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주문제작 의혹' 대한변협, 참담합니다

[주장] 하창우 대한변호사협회 회장님께 드리는 공개서신

검토 완료

이광철(vi2002)편집손지은(93388030)등록 2016.02.29 17:21
협회장님, 저는 대한변호사협회의 회원으로 서울변호사회에 속해 있는 이광철 변호사입니다.

지난 23일 직권상정된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안'에 관하여 대한변호사협회가 김정훈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의 의뢰로 의견서를 작성하여 건넸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는데, 이 의견서가 대한변호사협회 내의 정해진 절차와 규칙을 준수하지 않고 협회장님이 독단으로 결정하여 이뤄진 일이라는 후문을 전해 들었습니다.

이에 저는 협회장님께 이 문제에 관하여 네 가지 항목에 걸쳐 질의를 드리고 이를 제 페이스북과 협회장님의 페이스북에 링크시켜 둔 바 있습니다. 그 질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아래 변협)가 지난 24일 국회로 제출한 테러방지법 찬성 검토의견서. ⓒ 이경태


하창우 회장님, 서울변호사회 이광철 변호사입니다. 대한변호사협회 회원의 한 사람으로서 협회장님께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답변을 듣고자 협회장님의 페북을 어지럽힙니다. 결례를 용서하십시오.

1. 아래 기사에서 언급된 대한변협의 의견서는 협회장님이 김정훈 새누리당 정책위원장의 요구로 작성한 것이라는 전언을 들었습니다.

이것이 사실인지요? 이 의견서가 어떤 경위로 작성된 것인지를 밝혀 주십시오. 대한변협의 회원들은, 대한변협의 명의가 사용된 대한변협의 활동의 경위와 내용을 상세히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2. 만일 위 전언대로 협회장님이 협회의 공식적인 의사결정의 경로를 거치지 않고 개인적 판단으로 위 의견서를, 대한변협의 명의로 새누리당에 건넨 행위는 명백히 지위를 남용하여 특정정당의 법률자문을 해 준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에 대한 협회장님의 견해는 어떠신지요?

3. 테러방지법의 제정에 대하여는 국회에서도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고, 법률가들 사이에서도 찬반이 엇갈리는데 위 의견서를 작성함에 있어 협회원들에게 의견수렴은 하셨는가요?

4. 단체의 대표자가 권한을 남용하여 단체원들의 의사, 단체의 존립취지에 반하여 대표권을 남용하는 경우 이는 위법한 대표행위이고, 아울러 대표자가 책임을 져야 할 것임을 협회장님 또한 잘 아실 것입니다. 만일 위 전언이 사실이라면, 어떤 형식으로든 협회장님이 책임을 지셔야 할것으로 보는데, 협회장님의 의견은 어떠신지요?

협회장으로서 회원의 질의에 대하여 조속한 시일 내에 책임있는 답변을 듣기를 기대합니다.

이광철 회원 드림

이 문제는 꼭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서울=연합뉴스) 배재만 기자 = 새누리당 박윤옥(왼쪽부터), 김정훈, 강기윤, 이현재 의원이 지난 25일 오후 야당이 무제한 토론을 하는 동안 본회의장 입구에서 '국회 마비' 피켓팅을 하고 있다. 2016.2.25 ⓒ 연합뉴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하게 협회장님은 저를 친구삭제하고, 협회장님의 페이스북에서 저의 질의가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한편, 제가 협회장님의 페이스북에 접근할 수 없도록 하셨더군요.

페이스북이야 개인공간이고, 협회장님을 비판한 내용을 게재하였으니 화가 나실 법도 합니다. 친구 삭제하고 접근을 차단하신 것에는 큰 유감은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개인 하창우 변호사님께 의견을 드린 것이 아니고, 대한변호사협회의 협회장께 공적 사안으로 의견을 드린 것이니만큼 공적 이슈에 관한 협회장님의 처신에 대하여는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으로 봅니다. 그리하여 다음 세 가지 말씀만은 꼭 드리고자 이 공개서신을 드립니다.

첫째, 대한변호사협회 회칙 제8조 제2항은 "모든 회원은 이 회의 운영에 관하여 협회장에게 의견을 진술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 을 건의할 수 있다"고 규정해 두고 있습니다.

저는 대한변호사협회의 운영에 관하여 협회장님에게 의견을 진술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해 줄 것을 건의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답을 저는 아직 못 받았습니다. 이 부분 답변은 꼭 들어야겠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많은 변호사 및 변호사단체가 이에 관한 공적 질의를 한 것으로 압니다. 반드시 답변을 하셔야 할 것으로 압니다.

둘째, 우리 법조(뿐만 아니라 기득권층)의 가장 큰 문제는 다른 사람에게는 법을 지키라면서 자신은 법을 지키려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 점이 우리 법치주의가 왜곡되고 비뚤어지게된 가장 큰 이유라고 저는 봅니다.

협회장님은 과거 서울변호사회 회장 시절 법관 평가를 도입하여 정착시킨 것을 가장 큰 업적이라고 내세우셨지요. 그리고 협회장 선거에서 검사평가제를 도입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우시고, 실제 협회장이 되셔서 검사평가제를 실시하셨습니다. 이런 제도를 도입하고 실시하신 것의 바탕에는 법관과 검사부터 법을 지켜야 만이 국민들에게 사법의 신뢰성을 제고할 수 있다는 문제인식이 있으신 줄 압니다.

그런데 정작 협회장님은 대한변협에 정해진 절차규정을 지키지 않습니다. 2만 명 이상의 변호사를 대표하는 분이 특정 정당의, 특정 정치인의 의뢰를 받아 그 취향에 맞는 법률의견서를 개인명의가 아니라 2만 명의 변호사 단체의 명의를 사용하여 작성하였습니다. 자신은 법과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서 타인에게 법과 정의의 구호를 들어 질타한들 그 질타에 어떤 설득력이 있을런지요.

더구나 테러방지법 문제는 많은 변호사들이 헌법상의 영장주의 원칙과 프라이버시 침해, 표현의 자유 침해, 국정원의 전횡과 일탈을 지적하면서 강력하게 반대의견을 피력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문제에 대하여 협회장님 개인의 생각을 2만 변호사들 전체의 의사로 해석될 수 있는 대한변호사협회 명의를 쓰다니요. 실제로 <조선일보>는 그런 취지로 협회장님이 내신 의견서를 1면에 게재한 바 있습니다.

셋째, 협회장님이 독단적으로 주도하여 작성하였다는 의견서의 내용과 질에 관한 것입니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의 페이스북을 보니 대한변호사협회의 의견서의 "제안이유"는 테러방지법안에 대한 국회 정보위원회 검토보고서를 그대로 베껴온 데다 출처표시도 없다고 합니다.

"검토의견" 중 "본 법안의 주요 내용"도 국회 정보위원회 검토 보고서를 그대로 옮겨 오면서, '존댓말'로 수정하였는데, 역시 출처표시도 없는 표절이랍니다. 심지어, "검토의견: 전부 찬성" 중 일부도 국회 정보위원회 검토보고서를 사실상 그대로 베꼈는데, 다만 '존댓말'로 수정한 것에 그치고 있다고 합니다.

[국회 정보위원회 검토보고서] "다만, 국정원의 과도한 권한 행사로 인한 기본권 침해의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바, 동 법안은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컨트롤타워 기능을 수행하는 국가테러대책위원회를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여 설치하고, 테러대응의 실무적 역할을 담당하는 대테러센터를 국무총리실 소속으로 두어 국정원의 권한 집중으로 인한 우려를 상당 부분 불식시키고 있음."

[대한변협 검토의견] "이러한 문제의식을 반영하여 본 법안은 컨트롤타워 기능을 수행하는 국가테러대책위원회를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여 설치하고, 테러 대응의 실무적 역할을 담당하는 대테러센터를 국무총리실 소속으로 두어 국정원의 권한 집중으로 인한 우려를 상당 부분 불식시키고 있습니다."

협회장님, 당신은 법조인입니다

협회장님을 포함하여 대한변호사협회에 소속된 회원들 모두 법률가들입니다. 법률가들이라면 어떤 법률안에 관하여 의견을 표명할 때에는 그 법률안이 헌법적 가치에 반하는 것은 아닌지, 헌법정신의 구현에 적합하고 타당한 것인지, 재정여건 등 구체적인 현실에서 적합성을 갖는지, 국민들의 법감정에 비추어 어떠한지 등 다각적이고 체계적으로 접근하여야 할 것은 더 강조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협회장님이 주도한 그 의견서는 다각적이고 체계적인 분석은커녕, 헌법상의 영장주의 등의 헌법원칙과 기본권의 침해 여지에 관하여도 아무 유의미한 분석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저는 저에 대한 협회장님의 페이스북 친구삭제 조치보다 의견서를 국회 정보위원회 검토보고서를 표절하여 작성한 것이라는 소식에 더 참담하고 부끄러웠습니다. 명색이 국내의 대표적인 변호사 단체인 대한변호사협회의 법률안에 관한 의견서가 내용에 있어서 어떻게 그토록 빈약하고 초라할 수 있으며, 나아가 어떻게 표절까지 하고도 출처조차 밝히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테러방지법 문제로 대통령이 국회의장과 야당을 겁박하고 이에 국회의장이 비상사태로 법안을 직권상정하여 야당의원들이 밤을 새가면서 반대의견을 피력하고 있었습니다. 법률가의 의견서라면 결론이 다르더라도 그 결론에 이르는 논지만큼은 설득력이 있어야 합니다. 반대의견을 가진 사람으로 하여금 경청하게 만들 정도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반대의견의 취지는 무엇이고, 그 반대의견이 왜 잘못된 것인지 법적인 견지에서 검토되어져야 하는 것이 아닐는지요?

협회장님은 지난해 1월 23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대한변호사협회 정기총회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법조계가 국민의 신뢰를 얻으려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며 "(변호사들의) 권익을 내세우기에 앞서 인권 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이라는 기본적 사명을 되새겨 국민 앞에 겸허히 고개 숙이고 대한변협을 국민의 편에서, 국민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인권단체, 법치주의를 실현하는 법률가 단체로 만들어가겠다"고 강조하신 바 있습니다.

그 말씀에 비추어 이번 의견서 사태를 처음부터 복기해 보십시오. 의견서의 내용은 차치하고, 그 절차와 과정을 보면, 인권 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이라는 변호사의 기본적 사명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참담한 지경입니다.

내용이 길어졌습니다. 이제 끝을 맺어야겠습니다. 협회장님, 협회장님은 2만 이상의 대한민국의 모든 변호사들의 대표자이십니다. 내용은 차치하고 이번 의견서에 대한변호사협회의 명칭이 쓰인 것도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나아가 그 빈약하고 초라한 내용이 실은 표절을 하면서 출처조차 밝히지 않았다 는 것이라는 점에서 차마 의견서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한 일입니다. 이번 일은 어느 모로 보나 협회장님이 변호사 단체의 대표자로서 더 이상의 직무를 수행하시기 어려운 중대한 잘못을 저지르셨다고 봅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형기 시인의 <낙화>라는 시의 한 구절입니다.

협회장님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대한변협 "내부 협의 거쳤다"
한편, 변협은 이에 대한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23일 내부 협의를 거쳐 의견을 도출한 후 24일 국회의장에게 전달한 것"이라며 "새누리당의 요청을 받고 의견서를 작성한 것이 아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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