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 목록에서 '메이지'와 '쇼카손주쿠'를 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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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희(badjoy)등록 2015.06.29 13:21
2009년 일본정부는 일본 남부규슈 일대에 있는 탄광․항만․조선소․제철소 등 23곳을 '메이지 일본 산업 혁명 유산'이란 이름 하에 무더기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 목록'에 올렸다.
이 사실에 한국에 알려진 것은 2012년이었다.
이 때부터 한국 언론은 그 시설들이 전쟁군수시설이였으며 그 중 7곳에서 6만명의 한국이 1940년대에 강제 징용되어 비참하고 억울하게 희생된 점을 들어 세계문화유산 등재 반대 입장을 꾸준히 이슈해왔다.
그러나 그동안 한국정부는 강제징용한국인 6만명의 피눈물과 한이 서린 역사를 외면한 채 무관심과 태만으로 일관하여 두손 놓고 있었다. 이것은 한국정부의 죄악이며 박근혜 정권의 죄악이다.
유네스코 등재여부 결정 막바지인 금년 4월 초, 이 문제를 다룬 국회의 '동북아역사왜곡특위'회의에는 해당 국회의원의 1/3도 출석하지 않았으며, 외교부는 4월 중순까지도 유네스코 한국 대표부 대사자리를 공석으로 비워두는 등 무관심과 태만으로 일관하여 모두 두 손 놓고 있었다.
한국의 한국에 의한 정부가 꼭 한국을 위한 정부는 아님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유네스코 산하 자문기구 이코모스(ICOMOS : 국제기념물유적협의외)는 작년 10월 실사를 거쳐 마침내 금년 5월초 '적합'판정을 내렸다. 일본은 완전히 잔칫집 분위기가 되었다.
한국 정부는 그제사 발등에 불 떨어진 듯 대책을 마련하느라 난리법석을 떨었다.
'적합'판정을 받은 이것은 제 39회 세계유산위원회총회에서 7월초 최종 결정될 예정이다.
그러나 이코모스가 내린 판정이 번복된 전례는 찾기 힘들다.
더구나 일본은 막강한 로비력을 이용하여, 일본이 유네스코 재정 최대 분담국임을 내세우며, 등재 실패시 유네스코 탈퇴 검토 등의 협박․공갈을 서슴지 않고 있다.
거기다 일본 정부는 이미 강제징용 사실을 은폐하기 위하여 기간을 1850년 ~ 1910년으로 한정하는 꼼수로 신청해놓은 상태다. 한국정부는 지금에 와서야 첫 번째 목표는 강제징용시설 7곳을 등재 목록에서 빼는 것이며 여의치 않을 경우 차선책으로 이 시설들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더라도 7곳에 대해서는 '강제 징용 사실이 있었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히도록 일본정부에 요구할 방침이라고 한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23개 시설은 1910년 이전의 이야기다. 거기에 강제적으로 조선인의 노동이 행해진 것은 아니다. 시대가 완전히 다르다. 이 곳은 모두 1920년 이전에 건설됐기 때문에 일본의 산업혁명 성과를 보여줄 뿐 식민지배나 침략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메이지 시대는 1912년 까지임에도 1920년 까지로 한정한 것이 식민지배나 침략을 은폐하기 위한 딴에는 치밀하면서도 궁색한 꼼수임이 여기서도 드러난다.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이코모스가 '역사의 전모를 이해할 수 있게 하라.'고 권고한 내용에 실날같은 기대를 걸고 정부간 협상에 임하고 있다.
우리 외교관들은 "지금에 와서 일본의 세계문화유산등재 자체를 막기는 어렵다."고 토로한다. "지금에 와서 그 자체를 막기는 어렵다."는 말은 이완용도 써먹은 것이다. 문제는 '지금이 오기 전까지는 뭘 했는가'에 있다.
한편 한국정부는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을 상대로 하는 다각적 외교노력도 병행할 방침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도 일본의 꼼수 쳐 놓은 '강제징용' 하나에만 매달리기는 마찬가지다. 다른 것은 없는가?
있다.
두 가지가 더 있다.
'강제징용'외에도 문제 삼아 반드시 요구해야 할 것이 두 가지 더 있다.
'메이지를 빼라'와 '쇼가손주쿠를 빼라'는 두 가지가 그것이다.
이 두 가지는 유네스코와 세계가 공감하여 다 같이 함께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1. '메이지'를 빼라.
◎ 제국주의 시대로의 회귀 음모
일본정부는 '메이지일본산업혁명유산'은 1850년 ~ 1910년으로 기간을 한정했기 때문에 "강제 징용은 시대가 완전히 다르다"고 주장한다.
그런 논리대로라면 '1850년~1867년'은 도주가와 막부시대로서 1868년부터 시작된 메이지 시대와는 역시 '시대가 완전히 다르다'
도주가와 막부 시대에 해당하는 유산에는 '메이지'란 제목을 빼야 마땅할 것이다.
차라리 '근대일본의 유산'이라고 하는 것이 두 시대를 통칭하는 제목으로 더 적합할 것이다.
이것을 모를 리 없는 일본 정부가 이리 저리 꼼수를 부려 제목을 굳이 '메이지 일본 유산'으로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메이지 일본 = 일본 제국의 출발'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차제에 '메이지'를 기치로 하여 제국 일본으로 회귀하려는 음모다. 차제에 아름답고 순수한 이름의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분장시켜 제국 일본을 부활시키려는 정치적 음모다.
일본의 한 교수는 "일본은 '잃어버린 20년'동안 장기불황을 겪으면서 한국과 중국의 무서운 추격을 받더니 결구 G2자리를 중국에 빼앗겼다. 우리가 겪은 충격과 좌절은 일본인이 아니면 모른다. 일본인들은 한국과 중국이 일본과 대등해지는 상황은 있어서도 안 되고 받아들일 수도 없다. 일본인이 겪은 자존감 상실과 무력감은 일본 바깥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다."고 말한다.
이런 상황이 지금의 일본인들을 과거 영광의 시대에 대한 향수와 동경에 빠져들게 한다. 이것은 일본 유사이래 최초로 욱일승천하는 기세로 아시아를 석권했던 그 영광의 시대로 돌아가고 싶은 열망을 불러 일으킨다. 제국일본으로 회귀하고픈 열망인 것이다.
여기에 극우세력을 불을 댕긴 것이 문화유산의 제목을 '메이지'로 단 것이다. 사실 일본의 자존감 상실과 무력감의 근원은 더 깊은 데 있다.
지금의 일본 평화헌법은 패전 후 미군정에 의하여 강제된 것이다. 천황은 메이지유신 이전처럼 다시 실권없는 식물인간화 되었고 전쟁은 금지 되었다. 극우세력은 이것을 극도의 굴욕으로 여겨 왔다. 그래서 일본 헌법을 평화 헌법 이전의 제국 헌번으로 개정하고자 절치부심해왔다. 아베 총리의 외조부이자 A급 전범이던 패전 직후의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 때부터였다.
아베 총리는 외조부의 개헌의지를 계승하여 전쟁 금지 조항인 헌법 제 9조 개정을 위하여 지금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것을 개정하고 나면 그 다음은 '천황은 국가적 문제에 결정권이 없다'는 헌법 제 4조를 뜯어 고쳐 천황을 다시 명실상부한 일본의 중심으로 부상시키는 것이다.
천황을 다시 '성스러운 권력제','만세일계의 현인신청환'으로 화려하게 부활시키는 것이다. 이 전초작업이 세계문화유산신청에 꼼수를 부려 '메이지'제목을 붙인 것이다.
이것은 대내적으로는 일본국민을 메이지 시대로의 향수에 한껏 빠져 들게 하여 제국주의 시대로의 회귀 열망을 부채질하는 것이며, 대외적으로는 세계인들로 하여금 메이지 시대 일본 제국에 대한 긍정적 시각을 갖게끔 하여 제국주의 시대로 순탄히 되돌아 가려는 예비 분장작업인 것이다. 이것은 세계문화유산등재를 제국일본 부활의 불쏘시개로 이용하려는 정치적 음모다. 이것은 유네스코의 순수한 취지를 훼손하는 것이다.
이것은 유네스코가 추구하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나 정당성도 결여 되어 있는 것이다. 메이지시대가 일본에게는 청일전쟁, 러일전쟁 승리와 한국 강제병탄으로 이어진 영광의 시대로 기억될지 몰라도 많은 아시아인들에게는 일본제국 침략주의의 출발로 인한 참혹의 시대로 기억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두 다 함꼐 '메이지를 빼라'고 외쳐야 하는 것이다.
◎ '메이지'를 빼야하는 또 다른 이유들
- 메이지 일왕은 '동양의 히틀러'였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메이지'란 이름을 올리는 것은 절대 불가하다. 메이지 일왕은 '동양의 히틀러'이기 때문이다.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이란 제목은 나치 독일의 산업 군수 시설을 '히틀러 독일의 산업혁명 유산'이란 제목으로 무더기로 등장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유네스코가 '히틀러'란 이름을 달고 세계문화유산을 등재할 수 없듯이 '메이지'란 이름을 달고 세계문화유산을 등재할 수는 없는 것이다. 메이지 일왕의 행적은 히틀러 총통의 행적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 메이지 일왕의 행적
1) 메이지 일왕의 조선왕궁 무단 점령
메이지 일왕이 대외적으로 취한 첫 조치는 일본 군대를 직속으로 거느린 일본군의 통수권자로서 일본군을 동원하여 기습 무력으로 조선군을 사살한 후 조선왕궁을 무단 점령한 것이었다. 그리고 조선국왕과 왕비를 포로로 삼았다. 이것은 당시의 국제법인 '만민공법'을 위반한 행위였다. 청일 전쟁에서 기선을 잡기 위한 국제 깡패 행위였다. 일국의 왕으로서 왕도를 버리고 패도로 간 이런 불법 무도한 국제야쿠자의 이름을 감히 인류 문화 유산에 올릴 수는 없는 것이다.
2) 메이지 일왕은 전쟁광․학살광의 전범이다.
메이지 일왕은 일본 군대를 직속으로 거느린 일본군 통수권자로서 두 개의 전쟁을 기습적으로 일으킨 전쟁광이다.
조선을 삼키기 위해 일으킨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이 그것이다. 특히 청일전쟁때는 왕궁을 떠나 히로시마 대본영에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상주하며 침략전쟁을 총지휘하여 수십만 일명을 살생한 인물이다. 특히 '동학농민학산, '여순학살' 등으로 여자와 어린이를 포함한 수십만명의 농민․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한 장본인으로서 명백한 전범이다. 이런 전쟁광․학살광 전범의 이름을 감히 인류문화유산에 올릴 수는 없는 것이다.
3) 메이지 일왕은 명성황후 살해 교사범이다.
메이지 일왕은 일본군예비역중장 미우라 고로를 특명전권공사로 조선에 파견하여 조선국모를 살해하게한 살인교사범이다. 미우라는 일본군 장교 8명을 포함한 48명의 일본인이 일본군의 엄호를 받으며 조선왕궁의 조선국모 침전을 새벽에 난입하여 조선국모를 난자한 후, 그 시신을 발가벗겨 그 시신까지 능욕한 후 불에 태워버린 '을미사변'을 주도하였다. 이것은 인류사 전대미문의 천인공노할 야수같은 엽기적 살인행위였다.
메이지 일왕은 특명을 완수하고 돌아온 48짐승의 대표 짐승 미우라에게 알현을 허용하였다. 그 자리에서 메이지 일왕은 이웃나라 국모를 짐승처럼 살해하고 돌아온 이 짐승을 준렬하게 꾸짖거나 극형에 처하기는커녕 "할 때 해야한다" 즉 "잘했다"고 격려하여 오히려 그 노고를 치하한 짐승같은 군주였다. 미우라에게 조선국모살해의 특명을 내린 장본인이 메이지 일왕 자신임을 입증한 것이다. 그 알현장은 특명을 내린 짐승과 특명을 받는 짐승이 특명 완수를 자축하는 단 둘만의 밀회장이었던 것이다.
히틀러도 이웃나라 국모를 살해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빨가 벗겨져 그 시신을 능욕한 일도 없었다. 메이지 일왕은 히틀러보다 더 히틀러 같은 '동양의 히틀러'였던 것이다. 히틀러보다 더 악랄한 '히틀러의 선구자'였던 것이다. 이런 흉악 살인교사범인 '짐승 메이지'의 이름을, 교육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유네스코의 인류문화유산에 감히 올릴 수는 없는 것이다.
4) 군대를 동원한 강제조약과 강제병탄
메이지 일왕은 군대를 동원하여 원천 무효적 강제 조약과 강제 병탄을 자행한 국제적 불법 무도자로서 국제 깡패였다. 그리고 남의 나라땅 간도를 제 맘대로 팔아먹은 국제 사기꾼이었다. 이런 국제깡패․국제 사기군의 이름을 세계문화유산에 감히 올릴 수는 없는 것이다.
5) '군수산업시설 유산'으로 등재하라.
더구나 메이지 일왕의 이같은 행적에 빠짐없이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그의 직속 일본 군대였다. 그 일본군은 지금 일본이 산업혁명유산으로 신청해놓은 그 시설에서 만든 무기로 무장한 인류파괴․인류학살 군대 였다.
산업혁명 성과를 보여주는 산업혁명 유산이 아니라 침략전쟁의 잔학상을 보여주는 '군수산업시설유산'으로 등재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 두 차례에 걸친 참혹한 세계대전 후 인류를 파괴하는 전쟁의 참화를 없애기 위해 교육과 문화를 최고의 가치로 삼아 창립된 유네스코에 어떻게 이런 전쟁광 ․ 학살광 행적의 '희대의 악질 메이지'의 이름을 감히 올릴 수 있겠는가.
유네스코는 '메이지'란 이름 올리기를 단연코 거부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유네스코는 스스로 천추에 오명을 남기는 것이 되며 스스로 조종을 고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다 함께 '메이지를 빼라.' 외쳐야 하는 것이다.
2. '쇼카손주쿠'를 빼라.
1) 쇼카손주쿠 - 천황가 부활의 태동지
일본이 신청한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 목록에는 희한하게도 산업 시설도 아니며 메이지 시대 것도 아닌 특이한 것이 하나 끼어들어있다.
'쇼카손주쿠(松下村熟)'가 그것이다.
'쇼카손주쿠'는 조슈번(야마쿠치현)의 시골마을 하기에 있는 서당격으로 일종의 사설 정칙학당이었다. 일본은 시골 마을의 이 조그만 일개 사설 서당을 왜 '산업혁명유산'에 끼워넣기 한 것일까?
쇼카순주쿠가 자리하고 있는 요시다쇼인 신사 입구의 '명치유신태동지'라고 쓰인 커다란 돌비석이 그 이유를 말해주고 있다. '메이지유신 태동지'란 '천황가 부활의 태동지' '천황가의 새로운 출생지' '천황가의 성지'임을 말하는 것이다.
12세기부터 막부시대가 시작된 이래로 천황가는 700년동안 끼니도 제대로 잇지 못하며 생명의 위협까지 느껴가며 제사지내는 것 외에는 아무 할 일도 실현도 없는 있으나마나한 식물화된 존재였다.
이러기를 700년만인 19세기 중반, 천황숭배자 양성소인 '쇼카손주쿠'에서 배출된 인물들이 사쓰마번(가고시마현)과 연합세력을 이루어 무력으로 도주가와 막부를 무너뜨리고 뺏은 정치권력을 천황가에 그대로 다 넘겨줌으로ㅆ, 천황가는 700년만에 다시 일본의 정치중심무대의 전면으로 화려하게 부활했기 때문이다. 천황가로서는 생각도 없이 가만 있다가 넝쿨째 굴러들어온 호박을 받은 것이다. 이것이 '1868년희 메이지 유신'인 것이다.
'일본근대화의 출발'이기도 하다.
그러나 근대화의 공과로 말하자면 사쓰마번이 단연 압도적으로 앞선다. 그럼에도 '쇼카손주쿠'가 유신의 태동지로 꼽히는 것은 '쇼카손주쿠'가 '천황가 숭배와 천황가 부활의 본산'이기 때문이다.
유신 이후 '쇼카손주쿠'출신이 요직 발탁에서 단연 앞서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후 일본이 근대산업화보다는 군국침략주의로 흐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쇼카손주쿠'는 하급무사가문 출신의 시골 서생인 요시다쇼인이 1850년대에 이곳에서 훈장질한 곳이다.
쇼인의 사상적 뿌리는 8세기에 편찬된 『일본서기』의 '만세일계설'이다. 천황가는 태고적부터 신의 혈통을 받은 신의 자손으로서 한번도 대가 바뀌지 않은 만세일계라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8세기의 『일본서기』가 꾸며낸 이야기로서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러나 이 거짓말을 진ᄍᆞ인 것처럼 다시 불씨를 살려낸 것이 17세기에 태동한 고쿠가쿠(國學)였다.
고주카구 학자들은 "일본의 천황혈통은 만세일계이므로 일본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나라이다.", "『고사기』와 『일본서기』는 역사적 사실의 기록물, ""문경의 역(임진왜란)은 신의 뜻""일본은 신국""세계에서 가장 먼저 땅이 생긴 나라가 일본""세계전역을 만국표본인 일본의 군현체제로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하여 조선․중국․몽골 등 유약하고 점령하기 쉬운 나라를 침략하는 것이 방책이다."는 등의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는 횡설수설을 쏟아 냈다.
한 마디로 고쿠가쿠는 과대망상증 집단의 '자아도취적 과대망상학'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요시다 쇼인은 이것을 진실로 받아들여 고쿠가쿠의 이무지몽매와 침략주의 사상을 고스란히 그대로 다 물려 받은 인물이다. 쇼인은 여기에 더하여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철저히 맹신한 일종의 자폐증 환자로 돌팔이 훈장이었다. 그러므로 '쇼카손주쿠'는 '자아도취적 과대망상학+자폐증'의 복합체였다. 극도의 천황가 찬마자인 쇼인은 이곳 '쇼카손주쿠'에 시골아이들을 모아 놓고는 근대화에 역행하여 8세기의 『일본서기』로 되돌아가는 복고화로 자신이 맹신하여 '만세일계'를 주입하였다. 그리고 "천하는 천황이 지배하고, 그 아래 만민은 평등하다"는 '일군만민론'을 주창하여 훗날의 메이지유신 주역들을 대거 배출했던 것이다. 이렇듯 '쇼카손주쿠'는 '산업혁명유산'과는 무관하게 '극도의 천황숭배쟈양성소'로서 '천황숭배의 본산'인 것이다. 이곳에 황태자 부부의 방문 기념비가 서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것이 '쇼카손주쿠'를 '산업혁명유산'에 끼워넣기한 이유인 것이다. 전형적 꼼수를 발휘한 것이다. 일본은 이 '쇼카손주쿠'를 '교육시설'이라 하지만 교육내용이라봐야 천황숭배와 침략주의사상 주입이 다였다. 오히려 '세뇌공작소'로 부르는 것이 딱 맞는 말이다. 북한의 '김일성 찬양 세뇌 공작소', '남침세뇌공작소'와 똑같았다. '쇼카손주쿠'를 등재 신청하는 것은 북한의 '김일성찬양세뇌공작소'나 '남침세뇌공작소'를 세계문화유산․인류문화유산으로 등재 신청하는 것과 똑같다. 일본이 '천황숭배쟈 양성소'이자 '천황숭배의 본산인 이 '쇼카손주쿠'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는 것은 패전 이후의 평화헌법으로 식물화된 지금의 천황가를 패전 이전 제국 일본의 실권 천황가로 다시 부활시키려는 지극히 부순한 정치적 음도다.
150년전 '천황가 부활의 태동지'였던 이 '쇼카손주쿠'를 '세계문화유산'이란 미명으로 부활시키고 일본네에 '쇼카손주쿠붐'을 일으켜 천황의 정치 간여를 금지한 평화 헌법 제 4조 개정의 돌파구로 삼아 다시 제2의 '천황가 부활의 태동지'로 삼으려는 것이다. 가뜩이나 지금의 일본이 과거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을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정당환 망언을 일삼는 근본원인이 천황의 전챙책임면책에 있는 마당에 전범 천황가를 또다시 부활시키려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음모다. 모두가 다 함께 "쇼카손주쿠를 빼라'고 요구해야 하는 것이다. 유네스코는 마땅히 쇼카손주쿠 등재를 거부해야 할 것이다.
2) 쇼카손주쿠 - '정한론'의 태동지
'쇼카손주쿠'는 '정한론의 태동지'다. 요시다 쇼인은 '만세일계설'뿐만 아니라 『일본서기』의 '삼한정법설'도 맹신한 인물이다.
『일본서기』는 신라․고구려․백제를 삼한이라 지칭하면서 4세기에 삼한을 일본의 속국으로 삼았다는 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4세기의 고구려는 광개토대왕때로서 세계 최초의 고구려 철갑 기마대를 거느리고 대륙을 종횡무진 호령하던 시기였던 반면 4세기의 왜국은 제철능력조차 없어 가야로부터 철을 수입했던 시기인 만큼 『일본서기』는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는 새빨간 거짓 기록을 남긴 것이다.
더구나 자국의 역사가 짧아, 고대사에 관한한 제3자로서 객관적 안목이 높은 미국사학자들은 "『일본서기』가 남긴 '신공황후의 삼한정벌설'은 '한국의 신공왕후의 규슈정벌'을 방향만 180도 거꾸로 돌려놓은 것이다. 규수를 정벌한 신공의 아들인 응신왕이 일본의 실질적 초대 왕이다."고 한다. 이처럼 쇼인은 역사적 사실과 너무나 거리가 먼 황당무계와 무지의 극치였다. 쇼인의 지식과 견식이 그만큼 천박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쇼인은 시골마을 아이들을 쇼카손주쿠에 모아놓고는, '무식이 용감'이라고, 그가 맹신하는 '삼한정벌설'을 신봉하게끔 맹렬하게 세뇌하였다. 걔 중에는 8살짜리 코흘리개 까지도 있었다.
허구의 '만계일계설'을 일본우월설의 근거로 삼고 날조된 '삼한정벌설'을 조선 열등성의 근거로 삼아 '조선멸시관'과 '조선침략사상'을 강렬하게 주입하였다. 어릴 적부터 세뇌를 하여 공산주의 전사를 양성하는 공산당식 세뇌공작의 원조가 바로 이 쇼카손주쿠의 쇼인이었던 것이다.
" 조선은 고시(故時)에는 우리에게 신속했으니 이를 옛날로 되돌려야 한다."
"옛 삼한은 일본의 속국이었으니 일본은 조선을 다시 속국으로 삼아야 한다."
"조선 침략은 일본인이라면 대를 이어 힘쓰지 않으면 안되는 숭고한 의무다." 는 등으로 허무맹랑한 세뇌 공작을 하였다. 자페증 환자의 발악이었다.
이렇게 이곳 '쇼카손주쿠'에서 '정한론'이 태동되었다. 1850년대였다.
이런 돌팔이 훈장의 엉터리 강의도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에게까지 하얀 화선지에 먹물처럼 그대로 먹혀든 것이다. 이 아이들 중에는 어린 이토히로부미도 섞여 있었던 것이다.
한국 강제병탄의 신호탄이 어이없게도 이 때 이곳 '쇼카손주쿠'에서 이렇게 쏘아 올려진 것이다.
이 곳 '쇼카손주쿠'가 이런 식으로 '정한론의 태동지'가 된 것이다.
여기서 이렇게 세뇌공작당한 아이들이 훗날 실제로 한국강제병탄에 뛰어 들어 한국강제병탄을 주도하는 인물들이 된 것은 실로 얄궂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유신 3걸의 하나로서 메이지 정부에서 제일 먼저 정한론을 주장한 기도 다카요시 조선 주재공사 이노우에 가오루, 메이지 정부의 첫 총리였던 초대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 청일 전쟁때 조선 주돈 제1군 사령관이었다가 대장․원수․총리에게까지 오른 야마가타 아리모토. 명성황후 살해 주도자 미우라고로 예비역 중장, 조선병탄의 서곡인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주인공 가쓰라 다른 2대 조선 통감 소네 아라스케,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 등이 모두 이 '쇼카손주쿠'의 출신이었다. 가히 '쇼카손주쿠'가 한국을 강제병탄 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야마구치의 '쇼카손주쿠'가 정한(征韓)의 본산'이었던 것이다.
'쇼카손주쿠'가 한국 36년 착취와 수탈의 발원지였던 것이다.
이런 악랄한 강제병탄의 근저에는 지형적 요인도 있다.
일본 열도의 지형은 독지네형이다.
그 중에서도 맹독의 발원처는 대가리에 해당하는 야마구치이기 때문이다.
거기서 쇼인은 '일본독지네 배양자'로서 '일본독지네의 왕초'였으며 '쇼카손주쿠'는 '일본독지네 배양자'로서 '일본독지네의 소굴'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도쿠가와 에도(도쿄) 막부시대의 그럴 수 없이 한결같이 돈독했던 250년 한․일 우호선전은 이 야마쿠치의 '쇼카손주쿠'에 의해 여지없이 깨진 것이다.
정한 발사자'쇼인이 '정한발사대'쇼카손주쿠에서 쏘아올린 '정한 신호탄'으로 250년 한․일 우호친선은 형체도 없이 산산조각이 나고 만 것이다.
이것이 250년 한․일 선친 파괴의 출발점이었으며 쇼카손주쿠의 쇼인이 그 주범이었다.
정한은 대륙침략의 저지선 돌파로서 아시아 침략 개시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한국은 이토 히로부미를 조선침략의 원흉이라 일컫지만, 더 큰 침략의 원흉은 아무것도 모르는 이토에게 조선멸시관을 심어주고 조선침략을 사주한 왕초 요시다 쇼인인 것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한국의 정부․학계․언론계에는 이 요시다 쇼인을 근대 일본의 선각자 혹은 지식인으로 미화하여 지칭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 이것은 쇼인이 극구칭송한 조선침략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서양총으로 무장한 군대를 조선에 출병시킨 선각자적 지식인이라고 지칭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이것은 프랑스가 '아리안족 우월주의자' 히틀러를 선각자 혹은 지식으로 지칭하는 것과 같다. 이러니 일본이 마음 놓고 '쇼카손주쿠'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하는 것이다.
그러나 쇼인이 비록 일본근대화에 큰 기여를 했더라도, 허구읭 '만세일계설'과 날조된 '삼한정벌설'을 맹신한 무식인으로서 그것 외에는 아는 것이 없었던 그를 어떻게 지식인이라 지칭할 수 있는가?
차라리 세계최초의 미사일 발사하고 세계최초의 고속도로인 아우토반을 만들어 내고 세계최초의 국민차 폴크스바겐을 만들어낸 히틀러야말로 선각자적 지식인으로 지칭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조선 침략을 독려한 그를 어떻게 한국에서 감히 선각자로 지칭할 수가 있는가? 그럼에도 쇼인을 그렇게 미칭으로 지칭하는 자들은 여전히 피식민지배 근성에 젖은 똘마니 근성 소유자들이다. 그렇게 미칭하는 것은 순전히 일본 따라하기로서, 독도를 다케시마라 지칭하는 것과 같이 깨문이다.
또 쇼인을 선각자적 근대지식인으로 만드는 것은 , 그의 충실한 문하생인 이토를, 조선 침략의 원흉이 아니라, 조선에 온 선각자적 근대지식 이행자로 만드는 것이다. 친일 반역배가 따로 없는 것이다. 미칭하는 그들이야말로 자신도 모르게 친일반역배의 후예임을 은연 무의식 중에 스스로 드러내고 마는 것이다. 무엇보다 쇼인은 조선침략을 사주한 '정한론'의 원조다. 도요토미나 이토처럼 ' 조선침략의 원흉'외에 다른 별칭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지금 한․일 관계에 악화의 주범 또한 쇼인이다. 그가 만들어 심어놓은 근거 없는 조선멸시관이 그 주범이다. 아무리 이해하고 가까워지려해도 한쪽에서 상대 멸시관을 품고 있으니 항상 겉도는 것이다.
'쇼카손주쿠'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고 나면 이것은 더 심화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한․일관계회복을 원한다면 가장 시급한 것이다 '쇼카손주쿠'를 빼는 것이다. '쇼카손주쿠'이 전의 250년 한․일 우호선친이 이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일본이 '조선멸시관의 본산', '한국강제병탄의 본산'인 이 '쇼카손주쿠'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해 놓았는데도 강건너 불구경 하듯 수수방관만 한다. 이것은 '김일성찬양세뇌공작소나'나 '남침세뇌공작소'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해 놓아도 강건너 불구경하듯 수수방관하는 것과 똑같다.
박근혜 정권이 한국의 한국에 의한 정권이긴 하지만, 한국을 위한 정권은 절대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쇼카손주쿠'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고 나면 또다시 '100녀 후환'으로 남을 것이다. 허구와 날조를 기반으로 한 폭력과 반(反)문명적 침략주의로 완전무장한 '쇼카손주쿠'가 어떻게 교육․문화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오를 수 있는가?
이것은 사쿠라다. 이것은 한국 우롱․모독이며 유네스코 우롱․모독이다.
일본이 지금에 와서 '한국 강제 병탄의 본산'인 '쇼카손주쿠'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하는 것은 한국은 안중에도 두지 않는 것으로서 '정한론의 태동지인 '쇼카손주쿠'를 다시 살려내어 '제2정한론'의 불쏘시개로 삼으려는 것이다. 국내문제가 꼬일 때마다 외부로 눈을 돌리게 하는 외부 타킷을 찾는 것은 일본의 전통적 수법이다. '쇼카손주쿠'를 띄우면 요시다 쇼인의 '정한론'은 자동으로 뜨게 돼 있다. 이것은 한국재침인 동시에 제2의 아시아 침략 개시를 의미하는 것이다. 마지막 조선총독 아베노부유키가 한국을 떠나면서 "우리 일본은 반드시 다시 돌아온다."고한 그 호언장담을 실천하려는 것이다.
'병속에 든 전쟁괴물'일본이 병마개를 따고 나오려는 것이다.
쇼카손주쿠 혈맥인 아베총리가 일본식 침략용어인 '어리석은 나라'로 한국을 지목하자, 그의 측극은 즉각 '새로운 정한론'이라고 맞장구쳤다. 일본의 주요 언론과 정가로부터는 "일본이 마음만 먹으면 한국을 한나절 안에 접수할 수 있다."
"한국이 강제징용 배상금을 청구하면 일본은 금융공격으로 한국 경제를 무너뜨려야 한다."
"엔 캐리자금을 동원하면 한국경제를 하루만에 마비시킬 수 있다."등의 기사와 이야기가 연일 쏟아져 나돌고 있다. 총리실 주변에서는, 일본은 일․북수교를 은밀,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으며 식민지 보상차원으로 북한에 지원할 꼐획이라는 말이 흘러 나오고 있다.
이 정도 금액이면 남․북 분단을 더욱 고착화 시키는 양꽃놀이패를 써가며 남․북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먼저 남․북을 경제적으로 강점한 뒤 또 다시 경제적 아시아침략의 발판으로 삼는 구상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모든 것들이 물론 일본 맘대로 다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런 '경제침략'이든 뭐든 한국을 어떻게든 해 보겠다는 야욕이 있음은 숨기지 않는 분명한 사실인 것이다. '정한론 태동에서 강제병탄까지' 프로젝트의 완성에 50여년을 두고 쉼없이 추진된 결과물임을 감안하면 그냥 흘려들을 수 없는 것이다.
한 시도 방심할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지금은 아시아뿐만 아니라 꿈의 유라시아 횡단 철도를 통한 동유럽까지의 발판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이것이 섬나라 일본이 절감하는 한반도의 효용가치인 것이다. 더구나 지금 중국이 천문학적 자금을 들여 가며 아시아․유럽․아프리카 3대륙의 60국 30억명을 영향권에 두는 육․해상 신실크로드인 '일대일로'프로젝트를 추친하고 있는 것도 일본을 초조하게 만들고 있다. 이리보고 저리봐도 한반도가 첫 관건인 것이다.
일본은 지금 그 관문을 과거 나카타항에서 직항노선이 있었던 원산을 구체적으로 찍어놓고 있다. 이것을 위해서는 먼저 천문학적 금액을 아낌없이 지원하는 일․북 수교가 필수인 것이다. 이런 대륙 경제 침략 구상을 실현하는데 있어서 '아시아 제폐 구상의 본산'이었던 '쇼카손주쿠'를 다시 살려서 일본 내에 '쇼카손주쿠붐'을 일으키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는 것이다. 대외적으로는 이 '쇼카손주쿠'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분장시키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는 것이다. '쇼카손주쿠' 세계문화유산신청은 동유럽까지의 이런 경제침략 야욕을 숨긴 비수인 것이다. 말이 경제침략이지 이를 뒷받침하는 군사적 보강도 따르기 마련이다.
유네스코가 이 '쇼카손주쿠'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켜주는 것은 '한국 및 아시아침략의 본산'인 '쇼카손주쿠'비수를 세계 문화로 분장시켜 화려하게 부활시켜주는 것으로서, 또다시 아시아에 100년 후환을 남기는 것이 될 것이다.
모두가 다함께 "쇼카손주쿠를 빼라."고 단호히 요구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정한론의 태동지이자 한국 강제 병탄의 진원지이자 진앙인 이 '쇼카손주쿠'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는 날은 '일제의 한국 강제병탄'이 세계가 공인하는 세계문화기념물로 지정되는 날이 된다.
한국의 경술국치가 세계공인의 세계문화기념품이 되는 날이 된다. 이 날은 또다시 씻을 수 없는 치욕을 남기는 한국 제2의 국치일이 될 것이다. 이 지경에 이르게끔 된다면 '쇼카손주쿠'에게 나라를 빼앗긴 적이 있는 나라 한국, 그 한국의 대통령으로서 이를 강건너 불구경 하듯 수수방관으로 방치해온 박근혜 대통령은 단 1분도 지체함이 없는 정권 총퇴진으로 즉각 대통력직을 사임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3) 쇼카손주쿠 - 군국일본 침략주의의 태동지
쇼카손주쿠의 훈장 요시다 쇼인은 일본 군국주의의 창시자이며 군국일본 침략주의의 창시자 이다.
'쇼카손주쿠'는 일본 군벌의 뿌리로서 '군국일본 침략주의의 태동지'이며 아시아 침략 전쟁을 종용하는 신호탄을 쏘아올린 '침략전쟁발사대'였다.
"주력을 키워 조선․만주․지나 등 취하기 쉬운 나라를 복종시켜 미국과 러시아에 잃은 국부를 조선과 만주 토지에서 만회해야 한다."
"조선을 속국하고 만주․대만․필리핀 일대를 노획하라. 서양에 잃은 국부를 조선과 만주에서 보상받아야 한다."는 쇼인의 주창이 군국 일본을 태동시켰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국력'은 무력․군사력을 말하는 것이며 '국부 만회․보상'은 침략 약탈주의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50여년을 일관되게 일체의 침략전쟁 없이 우호선친의 평화시대를 구가한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리고 왕정복고의 메이지유신시대를 열어 동양평화를 깨뜨리는 침략전쟁시대로 돌입케한 원흉이 바로 쇼카손주쿠의 이 요시다 쇼인인 것이다. 군사력을 키우는 제일 목적이 국토 방위에 있지 않고, 처음부터 침략 전쟁 도발에 제일 목적을 두고 있는 이것이 일본군국주의 시발이며 특징이다. 일본독지네 발호의 시발이었다. 서구열강이 일본에 무역 불평등 조약을 진행하기는 하였지만, 일본을 침략․지배한 적도, 그럴 의도도 없었던 것과는 대비되는 것이다. 이것은 '한강에서 뺨맞고 종로에서 칼부림 하기'이며 '약자들 등쳐서 뺏아먹고 살아라'에 다름아니다.
'쇼카손주쿠'는 가히 '국제 깡패 양성소'에 다름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요시다 쇼인은 '국제 야쿠자의 오야붕' '국제 마피아의 대부'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지금도 한국에서 근대 일본의 선각자 혹은 지식인으로 입이 닳도록 칭송해 마지 않는 바로 그 요시다 쇼인의 실제 정체다.
이 국제 조폭의 대표적 행동 대장은 같은 쇼카손주쿠 문하생으로서 평생을 두고 쇼인의 침략전쟁구상을 실천해 갔던 메이지 시대 제일의 문관 이토 히로부미와 제일의 무관 야마가타 아리토모였다.
이 둘은 일본의 권력을 양분한 일본의 양대 권력이었다. '쇼카손주쿠'가 일본을 접수한 것이다. 일본의 군국침략주의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이토는 동양평화를 깨트린 침략의 원흉으로 지목되어 안중근 의사에 의해 마침대 처단되었다.
안중근 의사는 보도 듣도 못했으면서도 이미 그 때 '쇼카손주쿠의 본색'을 정확하게 꿰뚫어 본 혜안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안중근 의사는 인간 이토를 저격한 것이 아니라 '쇼카손주쿠의 심장'을 저격한 것이었다. 그러나 남은 또하나의 심장인 야마가타의 군국 일본 기틀 다지기는 평생을 두고 계속 추진되었다.
야마가타는 조슈번(야마구치)의 최하위 무사가문 출생으로 쇼카손주쿠에서 교육 받은 뒤 존왕파의 일원으로 창수종졸로부터 출발하였지만, 군에서 출세가도를 달려 참모총장․육군대장․원수․총리대신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이 과정에서 군제확립․징병령제정․참모본부제정․군인칙유제정 등 종전까지 유지됐던 군국 일본의 기본틀을 모두 그의 손을 거쳐 다 만들어졌다. 참모총장 때는 정치에 입문하여 참의원의장이 되었다. 군부 정치세력화의 시작이었다.
1899년 총리대신이 된 그는 중의원에서, 일본의 아시아 대륙에 대한 팽창을 더욱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894년의 청일전쟁은 이미 이 각본에 의한 것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쇼카손주쿠에서 배양된 독지네로서의 본색을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조선에서 일본의 패권을 확립하기 위한 청일전쟁때는 조선 주둔 제 1군 사령관으로서 요동벌을 누볐다.
1895년 청일전쟁 승리 직후 러․불․독의 3국 간섭에 부딪히게 되자 그는 '한반도를 양분하여 나눠먹자.'는 방안을 가지고 모스크바로 가 협상하였다. 이 때 이미 조선을 밥상위에 놓인 먹잇감 취급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쇼카손주쿠산 독지네의 본색을 유감없이 드러낸 것이다.
1898년 원수를 승진하여 다시 총리 대신이 도자, 각료의 절반을 군장성으로 구성하여 아시아 팽창주의 정책을 더욱 가속화하였다.
또 육․해군 장교만이 육․해군 대신에 임명될 수 있도록 하여 사실상 군부를 독립시켜 정치세력화 하면서 사실상 군부 독주의 군부독재체제로 일본을 통치하였다.
여기까지의 과정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그가 요직에 있으면서 쇼카손주쿠 인맥을 중심으로 하는 군별을 형성해 나간 것이다. 물론 군벌의 정상 보스는 야마카타였으며 그는 쇼카손주쿠 직계를 후계자로 키워 나갔던 것이다. 이것이 야마가타를 최정점으로 하는 '쇼카손주쿠 군벌'이었다. 이 군벌이 쇼와 군국주의에까지 이어져 갔던 것이다.
'군국 일본의 산실'이 바로 '쇼카손주쿠'인 것이다.
일본 학자가 말한 낭적국가(浪的國家)즉 팽창주의적 침략을 국가 목표로 하는 '이리 같은 나라'의 산실이 바로 '쇼카손주쿠'인 것이다. 청일 전쟁에서 출발하여 숨돌릴 새도 없이 전쟁에서 전쟁으로 이어진 러일전쟁․ 칭다오 침공․시베리아 출병․산등 출병․만주사변․상하이 사번․중일전쟁․동남아침공․태평양 전쟁의 산실이 바로 쇼카손주쿠인 것이다. '쇼카손주쿠'는 '전쟁괴물의 산실'이었던 것이다.
쇼카손주쿠의 쇼카손주쿠에 의한 침략 약탈 전쟁이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군국 일본의 발원지요 본산인 '쇼카손주쿠'는 끊임없이 '反 문명으로 간 反문화유산'인 것이다.
1945년 종전이 되었지만, 쇼카손주쿠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2013년 아베총리는 주위의 우려와 만류에도 불구하고 현직총리로서 A급 전범 14명이 참사된 야스쿠니 신사 전격 참배를 강행하여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을 경악케하고 긴장시켰다.
이것은 독일총리의 히틀러 무덤 참배와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베가 이토록 무모한 야스쿠니 참배를 강행한 것은 '쇼카손주쿠의 독지네 혈맥'이 그에게까지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아베의 고조부는 쇼카손주쿠 문하생이었으며, 아베의 정치적 스승이자 외조부이며 A급 전범이었던 기시 노부스케 전총리도 요시다 쇼인 휘하에서 정치관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아베총리는 평소 자신이 가장 존경하고 따르는 인물로 요시다 쇼인을 꼽았다. 일본 독지네 양산처였던 쇼카손주쿠의 일본독지네 배양자 그 요시다 쇼인을 말하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하기 전 쇼카손주쿠가 있는 요시다 쇼인 신사부터 찾아 참배하면서 무릎을 꿇고 "올바른 판단을 하겠다."고 맹세하였다.
그 '올바른 판단'이 군국주의 찬양과 전범추모의 전당인 야스쿠니 신사로의 참배 강행으로 그대로 이어졌던 것이다. 더구나 아베총리는 미국방문길의 한 강연에서 "나를 군국주의자로 불러도 좋다.""나를 군국주의자로 부르라."로 노골적으로 선언하며 쇼카손주쿠의 독지네 혈맥이 지금의 일본에까지 선명하게 이어져 있음을 섬뜩하게 보여 주었다. 이와 같이 '군국 일본의 본산'인 '쇼카손주쿠'는 지금도 군국주의자와 전쟁괴물을 계속 양산하고 있는 시설인 것이다.
'쇼카손주쿠'는 지금도 '反문명으로 가는 反문화유산'인 것이다.
끊임없는 反문명의 침략전쟁을 일으켜 아시아인 2천만을 죽인 군국 일본의 본산 '쇼카손주쿠'는 어떤 명목으로도 세계문화유산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지금 이것을 막지 않으면 또다시 '100년 후환'으로 남게 될 것이다. 유네스코가 '쇼카손주쿠'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켜주는 것은 유네스코가 세계전역에 독지네를 풀어놓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두가 다함께 "쇼카손주쿠를 빼라"고 외쳐야 하는 것이다. 만약 이 외침을 무시하고 유네스코가 '反문명의 反문화유산'인 '쇼카손주쿠'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켜 준다면 유네스코는 '침략전쟁 찬양기구'로의 전략을 자초하는 것으로서, 군국 일본의 침략으로 원통하게 죽어간 2천만 아시아인의 유네스코에 대한 원성이 하늘을 찌를 것이다. 그 유족까지 포함한 수 억 아시아인의 유네스코를 향한 원성이 하늘을 찌를 것이다. 또한 이것은 유네스코가 아시아에 또다시 '100년 후환의 검은 먹구름'을 드리우는 것이다.
그리고 유네스코는 '교육․과학․문화기구'란 이름을 '침략전쟁 찬양기구'로 바꾸어 달아야 할 것이다. 이렇듯 100년 후환이 바로 코앞에 걸린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쇼카손주쿠 일당'에게 나라까지 빼앗긴 적이 있는 한국의 정부는 이 '쇼카손주쿠'의 세계문화유산등재신청에 왜 침묵하는가?
왜 '쇼카손주쿠 등재 저지'에 나서지 않는가?
'쇼카손주쿠 등재 저지'야 말로 군국일본의 침략을 받았던 아시아 많은 나라들의 지지를 폭넓게 받아낼 수 있는 사안이다. 더구나 투표권을 가진 지금의 세계유산위원회 21개 위원국 중에는 군국 일본의 침략을 직접 받았던 베트남․필리핀 등도 포함되어 있다.
이들 나라와 공동 연합 전선을 구축하여 '등재 저지'에 공동 보조를 맞출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인 강제 징용 시설의 등재를 차단하는 데에도 가장 효과적 파급력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함에도 한국정부가 '쇼카손주쿠 등재'에 계속 침묵한다면 박근혜 정권은 정권 총퇴진은 물론이거니와 反국가적․反민족적.反역사적 정권으로 영원히 낙인 찍히게 될 것이다.
-한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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