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시간을 알아?

흐르는 시간의 찬가.

검토 완료

박현옥(dowoon8)등록 2015.07.16 17:06
일생을 오래오래 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진시황처럼 불로초를 구할 일이 아니라 내 앞에 주어진 시간을 길게 늘여서 쓸 일이다.따분하고 지겹게 보내는 일 년의 시간이 의미 있고 기억에 남는 하루만도 못한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새 신발 사놓고 소풍 가기 전날의 저녁은 왜 그리고 길었고 시험 앞두고 벼락공부 하던 그 시간은 어찌 그리도 짧았던지. 흰 병실서 참기 힘든 고통으로 보낸 긴긴밤이 어찌 피곤할 때 꿀잠으로 숙면을 취한 밤과 그 길이가 같다고 말할 수 있을까? 35년의 세월이 게 눈 감추듯 자취를 감춘 시간을 난 어제 봤다.

내 대학 시절은 아무리 각색을 해서 말해도 아름답고 찬란했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 그저 묻어두고 되돌아보고 싶지 않던 시간일 뿐. 평소 우습게만 알았던 비수도권 대학에, 문과였던 내가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던 약학과에 다니게 되리라고 누가 알았겠는가. 나를 비하하다보니 나와 같이 입학한 급우들도 그저 그래 보여 별반 관심이 가지 않았다. 그래도 여학생들은 서로 비슷한 처지가 많다 보니 그럭저럭 동병상련의 정으로 엮인 부분이 있으나 남학생들과는 그저 말 나눌 일도 별로 없고 서먹할 뿐이었다.

눈만 뜨면 육각형의 벤젠고리 핵에다 외워야 할 분자식에 그 무기, 유기 화합물을 제조하고 분석하고, 또 생약의 긴긴 라틴명 속명 따위를 외우고, 따야 할 무슨 전공 학점은 그리도 많은지…… 숨이 막혔다. 내 안의 내가 서서히 말라가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런 수업에 다들 순순히 잘도 따르며 열심히 앞만 보고 공부하는 동기들이 참으로 신기하고 때론 이상해 보이기까지 했다. 토론식 수업, 창의적 발상, 대학문화의 만끽 따위, 고등학교 때 팍팍한 수험기간을 견디게 하였던 그 찬란한 꿈은 여지없이 죄다 무너져 내렸다. 난 어쩔 수 없이 통기타에 팝송, 테니스, 독서, 기타 등등으로 소심한 곁눈질을 하며 그 기간을 버텨냈다.

다른 과와 달리 특별히 진출 범위가 넓은 것도 아니니 다들 그만그만한 일을 할 거다. 그리고 기본 바탕이 선한 사람들이니 그 직분에 맞게 바르고 성실하게 살리라는 것에는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특별히 동창들을 그리워하거나 인연을 이어갈 동기가 거의 없었다. 물론 비사교적인 내 성격도 큰 몫을 했다. 그리고 다들 독립된 일자리다 보니 일에 연관해서 연락을 취할 일도 딱히 없었다.

근래 들어 가끔 서울서 여자 동창들이 만난다는 이야기를 듣고 모임 연락을 받기도 했으나 별로 애틋할 것도 그리워할 그 뭣도 없는 시절이어서 되돌아보는 게 무의미할 것만 같았다.

그냥 내 기억의 어느 곳에 뭉뚱그려 넣어 빗장을 걸어두고 그대로 잊고 싶었다. 물론 나 역시 병원 근무도 했고 개업도 더러 했지만 내 전공과 관련해서는 늘 나 홀로였다. 어쩜 다른 모든 면에서도. 게다가 중간에 10여 년씩 쉬기도 해서 난 그 직군에 대해 별로 소속감도 없었다. 기억도 거기에 맞춰져서인지 난 내가 몇 회 졸업생인지도 몰랐고 물어주는 사람도 없었다.

얼마 전 나랑 자취를 같이했던 친구들에게서 30여 년 만에 문자가 왔다. 이번에는 모교가 있는 익산에서 모임을 하기로 했으니 꼭 만나자고.

"보고 싶은 ㅇㅇ야! 사는 게 바쁘고 피곤해서 이제야 연락을 하는구나. 어떻게 지내는지 늘 궁금했단다. 이제 더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동기의 문자에 가슴이 찡했다.

'일찍이 병 때문에 하늘나라로 간 우리 동창도 있는데 혹시 이 친구도?'라는 방정맞은 생각도 한편에 살짝 들고. 함께 고민하고 함께 밥해 먹던 그 친구들이 온다고 하니 울컥 보고 싶었다. 마침 여학생들에게 크게 한턱 쏘겠다는 남자 동창도 나타나서 같이 만나기로 한 날짜가 지난 일요일이었다.

12시 모임장소인 익산의 음식점에 들어서자 35년 전의 얼굴들이 그대로 있었다. "우와~" 서로 반기는 위로 세월의 흔적이 보였지만 그와 무관하게 예전의 그 풋풋했던 얼굴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그 시절 시험 끝나고 갹출해 짜장면집 가서 수다 떨 듯이, 이내 35년 전의 어느 때로 쑥~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간의 안부 위로 현재 삶의 수다가 이어지고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스스럼없이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마치 늘 만나왔던 것처럼.

비 오는 길을 걸어 모교에 가서 예전 우리가 쓰던 건물을 찾았지만, 약학관은 이미 다른 곳으로 이전하고, 옛터엔 최신식의 도서관이 들어서 있었다. 그래도 우리에게 그늘을 주었던 플라타너스는 우람한 거목으로 변해 예전처럼 서 있어 반가웠다. 예전에 들랑거리던 매점에 들러 앉아보고 눈으로 서로 여기저기 요량도 해보며 35년 세월의 골을 메워봤다.

익산에 사는 남자 동기가 끝까지 남아 가이드를 해주었다. 그리고 멀리까지 갈 친구들을 그냥 보낼 수 없다며 굳이 저녁까지 먹여 기차역까지 배웅을 해주었다.

집에 오는 길, 비 오는 차창 너머로 35년 전의 얼굴들이 떠올랐다. 잠바('점퍼'는 어울리지 않는다) 하나로 4년간 동절기를 나고 늘 한 가지 옷을 교복처럼 입던 대부분 남학생들. 여학생이라고 별반 다를 바도 없었다. 게다가 남학생들은 지나치게 솔직하고 눈치마저 없어서 과 미팅 주선해달라는 말에 "우리 과 여학생들은 예쁜 애가 없다"고 잘랐다가 우리에게 진탕 욕을 먹었던 애들. 집안이 어려워 졸업여행도 못 간 애가 많았고 유난히 우여곡절이 많았던 우리 동기들.  여학생들의 박대를 체육대회 때 다른 과나 다른 학교 여학생 편드는 것으로 복수하려고, 씨도 안 먹히는 시도를 했다가 구박만 받고 여학생들과 서로 티격태격했던 남학생들.

손톱 정리도 안 하고 나왔다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딸애가 전에 발라준 매니큐어가 일하느라 다 벗겨지고 흉하게 지저분해져 있었다. 마치 험하게 사는 손처럼 보여 지우고 가야지 싶었는데 깜빡하고 그냥 간 거다. 전날 몸살기가 있어 누워있었더니 얼굴마저 퉁퉁 부어서 세수하고 나가기도 바빠 손톱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오늘 그 모임은 손톱 손질이나 옷차림 따위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었다. 35년의 세월을 이렇게 간단히 접어 넘겨버릴 수 있다는 것에 서로가 놀랍고 감격스러웠을 뿐이었다.

전주 오는 버스에서는 예전에 우리가 즐겨 듣던 올드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난 오늘 안내를 도맡았던 ''에게 살짝 묻고 싶었다." ㅇㅇ야 너 테리잭스의 "seasons in the son"을 지금도 좋아하느냐?"라고.

그 친구가 은퇴 후, '중년의 로망'이라는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바람처럼 다녀보고 싶다는 꿈을 이루길 빈다. 단, 오늘 우리에게 지청구 들었듯이 조심해서 타기를 바라며.

내가 또다시 동창 모임에 나가게 될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만으로도 난 충분히 감사하다. 방치해두고 잊었던 내 기억의 퍼즐 한 조각을 찾았으니까.

고맙다 동기들아!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