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서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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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방(mkmama)등록 2016.05.04 14:30
2013년 5월 1일까지 나는 사교육을 고민하고 좀더 나은 삶을 꿈꾸는 평범한 학부모였다.

어느 날, 큰 아이가 다니는 중학교 정문에 걸린 '학교 앞 화상경마장 절대 반대'라는 현수막을 보고 얼마나 가까운 곳이기에 저런 현수막을 걸었는지 궁금했다. 학교에서 걸어서 6분,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는 걸어서 10분도 걸리지 않는 곳이었다. 어떻게 학교 앞, 집 앞에 몇천 명 수용 가능한 화상경마도박장이 입점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날부터 우리는 대책위를 만들고 서명을 받고 1인 시위를 하고 집회를 하고 심지어 2014년 1월 22일부터는 노숙농성을 시작해 여전히 진행 중이다.

주민과 학부모의 반대가 이토록 처절함에도 작년 5월 31일에 마사회는 학교 앞 도박장을 개장했다. 그러나 우리는 노숙농성과 집회, 미사와 기도회를 계속하고 있다. 그것은 거리에 나오지 않았다면 절대로 알 수 없었던 것들을 너무 많이 알게 됐기 때문이다.

첫째, 마사회의 비열함과 뻔뻔함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도무지 알 수 없는 정도다. 마사회는 주민 몰래 4년 동안 화상경마도박장 개장을 준비하고 17만 반대서명과 각계각층의 입점 철회의견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로 학교 앞 도박장 개장을 강행했다. 심지어 몇몇 주민과 상인에게 돈을 주고 도박장 찬성 집회를 시켰다. 노인들에게 식사와 물품을 제공하며 주민들을 이간질시켰다. 심지어 경비를 할 수 없는 전과자를 고용하여 경비를 시키고 찬성집회에는 주민처럼 동원한 범법행위도 드러났다. 그런데도 화상경마도박장 문을 닫기는 커녕 아무 제지를 받지 않고 영업을 한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둘째, 국가가 만든 도박 산업으로 인해 엄청나게 많은 국민들이 도박중독으로 삶이 피폐하게 되고 심지어 목숨까지 잃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친구 따라 화상경마도박장 갔다가 경마로만 100억을 잃었다는 사람, 고등학생 때 시작해 30대인 지금도 도박중독으로 힘든 삶을 살고 있는 청년, 건실하게 자동차정비소를 운영했는데 집 앞 화상경마도박장에 재미로 갔다가 가게도 넘어가고 이혼하고 지금은 생사도 알지 못한다는 이웃 등 국가가 지금 이 순간에도 피해자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에 끔찍할 뿐이다.

또한 화상도박장 인근 폐해도 심각하다. 대전 월평동은 아파트와 학교가 가까워 학원이 즐비하던 건물들도 화상도박장이 입점하고 1년 만에 모두 유흥시설로 바뀌었다. 한 학급이 10개였던 초등학교는 현재 2개 학급으로 줄어들어 학교 유지가 어려울 지경이 되었다.

세째, 교육환경, 주거환경 지켜주리라 믿은 정치인과 행정인이 별 소용없고 심지어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1300억짜리 건축허가가 자치단체장도 모르게 가능하다는 사실, 여야 국회의원 모두 학부모 앞에서는 마사회를 비난하지만 관련 법률은 개정 논의조차 안 되는 것을 보니 화가 났다.
정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맞닿아있고 국민들이 계속 감시와 견제를 할 때 올바르게 구현된다는 것을 너무나 큰 대가를 치르고 배웠다.

네째, 법의 취지를 우선해야 할 텐데도 수치를 더 중시하며 교육을 등한시하는 것은 큰 문제다. 학교에서 200미터에 개인이 소규모로 운영하는 오락실도 입점 못하는데 몇 천 명 입장 가능한 화상도박장 기준이 똑같이 200미터라는 것은 어린아이도 잘못이라고 느낄 것이다. 어른들도 도박으로부터 보호해야 하지만 어릴 때부터 도박환경에 익숙하게 만드는 것은 정말로 국가가 할 일이 아니다.

다섯째, 선생님, 학부모, 주민 뿐 아니라 우리를 지지하고 함께 행동하는 많은 분들을 만났다. 또한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힘겹게 외치고 있는 많은 분들도 눈에 들어 왔다.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1인 시위 피켓 문구도 읽게 되고 불의에는 한목소리로 크게 외치게 됐다.
직접적으로 본인에게 문제가 생기지 않더라도 더 나은 대한민국을 위해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들을 보니 우리나라가 쓰러지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학교 앞, 집 앞에 화상경마도박장이 들어오는데 아무 것도 안하면 역사에 부끄러울 것 같아서 거리에 나왔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찾아서 했고 그런 하루하루가 더해져서 어느덧 3년이 되었다. 돌아보면 매일이 정말 힘들었지만 소중한 경험이었고 그래서 고마운 시간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3년 넘게 해야 한다면 시작 못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 시간동안 가족 같은 사람들을 만났고 또 같이 이 길을 걸을 것이다.

앞으로도 얼마를 더 가야할 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우리가 반드시 이길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학교 앞, 집 앞에 도박장이 없어질 때까지 이 싸움을 계속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기꺼이....
덧붙이는 글 정 방 (용산 화상경마도박장 추방대책위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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