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놀로 블라닉 신고 폼 나게? 꿈 깨시지.

[다른 사람의 서가에서 건져 낸 책] 생존게임을 방불케 할 '뉴욕에서 살아남기'

검토 완료

최하나(lastchristmas200)등록 2016.12.27 14:15

대도시 뉴욕에서 예술가를 꿈 꾸는 20대 여성이 살아남기란 텔레비젼 속 서바이벌 게임과도 같다. ⓒ 한스미디어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도시가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뉴욕'. 접시를 닦더라도 뉴욕으로 가라는 말처럼 수많은 기회가 꿈틀대는 예술의 중심지이지만 실상 그 곳에서 살아가기란 녹록치 않다. 지하철역에는 쥐들이 기어 다니고 오래된 아파트에서는 바퀴벌레가 우글거린다. 내 몸 하나 겨울 눕힐 수 있는 코딱지만 한 공간은 말 그대로 더럽게 비싸다. 그러니 예술가를 꿈꾸는 사람이 마놀로 블라닉을 신고 폼 나게 뉴욕의 거리를 걷고 뷰가 끝내주는 라운지에서 우아하게 브런치를 즐긴다는 건 야무진 꿈일 뿐이다.

뉴욕은 생각보다 더럽고 남루하다.

"뉴욕에서 사는 것은 다른 일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딱 한 번뿐인 경험이다. 잘해내거나 못하거나 결과는 둘 중 하나겠지만, 잘해내지 못해도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뉴욕이 모든 사람들에게 호의적인 곳은 아니니까. (중략) 뉴욕에 오는 사람들에게 내가 정말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충고는 그냥 버티다보면 제자리를 찾는다는 것이다."

'뉴욕에서 살아남기'의 저자는 만화를 그린다. 볕이 잘 드는 따뜻한 서부 캘리포니아에서 살다가 짐을 옮겨 아는 이도 없고 기댈 곳도 없는 동부의 뉴욕으로 이사를 간다. 그녀는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된 이유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는 힘들다고 했다. 다만 익숙했던 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고만 밝힌다. 그 결과 친구들과 가족 그리고 안락한 집을 버리고 더럽고 좁은 지하 단칸방을 전전하며 일 년 동안 무려 여섯 군데의 직장을 전전하며 간신히 입에 풀칠하듯 살아야 했다. 그녀의 일상은 뉴욕에서 산다는 게 과연 어떤 것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가난하다고 유머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비참하게 보일 수도 있는 삶이지만 그녀는 비관하거나 슬퍼하거나 움츠러들지 않는다. 오히려 쓰레기통에서 꺼낸 것 같다며 자신의 옷차림을 스스로 농담거리로 삼는다. 굳이 바꾸려들지도 않는다. 그냥 그게 그녀다. 딱 필요한 만큼만 쓰고 불필요한 것에는 눈을 감는 삶에는 유머가 흘러넘친다. 오래된 신발을 말하는 신발로 바꿔 부르고 자신에게 새 신발을 살 것을 강요하는 엄마에게는 자신을 바꿀 수 없다는 걸 잘 알지 않느냐며 기죽지 않고 응수한다.

이 모든 시간을 기록해봐.

"내 첫 번째 책인 <방귀파티> 1권이 10월 초에 우편으로 도착했다. 미치도록 행복했지만 한 편으로는 내 20대에 ISBN 번호가 붙은 사실에 소름끼쳤다."

그녀의 뉴욕에서의 일상에서 엄청난 무언가를 기대한다면 분명히 실망할 것이다. 취업하고 실직하고 백수로 지내다가 다시 취업하고 또 실직하고 다시 백수의 삶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내용이 전부다. 하지만 그 삶은 특별한 대신 우리네와 너무 같아서 큰 공감대를 형성한다. 닫으면 자동으로 잠기는 문 때문에 옥상까지 올라가 비상계단을 이용해 다시 방으로 돌아오는 소동을 벌이기도 하고 (사실 열쇠는 뒷주머니에 들어있었다.) 자꾸만 사고를 치는 오빠의 실종 소식에 태연한 척 굴다가도 방구석에 앉아 훌쩍이기도 한다. 어쩌다가 낸 책 때문에 사인회에 참석하지만 파리만 날리고 독자들을 위해 준비한 간식은 잔뜩 남아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별 볼일 없는 그 모든 일상을 기록했다. 그리고 그것은 책으로 남아 지망생이던 그녀를 작가로 만들어주었다.

자신 있게 이 책을 권할 수 있겠냐고 물으면 망설이게 될 것 같다. 성적인 농담들과 우리나라의 정서상 맞지 않는 민감한 소재도 담겨있는데다가 그림체도 그렇게까지 아름다운 건 아니다. 하지만 내가 다른 이의 책꽂이에서 무수한 책을 꺼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뉴욕에서 살아남기'를 제일 먼저 읽은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덧붙이는 글 뉴욕에서 살아 남기/ 줄리아 워츠 지음 /김보은 옮김 / 한스미디어 / 2015년 02월 27일 출간 / 정가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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