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페이’, 그 못된 발상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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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준호(jeiege7)등록 2015.03.29 15:23
짠돌이로 소문난 친구가 만나자고 해서 각오를 단단히 하고 약속한 닭갈비집에 갔다. 매운 닭갈비 2인분에 치즈와 라면 사리를 추가해서 볶고, 소주까지 곁들여서 맛나게 먹었다. 그랬더니 웬걸, 잠깐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그 친구가 계산을 끝내놓았지 않은가.

별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뭐 어쩌다 한 번은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닭갈비집을 나와 근처 호프집에 들러 치즈스틱 안주에 생맥주를 마시고 나서도 그 짠돌이 친구가 계산은 자기가 하겠다고 부득부득 우기는 것이다.   

이쯤 되면 맨 먼저 어떤 생각이 들까. 짠돌이처럼 굴더니 별일이네? 그러니까 사람은 오래 겪어 봐야 아는 거라고? 혹시 "이 친구가 나한테 뭘 부탁할 게 있나…?" 뭐, 그런 거 아닐까?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 셋이 대학로에서 연극 구경을 했다. 그 중 한 친구가 그 비싼 입장권 석 장을 모두 샀다. 연극을 보고 파스타로 저녁식사를 했는데 그 친구가 또 앞장서서 계산을 하는 게 아닌가. 커피숍에 가서 수다를 떨 때도 까페라떼 석 잔 값을 그 친구가 냈다. 전날 받은 알바비가 두둑하게 남았으니 내친 김에 오늘은 내가 다 쏜다고 하면서….

나머지 두 친구는 돈 한 푼 안 들이고 연극도 보고 파스타도 먹고 달콤한 까페라떼도 마셨으니 이만하면 전날 밤에 돼지꿈이라도 꿔서 횡재를 한 건가? 열심히 일해서 번 알바비로 그걸 모조리 쏘고 다닌 그 친구는 또 그날 완전 봉 잡히고 만 거겠네? 과연 그렇기만 할까?

경기도 이천에 사는 어느 여고생이 인터넷 공짜 광고에 속아서 중국 여행을 갔다가 납치 감금되는 끔찍한 경험을 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그 여고생은 침착하게 기지를 발휘해서 무사히 구출되긴 했지만 하마터면 평생을 두고 후회할 일을 당할 수도 있었지 않은가. 

"공짜 치즈는 쥐덫에만 있다"는 러시아 속담이 있다고 한다. 우리 속담에도 공짜와 관련된 속담이 몇 개 있다. "공짜 좋아하면 대머리된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가 그것들이다. 모두 공짜를 경계하는 말들이다.

사행심을 부추기는 로또 열풍이 세대를 가리지 않는다. 백화점마다 값비싼 경품 행사를 경쟁적으로 벌이고 있다. 스마트폰 매장의 출입문에도 '공짜'가 줄줄이 붙어 있다. 공짜 마케팅에 현혹되어 개인정보를 유출했다가 '호갱님'으로 전락하고 마는 이들도 많다. 대머리가 되거나, 쥐약이 묻어 있으니 먹으면 죽을지 모른다는데도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공짜라면 사족을 못 쓰고 덤비는 걸까.

전문가들은 불공정한 사회구조를 원인 중 하나로 꼽는다. 평범한 사람들은 제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원하는 결과를 성취하는 게 불가능한 반면 특정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빈둥빈둥 놀면서도 출세해서 엄청난 부를 누린다는 인식이 공짜에 대한 집착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공짜를 밝히는 이들은 자신이 하는 일에 확신이나 자신감이 부족하다. 기울인 노력의 크기나 부피를 가늠하기 전에 재수와 운을 탓하거나 거기에 기댄다. 로또 당첨자들이 행복하게 사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고 한다. 어떤 이는 수십억 원의 당첨금을 도박판과 유흥가에 모두 날리고 쩨쩨하게(?) 스마트폰 따위를 훔쳤다가 경찰에 검거되기도 했다. 무려 242억 원의 당첨금으로 이러저런 사업이나 주식에 투자했다가 빈털터리가 된 뒤 사기행각을 벌이다 감옥에 간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재능기부'라는 말이 있다. 개인이 갖고 있는 재주나 능력을 사회단체나 공공기관에 무상으로 제공하는 걸 가리키는 말이다. 나는 이 말에 담긴 뜻을 양면적으로 해석한다. 긍정과 부정적 인식이 공존하는 것이다.

지금 일하고 있는 대학의 교수 임용이 최종 확정되었다는 통보를 받고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 당시 학과의 원로교수인 J 시인께서 내게 들려주신 말씀이 하나 있다.

"지금까지는 오로지 교수가 되겠다는 신념을 갖고 앞만 보고 달려 왔을 거요. 앞으로는 걸음의 속도를 좀 낮추시고, 가끔 주위도 둘러보도록 하시오.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아마 적지 않을 겁니다…."

나름 열심히 노력했으니 교수가 되었을 것이다. 그동안 가족들의 희생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지원해주고 격려해 준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교수라는 직업을 만든 사회 시스템의 혜택을 받은 것이기도 하다. 저 혼자 잘나서 교수가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교수의 특권을 혼자만 누리지 마라. 이제는 그들로부터 받은 도움에 보답할 차례다….

나는 당시 그분 말씀에 큰 감명을 받았다. 개인이 재능을 갖게 된 건 혼자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할 테니 그걸 나눠 갖는다는 건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당연하고 바람직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것이 바로 재능기부다.

그런데 조건이 있다. '재능기부'는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재능기부 차원에서 제가 성심껏 도와드리겠습니다."라고는 할 수 있어도, "에이, 그러시지 말고 재능기부 좀 해주세요."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야박한 소리 말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생각해 보라. 재능기부를 강요하는 건 곧 공짜나 요행수를 바라는 것 아닌가? 개인이 오랜 시간 혼신의 노력을 투자해서 성취한 재능을 공짜로 갖다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 쓰겠다는 것 아닌가?

'열정 페이'가 좋은 예다. 20대 젊은이들이 갖고 있는 가장 큰 재능은 무엇인가? 아마 열정일 것이다. 그걸 헐값에 쓰겠다고 사탕 바른 말이 열정 페이 아닌가? 너희들한테는 열정이 있지 않느냐, 그러니 일한 만큼에 턱없이 모자라는 임금을 받았다고 불퉁거리지 마라? 너희들의 열정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일자리를 제공한 것만도 감사하게 생각해라?

편의점 점주들이 알바생들에게 지급해야 할 알바비를 놓고 '꺾기'를 일삼는 것도 다를 게 하나도 없다. 일자리를 제공해준 것만도 어디냐, 비록 너희들이 받아야 할 알바비 일부는 떼먹지만 그 나머지를 준 것만도 큰맘 먹고 온정을 베푼 것이니 그리 알아라?

그게 온정이라고? '따뜻한 정'이라고? 온정이 뜨겁게 달구어지면 열정이 된다. 그런 열정을 정당하게 평가해 주지 않고 열정 페이를 들먹이거나 꺾기를 일삼으면 젊은이들도 냉정해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같은 일을 당한 속 좁은 어른들은 틀림없이 역정을 내겠지?

'열정'의 반대말을 무엇일까. 앞서 말한 냉정? 아니면 역정? 혹시 의욕상실? 무기력? 빈둥빈둥? 모두 맞다. 그렇다면 열정을 한순간에 식혀서 젊은이들의 의욕을 상실하게 만드는 건 무엇일까.

바로 '공짜'다. 날로 먹겠다고 덤비는 몹쓸 심보다. 이건 대학생이든 취준생이든 편의점 점주든 청년착취대상 수상자든 예외가 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짜를 경계하는 말이 참으로 많지만 그걸 하나로 묶으면 이거 아닐까.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꺾기를 일삼는 편의점 점주가 원망스러운가. 열정 페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을 앞세워 턱없이 낮은 임금으로 그대들의 열정을 착취하려 드는 기성세대에게 분노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는가. 그렇다면 이제부터 마음속 깊이 새겨두고 하나씩 실천하는 것이다.

강의 시간에 대리출석 같은 건 부탁하지 않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대충 긁어다가 리포트를 작성하는 편법도 쓰지 않는 것이다. 중간이나 기말 시험 때 커닝 따위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기대에 못 미치는 학점을 받고 담당교수에게 확인 전화를 걸기 앞서 원하는 학점을 받기 위해 한 학기 동안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반성부터 하는 것이다. 교수님께서 딱 2점만 올려주시면 제가 장학금을 받게 된다면서 어떻게 좀 봐주실 수 없느냐는 궁색한 애원은 더 이상 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이 가고 싶은 직장에 먼저 취업한 친구들을 시샘할 여력이 있으면 마음을 다잡고 공부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승진하지 못했다고, 연봉이 오르지 않는다고 낙담할 시간에 승진하고 연봉이 오른 동료는 어떻게 일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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