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과의 결별

김종인의 사퇴를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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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일(mangchutai)등록 2016.05.04 15:37
사람이 가진 여러 저울 중에 말의 무게를 다는 저울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한번 내뱉어지면 주워담기 쉽지 않은 말들 속엔 찔리면 아픈 가시도 있고 듣는 순간 애간장이 녹는 달콤한 속삼임도 있다. 저마다의 저울을 가지고 듣는 말의 무게를 달고 가치를 매긴다. 물론 어느 저울은 기울어져 있으며 어떤 저울은 나름 공평할 수도 있다. 이 저울의 지레에는 한 사람이 살아온 삶의 현재가 녹아있기 때문에 무게를 재는 그릇에 담긴 말이나 가치는 개별적이며 또 상대적이기 쉽다.

김종인의 말을 대할 때마다 내가 지닌 말의 무게를 재는 저울을 떠올린다. 3 일 진행된 연석회의에 대한 의견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을 "안 해, 안 해"를 연발했다. 그가 친밀하게 대하는 기자에게 한 말일 리도 없고 물론 그보다 나이 많은 현장기자가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없으니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불특정한 기자들에게 던진 말일 터였다. 반말로 일관되는 일상의 화법 속에는 자신과 기자 그리고 기자를 통해 그를 읽는 일반 대중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어떻게 위치시키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는 단초가 있다고 보여진다.

정치가들이라고 모든 질문에 답을 해야 할 필요는 없다. 때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백 마디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믿어지는 때도 있고, 때로는 이 침묵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음을 역설적으로 들리게끔 한다. 어찌 됐든 지난 선거를 거치며 이 나라의 제 1당의 대표가 기자들에게 반말로 "안 해, 안 해"를 연발하고 다니는 일은 수긍이 가지 않는 일이다.

그는 자신이 시혜자라고 인식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자신이 낭떠러지에 있는 당을 구했다거나 이 당을 수권정당으로 만들기 위해 왔다라는 말들 속에서 그는 세상을 구하기 위해 황야에 홀연히 등장한 메시아가 되었다 누란의 위기에 빠진 당을 구해낸 자신이 메시아라는 인식은 끊임없이 외부와 충돌한다. 파열음을 내면서 이 충돌이 계속되는 한 그와 당의 불화는 계속될 것이다. 그러지 않으려면 그가 말하는 '이 당'은 그를 계속 메시아로 대접해야 하고 경외해야 한다.

3 일의 연석회의에서도 그는 "원 구성을 하고 가급적이면 이른 시일 내에 물리적으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전당대회를 하도록 준비를 해드리겠다"고 밝혔다. 이런 경우 정치인으로서의 일반적인 레토릭은 '~하도록 하는데 역할을 하겠다' 라든지 '~하도록 역할을 모색하겠다' 정도이다. 말꼬리를 잡자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당을 위한 복무는 "해드리"는 것이지 당의 일원으로서 맡은 바 일을 수행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그와 불화하는 정치인이 받는 환호가 더 클 수 밖에 없다.

그가 지닌 말의 무게를 재는 저울은 이미 기울어져 있다. 이 고장 난 저울로는 어떤 말의 무게도 제대로 잴 수 없다. 지금 정치판에서 가장 비판 받기 쉽고 비난하기 쉬운 대상이 자신이라는 인식이 없는 한 그의 투쟁은 '이 당'에 끝없는 해악만 끼칠 뿐이다. 그에게 남은 시간은 4 개월 남짓이다. 그는 이 시간을 감내할 수 있을까?

대표로서 김종인이 지닌 힘은 공천을 지나면서 정점을 지났다. 선거결과가 여의치 못했다면 바로 실권을 잃었을 상황이었지만 김종인은 승장으로 귀환했다. 승리도 아니고 패배도 아니다, 그나마 이 결과도 김종인 덕분이다라고 보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지만 그 외의 야당 지지자들에게 김종인은 승장이었고 자신도 개선장군의 대접을 받아 마땅하다라고 인식하고 있었음은 선거일 후 거의 모든 언행에서 드러난다. 그의 말 어디에도 생환하지 못하고 지역에서 전사한 전우를 위무하는 따뜻함은 없으며 승리를 자신이 아닌 함께 싸워준 전우에게 돌리는 겸손도 없다.

그가 그의 말대로, 셀프로 비례대표 2 번을 달라고 한 적이 없으며 또 당대표 추대를 원한 적이 없다고 하자. 그러면 그를 노욕에 찌든 정치인으로 만든 세력은 그를 비례대표 2 번으로 추대하고 그에게 추대를 통해 당대표 직위를 맡기는 것을 시도한 집단이다. 그를 비례대표 2 번으로 추대했고 당 대표직을 추대를 통해 맡아달라고 하지는 않았을 세칭 친노와 친문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의 불 같은 분노는 세칭 친노와 친문을 향한다. 숨어서 나쁜 짓을 하다 들킨 어린아이처럼 반말 투성이의 분노는 애닯다.

공당에서의 이견은 조정이 필요한 의견이지만 야당의 이견을 분란으로 발화시키는 언론의 입장에서 보면 김종인은 아주 좋은 소스다. 조중동 말고는 별로 언론으로 치지 않는 그의 언행은 계속될 충돌을 예고한다. 그가 유쾌한 표정을 계속 지을 것 같지는 않으므로 그의 불쾌함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 탐구하는 언론은 끊임없이 더민주의 친노와 친문과의 대립각 속으로 그를 몰고 갈 것이다. 그가 지금 싸우고 있는 대상은 실체도 불분명한 당내 친노, 친문이며 당내 반대 세력들이지 현실 정치를, 경제를 이 지경까지 몰고 온 정부나 여당이 아니다.

지금 그가 살고 당도 살 수 있는 길은 단 하나 밖에 없다. 어느 순간,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경제 민주화를 실행할 최적임자로 각인된 자신의 이미지를 현실 정치를 통해 구현해나가는 것이다. 냉정하게 현재의 정치 지형에서 그가 비록 원내 제1당의 당대표로 경제민주화를 완성하기는 불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경제민주화를 통한 왜곡된 사회구조를 바로잡는 비전을 제시하고 노력해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야말로 그의 정치 미래와 당의 미래를 위해 가장 필요한 선택과 집중이다. 한국의 진보정당에서 당을 온전히 장악한 정치인이 나올 것이라 보는 전망은 이제 불가능해 보인다. 여기서 김종인이 지금과 같이 좌충우돌하면 할수록 그의 입지와 당의 입지는 동시에 몰락해 갈 것이다.

김종인을 걱정하지는 않는다. 그의 말 중에 단 하나 진실처럼 보이는 것은 언제든 당을 떠날 수 있다는 스탠스다. 그가 더 이상 메시아가 아니고 계몽 절대군주가 되지 못할 것이라 느낄 때 비례대표 따위 언제든 내려놓고 떠날 수 있다고 보여지긴 한다. 그가 당을 떠나는 모습이 중요하기는 하겠지만, 단언컨대 김종인이 끝까지 더민주에 남아 내년의 대선을 치르고 자신의 비례대표로서의 임기를 마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추측은 아무도 하지 않는다 생각한다. 그가 떠난 당이 만신창이 당이 되어있지 않기를 원하지만 그건 아무도 모를 일이다.

더 냉정하게 말하자면 더민주는 지금 김종인과 함께 할 때 짊어질 부담이 그와 결별했을 때 감수할 손실보다 크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경제민주화의 상징으로서 정권 교체의 명분이 되는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자세로 스스로의 입지를 제한하지 않는 한 그는 더민주에 부담이다. 손혜원이 지적한대로 김종인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경과야 어찌됐든 야당이 야당다워져야 한다는 선거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 입장에서, 지지자들의 커진 기대를 정권교체의 동력으로 확대 재생산해야 되는 당의 입장에서 김종인은 부담이다.

부담을 털어내고 보다 가볍게 정권과 싸워야 한다. 언제라도 비대위를 해산하고 사퇴할 수 있다고 어제 그가 말했다. 김종인이 떠나는 것을 더민주는 허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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