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란 심장이 쏟아내는 뉘우스다

- 옥천 지용제와 ‘고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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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상(tspark21)등록 2015.06.14 17:03
시는 "심장이 전하는 새로운 뉘우스"다

제28회 옥천 지용제의 '지용문학 심포지움'의 특별강사로 노벨문학상 후보인 고은(1933 ~ )시인이 초대되었다. 옥천 문화원(원장 김승룡)으로부터 '문학 심포지움'의 사회를 맡으라는 전갈을 받고 매우 흥분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1970 ~ 80년대의 학창시절과 대학 강사 시절에 <폐결핵>과 <화살> 그리고 대서사시 <만인보>를 통해 얼마나 자주 그와 마주쳤던가? 그런데 묘하게도 1980년대 현장비평가로 활동하던 시절에 유독 고은시인에 대한 평론을 쓸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런데 세계적인 시인을 가깝게 만날 기회를 잡은 것이다.

▲28회 지용제 행사에 한국방송대학교 제자들만 전국에서 관광버스 10대로 찾아왔다. 대전충남지역 제자들 몇 명과 지용선생 동상 앞에 섰다.

▲옥천 정지용 생가 내부의 모습 –지용의 부친은 중국을 거쳐 낙향한 후 한약방을 하여 큰돈을 만졌으나 어느 해에 홍수가 나서 집과 전답이 모두 유실되어 갑자기 가산이 기울었다고 지용은 어린 시절을 술회했다.

2015년 5월 16일 오전 10시 30분의 옥천 관성회관은 문학 소년과 소녀들로 700석이 모두 가득 찼다. 자리가 없어 서있는 사람까지 합하면 거의 800여 명의 사람들이 2005년부터 노벨문학상 후보로 언론에 자주 등장한 고은 시인을 만나기 위해 모여들었다. 서울에서 국회의원인 도종환시인의 자가용을 이용해 옥천으로 달려오느라 주말 고속도로의 정체로 30여 분 늦게 도착하여 사회자는 정지용시인에 대한 이야기로 시간을 메우느라 비지땀을 흘렸다.

▲문학 심포지움 진행방법에 대해 논의를 하고 있는 고은시인과 사회자 박태상교수. 고은 시인 옆에 <접시꽃 당신>의 인기 작가이자 국회의원인 도종환시인. 뒤로 행사장에 걸어 들어오고 있는 올해 지용문학상 수장작가인 이근배 시인!!!

사회자의 소개를 받고 무대로 오른 83세의 노시인은 무대 가운데 마련된 자리에 앉지 않고 오른쪽 끝의 사회자석에 서서 마이크를 잡고 <지용을 향하여>라는 주제의 강연을 특유의 열정적인 톤으로 시작했다.  "여러분? 정지용 시인에 대해 잘 아세요?" 청중들은 눈을 둥그렇게 뜨고 시인의 질문 의도를 파악하느라 일순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근대문학 초기에 최남선과 이광수에서부터 김소월까지 산을 노래한 시인은 많았지만, 바다를 최초로 노래한 것은 정지용과 김기림에 와서야 비롯되었습니다." 지용과 기림이 모더니스트로서 새로운 시적 세계를 창조한 문학사적 위상을 거론함으로써 80분간의 한국 근대문학사에 대한 열강의 첫발을 내딛었다. 김소월의 <산유화>에서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로 숨 쉴 틈도 없이 일사천리로 시세계의 흐름을 비교하면서 월북시인 임화의 <현해탄>까지 해설을 하였다.

다음으로는 충북 옥천의 지리적 배경에 대해 말을 이어간다. 충북 괴산의 벽초 홍명희는 조선조부터 대대로 명문 양반가문 출신인데 비해, 근대문학의 출발점인 이광수는 천민출신이어서 대조적이라고 강조한다. 벽초는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에 장편역사소설인 <임꺽정>을 발표하여 문단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충북 괴산을 거론한 것은 옥천이라는 정지용의 고향으로 다가서기 위함이리라.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는" 작은 고을 옥천에서 정지용은 1902년 정태국과 모친 정미하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옥천의 관성회관에서 열린 <지용문학 심포지움>에서 '정지용을 향하여'란 주제로 열정적인 강연에 몰입하고 있는 노벨문학상 후보 고은시인!!!

우리나라 여인들은 오월달이로다

노시인은 갑자기 들고 있던 지용문학포럼 논문집에 실린 지용의 시를 한 수 읽어나간다. 웅성거리던 청중들은 다시금 고요의 정적 속으로 빠져들었다.

우리나라 여인들은 오월달이로다. 기쁨이로다./여인들은 꽃 속에서 나오도다. 짚단 속에서 나오도다./수풀에서, 물에서, 뛰어 나오도다./여인들은 산과실처럼 붉도다./바다에서 주운 바둑돌 향기로다./난류처럼 따뜻하도다./여인들은 양에게 푸른 풀을 먹이는도다./소에게 시냇물을 마시우는도다./오리알, 흰 알을, 기르는도다./여인들은 원앙새 수를 놓도다./여인들은 맨발벗기를 좋아하도다. 부끄러워 하도다./여인들은 어머니의 머리를 가르는도다./아버지 수염을 자랑하는도다. 놀려대는도다./여인들은 생율도, 호도도, 딸기도, 감자도, 잘 먹는도다./여인들은 풀굽이가 둥글도다. 이마가 희도다./머리는 봄풀이로다. 어깨는 보름달이로다./여인들은 성 위에 서도다. 거리로 달리도다./공회당에 모이도다./여인들은 소프라노로다. 바람이로다./흙이로다. 눈이로다. 불이로다............

                      -정지용, <우리나라여인들은> 일부(󰡔조선지광󰡕 1928. 5)

▲고은시인의 특별강연을 마치고 청중들과 무대 위에서 단체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 고은시인과 사회자 박태상 교수. 뒷줄 왼쪽 끝에 백발의 지용회 회장인 유자효시인의 모습이 보인다.

지용시의 낭송을 마치자, 노시인은 팔을 높이 들면서 "정지용의 시는 동아시아의 운명을 좌우하는 표상입니다. 아울러 그는 위대한 영혼의 소유자입니다." 고은시인은 현대시의 아버지 정지용이 위대한 이유는 첫째 모국어의 참맛을 잘 살려 쓴 점, 둘째, 지성과 감성의 조화를 꾀한 점, 즉 총합의 고뇌를 보여준 점, 셋째, 시인의 심장에서 우러나오는 새로운 소식을 전해준 점 등의 때문이라고 지용문학의 가치에 대해 열거하였다.  한마디로 "시는 시인의 심장에서 솟아나오는 뉴스"라는 것을 잘 보여준 시인입니다"라고 결론지었다. '시는 심장이 전해주는 새로운 소식'이라는 영롱하고도 간결한 결론에 청중들은 큰 박수로 호응을 했다.

고은의 초기 시세계를 대표하는 <폐결핵>

고은은 매우 이채로운 경력을 가진 시인이다. 1952년 효봉스님의 인도로 불문에 접어든 승려였으며, 자살하기 위해 배를 타고 바다를 향해 가다가 만취한 바람에 제주도 화북동에 도착해 금강고등공민학교를 차려 가난한 아이들을 모아 무료로 가르치면서 교사와 교장역할을 한 경력도 가진다. 1958년에는 조지훈의 추천으로 <폐결핵>을 󰡔현대시󰡕에 발표하고, 다시 <봄밤의 말씀>, <눈길> 등으로 서정주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을 하게 된 시인이기도 하다.

평론가들은 대체로 고은시인의 시세계를 1950 ~ 60년대의 초기 시와 70년대 이후의 후기 시로 구분해서 설명한다. 또 어떤 이는 초기, 중기, 후기의 3기로 분류한다. 고은의 초기 시는 한국전쟁으로부터 받은 깊은 외상으로 인해 초래된 존재를 위협하는 허무를 노래하고 있다. 이 시기의 대표시가 바로 <폐결핵>이다.

누님이 와서 이마맡에 앉고
외로운 파스 하이드라지드 병(甁 )속에
들어 있는 정서(情緖)를 보고 있다.
뜨락의 목련(木蓮)이 쪼개어지고 있다.
한 번의 긴 숨이 창 너머 하늘로 삭아가버린다.

오늘, 슬픈 하루의 오후에도
늑골에서 두근거리는 신(神)이
어딘가의 머나먼 곳으로 간다.

지금은 거울에 담겨진 기도(祈禱)와
소름조차 말라버린 얼굴
모든 것은 이렇게 두려웁고나

기침은 누님의 간음(姦淫),
한 겨를의 실크빛 연애(戀愛)에도
나의 시달리는 홑이불의 일요일을
누님이 그렇게 보고 있다.

언제나 오는 것은 없고 떠나는 것뿐
누님이 치마 끝을 매만지며
화장(化粧 )얼굴의 땀을 닦아내린다.

               -고은, <폐결핵> 일부

▲'지용문학관' 현관에 있는 지용조형물 앞에서 경남지역 제자들과 함께 찰깍!!!

평론가 김주연은 고은의 허무를 "일종의 아나키즘적 냄새의 허무"로 이해했다. 염무웅은 그의 초기 시를 "존재의 근거를 위협하는 허무와의 싸움"이라고 평가했다.

암울한 시대를 뚫고 나가는 '화살'이 되자

1970 ~ 80년대로 오면 고은의 시세계는 모순된 사회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을 하는 양상으로 바뀌게 된다. <화살>와 <만인보>가 이 시기의 대표적인 시작품이다. 평론가 김현은 1970년대 「산업화 시대의 시」에서 고은과 신경림의 시적 방향 전환 역시 김수영의 시적 영향력의 증대와 무관하지 않다고 말하면서 "나는 창조보다는 소멸에 기여 한다.라는 충격적인 발언으로 허무주의적 세계 인식의 한 극단을 보여 준 고은은 󰡔입산󰡕을 통해 민족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시화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그가 즐겨 쓰는 에세이를 통해 그가 역사, 민족이라고 부르는 것을 떠받들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평가하였다.

우리 모두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허공 뚫고
온몸으로 가자.
가서는 돌아오지 말자.
박혀서 박힌 아픔과 함께 썩어서 돌아오지 말자.

우리 모두 숨 끊고 활시위를 떠나자.
몇 십 년 동안 가진 것,
몇 십 년 동안 누린것,
행복이라던가 뭣이라던가
그런 것 다 넝마로 버리고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허공이 소리친다.
허공 뚫고
온몸으로 가자.
저 캄캄한 대낮 과녁이 달려온다.
이윽고 과녁이 피 뿜으며 쓰러질 때
단 한 번
우리 모두 화살로 피를 흘리자.

         -고은, <화살> 일부

▲강연을 마치고 고은시인이 사회자와 어깨동무를 하고 볼을 비비며 수 백 명의 청중들 앞에서 특유의 대중친화력을 뽐내고 있다. 청중들은 박장대소(?)로 호응했다. 

▲매년 옥천 지용제에 서울대 성악과 제자들을 데리고 참가해서 정지용 시인의 <향수>와 가곡 <고향>을 부르는 성악가 박인수 교수!!!

이시에서 '화살'은 민주화 운동의 일선에서 헌신적으로 앞장서서 투쟁했던 사람, 즉 민주화 투쟁의 전위를 상징한다. 따라서 시 <화살>은 개발독재시대의 어두운 현실에서 암울한 정치적 현실을 단번에 깨치려고 하는 시인의 예언자적 행동을 표상하면서 동시에 비이성적 시대를 맞이하여 침묵으로 일관하는 지식인 사회에 대해 경종을 울리려고 하는 목적성도 드러낸다.

사회자가 강연 요지를 요약하면서 열정적인 강연을 해준 노시인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달라고 하자, 시인은 갑자기 사회자와 어깨동무를 하며 다가서서 뺨을 비볐다. 사회를 맡아준 데 대한 고마움의 표시가 아니겠는가?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몰려와서 플래시를 터뜨리며 사진을 촬영했다.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으며 노시인은 무대를 내려갔다. 사회자의 인도로 다시 단상에 오른 노시인은 몰려나온 수백 명의 청중들과 환한 웃음을 지으며, 단체 사진촬영을 했다. "시는 시인의 심장에서 용솟음 쳐서 흘러나오는 뉘우스다"라는 어귀가 환청처럼 며칠간 들려왔다. 

▲문화관광체육부-강남도서관 공동주최의 <길 위의 인문학> 강남 수강생들을 이끌고 대청댐이 있는 풍광 좋은 옥천 '장계리 시비공원'의 '카페 프란스'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5월 27일(수)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시교육청, 그리고 강남도서관이 함께 주관하는 <길 위의 인문학> 수강생 30여 명을 관광버스에 태우고 다시 한 번 옥천의 지용생가 주변의 문화유적지를 찾았다. 새롭게 조성된 상계 체육공원 내 시비와 그 너머 교동저수지의 '호수'와 '홍시' 조형물이 인심 좋은 충청도의 농촌마을 옥천의 고즈넉함을 말해주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제28회 지용제(2015. 5. 16, 토) 지용문학심포지움에서 고은시인 초청특강에서 사회를 보면서 노벨문학상 후보인 노시인의 시창작에 대한 애정을 느꼈다. <지용을 향하여>란 강연에서 시란 "심장이 쏟아내는 뉘우스다"란 쉽고도 간결한 개념정의를 내리는 고은시인을 보면서 한분야의 대가란 이런 것이구나를 깨달았다. 강연을 마치고 400명과 30명이란 두 그룹의 문학청년들을 2015년 5월 두 차례 이끌고 충북 옥천에 산재한 지용문학 유산들을 찾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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