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장학생은 노동자인가, 장학생인가

[주장]근로장학금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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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kimds3103)등록 2015.02.11 15:18
"서울대는 우리나라 대학 사상 최초로 근로장학금 제도를 2학기부터 광범위하게 실시할 계획이다. 서울대의 근로장학금 종류는 잔디 깎기·식기 닦기·실험실의 실험기구 정리 및 청소·강의실 청소·교수 논문 정리 등 다양하다. 서울대가 근로장학금제를 도입한 것은 대학생들의 과외교습 금지조치로 일부 학생들이 아르바이트 자리를 잃는 등 학비조달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이들의 면학을 지원하기 위해서다."(<매일경제>, 1980년 8월23일치)

1980년 "학생들의 근로기풍을 길러주기 위한 취지"(<경향신문>, 1981년 1월14일치)로 처음 시작된 근로장학제는 국가와 대학이 학생들에게 학내 일자리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장학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자신이 원하는 시간이면 언제든지 일할 수 있고, 공강 시간을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도 있는 장점을 갖춰서 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많다. 현재 시행되는 근로장학금 제도는 두 종류다. '국가'근로장학금과 '대학'근로장학금 제도가 그것이다.

'대학'근로장학금 제도는 학교 자율로 시행된다. 정부는 관여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광운대는 1년마다 자체적으로 근로장학생(교내 아르바이트)을 선발한다. 이때 근로장학생들은 교무처, 학생복지처 등 교내기관에서 사무보조, 시설관리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2014학년도 근로장학생들의 모든 업무는 그해 최저임금(5,210원) 이상의 시간당 장학금이 지급됐다. 장학금의 최저는 5,250원이었고, 최고는 6,200원이었다. 야간근무는 7,850원이었다.

한국장학재단도 근로장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한다. 근로장학생이 업무마다 주어진 근로시간(주당 최대 20시간) 동안 일을 하면, 1인당 평균 8,000원의 시간당 장학금을 국가로부터 지원받는 것이다. 대학 자율의 근로장학금이나 다른 아르바이트에 비해 시급이 상당히 높은 편에 속한다. 서울시가 생활임금 조례를 제정하며 고시한 생활임금 6,582원을 넘어선 금액이다. 광운대는 이번 2015년부터 '국가'근로장학금 제도로 편입할 예정이다.

근로장학금 제도는 문제가 많다

국가와 대학에서 각각 시행하는 근로장학금 제도는 얼핏 보면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유사한 업무를 하는 국가근로와 교내근로에도 임금 차이가 있는 게 사실이다. 일부 대학에서는 아예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장학금을 지급한다. 비슷한 노동을 할지라도 장학금의 지급 주체가 다르다면 '동일가치노동 동일장학금'의 원칙은 유명무실해지는 걸까.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정진후 정의당 의원이 전국 117개 대학의 2013년 교내 근로장학 제도 시행 현황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당시 최저임금(4,860원)을 지급하지 않은 대학은 전체 117개 대학 중 20개교였다. 그해 '국가'근로장학금은 6,000원이었다. 일부 대학들은 최저임금 이상의 시간당 장학금을 준다고 밝혔음에도 한 달에 20일만 일한다는 전제 하에 시급을 책정하여, 실제 근무일수에 따라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도 나타났다. 전체 학생 36,867명 중 4,521명이었다.

'대학'근로장학생의 선발에도 문제가 있다. 근로장학생 선발 과정에서 기존의 장학생이 업무를 연장하면 근로장학생 모집 인원이 동시에 줄어드는 만큼, 가정 형편이 더 좋지 못한 학생은 장학금 신청에 제약을 받는다. 저소득층 학생을 우선 선발하더라도, 해당 부서의 근무조건에 또한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정작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학생이 장학금을 받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더구나 근로장학생이 자신의 업무를 지인에게 물려주는 경우도 알게 모르게 발생한다. 장학 제도가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되는 셈이다.

'대학'근로장학금 제도에 문제가 많은 듯하다. 그렇다고 이 제도에 대한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이 문제로 발생하는 피해는 고스란히 '대학'근로장학생과 그 지원자에게 돌아간다. 물론 '국가'근로장학금 제도도 구조적으로 오류투성이다. 근로장학금이란 장학 제도 자체가 가진 모순 탓이다.

근로장학생은 노동자도 장학생도 아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장학금의 의미는 "성적은 우수하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학업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에게 보조해주는 돈"(표준국어대사전)이다. 하지만 근로장학생은 이상하게도 일정 시간의 노동을 해야만 장학금(시급)을 받을 수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일까. 근로장학금을 받는 학생들은 자신의 수업권마저 포기해가며 노동에 매달려야 하는 상황도 존재한다. '노동자인 듯, 노동자 아닌, 노동자 같은' 근로장학생들의 현주소다.

근로장학생들이 실제로 학교의 구체적인 업무까지 떠맡을 때도 있지만, 국가와 대학은 장학금이란 명분으로 학생들에게 그만한 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사례가 비일비재한 상태다. 근로장학생이 담당하는 업무는 세간의 생각만큼이나 비교적 쉽고 간단한 것만 있는 게 아니다. 조교를 모집하거나 직원을 채용해야 하는 업무를 근로장학생이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이 근로장학생을 고용하는 이유는 직원을 채용할 경우 급여부터 4대 사회보험, 초과근무수당 등 대학법인이 부담해야 하는 인건비 때문일 것이다. 대학이 제도를 악용하여 직원을 편법으로 채용하는 것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일부 대학은 교내 근로장학금을 노동에 대한 대가임에도 그 이름처럼 장학금으로 인정해왔다. 그 결과 근로장학금의 수혜자가 늘어나면, 그 대학의 장학금 지급률도 함께 증가한다. 이 때문에 근로장학제는 정부와 언론사 등의 대학평가와 대학의 자체 등록금 확충 정도만큼 연계·배정되는 국가장학금(Ⅱ유형)에 상당한 영향을 미쳐왔을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교에서 필요한 인력을 싼값에 고용하는 제도가 되레 장학금을 확충하는 데 기여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사실 근로장학생은 노동법 위반 사안에 대해, 정당하게 대응할 권리조차 없다. 현행법상 학교(사용자)와 학생(노동자) 사이에 고용관계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광운대에서 일부 업무는 2014년 최저임금에 맞춰 장학금(5,250원)을 제공하다 보니, 2015년 최저임금(5,580원)에 미치지 못한다. 근무기간이 2015년 3월24일까지이기에 대략 4개월 동안 그해 최저임금 이하의 시간당 장학금을 받게 되는 것이다. 1주일에 15시간 이상 정기적으로 근무해도 유급휴일 수당인 주휴수당을 받을 수 없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못하는 근로장학생들의 비애다. 장학생이란 그럴싸한 이름으로 진리의 전당이라 불리는 대학에서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노동착취가 서슴없이 벌어지는 셈이다. 그만큼 근로장학생은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갇혀 있다.

물론 근로장학생의 노동자성을 인정해도 역시나 문제는 상존한다. 첫 번째 문제는 노동자라면 4대 사회보험에 가입되는 만큼, 근로장학생은 보험료를 납부해야 한다. 그 전에 지급되던 시간당 장학금을 온전히 받기 힘들어진다는 얘기다. 또 다른 문제는 근로장학생이 국민기초생활수급 대상자인 경우다. 근로장학금이 소득인정액에 반영되어, 생계급여를 받아야 하는 근로장학생이 수급 대상에서 제외될 수도 있어서다. 그래서인지 학생들에게 근로장학생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것은 오히려 불이익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근로장학생은 노동자와 장학생의 경계에서 노동자의 노동권도, 대학생의 학습권도 온전히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노동하는 장학생들의 현실이다. 그사이 대학은 부당한 노동현실의 또 다른 사례가 되어간다. 이 상황을 바로잡을 방법은 딱 한가지다. 근로장학생 제도를 폐지하는 것이다.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려 한다면 학생들의 아르바이트 자리를 늘려주는 근로장학금이란 형용모순에 불과한 장학 제도를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학업에 집중할 수 있는 '진짜 장학금'의 지급이 필요하다. 전국 309개 사립대학의 2013년 누적적립금이 10조원 이상이란 점에서 대학이 '진짜 장학금'을 지급할 능력은 충분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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