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묵은 '박근혜식 정치', 종말 해야 할 때

궁지 몰릴 때 마다 안보위기 부추겨 ‘국민결속’ 유도, 더 이상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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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환(jun587)등록 2016.12.27 14:45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드러난 박근혜 정부의 실체는 많은 국민들을 경악케 했다. 아무런 검증도 밟지 않은 일개 민간인이 국정을 좌지우지 한 모습에선 분노를 넘어 '이게 나라냐'며 한탄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서울 광화문 일대는 주말만 되면 어린 학생부터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까지 수십만 명의 인파가 몰려 촛불을 들었다. 영하로 뚝 떨어진 추운 날씨에도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모두 현 정부의 국정실패, 사회구조적 모순 등 한국사회에 쌓인 적폐를 해소하기 위해 한 목소리로 외쳤다.

사실 지난 4년을 돌아보면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 눈높이와는 전혀 동떨어진 모습을 보였다. 정부 출범 이후 단 한 번도 '국민과의 대화'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 이를 잘 말해준다. 어떤 정책이든 찬성과 반대가 있을 수 있지만 논의 과정에서 상대의 의견을 취합하고 조정하는 일은 민주사회의 기본이며,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가늠하는 중요한 요소다. 우리가 대화와 소통을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이 현안마다 기자회견을 하는 것은 물론 토론회를 열어 국민과 의견을 주고받는 모습은 어느덧 추억이 되고 말았다. 민주화시대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민주주의를 갈망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반공과 애국으로 대표되는 '박근혜 정치'

박근혜의 퍼스트레이디시절 모습(새누리당 제공). ⓒ 최종환


그런 의미에서 박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전혀 어울리지 않은 인물이다. 20대 초반부터 18년 동안 청와대에서 '안주인' 노릇을 하느라 또래 세대의 생활을 전혀 경험하지 못했다.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보거나 취업과 결혼, 출산 등 누구나 때가 되면 하는 일을 그는 체득하지 못했다. 같은 시대에 살고 있지만 국민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이었다.

대신 박 대통령은 매번 공식석상에서 '국가와 결혼했다'고 말했다. 자신의 행동은 국가를 위한 일이며, 단 한 번도 국가를 배신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 같은 인식은 국민들에게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자신의 행위가 곧 국가이익이며 국민들은 자신을 따라야 한다는 존재로 여기기 때문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빗어진 대국민 담화에서도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은 "일말의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다"며 지금까지 제기된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국가를 위해 한 일인데 "네가 왜?"라는 식이다.

유시민 작가는 박 대통령의 이 같은 인식에 대해 '이념형 보수'라고 평가했다. 분단이라는 특수성을 활용해 반대세력을 적으로 간주하고, 자신만 옳다는 파시즘적 행태를 보인 것이 대표적인 이념형 보수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궁지에 몰릴 때 마다 북한 문제를 적극 활용했다. 지난 2013년 국정원의 대선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정치적 타격을 입었지만 '이석기 내란음모'사태로 위기를 모면했다. 정부의 정통성을 의심하는 여론은 휘발성이 강한 '종북 논란'으로 잠식되고 말았다.

이듬해 '세월호 참사'라는 전대미문의 국가위기 상황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구조현장에서 진땀을 흘려야 할 해경은 대통령에게 보고할 영상을 촬영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사건의 진상을 촉구한 유가족들은 눈물을 흘리며 청와대로 향했지만 박 대통령은 이를 외면했다. 대신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서민 코스프레'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대구 중구 중앙로에서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 최종환


박 대통령의 이 같은 모습은 어디에서 발현되었을까? 지난 권위주의 정권을 떠올려 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박정희 정권은 국민 여론을 결속시키기 위해 매번 전쟁 상태, 안보위기를 강조했고, 이를 사회 전 영역으로 확산시켰다. 대통령 비서실이 1975년 발간한 '박정희 대통령 연설집'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조국의 현실이 백척간두에 처해있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오늘의 상황은 준전시 상태가 아니라 전쟁을 하고 있는 상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오늘의 상황은 준전시 상태가 아니라 전쟁을 하고 있는 상태"라는 등 안보위기를 국내정치적으로 활용한 점이 눈에 띈다. 결국 박정희의 통치 철학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고스란히 스며들었다고 할 수 있다.

'냉전, 반공주의 질서와 한국의 전쟁정치'논문에서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이를 두고 "북한 사회주의와 대결 속에서 성립한 반공국가적 행태"라며 "이러한 조건은 한국의 지배체제 속에 '전쟁정치의 보편화'로 구조화되어 있다"고 비판했다.

박근혜 정부가 지금까지 버텨온 것도 분단과 안보위기라는 특수한 상황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의미다. 물론 박 대통령의 사과와 탄핵국면으로 현재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 보여 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두 달 동안 계속되고 있는 '촛불혁명'은 우리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을 주고 있다. 폭력과 쇠파이프 대신 국민들은 광장에서 함께 애국가를 불렀고, 각종 패러디로 무능한 대통령을 비판했다. 여론에 힘입어 국회는 지난 9일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시켰다. 보수와 진보라는 프레임으로 설명할 수 없는 '한국적 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애국과 안보로 덧 씌어진 '박근혜 정치' 나아가 '가짜 보수'는 이제 종말을 고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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