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미 작가의 소설 <모든깜언>을 읽고

유정이의 눈을 통해 본 농촌의 고단함과 아름다움과 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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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술(coneto)등록 2016.11.24 09:47

김중미 작가 소설 <모두깜언> 표지 김중미 작가가 쓴 소설 <모두깜언>의 표지이다. ⓒ 최종술


1. 농촌판  '흙수저'

요즘 현실을 풍자하는 '흙수저, 금수저'라는 용어가 세상을 어지럽게 날아다닌다. 인간의 행복의 질은 태생부터 결정된다는 것을 빗대어 나온 용어들이다. 과거에는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있지만 지금은 어림없다는 뜻을 담고 있다. 태생적 환경이 스스로의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굴레인 것이다. 김중미 소설 <모두깜언>은 세간에서 말하는 '흙수저'를 다른 시각으로 보여주고 있다.

실제 흙을 토대로 삶을 살아가는 농촌 사람들의 시련과 고뇌를 다루고 있다. 농촌이라는 태생적 환경이 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도시민과는 사뭇 다르다. <모두깜언>에서는 농촌 사회가 가지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인 경제적 어려움뿐만 아니라 다문화 가정, FTA, 구제역 등 현재 농촌 사회가 가지고 있는 여러 시사점을 굵직한 소재로 다루고 있다.

2. 다문화 가정

현재, 우리나라 출생률은 세계 최하위를 달리고 있고,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은 13.3%로 고령화 사회에 임박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 경제를 떠받칠 주요한 구성원으로 다문화 가족들이 있다. 2015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체류 외국인 수가 1백만이 넘어섰고, 다문화 가족 혼인 수도 매년 2만건을 넘어선다. 전체 혼인수의 8% 정도 차지한다.

다문화 가족은 더 이상 우리에게 이질적인 존재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문화 가정에 대한 차별과 인권유린 문제가 여전하다. <모두깜언>에서는 베트남에서 온 다문화 가족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어린 나이에 우리나라 농촌 노총각인 '작은아빠'에게 시집을 온 '작은엄마'는 베트남 출신이다. 유정이를 친딸 이상으로 대하는 꽃보다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졌다.

'작은엄마'의 아들인 '용민'은 다문화라고 놀리는 동네 친구들과 형들 때문에 그런 자기 엄마를 부끄러워한다. 엄마 때문에 놀림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사회적 편견에 아파하고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베트남에서 온 등장인물 '로엔'도 마찬가지이다. 잘 살아보겠다고 한국행을 선택했을 뿐이다.

언니가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까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선택했었다. 그런데 그 결과 사기결혼을 당해서 20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남편으로부터 폭행을 당하고 도망갈 수도 없이 버텨야 하는 혹독한 삶을 살아야 했다. '로엔'의 이야기에 가슴이 먹먹해 졌다. 폭행을 일삼는 남편이 가지고 있는 배경엔 '가난한 나라에서 돈으로 사왔기 때문에 내 소유'라는 왜곡된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내 자식의 엄마이며, 나의 반려자인데 말이다. 일부 사람들은 나보다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되면 무시하고 함부로 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유독 다문화 가족에게 인권유린 사태가 많이 발생한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난다. 다문화 가정에 대한 편견, 차별, 인권유린 등은 다문화 가정이 직접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우리 사회 전체가 다문화 가족을 포용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3. 살문리의 고단함

작가 김중미의 <모두깜언>은 유정이의 눈을 통해 살문리의 고단함과 아름다움, 치유를 그리고자 했다. 중국교포 출신 아내가 집을 나가버려 괴로움에 처해있던 광수아버지는 구제역 때문에 살아있는 소들을 살처분하면서 통곡한다.

삶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빠져 나올 수 없는 늪처럼 절망만 가득하다면 너무 아프지 않는가! 아닌척하지만 아들의 죽음을 꿈속에서만 통곡해야 하는 할머니. 할머니의 속울음에는 어머니의 애절함과 팍팍한 삶을 버텨내려는 안간힘이 담겨있다. 비틀어지고 너덜너덜해져도 일어설 수 있는 힘이라도 남아있다면 다행이다.

작은 시골마을에서 삶은 어른이나 아이나 고된 것은 마찬가지이다. 고단한 어른들의 삶 속에서 어린나이지만 세상살이가 고되다는 것을 일찍이 배워버린 살문리 아이들. 유정이와 같은 학교 동급생 지희, 광수가 그들이다. 광수는 공부보다 몸 쓰는 농사일을 더 잘 한다.

유정이는 친환경 농법을 고수하는 작은아빠를 도와 틈만 나면 농사일을 거들어야 한다. 유정이를 끔찍이 여기는 작은아빠지만 부족한 일손 때문에 유정이에게 도움을 청한다. 작은엄마는 임신한 몸이지만 쉴 수가 없다. 일손이 부족한 시골에서는 고된 농사일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지 않으면 안 된다.

4. 상처가 아물어 간다.

<모두깜언>은 내면의 상처가 있는 주인공 '유정이'의 성장소설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닥치는 다양한 경험들은 그들에게 절망을 안겨주기도 하고 상처를 주기도 한다. 유정이도 마찬가지이다. 유정이는 부모 대신 할머니와 작은 아빠에 의해 길러졌다. 부모 없이 자란 아이는 일찍 철이 들어버려 아이다움을 상실하게 된다.

바로 애어른이 되는 것이다. 유정이는 화가 나도 아닌 척, 슬퍼도 아닌 척, 섭섭해도 아닌 척했다. 누군가가 공격이라도 할까 봐 주먹을 움켜쥐고 바짝 긴장하며 마음의 벽을 친다. 그래야 내 마음이 다치지 않고, 외롭지도 않을 거라 생각한다.  그 내면에 있는 깊은 아픔 때문이다.

김중미 작가는 <모두깜언>에 나오는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결핍을 갖고 있다고 했다. 유정이는 다른 등장인물 보다 큰 결핍을 가지고 있다. 바로 '언청이'로 불리는 구순 구개열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무녀리로 태어난 강아지 '꼬맹이'의 죽음에 유정이가 목 놓아 운 것은, 언청이로 태어나 먹지도 못한다고 굶어 죽으라고 윗목에 밀쳐지기까지 했고, 부모에게 버림까지 받아야 했던 유정이의 상처가 아물지 않고 다시 터져버렸기 때문이다.

결핍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문제는 결핍을 채우는 것이 힘들다는 것이다. 유정이처럼 세월에 상처를 맡기고 딱지가 앉기를 기다린다면 아픔에 익숙해지고 무뎌질 것이다. 결핍이라는 상처를 단단한 껍질로 겉에 두르고 새살이 돋아오를 때까지 견디는 것이다.

다행히 유정이는 상처를 치유해 간다. 더 이상 혼자 주먹에 힘을 잔뜩 주지 않아도 된다. 할머니의 무뚝뚝한 말투에 숨은 마음도 볼 수 있다. 유정이는 투박하지만 정이 많은 할머니와 세상 어떤 부모보다 헌신적인 작은아빠가 곁에 있어 예쁘게 자라고 있다.

생각이 없는 것 같지만 유정이 만큼은 누구보다 끔찍이 생각해 주는 광수, 우등생이자 항상 깔끔한 모습을 잃지 않는 우주, 울보 지희가 유정이 곁을 살아가는 친구이자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는 치유재이다. 세상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 할지라도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슬픔은 나누면 반으로 줄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고 했듯이 그렇게 유정이의 상처가 아물어 간다.

인간은 누구나 상처를 안고 있다. 그것이 타의에 의하든 자의에 의하든지 상관없이 말이다. 문제는 그 상처를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것이다. 세월을 약으로 하든, 생채기를 무시하고 더 큰 자신의 야망을 위한 디딤돌로 쓰든, 주변 사람들에게 의지를 하든, 다양한 자신만의 방식으로 생채기들을 다스린다. 인간 내면의 상처는 스스로 극복하는 것이 치유의 가장 바람직한 방향일 것이다. 인간이라면 어떻게든 스스로 생채기를 아물게 하는 힘이 있다.

5. 마치며
나는 어린 시절 지독한 가난에 마음의 허기짐이 더 서러웠던 기억이 있다.
가을햇살에 쑥부쟁이가 하얗게 웃고 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가녀린 몸집이 애처롭고 예쁘다. 유정이를 닮았다. 소설 속의 다른 주인공보다 유정이에게 더욱 애착이 가는 것은, 어쩌면 유정이의 모습에서 어린 시절 나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모두깜언>을 다 읽고 덮은 뒤에도 유정이는 내 마음 속에 여전히 남아 있다.
작은엄마, 로엔, 우주, 지희, 광수, 유정, 작은아빠, 할머니... ...
길가에 쑥부쟁이들이 파리한 모습으로 가을바람을 온몸으로 막아내고 있다.
여느 시골이 그렇듯이 살문리가 마냥 고되고 아픈 곳만 아니다. 그 곳에는 후투티, 뻐꾸기, 소쩍새, 청호반새, 노랑할미새 등 각종 새들이 살고, 초여름 버스 차창을 가득채운 산딸나무 꽃, 할아버지 무덤가에 붓꽃, 진강산의 생강나무, 물오리나무, 진달래, 조팝나무들이 철철이 핀다.
쑥부쟁이가 말한다.
"모두깜언"

('모두깜언'은 이 책의 제목으로 우리말 '모두'와 '고맙다'라는 뜻의 베트남어가 합해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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