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박근혜'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언론보도, ‘정치적 영향’ 프레임 가장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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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환(jun587)등록 2016.11.29 15:15
'정치인 박근혜'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박근혜'라는 인물은 사람들에게 매우 낯익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최순실 국정논란' 사태나, 대통령이라는 직업 탓이기도 하지만 오래전부터 그는 '만들어진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박근혜의 퍼스트레이디시절 모습(새누리당 제공). ⓒ 최종환


박근혜는 1952년 대구 출생으로 18년 철권통치를 해 온 아버지 박정희 밑에서 오랫동안 청와대 생활을 해왔다. 육영수 여사가 서거한 1974년부터 5년 동안에는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며 청와대 안주인 노릇을 톡톡히 했다. 이후 1979년 박정희 정권이 몰락하면서 그녀의 삶도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1997년 국가부도사태를 맞아 박근혜는 '나라를 살리겠다'는 야망을 품고 국회의원에 도전하기에 이른다. 그는 이듬해 4월 치러진 국회의원 보궐선거(대구‧달성)에서 당선돼 화려하게 부활했다. 본격적인 정치인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2004년 3월에는 한나라당 대표가 됐고 이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풍비박산 난 당을 살리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를 계기로 줄곧 차기 대권주자로 꼽혔으며 마침내 2012년 18대 대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됐다.

2011년 TV조선 개국 당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인터뷰 화면. ⓒ 최종환


박근혜가 오늘날 정치인으로서 영향력을 갖게 된 것은 언론의 역할이 매우 컸다. 한 종편은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형광등 100개를 보는듯한 아우라'라고 치켜세웠다. 또 당이 위기에 직면할 때 마다 '선장'으로서 제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많다. 언론은 박근혜를 띄웠고 그녀는 언론을 너무나 잘 활용했다.

언론과 정치인의 관계에 대해 김준철 교수는 "정치권력은 뉴스의 중요한 원천이기 때문에 언론은 그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려 한다"며 "권력집단은 언론을 통해 자신의 견해나 결정사항을 국민에게 알리는 유리한 통로를 자연스럽게 확보한다"고 지적했다. 언론과 권력은 뗄 수 없으며, 상호보완적 관계라고 풀이할 수 있다.

'정치인 박근혜' 분석한 연구 눈길

정치인의 언론보도를 분석한 연구는 흔치 않다. 더구나 '현역으로 활동하는' 한 개인을 학술적 주제로 삼기에는 연구자의 주관이 개입될 소지가 많고, 상황에 따라 인물의 평가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근혜를 보도한 언론을 분석한 연구가 있어 최근 눈길을 끌고 있다.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유홍식 교수팀은 '박근혜에 대한 보도 프레임 분석'이라는 연구를 진행했다. 박근혜가 당 대표로 있던 2004년 3월부터 2010년 3월까지 무려 7년 치 언론보도를 분석한 방대한 연구다.

언론보도, '정치적 영향'프레임 가장 많아

언론사별 박근혜 보도 관련 프레임 ⓒ 최종환


연구진은 박근혜는 주로 '정치적 영향'이라는 프레임으로 언론에 보도됐다고 밝혔다. '정치적 영향'은 박근혜의 정치적인 입지를 강조한 것으로 정책을 제안하거나 반대하는 모습을 부각하는 보도 내용이다. 구체적인 표현에는 '대중적 인기', '차기대권주자', '리더십' 등이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기사와 표현이 있었는지 해당 논문을 살펴봤다. 논문에 따르면, 한국의 전통적 보수신문인 <조선일보>는 2006년 9월 6일 기사에서 <나라가 정상적인 게 하나도 없다>라는 제목에 <박근혜 前대표 대구 방문… 거침없는 정치발언>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이 기사에서 <조선일보>는 박근혜가 발언한 "비정상 상태인 국가를 정상화하고 정권을 재창출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부분을 실었다. 당시 노무현 정부를 줄곧 비판해 온 <조선일보>가 박근혜라는 인물을 활용해 정권에 더욱 각을 세운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겨레>에서도 정치적 영향 프레임이 두드러졌다. 결단을 촉구하는 상황에서 박근혜는 '찬성하지 않았다(2006/12/01)', '부정적인 반응(2007/02/06)' 보였다는 식으로 보도했으며 이를 통해 그의 정치적 영향력이 부각됐다.

<조선일보> '인간적 흥미', <한겨레> '갈등 접점' 높아 

하지만 두 언론사의 보도 내용에는 차이점이 있다. <조선일보>는 '정치적 영향' 다음으로 '인간적 흥미' 프레임이 많았다. '인간적 흥미'는 박근혜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도하는 내용으로 개인 동정 등이 포함되어 있다. 구체적인 표현에는 '여성적 이미지', '박정희 딸', '어머니이미지' 등이 있다.  2006년 12월 15일 <조선일보>가 보도한 <박근혜 캠프를 움직이는 사람들>이라는 기사가 대표적이다. 이 기사는 박근혜가 강연에서 자주 쓰는 유머와 주변 사람들의 행적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는데, '비행기 안에서도 보고서와 스크랩 자료를 읽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신드롬' 등의 표현이 있다.  

반면 <한겨레>는 '갈등 접점' 프레임이 두 번째로 많았다. 이 프레임은 박근혜의 행동이나 발언을 부정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구체적인 표현에는 '논란야기', '문제화', '당내갈등' 등의 표현이 있다. <한겨레>가 2009년 7월 20일 보도한 <박근혜 '미디어법 반대표' 발언 파장>이라는 기사가 여기에 속한다. 이 기사는 미디어법과 세종시 수정안을 반대하고 있는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당내 갈등 상황을 다루고 있다. '법안 강행', '견제구'라는 표현으로 박근혜가 갈등의 중심에 서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언론이 박근혜를 만들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일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청와대 제공) ⓒ 최종환



이 같은 연구는 의미가 적지 않다. 보수와 진보를 대변하는 <조선일보>와 <한겨레>는 상반된 프레임으로 박근혜를 지지하거나 비판하는 입장을 보였다. 양분화 된 언론보도는 지지층을 결집시키거나 분해하는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으며, 결국 언론이 '정치인 박근혜'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이러한 보도 경향이 달라지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에서 보듯 박근혜에 우호적이었던 언론들이 비판적 논조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박근혜에 더 이상 기댈 것이 없다고 판단한 것인지, 혹은 법치와 정의라는 보수의 핵심 가치를 지키기 위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점은 박근혜가 오늘날 '정치인'으로서 소명을 하고 있는 것은 언론이 한 개인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지 않고 포장과 후광을 통해 보도해왔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현 사태에 대해 언론도 공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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