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삼관>

익숙한 것과 이질적인 것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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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수(sscc1963)등록 2015.01.15 20:25
익숙한 것과 이질적인 것의 만남

<허삼관>(하정우, 드라마, 12세, 2015)

<허삼관>은 배우인 하정우가 감독으로서 만든 두 번째 작품이다. 비록 짧은 배역이라도 출연한 중견급 배우들을 볼 때, 배우로서 하정우의 넓은 인맥을 확인할 수 있고, 또한 이미 '만두먹방'으로 소문이 자자할 정도로 하정우 특유의 장면들을 볼 수 있다. 전편에 비해 감독으로서 하정우의 특징이 더욱 도드라진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원작에서 강조하는 문화혁명과 매혈이 갖는 상관관계를 한국 상황으로 옮기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감독은 원작을 각색함에 있어서 대단한 용기를 발휘했다. 다시 말해서 한국 전쟁 이후를 시대적인 배경으로 그리고 공주를 공간적인 배경으로 하면서 힘든 삶의 한 방식으로 매혈이라는 모티브를 사용했다. 사상의 곤고함 대신에 경제적인 곤고함으로 대체한 것이다. 결국 원작이 문화혁명을 겪는 당시대인의 운명에 집중하고 있는 것과 달리 감독은 가난 속에서 부성애를 발휘하는 허삼관이라는 캐릭터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야기는 첫눈에 반한 동네 처녀 허옥란(하지원 분)을 온갖 물량 공세로 아내로 삼는 과정부터 시작해서 결혼 후 11년 동안 키운 첫째 아들이 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 전개되는 좌충우돌의 과정을 코믹하게 담았다. 무거울 수밖에 없는 사건이고, 어떻게 보면 '출생의 비밀'을 두고 전개되는 한국의 막장 드라마의 한 소재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코믹하면서도 태연스럽게 다뤄 관객들의 심적인 부담을 덜어주었다. 특히 매혈은 소설뿐만 아니라 영화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모티브다. 매혈이 누구에게는 생활의 한 방편으로 그저 노동을 대체하는 일일 수 있고, 누구에게는 급전을 마련하기 위한 방법이지만, 허삼관에게 매혈은 결국 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아내를 얻는 일이고 또한 아버지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는 일임을 나타내 보여주는 행위였다. 허삼관은 매혈을 통해 소중한 것을 얻기 위한 희생을 말한다.

이즈음에서 영화에서 다양한 형태로 회자하는 '피'에 주목해보자. 무엇보다 허삼관은 허옥란의 데릴사위로 들어가면서 허씨 집안의 피를 잇는다고 생각한다. 첫째 아들이 친자가 아님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혈통에 얽힌 고민을 한다. 어차피 자신도 처가의 친 자식이 아니면서도 허씨 집안의 대를 잇는다고 생각했던 것을 생각하면, 일락의 아버지가 같은 허씨 성을 가졌음을 생각한다면, 비록 친자가 아니라도 대를 잇는 데에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 일이다. 또한 매혈을 통해 아내를 얻고 또한 아들의 치료비를 얻는다. 비록 언어유희에 불과하지만, 만두에도 만두'피'가 사용된다는 점도 결코 무시하지 못할 부분이다. 다시 말해서 만두를 먹되 만두피를 먹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피를 수혈 받음으로 허삼관이 지나친 매혈 때문에 겪은 생명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장면도 주목할 부분이다.

결국 피에 얽힌 다의적인 맥락을 생각해볼 때, 영화에서 피가 주는 의미는 분명하다. 익숙한 것과 이질적인 것의 만남, 전통과 새로운 것의 만남에서 굳이 익숙한 것 혹은 전통만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허삼관이 매혈 곧 희생을 통해 소중한 것을 얻을 수 있듯이, 전통을 포기한다고 해서 소중한 것이 잃는 것은 아님을 암시한다. 오히려 그럼으로써 더욱 소중한 것들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배우로서가 아니라 감독으로서 두 번째 작품이라는 점에서 <허삼관>은 그의 잠재적인 연출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에서 아쉬운 점 두 가지를 말한다면, 초반부에 보여주었던 이야기를 코믹하게 끌어가는 힘이 이야기 흐름이 감동으로 전환되면서 급격하게 약화된 것이다. 영화적으로 당연한 전개라고 생각되지만, 이야기의 주제인 아버지의 희생, 전통의 포기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일에 너무 전념하다보니 관객의 기대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것 같다.

다른 하나는 한국인 정서에 맞지 않는 분위기로 가득했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의 소설을 한국 영화로 만들 때, 무엇보다 주의해야 할 점은 정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정서'란 우리 이야기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외국 영화는 외국의 정서를 전제하고 보기 때문에 비록 낯설다 해도 감상에 방해를 받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이야기가 아닌 것을 한국 영화로 옮겨왔을 때의 상황은 다르다. 관객은 다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전제하기보다 우리 것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특히 원작을 모르고 영화만을 감상하게 될 때는 더욱 그렇다. 그러니 원작에 가까운 영화라 해도 정서가 맞지 않으면 이상한 영화가 되고 만다. 이런 점에서 한국 영화로 각색하는 과정에서 좀 더 한국적인 정서를 느낄 수 있는 캐릭터가 아쉬웠다. 게다가 죽어가는 사람의 혼을 깨우는 굿을 할 때 사용한 주문이 무당이나 박수가 쓰는 것 아니라 증산도의 주문과 너무 흡사해 한국 무속을 아는 사람들에겐 여간 신경이 거슬리는 부분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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