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공산 성북을, 노란 깃발을 꽂을 수 있을까

[PRODUCE 300]

검토 완료

박종화(gallilei8)등록 2016.02.22 10:16
https://youtu.be/0gnf3oB7AsA [편집자말]
Why? 박창완

무주공산:
주인이 없어 누구든 가질 수 있는 자리.

현 국회의원이 재출마 하지 않는 지역구. 성북을은 곧 무주공산이 된다.

성북을을 지역구로 둔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의 4선 신계륜 의원이 실형을 받아 출마가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성북은 야권세가 강한 지역이다. 13대 총선부터 모두 야당 인사가 성북을에 깃발을 꽂았다.

정의당 박창완은 오랜 정당 생활로 쌓은 탄탄한 지역 기반을 바탕으로 거대정당의 후보에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거대야당과의 대결에서도 제 목소리를 내며 선전하고 있는 박창완을 모비딕프로젝트 인터뷰 기획, <PRODUCE 300>의 첫 번째 후보로 만났다.

1단계: 다시 쓰는 이력서

그가 직접 작성한 이력서다. ⓒ 갈릴레이서클




2단계: 인적성 검사

진보의 삶은 굴곡지다. ⓒ 박종화



https://youtu.be/Bua0X5hGT3Q

박창완은 자존심이 강한 소년이었다. 그는 포항에 있는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 자랐다. 어릴 적 박 후보의 집은 가난한 마을에서도 가장 가난한 집이었다. 학교에서 나눠주는 해외원조품은 당연히 박창완의 몫이었다. 유엔이 준 옥수수가루와 탈지분유는 소년의 어깨가 아니라 꿈을 짓눌렀다. 현실의 무게는 어린 소년이 꿈을 꿀 수 없게 했다. 친구들이 장래희망으로 과학자, 선생님, 장군을 써 낼 때 그는 쳐다 보기만 했다. 꿈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난은 박 후보에게 고등학교도 허락하지 않았다. 19살이 된 그는 직업훈련원에 들어가 선반 기술을 배웠다. 그 기술로 대기업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월급으로 저축도 하고 대학에 다니는 형을 뒷바라지 했다. 길이 보였다. 배움을 다시 시작했다. 남들보다 4년이 늦은 배움이었다. 공고 야간을 거쳐 대학도 야간으로 졸업했다. 낮에는 블루칼라로, 밤에는 대학생으로 이중생활을 했다.

박창완 후보가 은행원이 된 것은 대학 졸업 후 시간이 조금 흐른 뒤였다. 대기업 공장에서 노동장 대의원을 하던 그는 은행에서도 노동조합 활동을 했다. 어용노조를 개혁하기 위해 노동조합민주화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이끌었다. 탄압을 받았지만 신이 났다. 상사는 그에게 '노조 끼가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노동운동을 하면서도 경제적으로 윤택한 생활을 영위하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절'이었다.

은행에서의 시간은 그의 인생의 황금기였다. 서른 넷에 노조위원장이 됐고, 서른 다섯에 평생의 반쪽을 만났다. 노동운동의 즐거움도 깨달았다. 그는 안락한 의자를 박차고 나와 현실 정치에 뛰어들었다. 국민승리 21,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 정의당으로 이어지는 한국 진보 정당 분열의 역사를 함께 했다. 다시 내리막길이었다.

50대 중반을 지나고 있는 박 후보는 다시 인생의 황금기를 꿈꾼다. 정의당도 안정을 찾아가고 있고, 그가 마음을 쏟고 있는 신용협동조합도 성북에서 기반을 넓혀가고 있다. 성과를 낸다는 즐거움, 지역에 깊게 뿌리를 내린다는 즐거움은 박 후보가 노년의 미래를 기대하는 이유다.

3단계: 실무면접

https://youtu.be/b5-2aYBfFaA

"더민주는 후보를 내지 않는 것이 도리라고 봅니다."

그는 신계륜 의원이 선거법을 위반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말했다. 박창완 후보는 신 의원이 법의 심판을 받은 것만 두 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소속 의원이 성북 유권자를 두 번이나 배신한 것에 대해 더민주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후보는  "더민주가 현명한 판단을 한다면 이 지역에 공천은 안 하겠죠.. 더민주가 책임 있는 공당이라면 후보를 내지 않는 것이 도리라고 봅니다. 누구든지 간에."라고 말했다.

박창완 후보는 민주노동당의 전신인 국민승리21의 창당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의 일이다. 그 때부터 그는 대한민국 정치에서 소수자의 길을 걸었다. 그 길은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을 거치며 정의당으로 이어졌다. 조금 더 가능성이 큰 당에서 정치를 해 보라는 말도 들었다. 하지만 박 후보는 거부했다.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정당이 추구하는 가치가 일치하는 곳에서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정의당에 남았다. 그는 국회의원 당선이 최종적인 목표가 아니라고 했다.

https://youtu.be/AHHfIo8d218

노동개혁은 헌법 침해… 지침으로 헌법 무력화 시도

박 후보에게 '노동'이란 단어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지금의 정치인 박창완을 길러낸 것은 팔 할이 노동이다. 정확히는 '노동운동'이다. 19살에 현대중공업에 입사해 노동자 대의원을 맡았다. 경남은행으로 자리를 옮겨 노동조합민주화추진위원회, 노조위원장 등을 거쳤다. 민주노총 금융노조위원장(대리)를 맡기도 했다. 노동운동으로 보낸 시간은 그의 인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20년이 넘는 시간을 노동 현장에서 보낸 박 후보는 박근혜 대통령의 '노동개혁'에 대해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박 후보는 "'근로자인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해 근로조건은 법률로 정한다'고 헌법 32조에 명시돼 있다"며 "그 정신을 이어받은 근로기준법은 해고를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양대지침은 행정명령을 통해 쉬운 해고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근로기준법 뿐만 아니라 그 모법인 헌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https://youtu.be/JIdIde7OgWU

샌더스보다 우리가 더 진보적

자본주의의 심장인 미국에서 민주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샌더스가 일으킨 돌풍에 대해 박창완 후보는 부러움을 표했다. 진보가 한국에서 샌더스처럼 돌풍을 일으키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박 후보는 소수를 낙인 찍는 색깔론 때문이라 평했다. "우리나라에서 샌더스와 같은 주장을 하면 빨갱이로 내몰려요."라며 그는 안타까워했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진보 정당이 내놓는 정책이 샌더스의 정책에 뒤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진보 정당이 내놓은 무상의료, 무상교육 등의 정책은 샌더스의 부자 증세, 최저임금 향상보다 더 진보적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샌더스의 정책보다 더 진보적인 면을 갖고 있어요. 소수다 보니까 묻혀 버리는 거지." 그의 말에서 정의당과 박창완이 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https://youtu.be/SmNKPeoOb0A

갈릴레이 서클
인터뷰팀/ 조유라 김수빈 송찬양 정재우 (순 입니다. 박종화는 이 취재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영상은 유튜브 링크를 첨부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후보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소수 정당의 후보가 단 한 명의 국민을 대변한다더라도 그 후보는 조명 받아야 합니다. '갈릴레이 서클'이 기획한 <모비딕 프로젝트>는 기성언론이 비추지 않은 구석 정치를 비춥니다. 우리의 발칙하고 빛나는 생각들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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