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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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영석(zikic)등록 2016.11.25 09:27
왜 그랬을까.

2006년 10월

이병 안!근!영!
목소리가 가성에 하이톤이다. 낯선 사람앞에서 극도로 긴장할때 나오는 가식적이고 영혼없는 목소리. 키는 168Cm 몸무게는 90kg정도 되는 안경 낀 근영이의 포스는 '오덕'느낌이 강했다. 더블백매고 온 근영이를 본 선임들의 표정은 석연치 않은 억지 웃음으로 환영을 해주었다.
10월 군번 근영이 간물대에 침낭이 없다. 다른 생활관을 다 뒤져보았지만 없다. 첫 날부터 추위에 떨면서 자는 모습을 볼수 없기에 내 침낭을 빌려줬다. 모포를 4개에 야상과 깔깔이를 입고 잤지만 강원도 철원의 밤공기에 이를 딱딱 부딪히며 잠들었다.
근영이는 사람 눈을 쳐다보지 않는다. 고개를 60도 앞으로 내민채 어딜 보는지 알수 없는 눈빛을 하고 있다.
"'야 너 어디보고 관등성명 대냐"
"죄...죄송합니다."
지나가는 근영이 뒤에다 대고 고참들이 들릴듯 말듯 말한다.
"아오 저런 놈이랑 같은 소대라는 것이 정말 쪽팔린다."

주말. 근영이가 침대에 앉아서 바닥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조금이라도 숨통을 트이게 하고 싶어 PX에 데리고 간다. '근영아 PX가서 뭐 좀 먹자' "네 알겠습니다" 하이톤 목소리로 목을 내민채 대답한다. "분대장님 PX 좀 다녀오겠습니다"
px 테이블에 앉아서 냉동 짬뽕과 그라탕 닭강정을 전자레인지에 넣고 기다린다. "지영석 일병님은 멋지십니다" 앞뒤 맥락 없이 밑도 끝도 없이 말한다. 나는 알고 있다. 이 말을 고민 고민 끝에 용기내서 말했다는 것을 "어.. 고마워 근영아. 뭐 먹고 싶은거 있으면 더 말해. 혹시라도 힘든거 있으면 말하고." 최대한 당황하지 않은 척 하면서 말한다

2007년 3월
"안근영 너 간물대에 이게 뭐야"
교육중 쉬는 시간. 분대장이 근영이의 간물대에서 공책을 발견했다. '고참 몸을 건드려서는 안된다. 대답은 네 그렇습니다 네 알겠습니다로 한다. 총을 건드리면 관등성명과 총번을 말한다'등 소소한 부조리가 적혀있었다. 처음 자대 배치 받을 때 내가 알려준 것들이다.
"근영아 너 이런거 적으면 안돼 이거 걸리면 우리 영창가는거야. 우리보낼려고 적은거야 어? 그런거 아니지"
"이...이... 이병 안근영 아닙니다. 제대로 숙지하기 위해서 적었습니다"
두려움에 휩쌓인 초점없는 눈빛으로 선임 눈이 아닌 바닥을 쳐다보면서 말한다.
"근영아. 이런거 적는거 아니야 응? 내말 들려."
"네 들립니다"
"어딜 보고 말하냐. 근영아 내 말 들려요? 어? 들리냐고 근영아"
"네 들립ㄴ..."
"내 눈 쳐다봐!!!!!"
처음부터 쳐다보지 않는 것이 신경쓰였지만 참다 참다 안되겠다는 듯이 소리쳤다.
"이 개새끼가 너 저번에 초코파이들고 화장실 갔지? 내가 못봤을것 같아 시발놈아"
"생... 생... 생활관에서 과자 먹으면 안... 안된다고 배웠습니다"
처음 근영이를 교육시킬때 선임이 주는 것 빼고는 생활관에서 먹으면 안된다고 했던 사람이 나다. 내가 했다고 말해야 해. 내가 교육했다고. 내가 교육했다고. 이건 내 책임도 있어. 말하자. 말해야 돼 그래 말하자 말하자.
'J병장니...'
"휴...."
J병장의 한숨에 내 몸은 얼어붙었다.
"근영아. 우리가 너 심하게 괴롭히던? 평소에 욕을 했니 뭘했니. 너 병신같이 행동해도 최대한 배려해줬잖아. 근데 우리 영창보낼려고 마음 먹은거야? 응? 뭘 잘못했는지 말해. 내가 뭘 잘못했는지 말해봐. 말해. 말해 당장 말해 개새끼야!!!"
말해야 돼. '제가 교육했습니다. J병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그렇게 교육했습니다 제가 잘못 한 일입니다.'
근영이는 단 한번도 J병장을 쳐다보지 않고 바닥만 보고 있다. 이 상황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한마리 동물처럼.
'말해야 돼. 말해야 돼. 내 잘못이라고 말해야 돼.'
머리는 말하라고 소리쳤지만 심장은 내 입을 꽉 잡았다.
"이런거 쓰는거 아니야 근영아 알았지? 한번 더 쓰면 그때는 나 진짜 영창갈 각오 할테니깐 조심해 알았지? 아이고. 너 같은 새끼는 군대 들어오면 안되는데. 00야! 나 담배피러 간다 소대장 찾으면 알려줘!"
J병장은 내려가고 근영이는 바닥만 쳐다보고 있다. 현실을 보고 싶지 않다는 듯이 지금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기 않겠다는 눈빛으로 땅만 쳐다보고 있다.
밤 10시. 침대에서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근영이 눈빛이 생각난다. '그 때 내가 말했어야 하는데. 나 때문에 근영이가 혼났어. 아니야 나도 그렇게 교육 받았는데 화장실에서 먹은 적은 없잖아. 근영이 잘못이야. 내 잘못 없어.' 몸을 뒤척이며 다시 잠을 청한다. '그 상황에서 내가 나섰으면 어느정도 수습했을꺼야. 젠장. 다 나 때문이야. 그렇게 나를 좋아해주던 근영이에게 실망만 안겨줬어.' 미안함과 합리화를 번갈아가며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했어야 했는지 결론 내릴려고 애썼다.

필승! 일병 지!영!석! 2007년 3월 0일부터 2007년 3월 0일까지 외박을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필승!
몇일후 나는 외박을 나가게 되었다. '영석아 PC방가서 이 노래 CD로 구워와라. 너 이것때문에 보내는 거야 알지' 분대장이 노래 목록 적힌 종이 쪽지를 주면서 말한다. '네 알겠습니다'
"필승! 일병 지영석 외박 다녀오겠습니다" 근영이를 포함한 후임 3명이 일어나 경례한다.

외박은  와수리로 간다. 루트는 정해져있다. 먼저 여관을 잡는다. 피자를 시킨다. 비디오를 빌린다. 야한 것도 빌린다. 피씨방에서 싸이월드를 하고 스타크래프트를 질릴때까지 한다. 중간 중간 부대에 보고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밤 10시쯤 되면 여관으로 들어가서 비디오를 보면서 잠이 든다.
다음날. 저녁 7시까지 복귀다. 나머지 시간은 피씨방에서 때운다. 저녁 5시 30분. 피씨방에서 나와서 택시 승차장으로 간다. 아 CD깜빡했네. 들어가면 엄청 욕먹겠네. 부대방향 일직선으로 길게 뻗어있는 도로를 보니 식도에 돌이 걸린 듯 답답하다. '욕 먹는 건 잠깐이야. 빨리 들어가서 대충 혼나고 평소처럼 지내자.' 생각과는 다르게 몸이 반대방향으로 돌아간다. 걷는다. 그냥 걷는다. 이러면 안되는데. 하면서 걷는다. '조금만 참으면 돼 그냥 부대로 돌아가자' 생각하며 그렇게 걷고 걷고 또 걸었다. 
CD를 구우라고 명령한 분대장에 대한 복수였을까. 아니면 근영이앞에서 아무말도 못한 내 자신의 비겁함을 마주해서 일까. 나는 부대를 등지고 걷기 시작했다. 순간이지만 벗어났다는 후련함이 도망치는 공포를 마비시킨다.

밤 9시. 계속 걸었다. 앞이 거의 안보일 정도로 어둡다. 야간 행군하는 느낌. 들리는 건 귀뚜라미소리와 새소리뿐.
멀리서 불빛이 보인다. 군인들이 차량단속을 하고 있다. 야광봉을 들고 있는 군인이 언뜻 보인다. 마비되어있던 심장이 다시 뛴다. 왔던 길로 다시 가야 하는 건가. 싫다. 오른쪽에 작은 산이 있다. 갈대숲에 길을 만들며 크게 돌아갔다. 어둠속에 오로지 감각으로만 길을 찾는다. 어둠속을 뚫다보니 산을 넘었다. 뒤를 돌아보니 야광봉을 들고 있는 군인이 보인다. 안도의 한숨을 쉰다. 팔을 보니 자자란 상처들이 빨갛게 물들어있다. 

차도 옆을 걷는다. 10분에 한번 꼴로 불빛이 느껴진다. 그때마다 길게 뻗어 있는 갈대에 내 몸을 숨긴다.

밤 10시 30분. 한적한 장소에 빨간 벽돌로 만들어진 2층 건물이 있다. 2층은 아무것도 없고 1층은 피씨방이다. 주인이 위 아래로 흝어본다. '뭐지 이새끼'의 눈빛. 그러나 그냥 무시하듯 피던 담배를 핀다. 싸이월드에 들어간다. '영석아 엄마야. 부대로 돌아가. 엄마 부탁이야. 제발 돌아가 빨리 엄마 죽어' 중학교 때 가출했을때와 똑같은 패턴. 엄마는 그 때와 달라진 것이 없어. 그저 문제 해결하는데만 급급하지. 하고 생각하는데  눈물이 떨어진다. 가출했을때도 엄마에게 전화했을때 똑같은 말 들으면서 눈믈을 흘렸다. 나도 그때와 달라진게 없구나.
도망치듯 밖으로 나간다. 밤 11시. 이제 어떻게 해야하나. 멀리서 차 라이트가 보인다. 피하기도 귀찮다. 택시다. 그냥 지나가겠지 했는데 차를 세운다. 후진을 하고 창문을 내리고 나를 쳐다본다. 2초정도 서로를 응시한다.
"그 쪽인 것 같구만. 부대에서 탈영병있다고 난리 났어."
나는 멍하니 쳐다본다.
"나랑 같이 들어가자고. 내가 태워다줄께"
아저씨는 슬픔과 안타까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한다.
'됐다. 이제 그만 가자'

택시 문을 열고 아저씨 옆좌석으로 앉는다.
"잘 생각했어. 잘 생각했어."
"...."
아저씨는 왜 탈영했냐고 왜 무슨일 있었냐고 묻지 않았다. 핸들을 잡고 앞만 보면서 같은 말을 계속 반복했다.
"잘 생각했어. 잘 생각했어."

부대앞에 8명 정도의 간부가 있다. 대대장도 나왔다.

"잘왔다. 잘왔어"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아니야 잘왔어. 잘왔어."

나는 왜 그랬을까. 근영이의 눈빛에서 이 곳에 있으면 안된다는 것을 느낀 것일까. 아니면 그저 CD를 굽지 못해서 혼나기 싫어서 도망친 것일까. 그 후 14박 15일 영창을 다녀왔고 중대장은 나 때문에 진급 하지 못해 화를 냈고, 분대장 J병장은 4박 5일 분대장 휴가 제한을 받았다.

현재 군인의 수는 약 60만명, 매년 30만명이 제대하고 또 30만명이 입대를 한다. 연평균 탈영병의 수는 약 700명. 약 900명당 1명이 탈영을 하는 셈이다.
                                                                                      -김보통 D.P 개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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