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대는 없다. 인문학을 배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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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동환(nadongg)등록 2015.04.06 09:53
언젠가부터 '인문학'이라는 열풍이 대한민국 전역을 뒤덮어 버렸다. 그 영향은 지금까지도 기세등등하며 굳힐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가까운 서점에 가도 인터넷 서점에서도 인문학 도서는 언제나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음을 너무나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인기도서, 등을 포함 판매 상위권에 올라와 있는 대부분의 서적들은 인문학을 수박 겉핥아주는 식의 책이다. 책을 통해 깊은 인문학적 소양을 쌓길 바라는 기대는 저물 수밖에 없는 책들이다. 하다못해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라는 책이 인기에 판매되고 있을까?

세상은 우리에게 인문학을 요구하고 있다. 그 세상은 노동자는 보이지 않는 자본만을 위하는 대기업들의 세상이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우리를 그 세상에 맞혀 살아오고 있다. 어떻게 해서든 취업을 해야 하는 세상에 우리의 목표와 꿈은 어린 나이에서부터 사라진지가 오래다. 취업 잘된다는 이과계열의 대학으로 진학하기 위해 울산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이과생이 전교생의 절반도 아닌 96%가 넘는 것이 사실이다.

참으로 웃긴다. 이 세상은 꿈을 꾸고 꿈을 쫓아가는 이들에게 의문을 품고 걱정을 하고 위로를 해준다. 그게 바로 나였다.

2012년 나는 충북의 국립대학으로 입학을 했다. 그때의 나는 위에서 말한 세상을 쫓아가는 사람 중 한명이었다. 그 당시는 안철수라는 인물은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로 세상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 서울시장을 넘어서 대선까지 유력후보로 나서고 있었으니 말은 다한 셈이다. 그와 동시에 '융합'이라는 키워드는 21세기를 이끌어가는 하나의 코드로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꿈을 잊은 채 2012년 우리학교의 신설학과였던 '디지털 정보 융합학과'로 관심도 없던 학문을 배우러 입학을 했었다. 그 선택은 역시 패착이었다. 나는 겉돌았다. 부적응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남들보다 유난히 빠르게 입대를 했다.

입대를 한 뒤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지도 않았던 시기, 다시 말해 우리학과는 두 돌도 맞이하지 못한 시기에 우리학과는 폐과가 됐다. 폐과 결정은 교수를 통해 학교를 통해 알게 된 것도 아니었다. 인터넷 기사였다. 그 누구도 폐과결정의 이유조차 알지 못했다. 내 전공이 없어졌는데도 말이다.

그 후 전역을 한 뒤 나는 작년 2학기에 '소프트웨어학과'로 복학을 했다. 2번째 전공이었다. 그러나 내 적성에는 상관없는 2번째 전공 역시 나를 겉돌게만 만들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아무런 흥미조차 느낄 수 없던 학문이었다.

현재 우리학교에서 소프트웨어학과는 소위 취업 잘된다고 알려진 학과이며, 또한 인문대생을 비롯해 소프트웨어학생이 아니지만 소프트웨어 부전공하는 과정을 삼성 소프트웨어 인력양성사업단을 통해 권장하고 또한 설명회까지 열고 있다.

그런 전공을 학과를 포기하고 나는 결국 인문대 국어국문학과로 전과를 했다. 과거 학보사를 하며 글을 쓰고 사람을 만나고 취재를 했던 기억은 결국 나를 국문과로 전과하게 만들었다. 나에겐 3번째 전공이 된 셈이다. 인문대에서 수업을 듣기 시작한지 이제 한 달이 지나간다. 그러나 여전히 나한테 묻는다. 아니 확신을 갖고 묻는다. "너 거기 가서 뭐할래? 뭐먹고 살래? 아직 철이 덜 들어서 그래." 라며. 하다못해 전과 면접 보는 교수님들마저 나를 걱정해준다. 격려가 아니다 걱정이다.

과거 80년대 대학생들은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고 시위를 하고 대모를 했다. 현재 2010년대 대학생들은 자신들의 학과를 살리기 위해 투쟁하고 시위를 하고 대모를 한다. 사회대에 사회학과가 없고 예술대에 회화과 인문대에 철학과가 없는 대학. 요즘의 세상이 바라고 원하는 대학의 모습이다.

옆 대학의 한 총장은 돈 안 되고 경쟁력 없는 학과와 교수는 없어도 무방하다는 언행까지 보였다. 우리의 대학은 도대체 어딜 향해 가고 있는 것인가?

대기업이라 불리는 거대한 자본을 앞세운 기업들은 대학을 기업화해가고 있다. 이런 대학 기업화는 취업 산출에 불리한 학과를 통폐합시키는데 가장 크게 일조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인문계 통폐합 말이다. 그런데 이 기업들은 채용 시 인문학적 소양을 가진 사람을 원한다.

인문학은 진리와 정의를 추구하는 학문이다. 누군가의 자본에 쉽게 흔들리고 흔들려서는 안 될 학문이다. 인문학을 잃어버린 세상은 다시 말해 나아갈 방향을 잃은 나침반을 잃어버린 세상과 똑같다.

어쩌면 수년 뒤 돌아보면 23살의 나는 세상물정 모르고 철없을 수도 있다. 그래도 나는 누군가에게도 떳떳하게 자랑할 수 있다. 누군가의 뒤꽁무니만 쳐다보고 방향도 없이 걸어가진 않았다는 사실 하나만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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