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랑 인터뷰 하실래요?

[책소개] 김창규 <범인은 이안에 없다 : 편파적 인터뷰>

검토 완료

한성은(iamfallingup)등록 2016.04.20 15:33
'강준만, 유시민, 유홍준, 이외수, 이철희, 주진우'

생소한 인터뷰이

그 이름 만으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물론 지면을 통하긴 했지만요. 이 쟁쟁한 인물들을 상대로 인터뷰를 진행하고 책을 발간한 작가는 딴지일보 부편집장으로 '죽지 않는 돌고래(이하 죽돌)' 김창규입니다. 인터뷰집은 인터뷰어가 누구인가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터뷰이가 누구인가가 더 중요합니다. 좋은 질문이 있어야 좋은 대답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에서 가끔 그의 목소리를 들었고, 딴지일보 사보 '똥꼬깊수키'를 통해서 매달 그의 글을 읽었습니다. 그렇지만 인터뷰어인 죽돌 김창규에 대해서는 그다지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물론 책을 다 읽은 지금도 그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전공이 일본 문학이었구나.' 정도를 행간을 통해 알게 된 정도가 전부입니다. 하지만 질문을 참 잘 한다는 것은 알게 되었습니다. 인터뷰집에서 좋은 질문이란 곧 내가(독자) 궁금해 하는 것을 대신 질문해 주는 것이라 볼 때, 흥미로운 인터뷰집이었습니다. 인터뷰를 이끌어 가는 흐름도 좋았고, 불편한 질문을 결국 은근슬쩍 끼워 넣는 것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모든 말을 다 옮기지 않고 문맥 안에 남겨 놓은 것이 참 좋았습니다.

샛노란색 바탕에 진지한 궁서체가 인상적인 <범인은 이안에 없다>의 표지 ⓒ 한성은


익히지 않은 싱싱한 채소 같은 맛

서점에서 노란색 표지가 눈에 띄어 집어들었고, 선 채로 읽다가 결국 바닥에 주저 앉아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앉아서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모두 읽었습니다. 책값 15,000원을 아꼈다고 씩 웃다가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내가 잘 한 걸까? 타인의 노력을 댓가 없이 취한 것은 아닐까? 도서관에서 빌려 본 샘 치면 안될까? 그랬습니다. 퇴직을 하고 검소하게 살고 있는 저로서는 계획에 없던 충동구매를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충동독서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느낀 즐거움을 오마이뉴스 독자분들과 전하고 싶어 [서평] 보다는 [책소개]라는 머릿말을 달았습니다.

저는 대학교 새내기 때 저에게 큰 울림을 주었던 인터뷰집 <춘아춘아 옥단춘아 네 아버지 어디 갔니?> (민음사)를 읽은 이후로 인터뷰집 읽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인터뷰이들이 직접 쓴 책을 읽으면 완성된 요리를 맛보는 느낌인 반면 인터뷰집은 요리 재료 본연의 오롯한 맛이 나는 것 같습니다. 익히지 않은 싱싱한 채소를 씹는 같다고 할까요?

당대성에 가리지 않은 명제들

<범인은 이안에 없다>는 특히 이 책에 실린 인터뷰이들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읽으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어떤 평을 단정적으로 내리는 것은 불가능 한 사람들이니 (그래도 굳이 한다면 구구절절 미사여구를 남발하게 되겠지요.) 인터뷰 내용에 대한 것들은 제쳐놓겠습니다. 물론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사안들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면 그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해 봄 직하지만, 인터뷰 시기와 질문의 흐름을 보면 민감하고 급박한 당대성을 띤 질문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은퇴한 정치인이 되니까 억울하고 분할 거라 생각하는데 난 사실 행복하고 기분 좋고 너무 편해서 미안하지. 뭔가 나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난 이렇게 자유롭고 행복하게 지내도 되나 싶고.
이미 정치를 10년 했는데, 한 사람이 계속 하는 건 안 좋아요. 학교 청소 당번도 돌아가면서 해야지. 나는 이제 10년 했으면 많이 한 거고 됐지 뭐. 꼭 정치를 더 해야만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건 아니니까. 논술 특강도 다니고 좋아요. 내가 가진 것을 공유하면 도움이 되는 거니까.' - 59쪽

당대성이 적다는 것은 인터뷰집으로서 독자들을 자극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지만, 인터뷰집이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게 만들고, 더 넓은 독자들에게 읽힐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등학교 국어 교사였던 저에게 있어서 넓은 독자층이란, 일반 대중 전체라기 보다는 저보다 어린 친구들을 한정하는 단어에 가깝습니다. 오랫동안 그랬고 또 앞으로도 아이들과 함께 서로 배우고 가르치며 살겠다고 다짐하며 지내다 보니 단어를 조금 편협하게 사용합니다.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당대의 지식인들을 소개하는 인터뷰집으로서 참 잘 짜인 책입니다. 입시를 앞둔 고등학생들이나 이제 막 사회에 눈을 뜨기 시작한 대학교 새내기들에게 특히 권하고 싶습니다.

다만, 평소 인터뷰이들의 사상이 담긴 글과 그들의 궤적에 관심을 갖고 있던 독자라면 질문의 소재가 식상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어인 죽돌 김창규도 책 속에서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모두가 아는 이야기지만 직접 귀로 듣고 싶었다.' 하지만 최근의 부분적 행보가 아니라 그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온 궤적을 옮겨 놓는 과정에서 그들의 사상, 가치, 사고가 담긴 빛나는 명제들이 책 속에 있습니다. 두어시간 책을 읽으면서 뭉클하게 다가오는 문장들이 곳곳에 있었습니다. 그 몇 개의 문장들을 눈으로 읽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존재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속에 범인은 없습니다.

지난 4월 13일. 마치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전과 같은 함성과 탄식이 동네 곳곳에서 울려퍼졌습니다. 그 여운이 가시기 전에 맛있는 인터뷰집 읽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덧붙이는 글 <범인은 이안에 없다 : 편파적 인터뷰> 김창규 편. 생각비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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