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에 대한 희망을 놓을 수 없는 '나목'

박완서의 장편소설 <나목>을 읽고

검토 완료

박기용(gideonpky)등록 2015.08.31 14:15
 장편소설 <나목>은 박완서 선생 (1931 ~ 2011) 의 문단 데뷔작이다. 만 39세이던 1970년 여성동아를 통해 발표되었다. 박완서 선생은 문단에 나오신 이후 40 여 년간 많은 작품들을 발표하셨지만 <나목>은 독자들에 의해 꾸준히 사랑을 받아왔으며, 데뷔작임에도 그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전쟁 때 미처 피난을 가지 못하고 서울에 남아 있다가 오빠들이 참변을 당하고 결국 어머니도 그 상심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며 혼자 남게된 '경아'의 이야기이다. 자전적인 이 소설에서 경아는 생계를 위해 미군 PX에서 일하고, 당대 최고이면서도 전란 속에서 싸구려 초상화를 그리며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화가 옥희도, 그리고 경아와 옥희도의 이뤄지지 못한 사랑을 축으로 소설은 전개된다. 픽션이 가미됐겠지만 경아와 옥희도, 이 두사람은 박완서와 박수근이라는 것을 소설을 읽게되면 자연스럽게 알게된다.

<나목>은 장편 소설인만큼 그야말로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등장하는데, 역시 가장 주목을 끄는 건 작품 말미에 나오는, '옥희도' 즉 박수근 화백의 그림에 대한 경아의 회상이다.

"나무 옆을 두 여인이, 아이를 업은 한 여인은 서성대고 짐을 인 한 여인은 총총히 지나가고 있다. ... 김장철 소스리 바람에 떠는 나목, 이제 막 마지막 낙엽을 끝낸 김장철 나목이기에 봄은 아직 멀건만 그의 수심엔 봄에의 향기가 애닳도록 절실하다. ... 나목, 그 옆을 지나는 춥디추운 김장철 여인들. 여인들의 눈앞엔 겨울이 있고, 나목에겐 아직 멀지만 봄에의 믿음이 있다.... 나는 홀연히 옥희도 씨가 바로 저 나목이었음을 안다. ... 나는 또한 내가 그 나목 곁을 잠깐 스쳐간 여인이었을 뿐임을, 부질없이 피곤한 심신을 달랠 녹음을 기대하며 그 옆을 서성댄 철없는 여인이었을 뿐임을 깨닫는다."

경아가 이 그림을 처음에 봤을 땐 한발에 죽은 고목으로 느껴져, 거기에 투영된 처절함과 좌절감에 몸서리쳤다. 그러나 그의 사후에 열린 전시회에서 그것이 죽어버린 '고목'이 아니라 지금은 황량하지만 생명의 봄에 대한 희망을 여전히 품고있는 '나목'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박수근의 짧았던 사랑, 그의 어두었던 삶과 처연한 작품세계, 삶의 무상함과 속악스러운 일상의 구차함 등을 떠올릴 때 삶에 대한 한 가닥 허무감마저 완전히 소거하기란 쉽지않은 일이었다.

"이미 낙엽을 끝낸 분수가의 어린 나무들이 벌거숭이 몸을 애처럽게 떨며 서로의 가지를 비빈다. 그러나 그 뿐, 어린 나무들은 서로의 거리를 조금도 좁히지 못한 채 바람이 간 후에도 마냥 떨고 있었다."  (박완서, <나목>의 엔딩부분)

이 소설에서 여러 번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명동의 어느 장난감 가게 앞. 경아가 우연히 발견하고 옥희도를 데리고 그 곳에 간다. 그 이후에는 미군 PX 에서의 일과를 마친 뒤 두 사람의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그 곳을 향한다. 가게 주인이 태엽을 감아주면 장난감 침팬지는 신나게 위스키를 마셔댄다. 한참 신나게 움직이고 그걸 보며 경아와 옥희도는 잠시 웃음을 지을 수 있다. 그러나 태엽이 풀리면서 침팬지는 풀이 죽고 잠잠해진다.

전쟁통에 희망은 사라지고 온통 잿빛이 시야를 가리지만 살아남기 위해 때론 흥겨운 표정을 만들어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사람들, 그러나 그 고단한 일상이 저물면 밤과 함께 다시 암흑과도 같은 좌절에 젖어드는 사람들. 그러한 삶 한 가운데 놓인 '경아' 그리고 '옥희도'의 애달픈 삶은 장난감 침팬지의 우스꽝스러움과 다르지 않다.

졸시 한 편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며, 박완서 선생의 영전에 이 시를 바칩니다.

                 
                    박완서의 <나목>에 바치는 회상

태엽이 감긴다.
이제 침팬지 차례인가?
위스키 잔을 능숙하게 잡아쥐고
마셔댄다,차라리 들이 부어라.
눈가에 물안개 스며들면 어김없이 찾아온다.
흐릿한 시야 저 편, 나 있던 곳
지친 두 다리 쉬어갈 나무 밑둥조차 사치런가.
깐깐한 위스키는
안개보다 허망한 눈물로
물레방아 돌고,
그제서야 침팬지는 잔을 내려놓는다.
심장의 두근거림이 희뿌연 먼지로 무너져 내린다.
누렇게 바랜 가슴이 감각도 없이 떨어진다. 

침팬지여, 슬픈 얼굴로 너 자신을 역겨워 하지마라
'한없이 권태로운 반복'이 넌더리 나느냐
내가 인형이 두들기는 북소리에 맞춰 술을 마실 때
너는 그 크고 투박한 손에서 잔을 던지고
나를 위해 손뼉치고 나를 흠뻑 웃어주렴.

슬픔과 상실과 상심과 외로움의 공동구역에서
허무와 좌절을 맞바꾼다.
'경아는 달러 냄새만 맡으면 그 슬픈 broken English를
지껄이고'
'나는 달러 냄새에 그 똑같은 쌍판을
그리고 또 그리고'
...
경아, 사랑하는 경아
나는 사람이고 싶어,
나는 화가이고 싶단다.
선생님, 저는 사랑하고 싶어요.
이 미친 세상, 전쟁으로 핏발 선 이 지옥에서
사랑으로 버텨내고 싶어요
사랑으로 살고 또 스러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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