / 선언한다. / 포기하지 않는다.(박찬희의 시 '세월호 참사 1000일에'의 전문)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