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 이슈 되짚어보기

검토 완료

안동석(wwjd824)등록 2016.03.12 18:40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이 이슈다. 그러나 이슈를 생산하는 언론의 입방아를 타고 과하게 오르내리는 이야기들을 한 번쯤 체크를 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다음과 같은 유형의 헤드라인들이 꽤 많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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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같은 알파고, 기계를 넘어 인간에 가까워지다.
- 알파고의 창의적 신의 한 수, 인간의 창의성도 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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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따져보자. 이번 바둑 대결에서 알파고가 인간 같은 면을 보여준 적이 있나? 혹자는 인간 바둑 기사들이 잘 두지 않는 착점을 시도해 대국을 풀어나간 것을 보면 인간의 창의성을 흉내 낸 것이 아니냐고 한다. 또는 바둑의 수 싸움이 연산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직관이 활용되기도 하는 게임이라는 점에 비추어 바둑이라는 게임 자체가 포괄하고 있는 직관의 영역이 대국에서 승리한 알파고에게도 내재되어 있다고 단언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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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파고는 모든 착점에 대한 경우의 수를 고려해 최적의 점을 단지 선택했을 따름이다.
인간 바둑 기사들이 생각하지 못한 수라고 해서 창의적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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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울러 바둑이라는 게임 자체가 직관성이 있다고 해서 승리를 거둔 알파고가
직관성을 활용하고 있다고 논리를 비약시켜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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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알파고는 '인간 같았다'기보다는 '역시 기계 같았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 알파고는 단지 기계적 활동을 극대화했을 뿐이다. 기계의 기계다움을 목에 걸고 인간과의 바둑 대결에 임한 것이다. 때문에 인간을 흉내 낸 인간 같은 알파고는 애초에 없었다고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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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위와 같이 팩트 체크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시의성만 좇느라 쏟아 낸 언론 보도들이 있는가 하면 IT전문 저널리스트들이 치밀한 분석과 전망을 잇달아 내놓아 이슈의 거품을 걷어 낸 측면은 높이 평가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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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슈에 대한 팩트 체크와는 별개로 이슈가 초래할 미래사회에 대한 불안감은 또 다른 국면인 듯하다. 이를 테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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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먼 미래의 일이지만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는 날이 도래할 것에 대한 불안
- 가까운 미래에 인공지능이 대체하게 될 수많은 직업들의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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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역량이 한 곳에 정초하지 않고 계속해서 진보하는 것을 볼 때, 이는 가능성 유무를 떠나서 충분히 생각해 봄직한 것들이다. 하지만 위의 이야기들은 지금 당장 직면해 겪고 있는 현실은 아니다. 그야말로 지금이 아닌 나중의 일, 미래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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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슈와 관련해서 나중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불안함 혹은 불편한 느낌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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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계는 기계다움을 극대화 하는 지점을 향해 내달아 가는데,
우리 인간은 인간성 상실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비인간화'를 자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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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그러한지는 주위를 조금만 둘러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생각해 보라. 학교 교육이 그러하고 직장 생활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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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 없이 기계처럼 만점을 받는 학생을 길러내기 위해 다그치는 학교. 놀지 마라. 쉬지 마라. 반복 학습해라. 오답노트를 만들어서라도 오답률을 낮추고 오답을 피해라. 기계 같은 인간을 만들기 위해 온갖 캐치프레이즈들이 학교라는 장에 난무한 지는 이미 오래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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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도 마찬가지다. 입사와 더불어 시작되는 사무 적응은 기업이라는 거대 기계에 사원이라는 부품을 끼워 맞추는 과정이다. 때문에 이윤 창출을 위한 업무 효율성은 부품처럼 기능하는 사원의 기계적 활동 능력과 맞물려 돌아간다. 그렇다. 직장이라는 사회는 정시 퇴근 이후 야근을 밥 먹듯이 해도 다음 날 멀쩡하게 사무 기능을 발휘하는 기계 같은 사원을 칭송한다. 그리고 기업은 그런 사원들을 우수사원으로 선발해 성과급을 지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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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보면 우리 인간은 알파고의 학습 메커니즘의 바탕인 강화 학습을 학교와 직장에서 수십 년에 걸쳐 감당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알파고가 이기는 바둑을 두기 위해 강화 학습을 한 것처럼 우리는 기계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 수십 년을 강화 학습한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간성 상실을 저당 잡혀도 괜찮은 것처럼 혹은 어쩔 수 없는 것처럼 지내 왔다. 오죽하면 기계의 관점에서 인간 사회를 바라본다면 기계가 못 되어서 안달인 인간들이 가여워 보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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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는 휴식이 필요하지 않다. 바둑 대둑을 두면서 인간 바둑 기사가 화장실을 다녀오는 일은 있어도 알파고가 화장실을 다녀 올 일은 없다. 인간 바둑 기사는 패배의 원인을 동료 바둑 기사들과 밤 새워 토론하더라도 마냥 그럴 수는 없다. 잠을 자고 충전을 해야 한다. 그러나 알파고는 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할 필요가 없다. 오로지 무한 강화 학습이 연속 실행될 뿐이다. 그렇다. 이것이 기계와 우리 인간의 간극 중 하나다. 기계가 되고 싶은 혹은 기계처럼 되어야만 인정받는 이 사회 속의 인간은 안타깝게도 기계가 될 수 없다. 컴퓨터처럼 정확한 사람, 자로 잰 듯이 명확한 사람, 불도저 같이 추진력이 있는 사람 등과 같은 수식어는 인간이 기계처럼 사는 것이 바람직한 인간상인 것처럼 의도치 않게 기능해 왔지만 이런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 왔어도 인간은 결코 기계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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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자면, 알파고로 촉발된 인공지능 기술 앞에 선 작금의 우리가 불안을 느끼는 것은 근대 시대부터 지금까지 기계 같은 인간이 되기 위해 발버둥 친 역사에 물든 우리 자신을 마주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안에는 자유롭고 창발적인 인간으로 살고 싶은 소망이 있다. 하지만 자발적으로 비인간화를 선택하도록 등 떠미는 기계적 사회를 어쩔 수 없이 그 동안 받아들이고 살았던 것이다. 그러나 생존 때문에 그렇게 마지못해 받아들였던 사회가 이제 "그래봤자, 너 인간은 기계가 되지 못하지 않냐"며 일자리를 빼앗아 기계에게 넘겨줄 계획이라고 하니 자괴감이 드는 것이다. 한 평생 기계 학생 혹은 기계 사원이 되기 위해 몸부림 친 자신을 불안에 찬 눈동자로 되돌아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훌륭한 기계 인간이 되어서 인정받고 칭송 받아야 하는데, 이제는 기계화 된 자신이 인공지능보다 못한 사람인가 아닌가를 따지는 게 우선인 세상이 온다고 하니 거울 앞에서 기계처럼 변한 자신을 마주할 때 자긍심보다는 불편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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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우리가 다시 환기시킬 필요가 있는 이야기는 식상한 주제이긴 하지만 역시 인간다움에 대한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인간다움이란 굳이 기계와 결부시켜서 기계를 타자화시키고 인간의 우월성을 논하는 것을 이르는 것이 아니다. 인간성 상실을 아무렇지 않게 방치했던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적 인간다움에 대한 것이다. 기계적 인간을 모범적 인간상이라 규정한 세상 속에서 왜 우리는 저항하지 못했는지 아니면 그 대가로 무엇을 거래한 것인지 오래 묵혀 둔 질문 앞에 다시 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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