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모든 포식자들에게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

<서평> <크리스마스 리스트>를 읽고., (MBC C&I 출판, 리처드 폴 에반스 지음)

검토 완료

오세용(seyoh)등록 2015.11.26 16:26
이 땅의 모든 포식자들에게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

『크리스마스 캐롤』이 떠오른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롤』이 생각나는 소설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제임스 키어가 그 소설의 주인공인 스쿠루지와 겹쳐보이는 부분이 많다. 주제도 그렇고, 스쿠루지나 제임스 키어 모두 한 업체의 주인이라는 점도 그렇고, 크리스마스에 어떤 계기를 통하여 변한다는 점도 같다. 그러니 이 책은 <21 세기판 크리스마스 캐럴>이라고나 할까? 

줄거리는? 

주인공 제임스 키어는 부동산 업자이다. 그가 사업으로 돈을 벌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대부분 남을 등쳐가며 벌어들인 것. 그 결과 많은 사람을 힘들게 하고, 아내도 거의 버리다시피 할 정도로 악독한 사람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에게 사건이 일어난다. 신문에 그가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는 기사가 실린다. 사실은 죽은 것이 아닌데. 그래서 그 사건을 계기로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그는 그 일로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그래서 비서인 린다를 시켜서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며 바로잡기 위한 명단을 작성하게 한다. 그것이 '크리스마스 리스트'다. 그는 그것을 들고 명단에 적힌 사람들을 찾아간다. 과연 그는 용서를 받을 수 있을까?  

제임스 키어는 남에게 '제발' 이란 말을 하지 않았다. 

제임스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사례를 하나만 살펴보기로 하자.
그가 죽은 후에 – 살아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가 죽은 줄 알고 있다 - 자기 비서 린다에게 전화를 건다.
그런데 그가 죽은 줄로 알고 있는 린다는 그 전화가 누군가의 장난이라 생각하고 전화를 끊어버린다.
다시 전화를 하면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린다. 제발 부탁이니 전화 끊지마. 정말 나라니까."
그런 그의 간절한 말에 린다는 이런 말로 전화를 끊어버린다.
"진짜 제임스 키어는 '제발'이란 말을 하지 않아요."(105쪽)
그는 살아생전 누군가에게 자기의 말을 들어달라고 부탁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please!', '제발'. 이 말을 남에게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제임스인 것이다.

그런 그가 변했다.

'제발'이란 말로 겨우 겨우 말을 잇게 된 그는 자기 말을 들어준 린다에게 이런 말을 한다.
"정말 고마워."(106쪽)
누구에게도 해보지 않은 말, '고맙다'는 말을 그제야 한 것이다.
그게 변화의 시작이다. 그런 말에 린다는 이렇게 생각한다.
<린다는 키어의 밑에서 수년간 일을 해 왔지만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크리스마스 리스트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변화된, 다른 말로 말하면 정상으로 돌아와 이제 사람다운 사람이 된 주인공은 린다에게 용서를 구할 사람들의 리스트를 만들어줄 것을 부탁한다. 그게 '크리스마스 리스트'다.

"내가 상처를 준 사람들의 이름이 필요해. 내가 그들에게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도 알아야겠고, 지금 어디에 사는지도 알아봐 줘. 보상을 하고 싶어."(117쪽) 

이런 대화에서 무언가 느끼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리스트들 들고 다니며, 용서를 구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의미있는 말들을 듣게 된다.
그런 말들이 독자들에게도 새겨들을 만한 말이기에 여기 한가지 옮겨 놓는다. 

토지를 거의 강탈하다시피한 피해자, 칼 위스를 만나러 간다. 이미 본인은 죽고, 그 부인을 만난다. 그 부인은 아무런 보상도 이제는 필요없다 한다. 

주인공의 변명과 그 부인의 반응을 들어보자.
"사실은 부인에게 의도적으로 피해를 주려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요. 그랬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당신이 우리가 피해를 입지 않도록 애쓰지도 않았다는 거예요." (166쪽) 

그렇다. 부작위(無作爲),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도 잘못이라는 것이다. 설령 피해를 적극적으로 입히려고 하지 않았어도, 피해방지를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도 잘못이다.  

포식자들에게 보내는 경고

또 친구였던 데이비드 칸스는 주인공에게 중요한 정보를 제공했다가 배신당하여, 동업자들에게 축출당한다. 그를 만나러 간 제임스, 그가 오히려 자기 회사보다 더 큰 회사를 운영하고 있음을 보고 놀란다.

친구는 후회한다는 그의 말에 비웃는다.
"왜 나를 못 믿는 거지?"
"왜냐, 제 버릇 개 못 주는 법이니까."(198쪽)

그렇게 비웃으면서, 그에게 일장 훈시를 한다.
"제일 약한 놈을 골라 날름 잡아 먹는거지. 그게 생존의 본능이거든. 허술한 틈새를 노리면 양껏 배를 채울 수 있어. 나는 그 교훈을 사업에 적용했고 결과적으로 크게 보상을 받았어. 사실 그 이야기를 책으로 쓰고 있는 중이야. 제목은 '포식자가 될 것이냐 먹이가 될 것이냐'로 할까 해."(200쪽)

이 책의 요점은 이것이 아닐까? 그렇게 포식자로 먹이감을 골라 잡아먹고 살았던 제임스에게 오히려 더 상위 포식자가 된 친구가 말하는 것, 그것을 거꾸로 들어보게 하는 것.
바로 그것이 저자가 『크리스마스 리스트』를 쓴 이유가 아닐까?
포식자의 행패를 그만두라.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경고.  

따라서 이 책은 그런 포식자들에게 크리스마스를 맞아, 줄 수 있는 최상의 선물이 아닐까? 

이제 『크리스마스 캐럴』의 그림자가 지워졌다,

그렇게 읽어가다 보니, 처음에 가졌던 『크리스마스 캐롤』의 그림자가 어느 덧 사라져 버렸다. 이 소설은 『크리스마스 캐롤』의 아류가 아니다. 그것을 훨씬 넘어선다. 주인공이 과거의 먹잇감들을 만나면서 겪게 되는 갈등. 그 과정의 심리적 묘사는 탁월하다. 그리고 그로 인해 벌어지는 화해의 축제. 그것 하나만으로도 이 책은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탁월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예스 24 불로그에도 실렸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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