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구조 바깥에서 구조를 들여다보는 청년 되기

개그콘서트 <젊은이의 양지> 리뷰

검토 완료

안동석(wwjd824)등록 2014.12.29 15:29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인 <젊은이의 양지>는 이 시대 청년들의 모습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다시 말해서 백수(김원효 분), 취업준비생(이찬 분), 재벌2세(이문재 분)로 유형화된 세 명의 청년이 나누는 이야기는 웃음의 코드 아래 절묘하게 조합된다. 그러나 세 캐릭터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시청자의 무의적인 생각 속에는 단지 웃음만 스치고 지나가지 않는다. 한바탕 웃는 도중에도 머릿속에서는 구조를 형성하고 자신을 반추하는 일이 연이어 일어난다.

이를 테면 이런 것이다. 언제나 코너의 시작과 함께 홀로 등장해 이야기를 꺼내는 캐릭터는 취업준비생이다. 그리고 늘 그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취업준비생의 애환에 대한 것이다. 그렇게 시청자는 홀로 등장해 애환을 토로하는 취업준비생 캐릭터에게 자연스럽게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특히,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년 시청자라면 이러한 감정이입의 기제는 더욱 밀도 있게 진행된다.

이렇게 취업준비생의 내러티브를 따라가는 시청자는 뒤이어 등장하는 백수 캐릭터와 마주하면서 웃음을 터뜨린다. 이 때 웃음을 유발하는 것은 바로 백수의 엉뚱한 논리다. 즉, 인과관계를 구사하지만 자의적이고도 비약적인 논리를 펼치기 때문에 웃음이 유발되는 것이다. 하지만 웃음과 동시에 시청자의 머릿속에서는 우열의 논리가 구성된다. 백수 캐릭터는 정상적인 지적활동이 일어나지 않는 열등한 주체로 포획된다. 즉, 취업준비생 캐릭터에 경도된 시청자는 보다 우월한 주체로 올라서서 백수 캐릭터를 내려다보게 되는 것이다. 아니라고 반문할 테지만, 백수 캐릭터를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는 것은 바로 이 우열의 논리를 구성했다는 반증이다. 이 때, 이러한 우열의 논리를 구성하는 이유로 여러 가지를 찾을 수 있겠지만 크게 두 가지 정도를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하나는 정상적인 인과관계를 구사하지 못하는 부류의 사람을 교양의 기준에서 먼 사람으로 치부하는 사회적 통념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취업준비생과 백수를 가르는 기준이 모호한 상황에서 백수 캐릭터에 동일시하기를 꺼려하는 시청자의 구별 짓기다. 다시 말해서, 우열의 논리 구성은 시청자의 외부와 내부에서 함께 진행된다.

한편, 뒤이어 등장하는 재벌 2세 캐릭터와 마주하며 생산되는 웃음의 코드는 또 다른 양상을 띤다. 얼핏 보기에는 마찬가지로 억지스러운 인과관계를 구사한다는 측면에서 백수 캐릭터와 비슷하지만 취업준비생 캐릭터와 시청자에게 끼치는 영향은 다소 다르다. 이는 재벌 2세 캐릭터가 구사하는 인과관계가 자기합리화로 굴절되는 데서 비롯된다. 때문에 웃음이 유발되기는 하지만 취업준비생 캐릭터에 경도된 시청자는 웃음 뒤로 씁쓸함을 맛본다.

그러나 다시 등장하는 백수 캐릭터는 우열의 구조 바깥에 서서 내러티브를 해체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재벌 2세 캐릭터의 취업준비생 캐릭터에 대한 호의가 도리어 취업준비생 캐릭터를 어떻게 배제(혹은 소외)시키는지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즉, 백수 캐릭터는 일반적인 인과관계를 추구하도록 학습된 취업준비생 캐릭터로 하여금 인과관계의 허위성과 마주하도록 돕는다. 그리고 그러한 인과관계를 물신화 혹은 사회적으로 통념화시킨 사회구조 속에서 취업준비생이라는 주체가 어떻게 타자화 되고 배제되는지 알려준다.

정리하자면 언뜻 보기에 백수 캐릭터는 <젊은이의 양지>라는 개그 코너 속에서 웃음을 유발하는 하위 주체로 배치된 것 같지만, 사실은 우열을 나누는 구조 바깥에서 시사점을 던지는 화자라는 것이다. 즉, 일반적인 인과관계에 함몰되어 스스로가 구조 속에서 배제되기 쉬운 형국을 해체적인 독법으로 타개하는 인물인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웃음의 코드만을 따라가다 한바탕 웃음 뒤에 씁쓸함을 맛보는 것으로 시청을 마무리하기보다는 암묵적으로 해체적인 독법을 권하는 백수 캐릭터의 소리에 귀 기울여 봄직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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