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두 서사, 반공과 소통

<천안함 프로젝트>(백승우, 다큐멘터리, 12세,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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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수(sscc1963)등록 2015.01.12 14:08
"자신을 정당화하지 않는 과학은 진정한 과학이 아니다."(장 프랑소아 리오타르, '포스트모던의 조건' 중)

우리 사회는 지금 여러 사건과 관련해서 진실게임을 벌이고 있다. 과거에 시작된 것이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것도 있지만, 국정원 직원의 댓글 사건이 사실로 밝혀진 후로 현재는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과 통진당 이석기 의원의 여적행위에 대한 의혹과 관련해서 진실게임이 진행 중이다. 진실게임이라 함은 질문을 받는 사람과 질문하는 사람 사이에서 한쪽은 숨기고 다른 한쪽은 진실을 캐내려는 두 개의 의도 사이에서 전개되는 갖가지 상황을 즐기는 게임이다. 대체로 질문을 받는 쪽은 숨기거나 자신의 주장이나 입장을 정당화시키려고 노력하고, 질문하는 쪽은 밝혀내거나 반증의 사례를 통해 무력화시키려고 한다. 개인의 의사를 존중하는 사회에서 흔히 있는 일이고, 또한 사실은 하나이지만 그것을 보는 관점이나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벌어지는 해프닝이다. 그야말로 게임 차원에서 즐기기 위한 것이라면 몰라도 투명한 사회를 위해선 그다지 환영할 만한 일이 못된다.

서두에서 진실게임을 말한 이유는 <부러진 화살>과 <남영동 1985>로 우리 사회 사법정의의 왜곡과 유신체제 하에서 벌어진 인권유린의 현실을 돌아보도록 해서 여론의 관심을 받았던 정지영 감독이 기획 및 제작을 맡고 백승우 감독이 만든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 역시 진실게임의 단면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다이빙벨> 역시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이것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다루겠다). 한쪽은 뭔가를 숨기는 듯이 보이면서 나름대로 정리한 내용을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정부이고, 다른 한쪽은 반증의 사례를 제시하면서 의혹을 제기하며 새로운 진실을 밝혀내려고 한다. 영화는 국방부에 의해 발표된 백서를 중심으로 전개된 진실게임을 재구성한 것이다. 천안함 침몰과 관련해서 발표한 정부 및 국방부의 입장은 버블제트 폭발로 인한 침몰이다. 북한의 어뢰공격에 의한 침몰이라는 것이다. 국방부가 발표한 백서에는 조사가 '과학적'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서로 과학적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양쪽 가운데 누구든 하나는 착각 혹은 거짓을 말하는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의 관점에서 볼 때, 영화는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정부의 백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주로 반증 사례들을 중심으로 전개하면서 진실이 밝혀지지 않는 원인을 두 가지에서 찾는다. 하나는 소통의 거부(혹은 부재)이고 다른 하나는 폭력적인 위협이다.

첫째, 과학적인 조사와 관련된 사항으로 소통의 부재는 과학의 문제를 정치로 해결하려는 것에서 온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부가 소통이 아니라 지시적이고 규범적인 위치를 고수하는 것에 불과하다. 과학적이라 함은 정부 측 연구자가 가설을 정당화(검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반증의 가능성도 조사해야 하며, 반증을 극복할 만한 설명을 내놓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철학자 칼 포퍼가 오류화(falsification)를 말한 이후로 과학에서는 상식이 되었다. 영화가 문제 삼고 있는 부분은, 국방부는 과학적이라고 하면서도 왜 자신의 가설에 대한 정당화만을 주장하고 반증 사례에 대해서는 설명을 하지 않고 또 할 의지도 보이지 않고 있느냐는 것이다. 자신의 주장이 의심하는 국민에게도 수용될 수 있도록 왜 노력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과학적이라는 말은 일회적인 실험이 아니라 반복적인 실험을 통해 동일한 결과를 관찰할 수 있을 때 유효하다. 그런데도 정부가 반증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국방부의 백서는 과학적인 결과가 아니라 정치적인 결정이라 볼 수 있다. 결국 천안함 침몰 원인에 대한 조사는 과학적이 아니라 비과학적인 해석 곧 정치적으로 종결되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사건을 정의하고 의미를 규정하는 이야기는 과학의 한계를 벗어나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아무리 과학적인 반증 사례를 제시한다 해도 수긍될 수 없는 것이다. 리오타르는 과학은 더 이상 진리를 발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이는 과학자들 혹은 과학은 권력에 의해 구매되기 때문이다. 의혹을 갖고 파헤쳐야 할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번복된 발표와 진술과 관련해서 사건을 그렇게 결정짓게 만든 서사, 곧 권력을 통해 과학적 지식의 유의미성을 결정짓는 정치적인 의도이다. 소통을 불가능하게 하는 행태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과학과 정치가 긴밀하게 상호 협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둘째, 소통이 안 되는 이유는 과학적인 의문을 폭력적으로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은 반증을 제시하는 사람이 신변의 위협을 받고 있음을 증거 한다. 조사위원으로 참여하여 국방부 발표에 강력한 이의를 제기한 야당 의원은 물론이고 국방부의 발표와 다를 뿐만 아니라 백서에 반하는 반증의 사례를 언론에 계속해서 제시하는 민간인 전문가를 위협하는 것은 정부의 의견만을 관철시키려는 태도에서 비롯하는데, 이것은 기본적으로 진실게임의 규칙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게다가 공포를 조장하는 권력의 힘으로 현실을 규정하려는 것은 파쇼와 다를 바 없고 또 전체주의 사회에서나 볼 수 있는 시대착오적인 태도이다. 이것은 국방부 연구와 결과가 지극히 정치적이고 또한 일을 처리하는 과정이 폭력적임을 드러낸다. 이것은 소통은 차치하고 사회적인 연대를 파괴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두 가지 점에 비추어볼 때, 정치적인 결정으로 일관하고 또 폭력적인 위협으로 반대 의견을 견지하는 상황에서 굳이 과학적인 반증을 제시하며 사건을 재현하는 것은 무슨 때문인지 의문이 든다. 혹시 과학의 만능에 대한 신화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과학적으로 설득력을 입증하면 번복될 것을 기대한 것인가? 사실 사건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이 그동안 몰랐던 사람들에게는 사건을 합리적으로 이해하는 좋은 정보가 되겠지만, 사안을 꼼꼼하게 살펴보며 추이를 지켜본 사람들에게는 과학적 사실보다 정치적인 의도가 더 궁금하다. 왜냐하면 논란을 지켜보면 사람들은 그것은 진실인가를 묻고 있지만, 정부는 이미 북한의 소행으로 알려진 마당에 그 질문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고 반문하는 셈이고, 여기에다 정책적으로 장악한 여론을 통해 혹은 보수 단체를 통해 집중적인 엄호사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를 거시적으로 들여다보면 반증 사례를 소개하는 것이 굳이 과학적인 방식으로 설득하려고 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다시 말해서 영화는 세부적으로는 이 두 가지를 바탕으로 소통되지 않고 있는 사회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실례라고 결론짓고 있지만, 사실 영화의 목적은 사건의 진실을 밝히려는 과학적인 탐구 및 그 결과를 제시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영화 말미에 소개되고 있듯이, 소통하지 못하고 있는 사회 현실을 고발하고 또한 백서에 대한 반증을 제시함으로써 비과학적인 결정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람들로 하여금 비과학적인 무엇이 작용하고 있음을 감지하게 만드는 것, 바로 이것이 영화가 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물론이고 영화 상영 자체가 정치적인 사안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일부 단체들에 의한 상영반대 시위와 상영금지 조치는 충분히 납득이 되는 일이다. 과학적 사실은 부정한다고 부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갈릴레오의 말은 영원한 진실이다. 상영반대 시위와 압력은, 자신들은 전혀 의식하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천안함 사건에 대한 결정이 정치적인 것이었음을 스스로 드러내는 일이었다.

한편, 영화를 분석하게 될 때 현재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두 개의 이야기 틀(grand narrative)이 서로 맞서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는 반공(안보) 이데올로기이고 다른 하나는 소통에 대한 신화다. 완전한 실현은 어렵지만 정보 민주주의 사회에서 소통이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의미에서 신화라는 표현을 썼다. 다시 말해서 천안함 사건을 대하는 상반된 태도는 각각 다른 이야기 얼개를 전제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참여정부에 이어 등장한 MB정부는 처음부터 반공이데올로기를 구축하는 데에 심혈을 기울였고 또 그 흔적을 노골적으로 많이 드러냈다. 서해 교전도 월드컵 때문에 묻힐 수밖에 없었던 것에 불만을 품은 많은 보수세력들로서는 한방의 역전을 위한 기회가 필요했다. 이 때 연평도 교전이 일어났고 이어서 천안함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MB 정부로서는 그토록 원했던 정책을 시행하는 데에 적합한 기회였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는 MB정부가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반공 서사를 도입하려는 계획을 실행한 것이고 어느 정도는 의도한 대로 이끌고 갔다고 보는데, 왜냐하면 현재 국정원 대선 개입에 대한 의혹이나 박근혜 정부의 살벌한 공안 분위기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MB 정부는 뜻하지 않게 발생한 천안함 사건을 정치적으로, 특히 반공이데올로기에 기초해서 규정하고 또 해석함으로써 우리 사회에서 반공 서사를 구축하기 위한 방편으로 삼은 것이다.

이에 비해 소통은 유신체제와 군사독재에서 벗어나고 또 우리 사회가 권위주의적이고 관료주의적인 옷을 벗으려는 의지를 강하게 표출하면서 매우 중요해진 화두다. 가정과 학교와 사회에서 하나의 유행어가 되었을 정도다. 정보가 중시되는 시대가 되면서 정보의 소유가 권력획득과 밀접한 관계를 갖기 때문에 소통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었고, 특히 개방, 공유, 참여를 기본철학으로 삼고 있는 웹2.0가 되면서 소통은 사회적인 삶이 가능해지기 위해 필수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다. 소통이라 함은 막히지 않고 잘 통하는 것을 일컫는데 주로 사회 안에 존재하는 각종 관계를 염두에 두고 있다. 인간관계에서부터 정부와 국민 그리고 국제관계에 이르기까지, 최근에는 자연과 인간, 기계와 인간의 소통까지도 말할 정도가 되었다. 무엇보다 남한과 북한의 소통이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다. 한국사회에서 소통 서사의 중요성이 인지되는 듯이 보였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해서 열린 촛불집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 소위 '명박산성'이다. 이는 MB 정권이 소통에 대한 의지가 없었음을 단적으로 스스로 드러내는 퍼포먼스였다. 당시로서는 국민의 정서 곧 소통 서사에 반하는 행위로 볼 수 있지만, 그것은 단지 반공 서사의 초기 단계였다. 천안함 침몰 사건 조사 과정에서 일관되게 보여준 정부의 비과학적인 태도는 소통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갈아엎는 반공 서사가 정착되는 모습을 퍼포먼스였다. 그래서 나온 것은 공포의 공안 정국이다.

<천안함 프로젝트>은 한편으로는 과학적인 연구와 그에 따른 결과로 설득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인 해석으로 일관한 태도 때문에 소통이 되지 않았음을 폭로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소통부재의 현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현실의 단면을 엿볼 수 있게 한다. 특히 소통을 위해 제작된 영화가 일부 단체의 시위와 압력 때문에 상영중단 됨으로써 결과적으로 소통부재의 현실이 입증된 셈인데, 이런 해프닝은 하나의 퍼포먼스로 보아도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으로 설정됩니다. 사이즈는 가로 550픽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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