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없는 나라

120년 전의 전봉준이 지금 일어난다면.

검토 완료

박현옥(dowoon8)등록 2015.10.22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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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한옥마을에 가면 최명희 문학관이 있다.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것은 얼마나 어리석고도 간절한 일이랴. 날렵한 끌이나 기능 좋은 쇠붙이를 가지지 못한 나는 그저 온 마음을 사무치게 갈아서 손끝에 모으고 생애를 기울여 한 마디 한 마디 파나가는 것이다."
는 그녀의 글 쓰는 자세를 새삼 살피고 느낄 수 있다.
바로 그런 작가의 정신을 기리고자 "혼불 문학상"이 생긴 이래 금년 다섯 번째 수상작으로 선정된 것이 이광재의 소설 "나라 없는 나라"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최명희 작가의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그 자세에 부끄럽지 않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금년 121주기를 맞는 동학농민혁명을 다시 되새길 계기도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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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없는 나라 ⓒ 박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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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광재는 80년대 학생운동에 참여해 투옥된 이후, 청년운동 사회운동을 위해 일한 바 있다. 1989년 무크지 '녹두꽃'에 단편 '아버지와 딸'로 등단한 해서 장, 단편집을 내었고 2012년 전봉준 평전 '봉준이 온다.'에서 꼼꼼한 문헌조사와 현장답사, 수려한 문체로 전봉준을 지금 여기에 이미 불러낸바 있다.
이번 소설에서 그는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기 전에서부터 그가 체포되어 이송되는 과정까지를 다룬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대원군과 전봉준의 긴밀한 관계, 당시 지식인들의 처신과 고뇌를 들여다보는 것도 새로운 재미다.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난 지역, 당시 사람들의 풍속, 음식, 무기, 마치 대동여지도 네비게이션을 보듯 샅샅이 드러낸 옛 지명 등을 슴슴한 듯 진중한 고어체로 엮어내고 있다. 풍부한 문학적 표현력과 세세한 묘사 덕분에 120년 전 옛 사람들의 삶이 눈앞에 생생히 펼쳐진다.
그러나 을개와 갑례, 이철래와 호정의 애틋함이나 전봉준에게 누비옷을 주고 사라진 가르마 반듯한 여인의 이야기는 좀 더 세밀하게 다루어졌으면 싶은 듯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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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없이 많은 이야기가 구전, 노래, 또는 문학 작품으로 이어져 동학혁명을 기리지만 내게는 그저 피상적으로 "1894 갑오년 고부군수 조병갑의 학정을 못 이겨 일어난 민중의 난."이나 교과서에 나왔던 봉두난발한 채 "서울로 압송되어가는 전봉준 장군의 모습"이 흑백으로 각인 되어 있을 뿐이었다.
이 책을 대하며 궁금했던 점은 그 많은 농군들을 아우르고 조직해서 이끌었던 전봉준 장군 힘의 정체와 배경이었다. 대의명분이나 정의 같이 먼 이야기보다 내 가족 건사가 당면과제였을 그 시대의 평범한 농민들이 죽음도 불사하고 자발적으로 일어서게 만들었을 그 힘이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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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묻습니다. 그대가 꿈꾸는 세상은 무엇이며 보국안민은 대체 뭐냐고. 머리에 든몇 가지 지식을 말로 꾸며 말할 수는 있겠지요. - 중략-
그러나 그것은 말이지 실제가 아니요.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오직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러니 모든 행동으로부터 도달하려는 세상의 품격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세상을 두려워하게 하면 승산이 없습니다. 우리가 서슬 푸른 날을 준비한 것은 베기 위함보다도 짓기 위함이요."   -1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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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이 그토록 탐욕스러운데도 우리보다 강한 것은 두드릴 매가 있고, 가둘 옥이 있고, 제도와 심법을 가졌기 때문이오. 그래서 그들이 아직은 중심인 게요. 그러나 변방의 우리에게는 마음을 얻어 이기는 길밖에 없소. 가장 많이 인내하고, 가장 치밀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그것이 이 전쟁에 임하는 우리의 책임감이요." 
"저들이 강하므로 우리는 백배 용맹해야 하는 것입니다. 밀리는 순간 저들은 우리의 간을 꺼내 씹을 것입니다. 백성 또한 우리가 무른 모습을 보이면 더 이상 성원하지 않을 겝니다. 이것이 세상인심이오,"   -1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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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민란의 와중에 전봉준을 찾아와  "반상의 도리를 무너뜨린다."며 역정을 내는, 수탈을 일삼던 지방 토호들의 말은 국민을 위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실제로는 제 실속챙기기 바쁜 정치인의 그것과 꼭 같다.
민중의 혁명은 이루지 못한 미완의 혁명으로 끝났고, 민생은 안중에도 없던 세력들이 지금까지 이어져 지배층을 형성하고 역사를 보는 눈마저 재단하려드는 요즘을 녹두장군 전봉준이 지켜본다면 무슨 말을 할까. 중국 일본의 가운데서 처신하기 힘든 지금의 현실이 마치 120년 전 갑오년 국내 정세의 데자뷰가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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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여 년 전에 해양과 대륙의 힘이 겨뤄 폭압적으로 세력교체를 하는 바람에 조선이 크게 뒤틀렸는데 그 양대 세력이 지금 심상치가 않다는 뜻이다. 그나마 전에는 하나의 조선으로 대응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한반도가 두 쪽이다."
라는 작가의 말이 귀에 자꾸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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