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당 공무원보다 권한이 없다는 남경필 경기도지사, 차라리 물러나라

휠체어에 탄 채 육교에 매달리고, 버스를 막아 세우고, 도청을 점거하고, 고공단식농성을 해도 가질 수 없는 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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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아(sorrel)등록 2016.06.20 14:08
안타깝게도 단식은 사회적 약자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정부가 추진하는 지방재정개혁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단식을 시작한 이재명 성남시장은 단식 11일째 단식을 멈추었다. '국회가 나서서 지방재정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의 약속을 받고 나서다. 11일의 단식으로 이시장의 얼굴에는 단식 전의 건강한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비슷한 시기에 단식을 시작한 또 한 사람이 있다.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라며 여의도 이룸센터 유리 처마에서 고공단식농성 중인 이도건 경기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 집행위원장이다. 13일째(19일) 단식 중인 그는 1급 척수장애인이다. 이 목숨을 건 단식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지만 언론도, 사회 권력자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가 사회적 약자임이 확인되는 시간이다.

2015년 10월, 김포공항으로 향하는 2층 버스를 막아서며 싸운 결과 경기도는 경기도장애인차별철폐연대 앞으로 공문을 보냈다. 장애인의 이동권 개선을 위해 저상버스 지원을 늘리겠다는 내용. 그러나 그 약속은 지금까지 지켜지지 않았다. 계속된 요구에도 경기도가 움직일 기미조차 보이지 않자 경기420공투단은 경기도청을 점거해 농성을 시작했다. (관련기사 : http://omn.kr/k7e2)

이미 공문으로 한 약속을 이행하는데 무슨 협상이 필요하지?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요지부동, 같은 소리만 되풀이 했다. '점거농성을 풀어야만 협상을 시작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미 공문으로 한 약속을 이행하는데 무슨 협상이 필요한지 모를 일이지만 경기420공투단은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결국 경기도청 농성을 풀고 협상에 임했다.

많은 장애인들이 애 타게 협상의 결과를 기다렸다. 협상 초반에 경기도는 특별교통수단과 저상버스의 지원을 늘리고 장애인 사회적 일자리와 주거 지원 전세금 등 복지 관련 예산에 합의했다. 그러다 갑자기 경기도는 협상 백지화를 선언하고 나왔다.

단식 13일째, 욕창에 시달리며 몸을 일으키지 못하는 이도건 경기420공투단 집행위원장

지켜보던 장애인들은 실망과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욕창으로 앉아 있기도 힘겨운 이도건 집행위원장. 요즘은 올려주는 거즈를 받아 상처를 스스로 치료하고 혈당과 혈압을 스스로 잰다. 오전 내내 몸을 일으키지 못하던 그는 협상 결렬 후 열린 끝장투쟁 기자회견에서 힘겹게 일어나 발언하며 함께 하는 이들을 오히려 격려했다.

빗속에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이도건 경기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 집행위원장이 비를 가리는 비닐 천막 안에 앉아 있다. 추락 방지를 위해 묶어둔 밧줄이 보인다. ⓒ 류승아


고공농성장으로 이어진 밧줄이 이중, 삼중으로 묶여 있다. ⓒ 류승아


협상 결렬 다음날인 18일, 박경석 노들장애인야학 교장은 남경필 도지사의 집 앞에서 장애인의 이동권 요구를 적은 종이를 벽에 붙였다. ⓒ 류승아


교회 안팎으로 갇혀 옴짝달싹 못하고

끝장투쟁 기자회견 뒤 '가만히 있지 않기' 위해 그들이 선택한 곳은 남경필 도지사가 다니는 교회다. 경기420공투단은 기도회를 열려고 했다. 모든 교회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이 교회는 낯선 이들의 기도회가 못마땅한 모양이다. 기도회가 '남경필 경기도지사 회개 촉구 철야기도회'이다 보니, 이를 막고 싶은 교회 관계자들의 심정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한동안 출입문을 닫고 막아버려 몇 사람은 교회 안에 갇히고 몇 사람은 밖에서 교회에 들어갈 수 없었다. 화장실을 가겠다는 장애인에게는 문을 열지 않은 채 소변통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하는 수 없이 교회 안에서는 기도회가 이어지고 밖에서는 촛불이 켜졌다.

자동문이 열리지 못하게 하려고 막대로 문을 막아두었다. ⓒ 경기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


남지사가 다니는 교회 안에서 ‘남경필 경기도지사 회개 촉구 철야기도회’를 연 경기420공투단 ⓒ 경기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


교회로 들어가지 못한 장애인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 경기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


우리를 바보로 아나

담임목사가 와서 남지사와 경기420공투단 이형숙 대표와의 전화가 연결되었다. 남지사는 도청 점거농성 때와 마찬가지로 교회를 나오면 이야기를 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장애인들은 "우리를 바보로 아나?"라며 울분을 토했고 이대표는 장애인에게 이동권이 얼마나 간절한지 눈물로 호소했다.

경찰들은 교회 지키기에 바빴다. 신기한건 경찰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가는 경사로만을 막고 서있는 모습이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가, 저항하는 장애인들의 약점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리라. 그리고 그 태도에도는 장애인을 얕잡아보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으리라.

남경필 도지사가 다니는 교회 앞 장애인의 진입을 막기 위해 경사로를 막아선 경찰 ⓒ 경기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


담당 공무원보다 권한이 없다는 남경필 경기도지사, 담당자를 설득하라며 자리를 떠나

아침이 되어 남지사가 교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다시 대화의 장이 꾸려지나 싶더니 남지사는 자신에게는 권한이 없으며 교통국장과 이야기 나누라고 했다. 도에서 가장 많은 권한과 책임을 가진 직책이 바로 도지사가 아니던가? 자신은 담당 공무원이 협상한 내용을 모두 받아들일 터이니 담당자를 설득하라며 자리를 떴다. 그러면서 그는 앞으로 "불법 행위를 계속 하면 법적으로 대응 하겠다"며 엄포를 놓았다.

권력자가 공문으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은 법에 걸리지 않지만 그 약속을 지키라며 교회에 들어가 철야기도회를 열려고 시도하면 법에 걸려 전과자가 되거나 벌금을 내야하는 사회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약자에게 불법과 처벌을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정치인의 약속불이행을 먼저 처벌해야 한다.

단체카톡방은 정보과 형사에게 노출되어... 부끄러움 모르는 민중의 지팡이

그 뿐만이 아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단체카톡방은 정보과 형사에게 노출되어 있고 그들은 이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처음 남지사 집 앞으로 가려던 계획을 바꿔서 교회로 가버리자, 남지사 집 앞에서 기다리던 정보과 형사가 전장연 활동가에게 전화를 걸어와 물었다고 한다. "전장연 카톡방에서 봤는데... 오늘 도지사님 댁에 안 오시나요?" 어떤 죄책감도, 부끄러움도 모르는 민중의 지팡이다.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과 똑같이 해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라는 것이다. 지금 경기도는 2층 버스 도입을 추진 중이다. 2층 버스 한 대 도입하는데 도가 1억 5천, 시가 1억 5천 보조한다. 이런 보여주기식 행정에는 돈을 아끼지 않으면서 어린이, 노인, 유모차, 장애인과 같은 교통약자를 위한 저상버스 도입은 왜 안 된다는 것일까?

어느 시의 시장은 취임하고 집무 초기, 책상에 앉아 빨간 줄만 그었다. 나랏돈이 쓸데없이 나가는 걸 막기 위해서. 그러면서 담당 공무원에게 "당신 돈이면 이렇게 쓰겠느냐?" 물었다고 한다. 이렇게 아껴서 장애인들도 최소한의 존중을 받으며 살 수 있게 해야 평등한 사회다. 우리의 세금은 지금 매우 불공평하게 쓰이고 있다. 넘치는 곳을 줄이면 그늘진 곳에 빛을 비출 수 있다. 그런 것을 바로 볼 수 있는 현명한 눈이 필요한 때다.

휠체어에 탄 채 육교에 매달리고, 버스를 막아 세우고, 도청을 점거하고, 고공단식농성을 해도 가질 수 없는 평등. 어떻게 하면 남경필 도지사가 장애인도 자신과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할 수 있을까?

장애인들의 투쟁이 과격하다는 시선을 가진 이들이 있다. 어쩌면 그 말이 전혀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사회적 약자로 살아가는 삶이 그만큼 팍팍하고 힘겹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은 아닐까? 그만큼 그들이 원하는 이동권, 생존권, 학습권이 그들에게 간절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

엄마와 함께 기자회견에 온 한 아이가 이도건 집행위원장을 보기 위해 고공단식농성장으로 열린 창문턱에 올라서고 있다. ⓒ 류승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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