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ID>_이별하고 어느 날, 신분이 바뀌어 버린 것 같았다.

-상상 속 이별 후와 진짜 이별 후의 차이, 그래서 달라진 가사.

검토 완료

김민아(gstory)등록 2016.03.09 09:11
다시는 보지 않기로 했다. 자의도 있고 타의도 있었던 것 같다. 텅 빈 시간과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예전에 필자가 이별 후 어느 하루를 상상하며 써 둔 가사를 되뇌면서 그 마음을 꾸역꾸역 채워보기로 마음 먹고 집을 나섰다. 우선 그 가사를 소개하겠다. 시간의 여유가 되시는 분에겐 음악에 맞춰 읽어주기를 부탁한다.

With You ( 노팅힐 She 개사)
늘 그대와 걷던 길이죠
조용한 아침 아직은 잠들은 가게  창문에 나를 비춰
내 뒤에서 속삭여주던 그대가 여기 보여요 
나와 같이 빈 유리창 가득히 채워주네요

늘 그대와 가던 영화관
오늘도 그대와 보던 일회의 표를 샀죠. 두 장이에요

늘 그대와 가던 식당엔
늘 우리 점심이었던 그 메뉴 오늘 그대와 함께했죠

늘 그대와 걷던 길을 걸어요
갑자기 내려오는 찬비에 마음이 따뜻한 건 왜일까요

늘 우리가 향한 공원 비 그친 공원의 꽃이 너무 예뻐요
귓가엔 그대 셔터 소리가

늘 어둠은 빨리 내려요
멀리서 날아들어온 폭죽소리에 가슴은 두근대도.
이젠 그대가 없는 것 같아
고인 눈물이 흘러요 온종일 행복했는데
하지만 괜찮은 건 you you 종일 with you

가사의 내용은 헤어진 그 사람이 없이 그 사람과 함께 간 곳들을 온종일 가보는 것이다. 마치 그가 옆에 있는 것처럼 상상하며 조금은 슬퍼도 행복해하는 내용이다.
4월의 따뜻한 햇살이 비추던 그 날, 이별도 조금 지나 덤덤해져 가사 속 내용이 나에게도 적용될 줄 알았다. 하지만 시작부터 아니었다. 그와 갔던 식당에 들어서자 마자 가게 아주머니의 "몇 분이세요?"라고 외치는 소리에 "혼자요…"라고 작게 대답하는 내 모습에서부터 행복한 상상은 여지없이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초라하고 쓸쓸한 기분만 더해질 뿐.
먹는 둥 마는 중 식사를 하고 나와 그와 함께 갔던 영화관에 갔다. 영화야 혼자서 본 경험이 많으니 영화 내용만 좋다면 충분히 내 옆에 있을 그를 상상하며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역시 "몇 분이세요?"라고 묻는 티켓박스 직원의 물음에 다시 또 "한 장이요…"라고 모기만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순간 그 기대는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갑자기 허전하고 이제 아예 울고 싶어지는 기분까지 들었던 것 같다.
혼자서 밥을 먹는 것 혼자서 영화를 보는 것, 가끔씩 참 익숙하게 했던 일들인데 이상하게 갑자기 그런 것들이 힘들게 느껴졌었다. "혼자요", "한 장이요"라는 말을 하는 내 모습이 너무 낯설어서 갑자기 내가 다른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혼자요,"라는 말을 꺼냄과 동시에 직업이 바뀐 것 같기도 하고, 결혼 유무가 바뀐 것 같기도 하고 나이와 생일이 바뀐 것 같기도 해 번호가 바뀌어 버린 내 ID카드를 내미는 기분, 말하자면 새로운 ID를 부여 받은 느낌이었다. 그와 헤어지고 나서 새롭게 부여 받은 이별 ID.
 
그리고 집을 나서기 전 되뇌던 With You의 가사 대신 다른 가사를 써 내려갔다. 제목은 <이별 ID>.

이별 ID

혼자요 둘이서 함께 왔던 여기서 혼자요
몇 명이냔 그 물음에 어색한 대답을 해

내 옆에 다정한 연인은 즐거운 목소리로 둘이요
미처 모른 따뜻한 말 둘이요
*
이런 건 가봐 이별하는 거 이런 거였나 봐 니가 없다는 거
혼자라고 말 하고 또 다른 내가 돼 버리는 거
이별이란 이런 건 가봐 사랑하기 전에 혼자서 잘했던
괜찮았던 모든 게 낯설어져 슬퍼지는 거

한 장이요 너와 봤었던 두 장이었던 영화 이제는
사람들은 다 웃지만 나만
*
이별이란 이런 건가 봐 있다 없다는 게 이런 거였나 봐
혼자라고 말하고 내가 아닌 채로 사는 거
니가 없는 나란 걸 순간마다 아는 거

아주 오래 전 이별을 떠올리며 마치 그림처럼 상상한 이별 후 어느 날을 담은 <With You> 가 조금은 낭만적 행복을 보여준다면, 실제 이별 후 어느 날을 담은 <이별 ID>는 애처롭고 슬프다. 언제나 그렇듯 상상과 실제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덧붙이는 글 가사 이별 id는 제 블로그에도 게재돼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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