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대표의 오만

영수회담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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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일(mangchutai)등록 2016.09.13 13:29
대통령과의 불통의 벽만 확인한 셈이다라는 것이 어제의 영수회담 뒷말이다. 그럴 줄 몰랐다면 영수회담을 요청한 추미애 대표의 착각임이 분명하다. 대통령이 선심 쓰듯이 영수회담 제의를 받아주었고 별로 듣고 싶지는 않았지만 야당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는 생색 내기에 끌려든 꼴이다. 당대표 선출 후 첫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이라는 호기를 영수회담 제의에 아무 소득도 없이 소모한 꼴이 되었다. 대화와 소통으로 정국의 변화가 가능할 것이라 보는 야당이라면 지금 야당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다. 취임 후 단 한 번도 이런 대화와 소통으로 정국이 변화된 적이 없는 대통령에게서, 야당대표가 하는 말을 귀담아 들어줄 것이라 믿었다면 이는 추미애 대표의 엄청난 오만이다. 지금 추미애 대표는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

6일 전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내심 많은 기대 속에 지켜보았다. 야소야대의 국회 지형을 만들고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야당에 대한 실망감이 있었지만 당원에 의해 선출되지 않는 대표의 한계와 시한부 대표의 한계를 동시에 지녔던 김종인 체제가 끝나면 달라질 것이라고 믿었다. 스스로도 내년 정권교체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공약을 통해 취임한 추미애 대표에 대한 기대는 그가 지난 시간 속에서 보여주었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일 것이라고 믿기도 했다. 그러나 어제 이 모든 기대를 접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추미애 대표는 무기력했다. 장관들을 배치한 회담이 영수회담일 수 있는지 전례를 들어본 적이 없다. 회담장에서의 발언들도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전혀 새로울 것이 없었다. 회담이 끝나고 나서도 대변인의 논평만 있었을 뿐이지 당대표의 발언은 또 전혀 전해지는 바가 없다.

영수회담은 박정희 철권통치 기간에도 있었다. 1975년 있었던 김영삼과 박정희의 영수회담은 10월유신 이후 펼쳐진 긴급조치가 지속되고 야당과 민주인사들에 대한 탄압이 지속되던 시기에 김영삼이 요청해서 이루어졌다. 밀실야합 소동이 일어나면서 김영삼이 야당 총재직을 내려놓을 정도의 후폭풍이 있었지만 그때도 장관을 대동하지는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의 여야 영수회담에서 박근혜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 제의를 대놓고 면박했고, 훗날 이 회의는 박근혜를 위한 회담으로 기억되게 하였다. 이 회의를 통해 박근혜의 위상은 더 한층 높아졌다. 추미애 대표가 김영삼과 박정희의 밀실 영수회담을 꿈꾸었는지 아니면 대통령에게 면박이라도 줄 기회를 꿈꾸었는지 알 길은 없다. 그도 저도 아니면, 그 당시와는 시대가 변했으므로 내가 설득하고 발언하면 박근혜 대통령도 일정부분 수긍하고 변화된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기대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경제와 민생이 위기임을 인정하지 않는 대통령을 보아 온 것이 한 두 해가 아니고 세월호, 국정교과서, 개성공단 철수, 한일 위안부 협상, 싸드배치 등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자신의 의지를 굽혀본 적이 없는 대통령에게 과연 무엇을 기대한 것일까? 합리적인 대화를 통한 소통의 확대는 국민의 곤란한 처지를 알 바 없는 대통령에게 귓등으로도 전해지지 않을 공염불이었을 뿐이라는 것을 추미애 대표는 모르고 있는 것일까?

지리멸렬할 전선이라도 있으면 참전하고 싶어하는 국민이 스스로를 당대표로 선출한 권력이었음을 지금은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은 아예 전선 자체가 없는 국면이다. 세월호 특별법은 이제 경각에 달려있고 민생 경제는 이미 파탄을 맞았으며 국가권력은 부패했고 안보무능과 외교무능은 도를 넘은 지 오래이다. 그러나 어느 국면에도 야당은 눈에 띄지 않는다. 무엇 하나라도 대차게 들이받고 여당과 집권세력을 압박하는 전선이 형성되지 않는다. 방송과 신문 등의 언론을 틀어쥔 청와대는 무소불위로 제 갈 길을 간다. 전선이 있어야 군인도 참전한다. 선전포고조차 하지 않는 전장이라면 그곳에 전사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여소야대의 국회 지형이라 하더라도 국회 선진화법 때문에 아무 것도 야당의 의지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라는 말도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타협과 읍소를 통해 얻어낸 양보 보다 변화를 시도해서 장벽에 막혀 깨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지금 야당을 지지하는 국민이 간절히 원하는 정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타협과 읍소를 통한 양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수없이 보아왔으면서도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야당에 기대할 것이 없겠다고 믿는 순간 내년의 정권교체도 난망 하다.

쇼핑백에 유에스비 하나는 넣어서 건네주는 것보다는 청와대 담장 밖의 민생이 어떤 지경인지 똑똑하게 알려주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박지원 비대위원장과 국민의 당이 양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이 걸어갈 수 있는 보폭의 한계라면 더 이상 당의 미래도 없다. 무난무탈하게 대선후보 경선을 치루고 선출된 대선후보가 내년 대선에서 이길 때까지 현재의 헬조선을 탈출할 시간을 유예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면 추미애 대표는 지금 당장 나서라. 나서서 가장 먼저 피 흘리며 쓰러질 때 비로소 전선이 구축되고 싸워야 할 적이 분명해진다. 지금 더불어민주당은, 추미애 대표는 그 분명한 기로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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