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하게 불온한 10대들의 이야기

<서평> 강물 소설집 【스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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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덕훈(adhoon)등록 2015.07.16 21:25
청소년! 때 묻지 않은 감성, 순수한 꿈……. 정말?

● 왜 그냥 범죄가 아니라 '청소년 범죄'인가?

"최근 10대 청소년 범죄가 갈수록 대담해지고 흉포화하고 있습니다."
강도, 강간, 폭행과 같은 청소년 범죄가 매스컴을 오르내릴 때마다. 저녁 뉴스 앵커들이 호들갑을 떤다. 이어 전문가연하는 사람들이 나와 처방이랍시고 '인성교육의 강화' '상담 시스템의 확충' 등을 내놓는다. 일 년에도 몇 차례씩 반복되는 이런 뉴스는 이제 그다지 충격적이지도 않다. 매번 같은 처방에 사회 전체가 내성이라도 생긴 것인지 이젠 기대감도 없다.

문득 이런 의문이 든다. 왜 그냥 범죄가 아니라 청소년 범죄인가?' 사회적 병리현상을 분류하고 구분하는 것은 구체적인 원인과 과정 그리고 그에 대한 적확한 처방을 내리기 위해서 이다. 굳이 '청소년 범죄'라고 이름 붙인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또 하나의 의혹어린 의문이 든다. 혹시 '청소년 범죄'라고 구분함으로써 대다수의 청소년과는 무관한 말 그대로 범죄를 저지르는 특별한 소수만의 문제로 규정하려는 꼼수가 있는 것은 아닌가? 만일 특별한 소수가 저지르는 반사회적 현상이라면 그에 대한 사회적 해법은 격리와 처벌일 것이고 그들만을 위한 특수하고 특별한 교육일 것이며 청소년 범죄의 원인과 책임은 개인과 해당 가정에서 져야할 문제가 된다.

"청소년들은 때 묻지 않은 감성과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이 밝은 희망과 푸른 꿈을 꾸도록 해야 합니다."

한 마디로 개 같은 소리다.
지금 이대로 유지되기를 원하는 누군가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보고 싶지 않은 것을 감추고 보고 싶은 것만을 보게 하려고 입을 틀어막는 행위이다. 희망사항이 강요될 때 그것은 폭력이며 억압이 된다.
너무 뒤틀린 생각 아니냐고? 그렇게 생각한다면 소설 『스캔』을 만나보라.

● "씨바! 너희가 우리하고 뭐가 다른데?"

강물의 소설 『스캔』은 불편하다 그리고 불온하다. 성매매, 폭력, 자해, 강간이 난무한다. 청소년 소설로 분류되어 있지만 쉽사리 청소년에게 권하기 어려울 정도로 섬뜩하다. 소설에 등장하는 청소년들은 어른들에 대해 순종하며 깍듯하게 예의를 차릴 줄도 모른다. 한마디로 누군가의 희망사항과는 정반대의 인종들이 소설 전체를 활보한다.

"302호에 들어가면 사람이 있을거야. 그 사람과 한 시간만 지내고 오면 돼, 그러면 우리에게 돈이 생겨. 20만원. 그거면 우린 한동안 같이 살 수 있어. 그 담엔 오빠가 알아서 할게."
「선택」중에서

주인공 지수에게 성매매는 순간적 일탈도 철없는 호기심도 아닌 생존의 문제다. 책장을 넘기기 힘들다. 외면하고 싶다. 주인공의 생존 방식을 부정하고 싶어진다.

"설마! 요즘 애들이 이정도야?"

만일 이렇게 묻는다면 소설의 등장하는 10대들은 일제히 이렇게 일갈 할지도 모른다.

"씨바! 너희가 우리하고 뭐가 다른데?"

'청소년 문제' 혹은 '청소년 범죄'라고 명명하는 한 가느다란 해결의 실마리조차 미궁 속에서 끌어올리지 못할 것이라는 경고이기도하다.

말이 나왔으니까 하는 말인데, 공부해도 안된다는 거 니들(선생)이 더 잘 알잖아? 우리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뭔데? 니들은 니들 새끼 스펙이다 유학이다 난리지만 우리는 뭘 할 수 있는데? 마지막 남은 게 이뻐지는 건데 그것마저 못하게 막냐? 니들 가치는 높여도 되고 내 가치는 높이면 안 되냐. 시바?
「니는 지는」중에서

● "개소리는 집어치워라!" 라고 말하는 소설 『스캔

작가 강물은 20년 이상을 학생과 생활해온 교사출신이다.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과 복직을 경험하기도 했다. 신산스럽고 구질구질한(?) 자신의 이야기를 변명 삼아 늘어놓을 법도 하지만 작가는 단호하다. 섣부른 '훈계'나 '지적질' 따위는 작품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저 날 것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줄 뿐이다. 그래서 한줄 한줄 읽어나가는 동안 독자는 괴롭고 아프다.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로 추정되는 작품「졸업」에서 조차 자신의 모습이기도 했을 일명 '민주교사'는 아이들로부터 배척받고 쓸쓸히 교단에서 물러난다. 그것 역시 날 것의 현실이기 때문이리라.

모든 기성세대는 청소년 시기를 살았다. 그리고 대부분 20대를 거치며 빠르게 그 시절을 잊는다. 성인이 된 사람들에게 남아 있는 10대의 기억이란 그저 스냅사진처럼 박제된 추억이거나 또는 과장된 무용담이기 일쑤이다. 마치 허풍떨기 좋아하는 사내들의 군대 시절 이야기처럼 술좌석의 안주거리로만 남는다. 하지만 누구나 알면서도 부러 모른 체 공모하고 있는 기억들이 있다. 새삼 그것을 끄집어내어 입에 올리는 순간 술좌석 분위기는 깨지고 겉치레 덕담으로 일관하던 사람들과의 관계 또한 서걱거리게 될지도 모른다. 단절의 두려움에

강물 소설집 <스캔> ⓒ 작은숲 ⓒ 안덕훈


 의해 유지되는 침묵의 공모. 간혹 술기운을 제어하던 이성의 족쇄가 끊겨 돌출행동을 하는 이가 있으나 그 역시 다음날이면 하나의 해프닝으로 치부하며 애써 그 기억을 잊는다. 그래야 편안하게 '요즘 애들'을 운운하며 자신의 알리바이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나 안다. 10대 들의 삶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 그리고 어른인 자신들이 지금 맞닥뜨린 고통스러운 현실과 쌍둥이처럼 닮아 있다는 것. 하지만 그것이 자신들이 싸놓은 배설물의 결과라는 사실만큼은 인정하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다.
10대를 과거형으로 기억하든, 잠시 앓고 나면 면역력이 생기는 계절 감기쯤으로 여기든, 아니면 '설마 요즘애들이…'라며 놀란 체 호들갑을 떨든, 10대 아이들이 보기엔 가증스럽고 어설픈 연기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강물의 소설 『스캔』은 아이들의 눈이고 그들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왕년을 들먹이며 같잖은 훈계를 하려드는 '꼰데'들에게 아이들은 이렇게 일갈한다.

"개소리는 집어치워! 씨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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