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창 밖의 몰락하는 태양, 그리고 정치

더 나은 정치를 기대하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그때 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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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화(gallilei8)등록 2016.02.23 16:27
스무 살이 되자마자 재수를 결심했다. 바다가 보이던 고향을 떠나 노량진으로 향했다. 지하철에 마주 앉은 사람들 머리 사이로 불그스름한 한강의 석양이 번졌다. 예뻤다. 비록 머물 곳은 아름다운 도시에서 조금 더 들어간 고시원이지만. 무릎을 구부리고 잠을 청해야 할 때면 조금 슬펐다. 누군가 벽에 새겨놓은 수 많은 '정(正)'자들을 보여 '사회는 만만치 않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처음 외로웠다.

'일 년만 버티자'. 버티는 만큼 사회는 나를 평가해주리라. 그런데 그 희망과 기대감은 이상하게 7년째 반복 중이다. 패딩을 입고 겨울을 나야 했던 신촌의 낡은 오피스텔, 사람들의 발걸음이 보이는 창문이 달린 반지하 원룸. 엄지손가락 두 마디 길이의 바퀴벌레가 출몰하는 이대역 부근의 작은 방을 전전했다. 나처럼 '봄을 기다리는 자'들을 응원했다. 그런데 이제 희망과 기대를 반복하는 일에 회의가 든다.

어쩌면... 어쩌면 그 동안 나는 '가상의 봄'을 기다렸는지 모른다. 흔히 정치가 삶을 변화시킨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백팩을 멘 채 지하철 창 밖의 몰락하는 한강의 석양을 본다. 7년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설레임이 없어졌다는 것 뿐. 내 삶은 그대로다. 정치권의 '개혁', '혁신'. '청년' 따위의 해묵은 단어에서 어떤 기대감을 찾아야 할까. 그런데도 "투표도 안 하는 2030 개새끼"론을 들을 때면 당황스럽다. 기성세대와 대한민국 정치. 도대체 그 동안 정치가 삶을 나아지게 만들도록 노력, 노오오력을 했는지 묻고 싶다.

최근 4월 총선을 앞두고 수 많은 예비후보자들이 국회 입성을 꿈꾼다. 현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는 후보자들의 프로필이 공개돼 있다. 익숙한 이름들이 눈에 띈다. 전과로 기록에 남지 않았지만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킨 문제의 주역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총선에 출마한다. 개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각 정당의 예비후보자들을 보며, 다시 한 번 확신이 든다. 삿대질은 청년이 아니라 몰락한 정치를 유지하는 기성세대에게 향해야 한다는 것을. 변하지 않는 정치판이 뻔한 데도 "청년이여, 분노하라"며 투표를 독려하지 말자. 대선 패배의 혹은 승리의 원인으로 낮은 청년 투표율을 지적하는 칼럼들도 지겹다.

그래서 정리했다. 이번 편에서는 전과에 남지 않았지만 사회적 유죄가 있어 뉴스를 몰았던 예비 후보들을 추렸다. 다음 편에는 청와대를 포함한 현 정권의 사법부와 행정부의 예비후보자들을 살펴볼 것이다. 두 기사를 통해 '그 때 그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본다.

'그 때 그 사람들' 새누리당 7명, 더불어민주당 2명, 정의당 1명, 무소속 1명

서울 성북구을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자 신계륜(61)

그는 무려 5선에 도전한다. ⓒ 신계륜 페이스북


신계륜 의원은 지난해 12월 '입법 로비' 혐의로 1심에서 징역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의 이름을 바꿀 수 있도록 법을 바꾸면서 이사장에게 돈을 받은 혐의다. 이후 신 의원은 '항소'를 했다. 그는 항소한 채로 지난 20일 성북구 월곡동에 사무실 개소식을 했다.

서울 마포구갑 새누리당 예비후보자 안대희(61)

안대희는 국무총리 후보자였다. 정홍원이 '도로 정'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던 이유가 안대희의 후보자 사퇴(2014년 5월) 탓도 있다.

널 찾을 것이다. 찾아서 총리로 지목할 것이다. ⓒ 박종화


당시 5개월만에 변호사 활동으로 16억여원을 벌어들여 국무총리 자격논란에 휩싸이자 사퇴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이제는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평범한 한 서민으로 돌아가 조용히 지내려고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새누리당 공천 면접에 이틀 째 참석 중이다.

평범한 서민...이 국회의원인가요? ⓒ 안대희 페이스북


서울 강서구갑 무소속 예비후보자 신기남(63)

그는 법률신문을 고소했다. ⓒ 신기남 트위터


신기남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었다. 그는 최근 자신의 아들이 재학 중인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졸업시험 압력 의혹을 받았다. 그러나 신 의원은 "경희대 로스쿨 소재선 교수는 로스쿨이 부당한 학사 행정을 했고 오히려 제가 로스쿨로부터 갑질의 피해를 입었다고 강변했다"며 "당 지도부는 언론의 눈치만 본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지역구에 더민주 금태섭 변호사가 출마하는 데 대해 '신기남을 아웃'시키려는 정치적 음모라며 탈당했다. 탈당 후 무소속으로 출마하지만 국민의당 합류 가능성도 엿보고 있다.

국민의당 '신기남 영입' "비리 의혹 있는 정치인 받아들일 수 없어" ⓒ 오마이뉴스


경기 파주시 갑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자 윤후덕(59)

여보세요? 나 윤후덕인데~ ⓒ 윤후덕 페이스북


윤후덕 의원은 지난해 9월 '딸 취업 청탁'으로 금수저 논란에 불을 붙였다. 변호사 20명을 채용하는 2013년 LG디스플레이 경력 채용 때 윤 의원이 기업 대표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이 사건은 전화가 채용으로 이어졌다는 증거가 없어서 무혐의로 끝났다. 그러나 윤 의원은 전화를 한 사실은 인정했다. 도덕적 책임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전화는 했지만 청탁이 성립한 증거는 없다...ㅇㅅㅇ ⓒ 짤


부산 사하구을 새누리당 예비후보자 석동현(55)

석동현 의원은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비상임위원(새누리당 추천)이었다. 그는 세월호 특위가 제대로 열리기도 전인 지난해 9월 특조위를 사퇴했다. "(출마를 위해) 활동 근거지를 부산으로 옮겨야 하고 앞으로 하려는 일의 취지가 세월호 특조위와 맞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의 말에 두 가지 의문이 든다. 먼저 석 의원이 하려는 일의 취지가 어떠해야 특조위와 다른 것인지 궁금하다. 또한 그런 석 의원을 특조위에 추천한 새누리당의 안 하면 말고 식의 인사시스템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배..배신하지 않겠다고..? ⓒ 석동현페이스북


그는 최근 더민주당에서 탈당한 후 새누리당에 입당한 조경태 의원과 지역구 공천 경쟁을 벌이게 돼 신경이 날카롭다.

대구 동구갑 새누리당 예비후보자 정종섭(58)

불안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지난해 새누리당 만찬 자리에서 "총선 필승"이라는 건배사를 외친 당시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 (입법부와 행정부의 삼권분립은 이 나라에서 기대할 수 없는 가치인가.) 이 사건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됐지만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검찰은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정 장관은 자신이 예고한 대로 국회 입성을 준비하고 있다.

I say 총선 You say 필승 ⓒ 네이버프로필사진


대구 북구을 새누리당 서상기 예비후보자(70)

뱉은 말을 주워담고 싶을 것이다. 서상기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 포기 발언을 했다"고 주장하며 "내 말이 조금이라도 과장됐다면 사퇴하겠다"고 말했다. 곧 남북정상회담 당시 대화록이 공개됐고 그의 말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사퇴 촉구가 쏟아졌지만 그서 의원은 임기를 마쳤다. 그리고 4선을 노리며 출마한다.

꼰대테스트1. 유명인과 찍은 사진을 자랑한다 (feat.프사) ⓒ 서상기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


강원 속초시 고성군 양양군 새누리당 정문헌 예비후보자(49)

정문헌 의원도 서상기 의원과 같은 사건으로 문제가 됐다. 청와대 비서관과 국회의원을 지낸 막중한 지위에서 알게 된 비밀을 반복적으로 누설한 죄로 중앙지법으로부터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정 의원도 "사실이 아니라면 사퇴하겠다"고 말했지만 의원직을 이어오고 있다.

나니? ⓒ 네이버프로필사진


대구 달서구을 새누리당 김용판 예비후보자(58)

무죄 판결의 기쁨이 총선 출마까지 이어졌다.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은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를 축소해 대선에 영향을 끼친 혐의로 기소됐었다. 무죄 선고를 받자마자 대구 달서구에 전입도 하고 출판기념회를 열며 총선 출마를 준비했다.

내친김에 총선까지 달려달려 ⓒ 김용판 페이스북


경상도 영주시 새누리당 최교일 예비후보자(54)


때는 2012년. 최교일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은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의식해 '내곡동 사저 의혹'을 덮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다. 이는 검찰이 사실상 부실수사를 했다고 자인한 꼴이다. 내곡동 사저 의혹은 MB의 아들이 청와대 사저 매입을 통해 수억원의 차익을 얻은 사건이다. 결국 사저를 구입하는 데 정부 예산이 쓰인 셈이 됐다. 그런데도 의혹이 무혐의 처분된 데에는 검찰이 '봐주기' 수사를 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다.




새바람에서 MB의 향기가 나요~ ⓒ 최교일 페이스북


경기 수원시 정 정의당 박원석 예비후보자(46)




민망하다. 박원석 의원은 국회 본회의 중에 '조건만남'을 검색했다가 딱 걸렸다. 문제는 "조건만남을 검색한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 자동완성 기능 때문에 실수로 입력된 것"이라고 변명하면서 불거졌다. 나중에 단어를 직접 치는 영상이 공개돼자 공식 사과했다. 더욱 난감한 것은 검색 후 본회의장에서 나가는 모습까지 포착됐다는 점이다. 국회 회의 중에 조건만남을 검색한 사실은 자격을 의심케 한다.


고양이가 자판을 쳤습니다. ⓒ 포커스뉴스


경기 의정부시 을 새누리당 예비후보자 홍문종(61)





사실 이 만한 이슈메이커도 드물다. ⓒ 홍문종 페이스북


아프리카 박물관 착취 사건과 성완종 리스트의 주인공. 2014년 초 홍문종 의원은 포천에 있는 아프리카예술박물관의 이사장이었다. 박물관에서 근무하는 12명의 아프리카인들에게 시급 3000원도 안 되는 월급을 주며 근로계약서에 없는 허드렛일로 착취를 한 사건으로 이사장직 사퇴를 했다.


아프리카인들이 머물던 숙소 ⓒ 오마이뉴스


또한 지난 해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에게서 2억원을 받은 의혹도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2억!! ⓒ 성완종리스트


태양은 밤에 몰락하고 다음 날 다시 태어기를 반복한다. 농사는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올 것'을 믿는다. 그렇다. 어제의 태양은 오늘도 뜨고 내일도 오른다. 봄은 지난 해에도 왔고 올해에도 곧 온다. 희망을 갖는다. 새로움을 기다린다. 내일은 달라질 것이라며 몰락한 태양에게 끝없이 소원을 빈다. 봄을 기다린다. 차가운 땅 속에서 움츠려있던 나의 씨앗이 싹을 틔우리라 믿으며. 가상의 봄이 아닌, 진짜 봄을 맞이하고픈 기대는 이번에도 저버려야 하는 걸까.





글/ 박종화(gallilei8)




덧붙이는 글 "후보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소수 정당의 후보가 단 한 명의 국민을 대변한다더라도 그 후보는 조명 받아야 합니다. '갈릴레이 서클'이 기획한 <모비딕 프로젝트>는 기성언론이 비추지 않은 구석 정치를 비춥니다. 우리의 발칙하고 빛나는 생각들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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