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슬이의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 어떤 나라일까요?

세월호의 진실, 이제는 모두가 답해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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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상(pinocchio82)등록 2016.12.06 11:56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지만 누구보다도 밝은 꿈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던 박예슬양의 전시회 ⓒ 이준상


2014년 7월 27일 오후. 그 어느 때와 다름 없던 뜨거운 일요일 오후 였습니다. 그리고 그 날은 혼자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던 그런 날이기도 했습니다. 장소는 2016년의 겨울을 분노와 희망의 목소리로 뜨겁게 하고 있는 경복궁 근처의 서촌갤러리, 그리고 그곳에서 열렸던 <단원고등학교 2학년 3반 17번 박예슬 전시회>.

박예슬 양이 직접 그린 디자인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옷 ⓒ 이준상


공간을 잠식하는 먹먹한 슬픔. 그날 그 조그마한 갤러리에서 느꼈던 감정을 굳이 표현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좁은 통로의 계단을 통해 한 발 한 발 터벅터벅 올라가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의 눈과 그 숨소리에서 느껴지는 그 어떤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감정은 함께 느껴본 사람이라면 알 것입니다.

아마 박예슬 양의 '사연'을 알지 못했다면 그러한 감정을 느끼진 못했을 지도 모릅니다. 남자친구와 함께 입고 싶다며 그린 그림과 이를 통해 만들어진 귀여운 커플옷, '거실이 넓어서 아담해보이고 화목해 보이는 구조'라는 글이 적힌 것이 인상적인 <내가 원하는 구조!>라는 집의 그림. Q&A 형식을 빌어 자신의 장래희망은 '스트릿 브랜드CEO'와 '인테리어 디자이너'이며 이상형은 연예인 중에서는 공유, 운동선수는 이정수라고 수줍게 말했던 박예슬 양.

Q&A 형식으로 자신의 꿈을 들려준 박예슬 양의 전시회 작품 ⓒ 이준상


한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의 꿈, 그리고 슬픔

욕하는 것과 물건함부로 쓰는 것, 그리고 자신의 먹을 것을 뺏어 먹는 것을 싫어한다는 이 귀여운 18살 고등학생이 좋아했던 것은 친구, 노는 것, 긍정적인 것, 재밌는 것, 먹는 것, 애기, 옷 등등 너무도 많았다고 Q&A는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제가 너무 많은 것을 허락도 없이 적어내려간 것은 아닌지 조금은 걱정이 되기도 하네요. 하지만 박예슬 양이라면 하늘에서 이해해 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그렇습니다. 위에서 적어 보여드린 것 처럼 제가 봤던 것은 한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의 꿈이 담긴 전시회였습니다. 하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사연'을 배제한 상태로 전시회를 끝까지 감상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였습니다. 작품 곳곳에 함께 하고 있던 예슬 양의 친구들과 수 많은 시민들이 진심을 담아 적어 놓은 글 들. 하나하나가 하늘 아래 그 어떤 시 보다도 마음의 파문을 일으켰던 그 글 들을 소리 없이 읽다 보면 어느덧 더 이상 글을 읽을 수 없을 만큼의 슬픔이 저 밑의 어느 곳에선가부터 훅 올라오곤 했습니다. 결코 잊을 수 없을 것만 같던 그 슬픔.

그리고 2년하고도 4개월이 더 지난 2016년 겨울. 서촌갤러리에서 느꼈던 슬픔은 그저 그 때의 감정으로만 남았던 것일까요? 여전히 달라진 것은 없고 오히려 더 큰 분노만 남은 지금의 상황이 한 없이 스스로를 부끄럽게 만듭니다. 일을 통해 먹고 사느라, 개인의 즐거움과 행복을 찾느라 잊고 지냈던 2014년 7월 뜨거웠던 그 날의 감정, 그리고 2014년 4월16일 바로 그 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태로 '구하겠지. 구할 수 있을거야'라는 무책임하고 무력한 생각 밖에 할 수 없었던 그날의 자신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봅니다.

박예슬 양의 친구들과 시민들이 남긴 글들 ⓒ 이준상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그리고 예슬이의 꿈

'대통령은 세월호 7시간 동안 놀아도 된다.'라는 한 국회의원의 발언이 국정감사 때 아무렇지도 않게 마이크를 통해 전 국민에게 전해지는 나라, 대통령이 국가적 재난의 순간에 무엇을 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고 수 많은 믿고 싶지 않은 '의혹'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나라, 그 재난에 대한 책임은 그 재난을 정면으로 마주했으며 모든 것을 내던졌던 사람들에게만 지게 하고 결국 모든 것을 빼앗고 마는 나라. 그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가운 물 속에서 따뜻한 손을 잡을 수 있기만을 기다렸던 아이들을 위해 목숨을 내던지던 잠수부들이 있는 나라, 먼저 가라며 끝까지 침몰해가던 배를 지켰던 선생님들이 있는 나라, 끝까지 진실이 무엇인지 알아내고자 생업을 뒤로하고 유족들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는 나라, 그리고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전하고자 한 자리에 모였지만 그 어떤 폭력적인 행위도 없는 나라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입니다.

긍정적이고 밝고 착한 것을 매우매우 좋아한다는 글을 남겼던 단원고등학교 2학년 3반 17번 박예슬 양, 아니 예슬이. 하늘에서 100만개가 넘는 빛나는 촛불을 지켜보고 있을 예슬이가 꿈꿨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과연 어떤 나라였을까요. 이제는 우리가 예슬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답을 할 차례 입니다.

박예슬 양 전시회의 끝에서 볼 수 있었던 글 ⓒ 이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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