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선고가 너무 빠른 사회

검토 완료

이호석(arisan)등록 2016.04.21 09:11
신각은 임진왜란 당시 최초의 정규군 승전을 이끈 장수다. 도원수 김명원의 휘하 부원수로서 한강 수비를 맡았던 그는 서울로 밀려든 일본군과의 첫 교전에서 패해 경기도 양주로 후퇴했으나 다시 함경도군과 힘을 합쳐 양주의 해유령이란 곳에서 일본군과 싸워 대승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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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싸움을 이기던 그때, 신각과 연락이 닿지 않았던 도원수 김명원은 그가 도주했다고 생각하고 처벌을 요청하는 장계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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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원의 보고를 받은 선조는 신각을 당장 목베라고 길길이 날뛰었다. 도승지 이항복 등이 좀더 사실관계를 확인해봐야 한다고 말렸지만 선조는 막무가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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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신각은 선조가 보낸 선전관에 의해 양주에서 참형에 처해졌다. 신각의 승전보가 그가 베어죽인 일본군의 수급과 함께 선조가 있던 평양에 당도한 것은 이미 신각의 목이 땅에 떨어지고 난 뒤였다. 수도 서울의 바로 이북에서 파죽지세의 적을 막던 조선의 맹장은 이렇게 숨이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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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몇해전 야권 대선후보가 박정희 묘에 참배한 적이 있었다. 여론을 들끓었다. '명색이 야당후보가 어떻게 박정희 묘를 참배할 수 있느냐. 이제 지지를 철회한다'는 울분이 다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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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증세없는 복지는 허구'라느니 '청와대 얼라들'이라느니 해서 권력자의 심기를 거스린 어느 여당 후보 인기가 급상승했다. 그가 '헌법'을 말하고 '정의'를 말하자 그는 일약 대선주자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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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어느 야당 대표가 자신을 비례대표 2번에 공천했다. '늙은 권력욕'이니 '당을 사당화시켰다'느니 하는 격한 비난이 터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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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운데 비난이나 지지에 공감이 가는 건 3번뿐이다. 그렇게 생각한 기준은 당사자가 여태 살아온 삶의 궤적이다. 3번 사례의 주인공은 본인의 진의 여부를 떠나서 그렇게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삶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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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은 왜 그랬을까를 한번 생각하게 한다. 그의 삶으로 볼 때 박정희 세력에 투항한다는 건 아닐테고 보수표에 어필하려는 이벤트로서 '왜 그리 험하게 살다 갔소. 요즘 당신 딸 때문에 골치가 아파 죽겠소' 이정도 대화를 하려던 것 아니었을까? 이렇게 생각하면 그가 민주주의를 배신한 것처럼 분기탱천할 일은 아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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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은 특히 언론의 문제를 깨닫게 한다. 그의 말은 옳은 말이지만 그가 대선주자급으로 부상하기까지 그의 모든 면이 제대로 다뤄진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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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은 그의 발언을 부각하며 차세대 지도자로 추켜세웠지만 그가 총리 부적격의 결함많은 공안주의자인 황교안씨를 인사청문회 내내 두둔하면서 청문회의 통과를 주도했으며 또한 사드 배치를 강력 주장하는 남북 대결주의자란 점은 제대로 평가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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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사실 절대군주에 밉보인 여당의원일 뿐이다. 그가 말한 헌법, 민주주의, 정의라는 가치는 야당에 오면 거의 상식에 가까운 것이다. 여당에 몸담고 있어서 그중 나아보이는 것일 뿐 야당이었다면 대선주자는커녕 그는 그냥 '의원 중 한명'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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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세상을 보는 창이라지만 그 창은 한번 걸러진 것이다. 창에 어떤 필터를 끼웠는지 소비자들은 알기 어렵다. 그 창을 통해 보는 세상이 아무 오염없는 100%의 진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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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창에 비친 세상이 진실이라고 믿고 자신의 견해를 정립한다는 것과 흘러가는 강물 위의 뱃전에다 칼을 빠뜨린 자리를 표시하는 것과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 말 한마디와 행동거지 한두개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것과 선조가 종이 한장의 보고만으로 신각을 죽인 것과는 또 어떤 차이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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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조금 더 부드럽고 너그러워져야 한다. 사형선고는 모든게 분명해졌을 때 내려도 전혀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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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 세종로의 어느 보험회사 빌딩에는 이런 글이 붙은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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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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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했던 사람이 실망스러운 일을 할 때 그 의도나 진의를 알기 위해선 여태까지의 그의 삶을 돌아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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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결과에 대한 겸허한 반성을 기대했지만 역시나 원론적이고 유체이탈식의 얘기만 늘어놓은 대통령의 사례에서 보듯 사람은 웬만해선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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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인 삶으로 사람을 본다면 매번 옳은 판단을 한다고 할 순 없어도 조급해서 벌어질 실수는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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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 내린 단정으로 우리는 여태까지 친구들을 너무 많이 잃었다. 돌팔매질을 당하고 떠난, 이젠 돌아올 수 없는 친구가 실은 누구보다 우리를 이해했던 친구였음을 알고 뒤늦게 슬퍼하는 일은 이제 더 이상 없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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