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그 가벼움에 대하여...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다섯 살 해인이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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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아(sorrel)등록 2016.12.16 16:47
수원지방법원 법정동 308호, 판사의 방망이 소리조차 들어설 자리 없는 법정은 마치 대합실처럼 붐볐다. 행선지와 사람 수를 말하면 한번 되물어 확인하고 표를 끊어주는 판매원마냥 판사는 그렇게 사건들의 판결을 내렸다. 지난 4월, 다섯 살 해인이를 죽음에 이르게 했던 사고의 판결도 그렇게 내려졌다.

해인이 ⓒ 류승아


판사의 말이 끝나자 해인이 어머니는 오열했다. 금고 1년, 집행유예 2년. 법정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이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민00씨는 부주의하게도 자동차의 브레이크를 걸지 않고, 기어조차 중립으로 둔 채 차에서 내렸다. 그 바람에 차가 밀려 내려가 하원버스를 타려던 해인이를 들이받았다. 그 충격으로 해인이는 다섯 살 나이에 생을 마감해야 했다. 분명 운전자의 실수였다. 고의성은 전혀 없다. 그러나 아이의 죽음이라는 결과는 남았다.

사고 당시 어린이집 앞 CCTV ⓒ 용인시청제공


집행유예란 그 기간 동안 특정한 사고가 없으면 선고한 유죄의 판결은 효력을 잃게 되고, 형의 선고가 없었던 것과 동일한 효과를 나타내는 제도다. 이는 다른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경우 실형을 살지 않는다는 뜻이다. 어린이집은 기소조차 되지 않고 무혐의 처분 받았다. 아이가 죽었는데 차주도, 어린이집도 실질적인 벌을 받는 사람은 없다.

어린이집에 등원한 아이의 안전은, 아이가 부모의 품에 안기기 전까지 어린이집이 책임져야 한다. 이것이 상식이다. 이 상식이 지켜지기 위한 모든 조치를 강구하는 것이 어린이집이 감당해야 하는 몫이다. 하지만 이 어린이집은 간호조무사 상주 규정도 어겼고, 차도와 보도의 경계석도 없었으며, 하원버스의 문이 차도 쪽을 향하고 있는 등, 안전대책을 소홀히 했다. 사고 발생 직후, 신속한 119 신고와 적절한 응급조치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어린이집 울타리에 차려진 해인이 분향소 앞에서 용인시민이 일인시위를 하고 있다. 해인이 사고가 난 뒤 어린이집 하원차량의 방향이 보도 쪽으로 바뀌었다. ⓒ 류승아


그런데도 경찰이나 해당관청에서는 철저한 수사와 감사를 하지 않고 시간만 끌었다. 그 사이 이 어린이집에서는 그 어떤 절차를 밟지 않은 채 사고 직후 휴원, 대대적인 내·외부수리, 매매 등이 신속하게 이루어졌고, 지금은 전혀 새로운 어린이집으로 탈바꿈해 있다. 어린이집을 휴원 하거나, 크게 고치거나, 운영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것과 같은 일은 법에 정해진 규정에 따라 절차에 맞게 진행되어야 했지만, 기관 어디도 문제 삼지 않았다.

사태가 이 지경으로 치닫는 동안 담당공무원들은 무엇을 했을까? 그들은 '법에 정해진 테두리 안에서만 움직일 수 있으므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는 입장이다. 법, 법이란 무엇인가?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일인시위 중인 용인시민 ⓒ 류승아


사건이 발생하고 가해자는 무엇을 했을까? 어떤 이유 때문인지 알 수 없으나, 가해자는 해인이의 부모에게 진심으로 사죄하지 않았다. 해인이의 유골이 모셔진 추모원에 찾아 가본적도 없고, 그곳이 어디인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 재판 날짜에 가까워지자 문자메시지로 사죄의 뜻을 밝혔다고 한다. 해인이 부모는 가해자의 그런 태도 때문에 또 다시 큰 상처를 입었다.

이 뿐만이 아니다. 가해자 부부는 사고차량을 운전해 법원에 나타났다.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한 그 차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타고 다녔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다. 가해자 부부를 향해 해인이 가족과 많은 시민들이 울부짖으며 책망하는 동안 그들은 살짝 고개만 숙인 채 덤덤히 서 있었다. 진정으로 반성은 했는지 의심스러웠다.

추모원의 해인이 ⓒ 류승아


만약 내가 가해자라면 어땠을까. 순간의 실수로 너무도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한 억울함이 먼저 들었을 것이다.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 깊은 후회가 밀려와 자책도 했을 것이다. 그 다음에는 피해가 가족을 떠올렸을 것 같다. 얼마나 안타깝고 힘드실까, 깊은 죄책감으로 몸서리를 쳤을 것이다. 어쩌면 집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다시 운전대를 잡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 한 생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자동차는 다시 쳐다보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들을 이어가다 보니 가해자의 행동은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그가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어떤 생각들을 했는지 모르지만, 해인이 부모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또 진정으로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가 그에게 없었다는 것이 사무치게 안타깝다.

아이가 죽었다. 도로에서의 무당횡단이나 차량사고와 같은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니라 어린이집 차를 타려다 일어난 사망사고다. 그런데 경찰도, 해당관청도, 법원도, 가해자도 피해자의 가족은 철저히 외면했다.

가해자와 어린이집 책임자들은 면죄부를 받았다. 그들은 어떻게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칠 수 있을까? 지금의 사법제도에 대해 다시 고민해보지 않을 수 없다. 법의 처벌이 이렇게도 솜방망이일 수밖에 없다면 차라리 남겨진 피해자들의 상처를 위로하고 치료를 돕는 공적기구가 존재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그래서 사회가 더 이상 멍들지 않도록 말이다.

해인이 아버지가 거리에서 전단지를 나누고 있다 ⓒ 류승아


해인이 아버지는 하루하루를 술로 보내고 있다. 해인이 어머니는 해인이 사진을 붙잡고 울다 지쳐 잠든다. 해인이 동생은 누나 사진에 밥을 떠먹이며 누나를 그리워한다. 해인이 가족은 어디에서, 누구에게 위로 받아야 할까?

해인이 사고와 재판 결과를 지켜보며 깊은 참담함을 느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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