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표창 수여식, 이렇게 간단해?

[시베리아 여행기 ④] 한국·몽골·브리야트 국제세미나

검토 완료

한성희(maldoror11)등록 2016.03.15 11:06

바이칼 호수 가문 때문에 산불이 잦아 타고 남은 숯이 시내를 따라 바이칼로 내려왔다. ⓒ 한성희


지난해 8월 9일, 이르크추크에서 8시간 봉고버스로 이동한 끝에 브리야트 울란우데에 도착한 일행은 국립보훈병원 요양원에 마련된 숙소에서 묵었다.

10일 아침 식사를 마치고 브리야트 정부청사에서 열리는 한국·몽골·브리야트 국제세미나에 참석차 출발했다. 청사 앞에는 4년 전 보았던 세계에서 가장 큰 레닌 두상이 예전과 다름없이 서 있다. 공원 곳곳에 꽃이 피어 있고, 한가롭게 거니는 울란우데 시민들의 모습이 보인다.

세미나장 브리야트 정부청사에서 열린 국제 세미나장. ⓒ 한성희


정부청사를 들어서자 자동으로 스마트폰이 꺼지는 등 보안이 철저하다. 이날 전승 70주년을 맞아 대통령 표창을 받는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카메라를 사용하지 말라는 주의를 들었지만 사진을 찍어도 딱히 제지는 하지 않는다.

대통령 표창 수여가 시작되자 이상한 광경이 보인다. 우리 식으로 상이나 표창은 중앙 단상에 올라가 정중하게 주고받는 게 상식이 아닌가. 그런데 이곳은 대통령 대리인(누군지 밝히지도 않는다)이 한쪽 구석에 서서 줄지어 선 사람들에게 이름만 부르면 상장 내용은 생략하고 후딱후딱 건네주는 방식이다. 신선하기도 했다.

브리야트 대통령 표창식 출입구에 줄 서서 아름을 부른 차례로 상받고 사진 찍고 10초도 안돼 수상이 끝난다. ⓒ 한성희


사회주의 국가였던 브리야트 공화국의 표창 수여는 수십 명에 달했지만 금방 끝나버렸다. 박순일 한국사회정책학회 대표이사도 대통령 감사장을 받았는데 사진 찍을 사이도 없이 끝나버렸다.

정부청사 회의실에는 정부각료들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40~50대 정도로 젊어보였다. 브리야트자치공화국의 인구는 고작 100만 명이며 면적은 한반도의 3.5배에 달한다. 평균 수명은 67세 정도이니 정부 고위층이 젊은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박순일 대표이사 박순일 한국사회정책학회 대표이사(좌)가 세미나에서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 한성희


박순일 대표이사는 브리야트 젊은 의사들이 한국 병원에서 실습하는 것을 수차례 주선했고 브리야트 정부는 수준 높은 한국 의술을 교류하게 된 것에 감사장을 수여했다.

표창 수여가 끝나자 '노인 의료 및 사회적 측면 연구'를 주제로 세미나가 시작됐다. 한국 학자로 박순일 대표이사가 '한국의 노인 의료 복지'를 주제로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대통령 대리인 사진 찍을 새도 없이 후딱 지나간 표창 수여식이 끝나고 대통령 대리인(앞줄 중앙)과 간신히 찍은 기념 사진. ⓒ 한성희


4년 전 국립보훈 병원 원장이던 세르게이는 이제 국회의원이 돼 정부청사에 들어와 있다. 한국을 방문 했을 때 도로며 건물을 유심히 바라보던 눈빛이 생각난다. 한국보다 뒤떨어진 브리야트의 발전을 생각하는 그가 국회의원이 된 것은 환영할 만하다. 몽골과 교류가 활발해 선교사를 파견하는 것을 보고 브리야트에도 한국 선교사나 경제 투자가들이 왔으면 한다고 했었다.

세르게이는 발표에서, 승전 70주년을 맞아 2차 대전 당시 전장에서 일본군을 맞아 싸우던 러시아 군인 2만 명이 넘게 사상했으며 보훈병원은 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또 브리야트 보훈병원은 참전자만 아니라 가족까지 혜택을 받고 있으며 평균수명 65세가 목표라고 밝혔다. 시베리아 각국의 평균 수명은 60대 초·중·후반에 불과하다. 정부청사에 모인 고위 관리들이 젊은 이유가 짧은 수명 때문이 아닐까.

기후가 척박해 땅이 넓고 인구가 적어 의료혜택을 받기 힘들고 의학 수준도 낮다. 세르게이가 한국을 오가며 가장 힘쓴 분야는 한국의 뛰어난 의술을 배우는 것이었다.

브리야트는 고령의 노인 참전 요양자 및 가족을 위한 시설도 잘 돼 있고 가족이 면회 올 시에 묵는 게스트 룸도 마련돼 있다. 2008년에서야 보훈요양원을 개소한 한국은 국가유공자들을 위한 배려가 부족해 보인다.

브리야트 국립대학 국제세미나가 열린 브리야트 국립대학 ⓒ 한성희


브리야트 국립대학교에서 국제세미나

각국의 기조 연구논문 발표가 끝나자 인근 식당으로 옮겨 점심을 먹은 후, 브리야트 국립대학교에서 오후부터 본격적인 국제세미나가 계속됐다.

한국은 박순일 대표이사에 이어 조흥식(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교수의 '농촌의 노인과 한국의 정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건강 관리 서비스의 상황', 홍성하(한림대학교 경제학과)교수의 '한국 병원의 세계화', 정완교(한림대학교 경영학과)교수의 '헬스 케어 산업 : 동향, 도전과 기회'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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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라는 것이 항상 그렇듯이 전공자가 아닌 담에야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 그나마 한국학자들은 동시통역이라도 들을 수 있지만 나머지는 한 마디로 알아들을 수 없는 러시아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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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자들의 발표가 끝나자 카메라를 챙겨들고 슬그머니 밖으로 빠져나와 광장으로 나갔다. 광장 옆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입에 물고 지나가는 러시아 사람들을 구경했다. 러시아 아이스크림은 유지방이 많아 부드럽고 참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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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슬릭 점심 만찬에서 샤슬릭을 굽던 러시아 아저씨들이 카메라를 들이대자 포즈를 취해주었다. ⓒ 한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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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바이칼로 향하다

오후에 각국 세미나 참석자들은 버스에 모여 바이칼로 향했다. 알혼섬에서 보는 바이칼과 다른 브리야트 바이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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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마른 시베리아는 자연발화로 산불이 치솟는다. 어제 이르쿠츠크에서 브리야트로 들어온 도로 옆 숲에서도 연기가 솟았지만 소방차는 볼 수 없었다. 오늘 오전 숙소에서 본 텔레비전 뉴스에도 숲에서 난 화재에 불을 끄는 장면이 있었다. 땅은 넓고 인구가 적다보니 화재 현장에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리라 짐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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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를 지나면서 본 브리야트는 푸른 숲이 우거지고 곳곳에 시냇물도 흘러 가뭄이 보이지 않지만 시베리아 가뭄은 어디서고 피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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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환영식 러시아 전통 환영식. 커다란 빵과 푸른 수건으로 외부인을 환영한다. ⓒ 한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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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안은 시베리아 각국 노래 경연이 시작 됐고 우리도 '사랑해'를 열창했다. 두어 시간 지나자 버스는 휴게소에서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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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게이는 역시 보드카와 환영 만찬 테이블을 준비했고 민속 공연단이 노래와 춤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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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션 공사 바이칼 주변은 이런 목재 펜션 공사가 한창이다. ⓒ 한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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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로 가는 도로는 비포장이었던 예전과 달리 깨끗하게 포장됐다. 4년 전 쉬었던 휴게소 또한 새 건물로 단장했으며 다리도 새로 놓았다. 브리야트는 달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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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찾았던 바이칼 마을은 한적했던 그때와 달리 펜션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고 중국 단체 관광객들이 식당에 가득 찼다. 놀라운 중국의 힘이다. 아름답고 한적했던 바이칼을 그리워했던 나는 실망을 금치 못했지만 이 모습도 어떤 의미에선 브리야트의 '발전'으로 봐야할까 잠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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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로 가는 길 펜션이 들어찬 바이칼은 4년 전 없던 판자벽으로 길을 막아 돌아가야 했다. ⓒ 한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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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눈을 뜨자마자 향한 바이칼 해변은 검은 나무 숯들이 해안을 따라 곡선을 그리며 산불의 흔적을 보여줬다. 곳곳에서 난 산불의 잔해가 시냇물을 따라 흘러들어왔고 바이칼에 모여 이런 모습을 하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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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 곳곳에는 목재 펜션을 짓는 현장이 어렵지 않게 눈에 띄어 변화를 실감했지만 자꾸 섭섭해지는 마음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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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 바이칼 모래밭에는 수영복 차림의 남녀들이 일광욕과 수영을 즐기고 등에 커다란 배낭을 둘러맨 젊은이들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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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바이칼에서 기를 받는 시간이 됐습니다! 바이칼을 향해 소원을 빌고 기를 받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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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게 내리쬐는 오후 2시, 일행을 향해 소리친 교수는 이르크츠크에서 참석한 학자다. 세르게이가 마련한 점심 만찬 때, 예전 바이칼에 겨울이면 언 호수를 가로지르는 철도를 놓았다는 말이 정말이냐고 물은 내 질문에 답해준 사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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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 다음 방문에는 저 검정 숯의 선이 없어지기를. ⓒ 한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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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에 철도를 놓고 바이칼을 가로지르는 기차가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놓는 비용 대비 효과가 미미해 잠시 운행하고 중단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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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목재 숯이 해변을 긋고 물살에 실려 오르내리는 모습을 보며 바이칼의 정화 능력을 믿기고 했다. 다음 번 바이칼을 찾으면 저 검정 선은 없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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