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를 이어주는 그들에게 얼마를 지불하고 싶으신가요?

검토 완료

장교진(littlefnger)등록 2014.12.16 16:00
택배업계에 따르면 온라인 쇼핑이 급성장하면서 택배물량이 급격히 늘었지만 택배요금은 경쟁심화로 지난 2000년대 초반 3500원에서 현재 2400~2500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1000원의 간극은 과연 누가 감당하고 있을까?
택배기사 김모 씨는 새벽 5시에 집을 나선다. 자신에게 할당된 택배를 모두 처리하려면 새벽 5시 출근도 늦다. 밥 먹는 시간을 빼고 계속 이동하며 배달하고 나면 어느새 시계는 저녁 8시를 가리키고 있다. 매일 김 씨가 처리해야 하는 물량은 100개이다.
배송 1건을 완료하면 김 씨가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930원. 10년 전에는 건당 1000원씩 받았지만 택배요금 경쟁으로 930원까지 떨어졌다. 김 씨는 매일 100개의 물건을 배송하지만 본인에게 떨어지는 돈은 월 150만 원 정도에 불과하다. 가열된 경쟁의 피해는 누가 보고 있는 것일까? 그 피해가 아래를 향하고 있다면 이 또한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제1차 단가경쟁, 입찰 경쟁> 
가장 싼 값에 질 높은 고객 서비스! 택배업계에 일감을 주는 회사들의 이상형(?)이다. 일단 일감을 따내야 먹고 사는 택배업계로서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회사의 입장을 맞춰줄 수밖에 없다. 현재 택배 물량의 80~90%는 온라인 쇼핑몰이 차지한다. 최저가 택배비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에 발 맞춰 택배회사도 최저가 위주의 경쟁 입찰이 일반화됐다. 그러다보니 쉽사리 택배비 인상을 결정하지 못한다. 소비자들은 100원, 200원의 차이에도 민감했다. 그러니 경쟁에서 이기려면 택배 단가는 터무니없이 낮아야 한다. 이런 구조 속에서 택배업계의 수익구조가 좋을 리 없다. 실제로 단가의 3~5% 수준의 이익만 취한다고 하니 수익을 유지하려면 택배기사들을 쥐어짤 수밖에. 한 택배업계 관계자는 "물류 일감을 주는 회사들이 대부분 최저가를 찾는 동시에 높은 고객 서비스를 요구한다. 이 때문에 물류 업체들은 수익과 서비스 질을 유지하려면 택배기사들을 쥐어짤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제2차 단가 경쟁, 대기업의 택배사업 진출>
현재 택배시장의 70%는 대한통운, 현대 로지스틱스 등이 차지하고 나머지 30%는 중소업체가 나눠 갖고 있다. 다른 사업 부분과 마찬가지로 30%의 중소업체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자본금과 전국적인 네트워크로 무장한 대기업과 경쟁 아닌 경쟁을 통해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롯데가 택배 사업에 뛰어들 조짐이 있어 택배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롯데는 백화점, 대형마트, 기업형 슈퍼마켓, 홈쇼핑, 편의점을 거느리고 있어 그 영향력을 감안하면 단번에 주도권을 꿰차고도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대기업의 택배 사업 진출은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를 넘어 택배 시장의 구도 전체를 재편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마지막, 절대경쟁>
우리사회를 '피로사회'라 지칭한 한병철은 피로사회의 구성원들은 스스로 절대경쟁을 한다고 말한다. 절대경쟁이란 남과의 상대적 경쟁이 아니라 '스스로를 끝없이 뛰어넘어야 하는 자기 자신과의 경쟁'을 의미한다. 1차, 2차 경쟁을 치른 택배기사들은 이제 스스로를 끝없이 뛰어넘는 절대경쟁으로 빠져든다. 더 이상의 단가 인하는 불가능함에도 더 할 수 있다며 계속해서 벌이는 가격 경쟁. 그 경쟁의 한 가운데에서 스스로 체력적, 정신적 한계를 매일 뛰어넘고 시험하는 택배기사들! 그들의 치열한 경쟁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그들에게 개인적 사회적 방전 상태가 올 날이 멀었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고통의 치우침이 너무도 극심하다.

'치우침'은 불평등의 또 다른 이름이다. 고통의 치우침, 자본의 치우침! '치우침'의 해소는 많이 가진 쪽이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고통을 많이 가진 자는 고통을 나누고, 자본을 많이 가진 자가 자본을 나누면 되는 매우 간단한 공식이다. 그러나 이 둘을 나누는 주체가 하나라는 점은 우리 사회 '치우침'의 해소를 어렵게 만든다. 많은 고통을 가지고 자본을 갖지 못한 자에게 '치우침'을 해소할 수 있는 힘은 없다. 상대적으로 고통을 적게 가지되 자본이 있는 자는 '치우침'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알고 있으나, 그럴 만한 의지가 없다. "동생이랑 나눠라!"며 주신 할머니의 용돈을 함께 받은 누나에게 돈을 나눌지 말지에 대한 선택권이 있는 것처럼, '치우침'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들만이 이 치우침을 해소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는 것이다. '공존'의 의미를 마음 깊이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